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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1화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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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아주 위험한 만남

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건 아주 어릴 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다.

“누나 차였구나.”

“어, 어, 어, 어떻게 알았어? 아무한테도 안 말했는데!!”

“얼굴에 쓰여 있네요~~”

물론 거짓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얼굴이 아니라 ‘머리 위에’ 써 있었으니까.

“와, 저 교복 괜찮은데? 어디 학교 거지?”

“북일고.”

“엉? 그거 어디 붙어 있는 학교인데?”

“몰라.”

“근데 교복을 알아봐?”

“수학여행 갔다가 본 적이 있어서.”

물론 이것 역시 거짓말이다.

저 교복을 본 것은 난생처음. 더불어 학교 역시 들어본 적 없는 곳이라 어디 박혀 있는지 알 리가 없는 것.

하지만 그래도 그 학생의 ‘소속 단체’는 보는 순간 알 수 있다.

그 학생이 초면이라는 건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다.

“요번에도 차트 1위는 리프네.”

“당연하지! 아, 리프 너무 예뻐. 가창력도 짱! 게다가 몸매는 또 얼마나 착한지!”

“그런데 리프 신상명세가 모조리 기밀이라던데 사실이야?”

신비감을 노리는 모양이다. 가족 중에 별 이상이 없을 텐데도 그런 걸 보면.

“응. 출신이고 가족이고 아무도 모른대. 심지어 매니저도 리프 본명을 모른다고 하고.”

“하지만 그러고 보니 궁금하네. 리프 본명이 뭘까?”

“글쎄. 하지만 리프라면 본명도 분명 예쁠 게 틀림없…….”

“최배달.”

“엉?”

무슨 소리냐는 듯 의문 가득히 담은 눈동자를 보며 다시 말한다.

“최배달.”

“그러니까 뭐가?”

“아니 그냥. 예전에 봤던 영화가 생각나서.”

의미 없이 중얼거린다.

그 리프인지 잎사귀인지 하는 여자의 본명이 최배달이든 최홍만이든 내가 알 바는 아니겠지.

중요한 건 나는 TV에서든 뭐든 일단 상대방의 얼굴을 보기만 하면 그 본명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렇다.

나는 평범하지 않다.

나에게는 남들에게 없는 능력이 있다.

물론 그래 봐야 뭐 대단한 능력자이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특이하다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 그걸 직접적으로 깨달은 게 언제였더라. 중학교 2학년 때부터였나?

“길 막지 막고 비켜요!”

“아, 죄송합니다.”

날카로운 목소리에 별 반응 없이 길을 비켜준다. ‘길 넓은데 왜 굳이 시비십니까?’라는 등의 말을 꺼내지는 않는다.

이 여자 생리중이군. 아, 물론 그건 무슨 비유 같은 게 아니다. 그녀는 실제로 생리 중이니까.

문제는 오히려 내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냐는 데 있겠지. 정답은 그녀의 머리 위에 떠 있다.

/영월고등학교 2학년 3반

생리 중인 조미영(볼드, 가운데)

진짜다. 정말 저렇게 쓰여 있다.

물론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건 아니고 오직 나만이 볼 수 있는 특이한 텍스트(Text)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진짜 언제부터였더라. 보이기는 더 어릴 때부터 보인 것 같은데.”

RPG게임을 해본 적이 있는가?

아니, 굳이 RPG게임을 예로 들 것도 없이 대부분의 온라인 게임은 머리 위에 캐릭터의 ID(Identification number:여러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정보통신망 또는 컴퓨터에서 각각의 사용자에게 부여된 고유한 명칭)가 떠 있다. 언뜻 비슷해 보일 수 있는 아바타들을 구분하며 그 사용자를 나타내는 게임 특유의 시스템.

그래.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초능력(이라고 부르기도 굉장히 애매하지만 하여튼)은 바로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그의 이름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뭐, 정확히 말하면 이름만 보이는 건 아니다.

사람들의 머리 위에는 그의 ‘소속’이 쓰여 있고 이름 앞에는 그 대상의 ‘상태’가 쓰여 있다.

지금 지나가는 남자의 머리 위에는 [게임하다가 밤 샌 이춘경]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그 뒤로 걷고 있는 여자의 머리 위에는 [사랑에 빠진 문영주]라고 쓰여 있고, 그들을 가로질러 마구 달리고 있는 사내의 머리 위에는 [아무리 달려 봐야 이미 지각한 전대일]이라고 쓰여 있다.

“정말 봐도봐도 특이하다니까.”

이름 앞에 쓰여 있는 것. 나는 그것을 ‘칭호’라고 부른다.

칭호는 수없이 많고 매 순간마다 바뀌는데 그건 보통 그 사람의 현재 상황이나 심리 상태에 영향을 받는다.

때문에 난 다른 사람들에게 눈치가 빠르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이름을 잘 외운다는 소리도 듣는 편.

그래봐야 그때그때 보고 읽는 것뿐이지만.

“웃기는 능력.”

그렇다. 정말 웃기지도 않는 능력이 아닌가? 이건 초능력이라고도, 영능력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만약 내가 생각하는 것만으로 불꽃을 일으킬 수 있다거나 유령을 볼 수 있다거나 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이건 뭔 능력인지 정체도 모르겠고 발동 원리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니 능력 자체에 불만은 없지만 이런 건 좀.

“저기요.”

문득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는 내 발걸음을 붙잡는다. 혹시라도 내가 놀라기라도 할까 조심스러운 목소리.

나는 별생각 없이 몸을 돌렸다.

“저요?”

“네.”

다소곳하게 대답하는 소녀의 모습에 솔직히 조금 놀란다.

한 올 한 올 바닷물을 건져 올려 만든 듯 새파란 머리칼에 마찬가지로 푸른 눈동자를 가진 10대 후반의 소녀.

명동 거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 한 시간에 100번이 넘는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것 같은 미소녀가 거기에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말을 더듬을 뻔했지만 간신히 자제할 수 있었다.

우와, 예쁘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무기구나.

별로 특이한 표정을 짓거나 특별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면서 나를 이렇게까지 당황시킬 수 있다니.

하지만 날 정말로 당황, 아니, 경악시킨 요소는 정작 다른 데 있었다.

“…어?”

사실 특이한 칭호를 본 건 처음이 아니다.

그래,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글자를 보기 시작한 지도 어느새 10년. 나는 많은 사람을 봐왔고 정말이지 별 칭호를 다 봐왔다.

휴먼 슬레이어(Human slayer).

이건 살인자라는 말이다. 어떻게 봐도 그렇게밖에 해석이 되지 않았다.

그 칭호를 가진 건 황당하게도 우리 옆 반 제일의 미소녀라 불리는 이경은.

빼어난 외모에 전교 10%밖을 벗어난 적이 없는 성적, 심지어 성격까지 좋은데다 부잣집 외동딸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어 모두에게 사랑받는 그녀의 칭호가 이거였다.

때문에 난 최대한 그녀를 마주치지 않고 접근하지도 않도록 노력하며 살고 있다. 물론 그녀는 미소녀에 속하는 존재지만 난 별로 모험이나 스릴을 즐기지 않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보스 오브 프레스티지(Boss of prestige).

이런 칭호도 본 적 있다.

해석하자면 아마 프레스티지의 보스, 뭐, 이 정도겠지.

문제는 프레스티지라는 단체를 내가 들어본 적이 있다는 것이다.

국가에서도 함부로 건드리기 부담스러워한다는 암흑세력이라 했던가?

하지만 웃기는 건 저런 칭호를 달고 있는 게 같은 반 클래스메이트라는 것. 조용조용한 성격의 모법생인 줄 알았는데 거대 암흑세력의 보스였던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충분히 많은 ‘칭호’를 봐왔다.

칭호는 셀 수 없이 다양하고 일관성이라는 게 하나도 없을뿐더러 하나하나가 괴상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이 칭호가 틀리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다못해 [오늘 상당히 재수 없는]이라는 칭호를 달고 있으면 그 녀석은 그날 틀림없이, 정말 객관적으로 봐도 불쌍할 정도로 재수가 없었다.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모험이나 스릴 따윈 딱 질색이다. 평화를 너무너무 사랑한다.

나란 녀석은 하루하루 똑같은 나날이 소중하고 또한 감사하다고 느끼는 타입의 인간이라서 위험한 일이나 사람에게는 좁쌀만큼의 관심조차 없다.

그리고 지금, 나는 내 눈앞에 있는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귀여운 미소녀를 바라보았다.

예쁘지만 별로 친해지고 싶은 타입은 아니다.

물론 나 역시 남자인만큼 어찌 미녀를 싫어하겠냐마는 그것도 어느 정도지 저렇게까지 미녀라면 아무래도 분쟁의 여지가 많다. 여기저기서 탐을 내고 또 시끄럽게 할 테니 평화를 사랑하는 내게 있어서는 아무래도 마이너스 요소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미모조차 둘째였다.

사실 그녀에게는 그보다 훨씬, 훨씬 더 큰 마이너스 요소가 있었다.

“왜 그러시죠?”

“아뇨, 별로. 하지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무슨 용건으로 부르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제가 조금 바빠서.”

당연한 일이지만 별로 바쁜 일은 없다.

어쨌든 그녀는 미녀이니 친절하게 대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녀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칭호를 보는 순간 정신이 확 든다.

그녀의 칭호는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그 어떤 것보다도 황당하고 위험천만한 종류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머리 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데트로 은하 연합 4군단 제1돌격대]

[외계인 세레스티아]

…….

혹시나 해서 다시 말하는 바이지만, 나는 지금까지 칭호가 틀리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아, 시간을 뺐었다면 죄송해요. 잠깐 여쭤볼 게 있어서요.”

“저한테요?”

“네. 아, 잠시 실례.”

그렇게 말하며 다가서더니 늘씬한 팔을 뻗어 내 목을 끌어당긴다. 딱히 뭐 이상한 목적이 있어서는 아니고 내 귓가에 뭔가를 말하기 위함이었는데 단지 그것만으로 정신이 혼미해진다.

주변 남자들의 시선이 사나워진다. 향긋한 민트향을 느낀다.

“초면에 이런 질문이나 하게 되어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는 물었다.

“지구인이신가요?”

“…네?”

정신이 확 드는 어느 저녁.

그게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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