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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2 별로 원하지 않는 만남. 연속
“놀러왔다고?”
“네. 아트랙션(Attraction)에서 34지구관광 패키지를 발급받아서 온 거예요. 저 휴가라서 좀 평화를 만끽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왔다가 당신을 본 거죠. 그래서 여행길에 같은 처지의 여행자를 만난 줄 알고 좋아했는데 이렇게 시치미를 떼잖아요.”
잠시 할 말을 잃어버린다.
뭐? 관광패키지?
“그, 그, 외계인들이 지구에 자주 놀러와?”
“네. 매년 10만 명 이상씩은 들러요. 34지구는 괜찮은 관광명소 중 하나니까.”
“하지만 우리는 외계인들이 온다는 것도 모르는데.”
“당연하죠. [연합]의 규칙상 아직 3문명에 들어서지 못한 지구에 문명을 전파하거나 정체를 밝히는 건 불법이니까요. 지구에 오는 관광객이 많든 적든 사람들이 알 리 없다고요. 물론 극소수의 인간들은 연합의 존재를 알고 협조 체계를 만들었지만 말 그대로 극소수일 뿐이죠.”
그렇게 말하며 커피를 마시는 모습은 더없이 태평하다.
“그럼 어떻게 여행하지?”
“그냥 조용히. 저처럼 이쪽 행성의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고 개인 우주선을 타고 위성궤도를 돌면서 구경만 하는 이들도 있어요. 가끔 관광객들 여행선이 지구에 관측되거나 하지 않나요? 뭐, 3문명 이하 종족에게 관측당하는 건 벌금형이라 휴가비 3분의 1은 날아가지만요.”
“…설마 사진에 찍히거나 한 UFO들이 진짜라는 말이야?”
“전부는 아니죠. 조작된 것도 있을 테니까.”
들어보니 비밀은 비밀인데 들켜도 그다지 큰일은 아닌 모양이다. 들켰을 때의 형벌도 벌금이라니 말 다 했지 뭐.
게다가 그 우주연합? 하여튼 그 존재를 알고 협조체계를 만든 인간들도 있다니 모든 인간이 외계인의 존재를 모르는 건 아닌 모양이다.
우리 아버지의 지인(?)인 미합중국 대통령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나저나 34지구라는 건 무슨 말이야?”
“별건 아니에요. 자기네별을 지구(地球:둥근 땅)라고 부르는 곳이 꽤 많아서 [연합]에 먼저 인식된 순서로 번호를 매긴 거죠. 34지구가 발견된 게 대충 1,700년 정도 됐으니까요. 참고로 그중 [연합]에 가입한 건 30지구까지예요. 제 생각에 이곳도 한 150년, 빠르면 80년 안에 3문명에 돌입해서 가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태연하게 이야기 하고 있지만 정말 무시무시한 이야기다.
즉 외계의 존재는 아주 예전부터 지구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그 위를 날아다녔다는 말이다.
쳐들어오거나 정복하지 않는 것은 자기들끼리 정해진 법 때문일 뿐이라니.
“맙소사.”
스스로 표정 연기의 달인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이렇게나 거대한 스케일의 이야기를 들으니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 걸 막을 수가 없다.
물론 난 이 세상과 존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왔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는 외계의 존재도 많이 등장했지만, 그럼에도 이런 방식의 세계관은 상상도 한 적이 없다.
“흠… 이제 와서 이런 걸 묻는 것도 그렇지만.”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진짜 인간이에요?”
“당연히 진짜 인간이지. 지구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교육받고 자란 평범한 인간이라고.”
“우주선 같은 것도 요번에 처음 보고?”
“물론.”
“하지만 그런 것치고 별로 놀라지 않으시던데요?”
“내 성격이 원래 이래서 그래.”
“흐음… 거 참.”
내 말에 세레스티아는 그 고운 눈매를 찡그렸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칭호를 볼 수 있다는, 참으로 괴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난 인간.
하지만 세레스티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린다.
“그건 좀 이상하네요. 전 처음 보는 순간 노블리스(Noblesse)나 엘로힘(Elohim)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뭐, 말도 안 되는 일이겠지만 어쩌면 언터쳐블(Untouchable)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요.”
그게 뭔데 인마.
“게다가 대하님은 제 비마나(Vimana)의 모습을 확인했죠. 물론 거기에 설치된 인식장애기는 그리 대단하지 않은 수준이지만 그래도 보통 사람은 볼 수 없어요. 대하님한테 뭔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죠. 외계인이 아니라면… 혹시 돌연변이신가요? 지구에도 관련 연구를 하는 녀석들이 꽤 된다던데. 아, 그러고 보니 능력자도 제법 있다고 들었어요. 그럼 마법사?”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 건지 눈을 반짝이고 있지만 난 전혀 재미없다. 돌연변이? 마법사?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쯤하지. 하여튼 난 그쪽 관련해 아는 일 없어. 평범하게 태어나서 평범하게 자라왔다고. 앞으로도 관련되고 싶지 않고.”
딱 잘라 말한다.
다행히 이 녀석은 뭔가 중요한 문제가 아닌 단순 흥미만을 가지고 접근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단호하게 거절하면 되겠지.
“앗. 갑자기 가다니… 계산은 제가?”
“그럼 좀 보자고 한 네가 내야지 억지로 끌려온 내가 내리?”
설마 지구에 놀러 왔다는 주제에 돈이 없다고는 안 하겠지. 보통 관광객은 돈을 많이 들고 다니는 법.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놀랐다는 표정이다.
“우와. 보통 저 같은 미소녀랑 데이트하면 돈은 남자가 내는 법이에요.”
“…….”
미소녀라는 말을 도저히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이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보통 그런 말을 자기 입으로 하나?
피식 웃고 커피숍을 나온다.
됐어, 이거면 되겠지. 하고 안심했지만 세레스티아 녀석도 재빨리 계산을 마치고 따라오는 게 아닌가?
“뭐야. 따라오지 마.”
발걸음을 빨리해 봤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발걸음이 엄청 가볍잖아? 짐작하건데 내가 전력으로 달려도 떨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어? 저 여자 봤어?”
“와, 미소녀다. 뭐, 촬영하는 거야?”
“게다가 저거 봐. 파란 머리야. 색 정말 잘 나왔다.”
몇 미터 걷지도 않았는데 시선이 모이기 시작한다.
아, 이거 정말 곤란하다. 재수 없게 날 아는 사람이 보기라도 한다면 학교에 이상한 소문이 나게 되리라.
“따라와.”
“에?”
왜 그러냐는 듯 물음표를 띄우는 그녀를 질질 끌고 사람 없는 공원으로 데려간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확 사로잡기는 하지만 무슨 강제 최면을 거는 건 아니기 때문에 따라오는 사람까지는 없었다.
“하아…….”
별로 먼 거리를 이동한 것도 아닌데 살짝 지친다. 육체가 아닌 정신이 지쳤기 때문이다.
세레스티아와 난 벤치에 앉았다.
물론 바로 옆에 앉으려는 녀석을 밀어내고 벽 삼아 가운데 가방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고민한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이 녀석을 어떻게 쫓아낼까…….
평소 어떤 일에도 당황하지 않는. 혹 당황하더라도 절대 표시하지 않는 명경지수와 같은 정신을 가지고 있다 생각하던 나지만 그럼에도 초조함이 밀려드는 걸 느꼈다.
그래, 사실은 그녀가 접근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만약 그녀가 나에게 악의를 가지고 공격해 온다면 문제가 심각하겠지만 그녀는 정말 순수한 호기심으로 다가오고 있으니까. 적당히 대화를 나눠보면 해결책이 나오리라.
그러나 문제는 나다.
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건 어릴 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래, 알고 있다.
칭호를 볼 수 있는 능력. 약간의 집중만으로 남의 사생활을 마음대로 열람할 수 있는 이 능력.
흔히 능력자라고 하면 불꽃을 뿜어내고 사람을 죽여 대는 능력자 배틀물이나 떠올리던 나지만 사실 이 정도의 능력만 해도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많다.
난생처음 보는 상대라도 약 5분 정도의 시간만 있으면 난 그의 칭호를 ‘분류’하고 ‘구체화’시켜 통장 비밀번호까지(물론 5분 내에 성공하는 건 은행을 갔다 나오는 사람에게나 가능하지만) 알 수 있다.
시야 내에 있는 사람이라면 한눈에 그 심리상태를 확인할 수 있고 마음을 읽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남용한다면, 세계적인 대혼란도 충분히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
물론 난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난 그냥 평화롭게 살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 능력에 대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 상황은 위험하다.
지금 이 녀석만 해도 나에게 [뭔가]를 느꼈기에 접근하지 않았겠는가?
“저기요.”
고개를 숙인 채로 이런저런 생각으로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는 내 눈앞으로 불쑥 얼굴을 내민다.
“웃?”
“저기, 제가 싫어요?”
깜짝 놀라 얼굴을 들었지만 딱 물러선 만큼 다가온다.
윽, 너무 가까워.
게다가 이 녀석 예쁘긴 정말 예쁘다. 목소리도 맑고 부드러워 듣는 것만으로 청량한 느낌이 들 정도.
TV에서 봤으면 나도 팬이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외모를 가진 그녀지만 어디까지나 팬의 입장이지 직접 만나라고 하면 사양이다.
하물며 외계인이라니!
턱.
그녀의 양 어깨를 잡아 살짝 민 후 눌려 있는 가방을 똑바로 세운다.
“선.”
“네?”
의아해하는 녀석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지금 너하고 나 사이에 있는 이 가방이 선이야. 넘어오지 마라.”
“우와아. 애도 아니고.”
에에~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 참담한 기분을 느낀다.
아, 제길. 바보 취급당하고 있다. 바보 취급당하고 있어.
하지만 별수 없다. 나도 좀 살아야 할 게 아닌가?
한숨 쉰다. 세레스티아를 마주 볼 힘도 없어서 시선은 내 발끝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나직하게 말한다.
“난 외계인이라는 게 있는지도 널 보고 처음 알았어. 그리고 태어나서 한 번도 돌연변이라든지 마법사라든지 하는 존재와 연관된 적 없고, 앞으로도 연관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좀 도와주지 않을래?”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그냥 이대로 일어나서, 돌아가서, 다시는 안 나타나 주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드는 순간 멈칫한다.
크고 깨끗한 푸른색의 눈동자가 내 얼굴 앞에 바짝 붙어 있다.
“이상하네요.”
“뭐, 뭐가?”
깜작 놀라 물러서지만 그만큼 더 접근한다.
정신 차리고 보니 난 벤치에 거의 눕다시피 하고 있었고 그런 내 위에 세레스티아가 올라와 있는 형국이다.
“날 이렇게 거부하는 남자는 처음이에요.”
“아니, 난 널 거부하는 게 아니라…….”
“내가 외계인이 아니라 변태 살인마라고 해도 남자들은 절 거부하지 못해요.”
“…….”
할 말을 잃어버린다. 우, 우와. 이게 무슨 자신감이냐.
하지만 내가 황당해하거나 말거나 그녀는 말을 이었다.
“게다가 당신 정도 나이의 남자라면 오히려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나요? 전혀 근거 없는 것도 아니고 증거까지 눈앞에 보여줘도 이렇게 피하려는 건 오히려 이상해 보여요.”
그녀의 말에 멍해지는 걸 느껴진다.
그래, 맞는 말이다.
그래, 나 정도 나이의 학생이 일상에서 소중함을 느끼는 경우는 별로 없다.
대한민국 학생들이 느끼는 매일매일은 사실 소중함이 아닌 짜증과 권태. 빠져나가고 싶은 감옥에 불과하다.
나중에 나이 먹고서야 지금 이 때가 편하다는 걸 깨닫지만 그건 나중 일일 뿐. 현재를 살아가는 학생들은 그 소중함을 모른다.
“나는.”
“그래요. 당신은 마치 보물처럼 ‘일상’을 소중히 여기네요. 마치 악몽과도 같은 ‘비일상’을 겪은 것처럼.”
“…….”
날카롭다. 마냥 유쾌한 듯 보이지만 결코 보는 것처럼 생각이 없는 존재가 아니다.
귀엽고 아름다운 미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이 앳돼 보이는 외모도 믿을 게 못 된다.
외계인이 지구인과 똑같은 방식으로 나이를 먹는다고 누가 보장한단 말인가?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소녀는 한 100살쯤 먹은 할머니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뱃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구렁이가 100마리는 되는 것 같다.
“어머어머, 저기 좀 봐요.”
“공공장소에서 대담하네요.”
“요즘 애들은…….”
수군거리는 소리에 머리카락이 바짝 일어서는 걸 느낀다.
제길, 사람이 되도록 없는 놀이터를 찾긴 했지만 여기가 무슨 사유지도 아니고 아무도 안 올 리가 없다.
“…좀 비켜줄래?”
“왜요? 설레어요?”
“…….”
두말 없이 그녀의 어깨를 잡아 일으켜 강제로 벤치에 앉혀 버린다.
세레스티아는 내가 자신의 몸에 손을 대자 ‘꺅! 변태! 짐승!’하고 꺅꺅거렸지만 무시한다.
정말이지 정신이 한계까지 피곤하다.
“아아…….”
“…뭐야?”
“한숨을 쉬고 싶은 것 같아서 대신 쉬어드리는 거예요.”
“정말 친절하군.”
이젠 울고 싶을 정도다. 대체 뭐냐, 이 여자.
하지만 세레스티아는 마냥 즐겁다는 듯 웃을 뿐이다.
“후후, 정말 재미있어요. 당신.”
난 재미없어. 정말 재미없다.
“…가겠어.”
묵묵히 가방을 들고 몸을 돌린다. 다행히 이번엔 그녀도 따라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