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453화 (453/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외전 49화

Golden Age

7. 다시 황금의 시대로(14)

[고훈 노벨 평화상 수상]

[오슬로 시청사에 활짝 핀 해바라기]

[고훈, 화가 최초로 노벨 평화상 수상]1)

2038년 12월 10일, 세계적인 화가 고훈(21)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17세에 평화상을 받은 인권 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 이후 최연소 기록이고 화가로서는 최초다.

노벨상 위원회는 EIE 운동, 해바라기 운동, 소외 계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미술 활동 등을 언급하며 국가, 인종, 계급을 아우르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 고훈에게 감사를 표한다고 덧붙였다.

미술계의 반응은 뜨겁다.

프란시스코 미로, 윌리엄 토마스, 하라 요시토모, 프랜시스 베이컨 등 대가들이 축사를 보냈으며, 세계 예술 진흥 협회에서는 고훈의 노벨상 수상을 기념하는 자선 파티를 개최했다.

이날 고훈은 수상 강연으로 무대에서 직접 해바라기를 그리는 퍼포먼스를 보였고, 해당 작품을 경매에 올려 수익 전액을 기부하기도 했다.

고훈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닮아갈 수 있는 해와 해바라기처럼 우리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밀처럼 빛나는 여러분을 사랑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고훈은 이번 노벨 평화상 수상으로 100만 달러의 상금과 노르웨이 유명 화가 요나탄 솔베르그의 초상화를 함께 받았다.

고훈의 노벨 평화상 수상은 미술계에 큰 자극이 되었다.

20세기 초 전쟁의 화마 속에서 예술가들이 무력감을 느꼈던 것과 반대로, 예술이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다.

몽마르트르구의 작은 골목에서 시작된 희망의 씨앗이 꽃을 틔우고 결국은 EIE 운동과 해바라기 운동을 통해 전 세계를 뒤덮으니.

무조건적인 배척과 무시, 차별에서 벗어나 서로를 인정하며 대화를 나누자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거기에 11월 19일 러시아 재판소에서 독재자가 사형 판결을 받으니 폭력을 향한 인류의 승리였고.

예술이 본연의 자리를 되찾은 듯했다.

└진짜 대단하다ㅋㅋㅋㅋ

└파리 최고 미대 교수에다가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갤러리도 갖고 있는데 한국, 네덜란드에서 훈장 받은 걸로도 모자라서 노벨 평화상ㅋㅋㅋ

└그만큼 영향력을 미쳤으니까. 내 주변에 미술관 다니기 시작한 사람 엄청 많아짐.

└이거 정말임. 현대 미술 솔직히 인식 완전 달라졌지. 요즘 전시되는 작품은 뭔가 느껴지는 게 있더라.

└미술가들도 정신 차린 거지.

└ㄴㄴ 훈이도 말했잖아. 미술가와 관객이 함께 노력한 덕분이라고.

└반드시 소통해야 하는 건 아님. 고훈은 혼자 있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그런 작품도 있다고 했음.

└막상 얼굴 익히고 조금씩 대화하다 보면 마음을 나눌 수 있다고 했지.

└ㅇㅇ 그렇게 한 걸음 다가가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네.

└이게 예술품이 가지는 특성이 인간하고 똑같아서 그럼. 외향적인 사람도 있고 내향적인 사람도 있고, 아예 소통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고 다양하잖아. 그래서 어느 작품이든 틀리다고 말하면 안 되는 거고. 훈이는 낯선 작품에 다가가는 일을,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보고 있는 거야.

└오. 그럴듯하다.

└난 개인적 성취를 얘기하는 걸로 들리던데. 아무리 힘들어도 힘내서 걷자고.

└그런 의미도 있음.

└미대 다니는 입장으로서 진짜 설렌다. 돈 못 번다고, 돈 버는 사람은 극소수란 말 들을 때마다 자괴감 드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고훈이 미술도 뭔가 할 수 있다고 보여주니까.

└진짜 그딴 말 꺼내는 사람 개싫음. 아니, 뭐 보태주고나 그런 얘기 하냐고.

└그러니까ㅋㅋㅋㅋㅋ

└어느샌가부터 진지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바보가 되었다. 그만큼 사회가 비합리적이란 뜻이겠지만, 개인의 열정마저 부정당하는 것 같아 못내 아쉬웠다. 이번 일은 각각의 개인이 마음을 돌려서 이뤄낸 것 같아 개인적으로 몹시 고무적이다.

└아재 춘추가?

└난 저 아저씨 말 진짜 공감임. 오글거린다거나 쿨하지 못하다고 하거나 진지충이라거나 남의 진정성을 매도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짐.

└저 경우도 그러네. 저 아저씨는 자기 마음 진솔하게 표현했는데 이상하게 보는 사람 있잖아ㅋㅋ

└모든 일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많아졌지. 실제로 힘드니까 하는 말이고.

└근데 적어도 노력하는 사람한테 네가 뭐 잘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냐고 하면서 나도 아는 것들 조언하는 척 내뱉는 거 역겨움.

└그래서 훈이가 더 사랑받는 것 같음. 부정도 아니고 무조건적인 포용도 아니고 서로 알아가자고 말하잖아.

└되게 중요한 일임. 사람들이 대부분 낯설고 모르는 건 배척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막상 알게 되면 좋아할지도 모르는데.

└이거 진짜 맞아. 뉴튜브나 웹플릭스에서 알고리즘으로 내가 좋아할 만한 영상 추천해 주잖아. 근데 맨날 보는 것만 보니까 머리가 굳는 것 같아서 로그아웃하고 보니까 그동안 몰랐던 영상 중에도 재밌는 거 많더라.

└추천 알고리즘만 보면 생각이 고립되게 된다고 하더라.

└그게 훈이가 말하는 자유고 다양성임. 낯선 것 대하기가 쉽지 않지만 딱 한 걸음 나아가는 용기에서 모든 게 시작된다고.

└아니 여기 내가 알던 게시판 맞아? 왜 다들 멀쩡한 척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눔고딕)

고훈의 메시지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예술가들이 스스로의 힘을 믿고 일어설 즈음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저명한 미술사학자 캐롤라인 스트릭이 세계 미술 포럼에 중요한 안건을 던진 것이었다.

[캐롤라인 스트릭, 쇼콜라티즘을 다뤄]

『미술의 역사』, 『미술은 어떻게 변화했는가』 등을 출간한 미술사학자 캐롤라인 스트릭이 개정본을 내놓았다.

캐롤라인 스트릭은 출판사를 통해서 『미술의 역사』에 쇼콜라티즘 관련 내용을 추가했다고 전했다.

『서양 미술사』와 더불어 미술사학 개론서로 가장 많이 활용된 책에 새로운 사조가 등재된 일은 이례적이다.

캐롤라인 스트릭이 처음 언급하고, 김지우 작가의 <고훈 평전>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쇼콜라티즘을 학계와 평단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쇼콜라티즘은 이미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고훈뿐만이 아니라 장미래, 앙리 마르소, 마은찬 모두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요.”

캐롤라인 스트릭의 주장에 학자들이 고개를 주억였다.

장미래는 동시대 미술과 쇼콜라티즘 사이의 과도기적 경향을 보였고, 소통을 거부했던 앙리 마르소는 <2년 8개월>을 기점으로 조금씩 작풍이 변화하고 있었다.

마은찬과 비다 라바니 같은 경우는 고훈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다고 볼 수 있었다.

각 분야를 대표하거나 두각을 드러낸 이들이 이렇게 많으니, 미술계에 새로운 흐름이 생겨난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다른 분들 의견은 어떠십니까.”

포럼 진행자가 좌중을 둘러보며 의견을 구했다.

“기법적인 측면에서의 공통점을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참석자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다나카 히로부미 박사.”

진행자는 그가 발언할 수 있도록 호명했다.

“포비즘, 큐비즘 등 사조를 이룬 화가들은 대체로 비슷한 기법을 활용했습니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그 덕분에 묶어서 설명할 수 있었고요.”

다나카 히로부미가 캐롤라인 스트릭을 보며 물었다.

“방금 언급하신 미술가들을 쇼콜라티즘으로 묶어서 설명하실 수 있으십니까?”

다나카 히로부미가 고훈의 첫 개인전에서 망신당한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포럼에 참석한 몇몇은 그가 심술을 부린다고 여겼다.

그러나 캐롤라인 스트릭은 개의치 않고 답했다.

“양식과 형식이 무너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현 시대에 중요한 것은 예술가들이 지향하는 바입니다.”

“지향하는 바. 개인을 존중하고 서로를 대하는 자세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다나카 히로부미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오래 전 서울을 찾았을 때 그는 애들 장난 같은 그림을 보고선 몹시 흥분했다.

진지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서, 그런 그림을 작품이랍시고 선전한 이들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것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수치도 겪었다.

도저히 상종 못 할 인간들이라고, 한국인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거늘.

돌아와 보니 공개하지 않은 작품이 있었고, 그 작품은 다나카 히로부미를 충격에 빠뜨렸다.

서리 밀밭.

창백히 빛나는 눈 아래 숨쉬는 고귀한 생명의 흔적은 수없이 많은 명화에 노출되어 무뎌졌던 그의 감정을 한순간에 녹여 버렸다.

이후 고훈이 본인에게 초콜릿을 건넨 이유가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조롱할 의도가 없었다는 걸 알고서는 부끄러워졌다.

기존 세력에 의해 끊임없이 비판받으면서도 꿋꿋하게 본인의 길을 걸어가는 소년을 보면서 다나카 히로부미는 도저히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치욕은 후회로 이어졌고.

다나카 히로부미는 만약 그때 낯선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았더라면 어땠을지 스스로에게 반복해 물었다.

“저와 생각이 다르시군요.”

생각을 정리한 다나카 히로부미가 입을 열었다.

“어떤 점을 말씀하시는지.”

“공통된 양식과 기법은 없지만, 쇼콜라티즘을 설명할 수 있는 게 의식만은 아닙니다.”

포럼 참석자들이 흥미를 보였다.

다나카 히로부미의 말이 사실이라면 쇼콜라티즘을 미술사조로 인정하고 연구하지 않을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다나카 히로부미가 입을 열었다.

“노란색.”

“노란색.”

“고훈이 수상 강연에서 언급했었죠. 개인 뉴튜브 영상에서도 노란색을 설명했고요. 그는 해바라기나 밀밭을 다루며 노란색에 금색이 가진 이미지를 채워주었습니다. 돌려줘야 했다고 봐야겠죠.”

“……앙리 마르소와 장미래, 마은찬, 비다 라바니도 황금 같은 노란색을 자주 활용했죠.”

“그렇습니다.”

다나카 히로부미가 깍지를 꼈다.

“김지우 평론가가 정확히 본 듯합니다. 황금의 시대가 시작된 사실을 우리가 너무 늦게 알았나 봅니다.”

* * *

“빌어먹을.”

앙리 마르소가 뉴스 기사를 확인하곤 욕설을 내뱉었다.

학계와 평단이 쇼콜라티즘이란 단어를 정식으로 채용했다며, 쇼콜라티즘으로 분류한 예술가를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앙리 마르소는 고훈이 시작한 새로운 사조에 본인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몹시 불쾌했다.

“이것들이 누구 마음대로.”

앙리 마르소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분해하자 아르센이 끼어들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르센이 기사를 확인하고는 미소 지었다.

“합리적으로 보입니다만.”

“뭐?”

“애초에 쇼콜라티에 가장 먼저 가입하지 않으셨습니까.”

앙리 마르소가 미간을 잔뜩 찡그렸다.

“그건.”

“누가 봐도 가장 큰 지지자이자 공동 창업자입니다. 빼도 박도 못하죠.”

분했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할 일 없어? 왜 얼쩡거려?”

“작가님을 보필하는 게 제 일입니다.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근무 중이죠.”

“너 이제 내가 우스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충성스러운 직원이 고개를 숙이니 더 할 말이 없었다.

앙리 마르소는 괜히 책상을 걷어차며 불평했다.

“이건 또 왜 안 와?”

약속시간이 다 되었거늘 만나자고 연락한 고훈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눈이 와서 길이 막힐 겁니다.”

“내가 그런 사정까지 봐주며 기다려야 해?”

“심심하시다면 조금 전 나눈 얘기를 좀 더 이어가는 건 어떠십니까.”

앙리 마르소가 한 소리 하려던 찰나 문이 열렸다.

“아이고. 미안하네, 고훈 군. 급히 온다고 했는데 길이 미끄러워서.”

안으로 들어선 셰바송 씨몽 협회장이 앙리 마르소를 보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놀라기는 앙리 마르소도 마찬가지였는데 <델프트의 여인> 사건으로 크게 다툰 이후로 처음 대면하기 때문이었다.

“크흠. 고 군을 보러 왔네만. 내가 장소를 착각한 모양이군.”

셰바송 씨몽 협회장이 방을 나서려 하자 눈치 빠른 아르센이 급히 나섰다.

“훈이라면 곧 도착할 겁니다. 앉아서 편히 기다리시지요.”

셰바송 씨몽이 목을 가다듬으며 불편한 기색을 내보이자 앙리 마르소도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지난 일로 서로의 오해를 풀긴 했지만, 대화를 통해 이뤄진 일이 아니었기에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이 녀석이.’

앙리 마르소가 고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음이 가다가 끊어지고 말았다.

한 번 더 걸었지만 이번에는 핸드폰이 꺼져 있다는 안내음이 나올 뿐이었다.

약이 오른 앙리 마르소가 벌떡 일어났다.

성큼성큼 방을 벗어나려고 하자 아르센이 한 발 앞서 밖으로 나서 이내 문을 걸어잠궜다.

당황한 앙리 마르소가 문고리를 흔들었지만 두 사람이 화해하길 바라는 아르센은 필사적으로 문이 열리지 않게 막아섰다.

“야. 이거 안 열어?”

“오랜만에 담소라도 나누시는 게 어떻습니까.”

“좋게 말할 때 열어.”

“좋게 말씀하신 적 없습니다.”

“아르센!”

앙리 마르소가 거칠게 문을 잡아당겼지만 소용없었다. 한참을 실랑이를 벌인 끝에 그가 호흡을 가다듬으니 지켜보던 셰바송 씨몽이 헛기침을 했다.

“그. 건강해 보이는구만.”

앙리 마르소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이 어색한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문도 열리지 않으니 하는 수 없이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셰바송 씨몽도 소파에 앉았고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딴청을 부렸다.

“……베르가 이제 뛰어.”

긴 침묵 끝에 앙리 마르소가 딸 자랑을 했다.

* * *

1)아르헨티나의 인권 운동가, 조각가 아돌포 페레스 에스키벨이 1980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일러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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