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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3화 (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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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 나는 관대하다

우리 가족은 셋이다. 아버지, 형, 그리고 나.

원래는 어머니도 있어야 하지만 아직 고등학생의 몸으로 나를 낳으신 어머니는 나를 낳은 직후 돌아가셨다고 한다.

물론 내가 태어나는 건 할아버지에게도, 외할아버지에게도 반대를 당했다. 당연한 일이다. 겨우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딸이 임신해서 자식을 낳겠다고 하는데 ‘오! 그럼 나 손자 보는 거야?’ 하고 좋아할 부모가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물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태어나는 걸 반대했다니 좀 섭섭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이해 못할 바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임신했을 때 이미 불치병에 걸려 있었다.

병명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그땐 이미 시한부 인생이었던 모양이다.

때문에 죽기 전에 자기가 살았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다고 부모님을 설득했다고 한다.

물론 설득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도 해야 한다.

조금 가혹한 말이기는 하지만 사실 죽기 전에 아이를 낳고 싶다는 어머니의 말은 조금 무책임한 것도 사실이니까.

조금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데리고 키워 나갈 수 있다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아이를 낳고 죽어버리면 겨우 고등학생밖에 안 되는 아버지의 입장은 어떻게 되는가?

애 딸린 고등학생이라는 꼬리표를 달아버린 사내의 미래란 실로 암담하다.

하지만 의외로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순순히 승낙했다.

참으로 태평한 성격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난 아무래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아버지다.

겨우 [애 딸린 유부남] 정도의 꼬리표로 우리 아버지의 앞길을 막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보는 법이기에 아버지를 어릴 때부터 키워온 할머니와 할아버지 또한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농담이 아니라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종종 ‘그래, 너라도 있어야 저 녀석이 세계 정복 같은 걸 안 하겠지’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나에게 속삭여 왔을 정도인 것이다.

어쨌든 양가에서 자신들의 관계를 허락받은 뒤 아버지가 벌인 일은 놀랍게도 결혼식.

아버지와 어머니는 양가의 축복을 받으며 당당히 결혼했다.

물론 그땐 이미 어머니가 불치병이라는 것도 다 알려져 있어 암울한 분위기였다고는 하지만 아버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결혼식을 치른 후 무려 신혼여행까지 갔다 왔다.

게다가 더 무서운 건 그 모든 일을 자기 개인 돈으로 해결했다는 것!

아버지 집안이 부자인 게 아니라 틈틈이 아르바이트로 모아놓은 돈이었다고 하는데 대체 학생이 아르바이트로 몇 천이 넘는 돈을 번다는 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뭐, 어쨌든 그 후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 직후 아버지는 학교를 그만둬 버리고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후 바로 수능을 쳐버렸다.

그리고 수능 점수는 무려 만점(滿點).

그래, 만점이다. 틀린 문제가 하나도 없다는 바로 그 만점 말이다.

그리고 그 직후 아버지는 자신을 부르는 수많은 대학교를 무시한 채 나를 안고 미국으로 떠버렸다.

기간으로 치면 한 4년 정도일까?

그동안 아버지가 벌인 일은 별로 공개되지 않아 나로서도 잘 알 수 없지만 하나같이 엄청나다는 것만큼은 틀림없이 확신할 수 있다.

어떻게 확신할 수 있냐고?

남들은 안 믿겠지만 난 무려, 무려 미합중국 대통령과도 전화를 해본 몸이다.

약간은 어눌한 한국어로, 미합중국 대통령이 그랬다.

-미안한데, 아버지 계시니?

아아, 아버지…….

“형. 내가 아빠보다 떨어지는 건 칠삭둥이이기 때문일까?”

“엉? 네가 떨어진다고 누가 그래?”

“형과 아빠를 제외한 주위 모든 사람이.”

그래, 난 칠삭둥이, 아니, 사실 정확히 말하면 칠삭둥이도 아니다. 거의 반년 만에 태어났으니까.

그리고 그 때문인지 난 어릴 때부터 몸이 매우 약해 아버지께서 항상 돌봐주셨다고 한다.

“음, 뭐 아빠랑 비교하면서 상처받고 그러면 끝도 없을걸. 넌 똑똑하고 잘생겼어.”

“우우, 형이 그렇게 말해봐야 자괴감이 들 뿐이야.”

형은 미소년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자 중에서도 형의 미모를 넘어서는 여자는 별로 없다.

가느다란 턱 선에 새하얀 피부, 거기에 남자치고는 약간 작은 키는 상상을 초월하는 귀여움을 자랑하고 있다.

정말 가끔이지만 나도 위험한 기분을 느끼고는 한다.

솔직히 이 인간은 내 옆이 아니라 TV에 나오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인 것.

‘그러고 보면 형의 미모는 처음 볼 때부터 인상적이었지만.’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형은 아버지의 친자식이 아니다.

물론 그건 사실 당연한 일이다.

어머니는 날 고등학교 때 낳았고 그 직후 돌아가셨으니까.

나를 낳은 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속도위반인데 나한테 친형이 있을 리가 있나.

아버지가 형을 입양한 건 내가 5살 때였다.

어느 날 아버지가 갑자기 형을 안고 집에 들어왔었지.

그래, 그때를 기억한다.

인형처럼 귀여운 외모, 그러나 그럼에도 슬픔과 절망으로 죽어 있던 눈동자.

형의 친어머니와 친아버지는 형이 보는 눈앞에서 연쇄살인마에게 살해당했다고 한다.

그 연쇄살인마는 그때 사회에서도 크게 이슈가 되었던 녀석이었다는데 녀석이 형의 친어머니와 아버지를 죽이고 형까지 죽이려는 걸 아버지가 구해줬다던가.

물론 그 과정에 그 연쇄살인마 자식이 아버지 손에 죽었지만 어떻게 정당방위로 넘어갔다.

어쨌든 상대는 연쇄살인마였으니까.

구해졌다고는 해도 눈앞에서 부모님이 살해당한 거다.

어린 나이에 트라우마가 안 남을 리 없겠지.

때문일까? 어릴 적의 형은 말이 없고 과묵한 아이었다.

지금 이렇게까지 밝아진 건 아버지와 나의 아낌없는 애정(?)과 사랑(?)때문이겠지.

“무슨 기분 나쁜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아니, 별로.”

형과 난 버스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여기저기에서 시선이 모이는 게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하고 학교에 들어섰다.

“아, 신입생들이다.”

“와, 풋풋하구나. 풋풋해.”

“한 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데 풋풋은 무슨 풋풋이야.”

때는 봄, 새 학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난 이제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고 형은 공포의 고삼이 되었다.

형이 공부를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아버지처럼 완벽한 건 아니니까 공부 때문에 꽤나 골을 썩이게 되리라.

뭐, 나도 남 이야기 할 때가 아니지만 말이다.

“바이. 수업 잘 들어.”

“오냐.”

3학년인 형은 2층에서 교실을 찾아가고 2학년인 난 3층으로 올라갔다.

1학년은 4층으로 올라가야 하겠지.

저학년일수록 높은 층에 있는 이 시스템은 사실 좀 황당하다.

뭐, 나름대로 고학년 대접을 해주는 걸까? 좀 덜 걸으라든지.

“어디 보자… 7반이었지?”

등교 시간이었기에 복도에는 수많은 학생이 돌아다니고 있다. 표정은 여러 가지다.

뭐, 방학이 끝났으니 마냥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당장 나만 해도…….

“아아, 싫다. 방학은 정말 너무 짧아…….”

터덜터덜 걸어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 실내화로 갈아 신은 후 교실로 향한다.

반배치 고사를 보긴 했지만 결과는 학교 홈페이지에서 개별로 확인했기에 아직 우리 반이 누구누구인지는 모르는 상태다.

때문에 기도한다.

아아, 제발 그 프레스티지 보스 좀 우리 반 아니게 해주세요…….

물론 녀석은 아무런 잘못도 안 했다.

언제나 조용조용한 녀석이라서 나에게 아무런 해도 끼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분명하게 느껴진다. 그 특유의 위험함이.

가까이 해서 절대 좋을 게 없다. 최대한 멀리 떼어놓는 것이 안전하다.

“여긴… 앗.”

7반 앞에 선다.

문은 닫혀 있다. 그대로 들어가면 되는데 순간 몸이 굳는다.

[원일 고등학교]

[휴먼 슬레이어(Human slayer) 이경은]

문 너머에서 보이는 칭호의 모습에 멈칫한다.

물론 나에게 투시 능력은 없지만 칭호와 이름 정도는 벽 너머에 있더라도 보이니까.

“어? 어어?”

아니,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저, 저 칭호가 왜 지금 문 너머에서 보이는 거지?

왜? 어째서? 뭐 땀시? Why?

“아니야.”

그래. 아니야. 아닐 거야.

경은이가 나와 같은 반이라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물론 그녀는 학교에서도 유명한, 아니, 사실 이 지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빼어난 미녀다.

또한 전교 10%를 벗어난 적이 없는 성적에다 부잣집 딸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완벽한 아이돌이자 우리 원일고의 트윈 로즈(Twins rose)중 하나.

그러나 난 그런 칭호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 내가 바라는 건 평화였다.

동민, 그러니까 그 프레스티지의 보스 녀석 대신이라면 오히려 더 큰 피해다.

적어도 녀석은 학교에선 조용히 살고 있지 않은가?

드르륵.

“아.”

“깜짝이야. 안 들어오고 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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