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머리 위에-6화 (6/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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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2 별로 원하지 않는 만남. 연속

[지고의 마탑 수호결계반]

[마법소녀 강보람]

“…….”

이러지 마라.

“……?”

내가 아무 말 없이 서 있자 눈을 동그랗게 뜨는 그녀의 모습에 한숨 쉰다.

아아, 제기랄. 요새 칭호들 상태가 왜 이래? 이건 뭐, 장난 하는 것도 아니고. 마법소녀라니, 맞을래요?

“후, 그래서 어떻게 해줄까? 어차피 아버지는 집에 계실 테니 가면 볼 수 있어.”

“아, 아니. 아직 준비 안 됐어요.”

뭔 준비까지 필요하다는 건지 원.

황당했지만 여고생의 심정을 헤아릴 정도로 감수성이 풍부하지 못했기에 묻는다.

“그럼 어떻게 해?”

“에, 죄송하지만 선배님 전화번호 좀 알려주실래요? 나중에 따로 전화 드릴게요.”

“뭐, 상관없지. 핸드폰 줘봐.”

“여기요.”

그녀가 내미는 핸드폰을 받아 든다.

손안에 쏙 들어올 만한 사이즈에 분홍색의 토끼를 연상시키는 귀여운 디자인. 참으로 그녀와 어울릴 만한 물건이었지만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다른 물건이다.

“어라, 그건 뭐야?”

핸드폰을 내미는 그녀의 손목에는 이상한 물건이 차여 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강철토시라고 해야 하려나?

하여튼 그녀의 손등에서부터 팔꿈치까지 뒤덮고 있는 은색의 금속은 아무리 봐도 여고생이 할 만한 장신구가 아니다.

다시 보니 오른팔뿐만 아니라 왼팔에도 같은 게.

그, 뭐랄까----

그래. [장착]되어 있다.

그녀의 손등 부분에 박혀 있는 것은 분홍색 빛을 뿌리고 있는 눈알만 한 보석.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왜 이런 걸 못 본건지 모르겠다.

“네? 뭐, 뭐가요?”

“뭐가요, 가 아니라 그 이상한 디자인 말이야. 어디서 산 거야?”

“엉? 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손목시계가 토끼 모양이면 이상한 디자인인 거야?”

“…어. 아, 응. 하하. 처음 보는 디자인이라.”

정말 가까스로. 초인적인 눈치를 발휘해 의아해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아무렇지 않게 넘긴다.

헉헉헉. 위, 위험했다.

나의 번개 같은 눈치가 유감없이 발휘된 순간이다.

지금 그녀가 장착하고 있는 저 토시는 보통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과연 잠깐 방심하니 어느새 그 토시는 사라져 안 보인다.

아무래도 보통 사람들의 인식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어떤 수단을 사용한 모양이다.

‘그런데 나한테는 왜 보이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넘긴다.

뭐, 나한테도 귀찮은 능력 같은 게 있는 모양이지. 칭호를 보는 것도 따지고 보면 결국 [보는] 능력이 아닌가?

“가능한 한 휴일에 전화 걸어봐. 상황 봐서 괜찮으면 말해줄 테니까.”

귀여운 디자인의 핸드폰에 내 핸드폰 번호를 찍어주고 다시 돌려준다.

“아, 감사해요.”

“아니, 별로 내가 하는 건 없으니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아뇨. 보니까 저처럼 접근하는 아이가 많은 모양이네요. 귀찮으실 텐데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 숙이는 그녀의 모습에 작게 한숨 쉰다.

예의 바른 녀석이군. 게다가 별로 가식이 섞인 것도 같지 않다. 쉽게 말해 정말로 좋은 녀석이라는 거겠지.

하지만 그녀가 좋은 녀석이든 말든 별로 관여되고 싶지는 않다.

“그럼 난 가보지. 남아서 이야기들 하고.”

“어, 잠깐. 대하야?”

“넌 나중에 한턱 쏴라, 자식아. 여자한테 눈이 멀어서 친구를 팔아먹어?”

흥, 하고 몸을 돌려 오락실을 나온다.

뭐, 솔직히 별로 맘 상하거나 한 건 아니지만 마법소녀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냥 빨리 집에 가야지. 집에 가서 TV나 보면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러나.

“아! 여기 계셨네요.”

그것은 너무나 큰 실수였다.

“…….”

침묵한다. 상큼한, 정말 듣는 것만으로 머릿속이 청량해지는 것만 같은 목소리였지만 저절로 인상이 찡그려진다.

“우와, 재 좀 봐.”

“미소녀다…….”

“연예인인가?”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에 그냥 도망가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아니, 충동뿐만 아니라 정말 도망가려고 했지만 그보다 먼저 그녀 쪽에서 다가온다.

바닷물을 건져 올려 만든 듯 새파란 머리칼은 허리 아래까지 늘어져 있다.

저렇게나 풍성한 머리칼이 저렇게 길어버리면 무게가 상당할 터인데 전혀 그런 기색이 없다. 오히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윤기 있게 찰랑이기까지.

그리고 그렇게 다가오는 모습은 세상 그 어떤 남자라도 두근거리게 만들 정도로 매력적이었지만--

“오늘 마가 끼었나…….”

난 단지 울고 싶을 뿐이다.

*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를 떠올린다.

“초면에 이런 질문이나 하게 되어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는 물었었다.

“지구인이신가요?”

“…네?”

그렇다. 그게 첫 만남이었다.

몰래카메라를 의심할 정도로 황당한 질문을 날린 그녀는 마치 희귀생물을 발견한 관광객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었다.

만약 내가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녀가 나에게 작업을 건다고 생각했겠지만… 칭호를 볼 수 있는 나에게 그녀는 엄청난 부담이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외계인이라니?

상상조차 못해본 상황이다.

아니, 평소 외계인에 대한 이런저런 상상을 해오던 이라도 외계인과 이런 식으로 만날 거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으리라.

길을 걷고 있는데 뜬금없이 나타나서 지구인이신가요?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죄송해요. 제가 보는 눈이 제법 있는데도 잘 파악이 안 되네요. 지구인이신가요? 아니, 지구인일 수는 없으려나?”

지금 생각하면, 나는 나름대로 대처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당황한 와중에도 극히 일반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마치 그녀가 나에게 작업을 거는 것이라고 착각한 사람인 것처럼.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녀 정도 되는 미녀가 접근을 한다는 것에 의심을 품고 접근을 거부하는…….

그래, 극히 [일반적인 반응]을 완벽하게 연기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디 아프세요?”

묻는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네. 댁이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 두개골이 깨질 듯 아프답니다. 제발 부탁이니 제발 어디로든 가주시죠?’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간신히 자제한다.

“…아니, 별로.”

“그런데 아까부터 인상을 찡그리고 계세요.”

“그야 네가 이상한 말을 하니까 그러지.”

“흠, 하지만 진짜 지구인이란 말인가요?”

“뭐라는 거야. 그럼 넌 지구인이 아니라는 거냐?”

퉁명스럽게 답하며 스스로에게 놀란다.

오오, 대하야. 너 커서 배우 해야 되겠다. 평소 포커페이스가 좀 되기는 했지만 제법 연기 되는데?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싱글싱글 웃을 뿐이다.

“증거라도 보여 드릴까요?”

“저기 너 말이야. 보통 외계인이라는 게 마음대로 접근해서 자기가 외계인이라는 증거 보여주고 그러냐?”

그냥 걷는 것뿐인데도 여기저기에서 날아와 박히는 시선들이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한다.

얼른 빨리 집에 가고만 싶다.

“그럼 정말 보통의 지구인이란 거예요?”

“그래, 정말 보통의 지구인이시다. 우리 모두 보통의 지구인이지. 이상한 소리 계속할 거라면 난 간다.”

그녀를 남겨두고 자리를 뜬다.

아아, 정말 곤란하다. 저 여자는 나한테 왜 이렇게까지 관심을 보이는 거지?

나를 보자마자 지구인이냐고 물었던 것도 그렇고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데도 따라붙는 걸 보면 나한테 보통 사람들하고 다른 뭔가를 느꼈단 말이다.

‘설마 이 칭호라는 거, 외계인들은 다 볼 수 있는 건가?’

그러나 그럴 리 없다.

난 내 칭호를 자유로이 조절할 수 있고 현재 내 칭호는 [파리 사냥꾼]이다. 능력치 상승이 아니면 낄 이유가 없을 정도로 소소하긴 하지만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될만한 칭호는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외계인이라서 칭호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이상하다.

기이이잉---

아직까지 이름 모를 소녀에게서 100미터쯤 떨어져 오늘도 대충 넘겼구나 하고 안심하려는 찰나, 하늘에서 기묘한 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를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래, 무슨 제트기라던가 항공기 등이 이륙할 때 내는 소리랑 비슷하다.

그 울림은 꽤 컸는데 어쩐 일인지 주위 사람 아무도 위를 올려다보지 않는다.

‘보통 사람한테는 안 들리는 소리.’

그렇다면 답은 뻔하다. 나도 안 들리는 척하면 된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우우웅--

그건 거대한 은색의 구(球)였다. 지름은 2.5미터 정도.

정체도 알 수 없는 은색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그 기묘한 물체는 내 앞에 둥둥 뜬 채 신비로운 빛을 흩뿌리고 있다.

하지만 정말 날 환장하게 만드는 건 이런 황당무계한 물건이 나타났는 데도 주위 사람이 다들 안 보인다는 듯 그냥 지나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도 안 보인다고?’

그렇다면 나 역시 안 보이는 척 그냥 걸어가야 하지만 문제는 이 기묘한 물체가 내 앞에 떠 있다는 것이다.

그냥 걸어가면 충돌할 것이다.

“역시 보이는군요.”

어느새 내 옆에 서서 후후후 하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흘린다.

제길, 그냥 충돌하는 걸 감수하고 걸어갔어야 하는데.

하지만 후회는 이미 늦어서 내 앞으로 이동해 마주 보고 있는 미소녀는 싱글싱글 미소만 띄우고 있다.

“소개가 늦었네요. 세레스티아라고 해요. 편하게 그냥 셀이라고 부르시면 되요.”

“셀이라니. 완전체에는 도달한 거냐? 전투력은?”

“네?”

“…아니. 그냥 질 나쁜 농담. 난 대하야. 관대하.”

그건 일종의 패배 선언이었다. 이 아가씨는 나름대로 제대로 상대해 주지 않으면 절대 떨어져 나가지 않으리란 확신이 들었으니까.

이러다가 학교라든지 집으로 찾아오기라도 하면 정말 곤란하다.

내 어떤 게 그렇게나 그녀의 흥미를 자극한 건지 모르겠지만 눈이 다 반짝거리고 있다.

“헤헤, 드디어 포기하셨네요. 어디 조용히 이야기 할 수 있을 만한 곳으로 가실래요?”

“…그러지.”

최대한 사람 없는 커피숍 같은 거 없으려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당최 그런 장소를 가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하지만 안 가봤을 뿐이지 찾아보면 그런 장소는 의외로 주변에 엄청 흔하게 널려 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레모네이드요.”

뭐, 이런 장소에 와봤어야 말이지. 게다가 결국 음료수일 뿐인데 이 가격은 또 뭐야?

솔직히 맘 같아서는 커피숍 보단 롯데리아 같은 곳을 가고 싶었지만 이 녀석과 해야 하는 대화는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이 많은 곳에서 할 만한 종류의 것이 아니어서 어쩔 수 없었다.

“카페 모카(Caffe mocha).”

“레모네이드에 카페 모카. 알겠습니다.”

능숙하게 주문하는 세레스티아의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이런 곳에 많이 와봤어?”

“아뇨. 커피숍은 난생처음이에요.”

“진짜? 하지만 익숙해 보이는데.”

“그냥 가이드에 쓰여 있는 추천메뉴를 시킨 거지 별로 뭐가 나올지는 몰라요.”

가이드? 추천메뉴?

뭔가 알 수 없는 말이었지만 별로 물어볼 생각도 들지 않아 그냥 넘긴다.

잠깐 기다리자 레모네이드와 크림으로 뒤덮여 있는 커피 하나가 나왔다. 은은한 초콜릿 향이 난다.

“음. 이런 것도 꽤 맛있네요. 제가 살던 곳에서는…….”

“그래서 결국 지구에 온 목적이 뭔데?”

가볍게 말을 자른다.

별로 그녀가 살던 세상에 대해 알고 싶지 않다. 알면 알수록 위험해질 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우와, 아무리 그래도 바로 용건이라니.”

어머, 매너 없다, 라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지만 이내 다시 싱글싱글 웃으며 말한다.

“별로 목적은 없어요. 그냥 놀러 온 거죠.”

“놀러 왔다고?”

“네. 아트랙션(Attraction)에서 34지구관광 패키지를 발급받아서 온 거예요. 저 휴가라서 좀 평화를 만끽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왔다가 당신을 본 거죠. 그래서 여행길에 같은 처지의 여행자를 만난 줄 알고 좋아했는데 이렇게 시치미를 떼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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