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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5화 (5/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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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2 별로 원하지 않는 만남. 연속

나는 모든 면에서 아버지와 현격하게 비교되는 아들이다. 총체적인 면은 물론이고, 부분적인 면에서조차 아버지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

그러나… 그게 어디 나만의 문제겠는가?

평생을 요리에 바친 요리사가 아버지를 만나면 요리로 좌절하고, 평생을 격투기에 바친 격투가가 아버지를 보면 체술로 좌절하며, 평생 글을 써온 작가가 아버지의 글을 보면 문학으로써 좌절하고, 평생을 음악에 바친 음악가는 아버지가 연주하는 음률에 숨 쉬는 것도 잊어버린다.

내가 모자란 게 아니다.

그가 지나치게 뛰어난 것이다.

‘그래, 어쩌면…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렇다.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남이었다면 말이다.

-흐음… 생각보다 성적이 별로구나.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나는 늘 비교당해 왔다.

-앗! 네가 바로 그분의 아들이로구나!

-에 그런데… 별로 잘생기지는 않았네.

-야, 애 앞에서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아주 어릴 적부터의 일이다.

-우, 운동 잘 못 하는구나. 의외다…….

-으음… 예술가적 기질조차 없다니…….

친구들이. 선생님이. 심지어 아버지의 유명세를 듣고 찾아왔다가 좌절하던 사람들에게조차 온갖 비교를 당하게 되었다.

‘친아들인데. 아니 남도 아니고 친아들인대 대체 왜 이렇게까지 심각한 차이가 나는 거야? 심지어 닮은 구석 하나 없다니!’

그렇다. 그게 문제였다. 만약 상대가 남이었다면 별세계의 인간으로 여기고 끝이었을 텐데 하늘이 무심하게도(?) 그는 내 친아버지인 것이다.

비교는 당연한 일이다.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아버지를 알고 나를 아는 이들은 도대체 그 우월한 DNA는 다 어디로 이런 평범한 종자(라고 말하기에는 해괴한 초능력을 각성하게 되었지만)가 태어난 것인지 궁금해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리고 그렇게 온갖 관심을 가지던 이들은, 결국 내가 눈치가 좀 빠른 소년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관심을 끊게 되었다.

내가 아버지의 재능을 이어받지 못했으며, 그보다 뭔가 더 잘하게 될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는 판단을 내리는 것.

그러나 사실 난 아버지보다 잘하는 게 딱 하나 있다.

[You win. Perfect.]

“우와아아! 쩐다! 32연승!”

“뭐야 저놈?! 아니, 애초에 대전 게임이라는 게 이 승수가 나올 수 있는 건가? 애들이 다 초보도 아닌데?”

“제길. 뭐 미래를 보는 것처럼 다 막는데 어떻게 이기라는 거야? 나도 좀 하는데 벌써 8판이나 졌어!”

주위에서 경악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기쁘다기보다는 자괴감이 밀려온다.

“이런 걸 잘해봐야…….”

그렇다. 나는 게임을 잘한다.

지금은 이렇게 대전 게임을 하고 있지만 사실 게임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다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다 잘하는 편이다.

‘아니, 보드 게임 같은 건 별로 못하니 컴퓨터 게임을 잘한다고 해야 하려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같은 경우는 승률이 98%가 넘고 대전 게임은 솔직히 내가 지려고 마음먹지 않는 이상 진 적이 없다. 그냥 순수하게 져보고 싶어서 대림동까지 찾아가야 할 정도다.

팀원빨도 어느 정도 필요한 FPS게임이나 AOS게임조차 승률이 살벌할 정도니 뭔 게임을 하더라도 당장 프로에서 통한다… 고 해도 아마 그렇게까지 틀린 생각은 아니리라.

에? 그걸 어떻게 확신하느냐고?

‘그야 아버지랑 해서 이겼었으니까.’

처음에는 다섯 판을 해서 전승으로 이기고 일주일 뒤에 다시 다섯 판을 해서 4승 1패로, 다시 1주일 뒤에 해서 3판 2승으로 이긴 다음 또 하면 질까 봐 다시는 안 하고 있지만(비겁하다 말하지 마라. 솔직히 이것마저 지면 미래를 살아갈 희망을 잃어버릴 것 같아서 그랬다) 어쨌든 지금까지 다 이긴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한테 ‘저 아빠랑 겜 해서 이겼으니까 프로 가서도 통함. ㅇㅋ?’ 이러면 ‘이건 뭐, X신도 아니고’ 같은 반응만 돌아오겠지만 우리 아버지를 아는 사람은 생각을 좀 달리할 것이다.

“아, 졌다.”

“헉헉… 이, 이겼다!!”

“오오오!!”

결국 패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물론 져준것이다. 솔직히 일부로 져주지 않는 이상 영원히 끝나지 않을 테니까.

물론 간단히 져주면 이상하게 여길 거란 생각에 상대 중에서 제일 잘하는 편인 녀석에게, 그것도 좀 말리는 인상을 주며 패했다.

사실 대전 게임이라는 게 항상 100%의 실력을 낼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상대에 따라 상성이 안 좋을 수도 있고 한순간 판단을 잘못하면 내내 질질 끌리다 질 수도 있다. 설사 고수라고 해도 마냥 이기기만 하는 건 아니니 내가 일부로 져줬다고 생각하는 녀석은 없겠지.

“오, 자식. 아직 실력이 녹슬지 않았는데? 대단해.”

“이런 걸로 대단해 봐야 뭐 하냐.”

몰려든 사람들을 피해 슬쩍 물러난다. 시선이 좀 모였지만 나를 이긴 녀석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리 심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나저나 이 오락실 대단하네. 시설도 깨끗하고. 전체적으로 첨단을 달리는 느낌이야.

“내가 괜히 불렀겠냐. 규모도 규모지만 최신 게임하고 인기 고전게임들이 잘 자리 잡혀 있어서 요새 꽤 인기야. 게다가 첨단 게임도 상당수지.”

“하긴 요새 오락실에 별로 사람 안 모이는 편이었는데 엄청나게 붐비니까.”

학생들이 학교만 끝나면 오락실로 달려가던 것도 옛날이야기다.

솔직히 요새 오락실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가면 PC방이나 플스방을 가고 말지.

바야흐로 오락실이란 곳은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져 가고 있는 중이다. 물론 정말 사라지냐면 꼭 그렇지도 않겠지만 예전만 못하다는 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으리라.

“뭐, 솔직히 내 생각에는 좀 모험 같아 보이기도 해. 오락실을 이렇게 꾸미는 데도 돈이 꽤 들었을 텐데 괜찮을까나? 뭐, 내가 걱정할 문제는 아니지만. 아, 이거 마셔.”

“땡큐.”

녀석이 던져준 오렌지 주스를 받아 꿀꺽꿀꺽 마시며 주위를 둘러본다.

하지만 정말 상당한 규모다. 오락기기만 해도 거의 200여 개에 가까운데다 단순히 앉아서 하는 종류만 있는 게 아니라 총을 쏘는 오락기도 보이고, 화살을 쏘는 것도 있고, 이름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원반을 상대방 쪽에 쳐내는 당구대 비슷한 것도 있고, 농구 골대에 농구공을 던지는 것도, 배팅연습을 하는 것도, 심지어 던지는 것도 있다.

“그런데 진짜 오락 때문에 부른 거야?”

“뭐, 딴 이유 있겠냐?”

“흠. 있는 것 같은데?”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자 재석이 녀석이 슬쩍 고개를 돌려 외면한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노려보자 이내 녀석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른다.

“…망할 놈. 눈치 하나는 진짜 귀신이라니까, 귀신.”

물론 녀석은 전혀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지 않았다.

녀석의 음흉한 마음씨와 잔머리로 점철된 연기는 거의 완성의 경지에 이르러 녀석의 장래 희망이 배우라면 정말 세계적인 연기파 배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연기력을 자랑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나에게 소용없는 일이다.

녀석의 머리에는 여전히 [너에게 용건 있는 배재석]이라는 칭호가 떠 있었으니까.

만약 용무가 오락실에 오는 거였다면 오락실에 오는 순간 칭호가 변경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무슨 일이기에…….”

“아, 그런데 들었냐? 신입생 이야기?”

황급히 말을 돌리는 느낌이었지만 쓸데없는 일로 궁지에 몰 필요는 없었기에 받아준다.

“아니, 별로 신입생 관련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역시 못 들었구먼. 관심 없는 건 알지만 그렇게 시끄러웠는데.”

“시끄러워?”

고개를 갸웃거린다. 시끄럽다니? 싸움이라도 났던 건가?

“놀라지 마라. 우리 원일고 트윈 로즈 알지? 그게 이제 트리플 로즈(Triple rose)가 되었다.”

“…….”

잠시 뒤에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말이 없다.

“…….”

“…….”

“…….”

잠시 우리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만이 흐른다.

“…뭐야? 설마 그게 용무?”

“야, 이 자식아! 놀라야 할 거 아냐! 이제 트리플 로즈라고 트리플 로즈! 다른 학교에는 한 명도 없다는 연예인급 미소녀가 이제 셋이란 말이야!!”

분노하는 녀석의 모습에 황당해한다.

아니, 그래서 뭘 어쩌라고? 그게 나랑 뭔 상관인데?

유치한 일이지만 어쨌든 우리 학교에는 트윈 로즈(Twins rose)라는 게 있다.

아, 정말 손발이 오그라드는 호칭이다.

세상이 무슨 무협지냐 호칭 붙이게? 그리고 이제 셋이니까 트리플 로즈라고?

뭐, 어쨌든 그 둘 중 하나는 같은 학년의, 게다가 같은 반이 되어버린 휴먼 슬레이어 경은이고 또 한명은 3학년에 재학 중인 현 학생회장인 한민경 양이다.

경은이가 좀 활달하고 적극적인 미소녀라고 하면 한민경 양은, 그러니까 정확히 말해 한민경 선배는 차분하고 차가운 얼음 공주라고 해야 하려나?

아니, 얼음공주라는 말은 틀리겠지. 소문을 들어보면 얼음 공주라기보다는 얼음 여왕이다. 흔히 흑장미라고 불리는 모양인데 무슨 폭력적인 일을 해서라기보다는 그냥 분위기 때문에 그런 모양이다.

“그래서 결국 뭔데?”

“저기, 혹시 이야기 끝났나요?”

그리고 그때 한쪽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우리 학교 교복을 입고 있는 여학생 하나가 다가온다.

어깨까지 늘어진 물결 모양의 파마 머리와 약간은 작은 키.

그건… 뭐라고 해야 하나? 그래, 진짜 미소녀다.

사실 경은이나 민경 선배는 미소녀라기보다 그냥 미녀라고 하는 쪽이 정확할 테니까.

그녀에게는 그 두 미녀에게 없는 것, 그러니까 깜짝 놀랄 정도의 귀여움이라는 게 있었다.

‘아, 이런 얼굴들에 익숙해지면 눈 높아져서 안 되는데.’

평화를 원하는 나에게 너무 뛰어난 외모의 여인은 오히려 마이너스. 당장 지금 상황만 해도 그런 사실에서 벗어나지 않아 그녀의 모습에 주변이 술렁거린다.

“하하, 안녕.”

손을 들어 아는 척하는 배재석. 그리고 그 순간 불길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오늘 새로 들어온 신입생을 이 녀석이 알고 있을 리가 없는데?

저 떠버리 녀석이 저 정도의 미녀를 미리 알고 있었다면 지금까지 내가 몰랐을 리 없다.

하지만 그녀는 재석을 보고 꾸벅 고개를 숙인다.

“네, 선배님. 아, 저기 그런데 그쪽 선배님이 진짜 관일한 선생님 자제 분이신가요?”

그 말에 멈칫한다. 그리고 서늘한 눈으로 재석을 돌아본다.

“너 설마…….”

날 팔아먹은 거냐?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녀석이 어깨를 으쓱인다.

“미안.”

“아 나, 진짜.”

아니, 이 자식이 나 이 문제로 고민한다는 거 뻔히 알면서!!

하지만 내가 이런 문제로 짜증을 느끼고 있다는 걸 뒤에 서 있는 ‘문제’한테까지 들키면 안 되는지라 ‘나중에 보자’라고 눈으로 말한 뒤 몸을 돌린다.

“용무가 뭐기에 이렇게… 아, 반말해도 괜찮지?”

“네. 선배님이시니까요.”

“고맙네. 그런데 결국 무슨 용무인데? 참고로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는 용무는 안 돼.”

“에, 아, 안 되나요?”

역시 그 용무였구먼.

가볍게 한숨 쉬자 재석이 녀석이 붙어서 안절부절못하며 말한다.

“야야, 내 얼굴을 봐서라도 좀 봐주라.”

“아버지께서 친히 팬클럽 돌아다니면서 안 된다고 했다니까?”

“그러니까 재는 그 팬클럽이라는 것도 아니잖아. 게다가 개인적으로도 좀 친분이 있다는데?”

“진짜?”

내 기억으로 우리아버지랑 개인적인 친분 있는 사람은 결코 평범한 적이 없다.

좀 넓은 의미로 보면 미합중국 대통령 아저씨도 그중 하나가 아니던가?

“아, 정확히 말하면 제가 친분이 있는 게 아니라 언니가 같이 일했었거든요. 요번에 언니가 좀 전해달라고 한 게 있어서 갔다 드릴 겸 여쭤볼 것도 좀 있고 해서.”

선량하게 웃으며 해명하는 그녀였지만 난 신경 쓰지 않고 그녀의 머리 위부터 살폈다.

어차피 칭호를 확인하면 그녀의 말이 정말인지 거짓말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내가 괜히 [거짓말 탐지기]라고 불리는 게 아니란 말이야.

하지만 내가 그렇게 올려다 본 그녀의 머리 위에는 전혀 기대도 안 하던 결과가 떠 있다.

[지고의 마탑 수호결계반]

[마법소녀 강보람]

“…….”

이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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