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452화 (452/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외전 48화

Golden Age

7. 다시 황금의 시대로(13)

김지우의 <고훈 평전>을 읽은 캐롤라인 스트릭이 책을 덮었다.

출간과 함께 베스트셀러에 오른 만큼 재밌게 읽을 수 있었고, 고훈을 이렇게 자세히 다룬 책이 또 있을까 싶었다.

하나 고훈의 초기 작풍과 빈센트 반 고흐를 연결 지을 때 두 화가의 색 배치가 유사하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은 점이라든가.

고훈 작품의 특징 중 하나인 생략과 과장을 깊이 다루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그래도.’

고훈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고 그것이 미술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해서는 상세히 소개했으며.

‘그렇게 다시 황금의 시대가 찾아왔다’는 문장으로 동시대 예술을 지나서 새로운 사조가 시작되었다고 알린 대목에서는 가슴이 뛰었다.

고훈의 팬으로서 지금까지 그의 족적을 정리해 살피는 것만으로도 즐거웠고.

학자로서 김지우가 제시한 주장을 비판, 보완하고 일부는 동조하는 등 연구할 일이 생겼다.

캐롤라인 스트릭이 노트를 앞으로 가져왔다.

독서하며 틈틈이 기록해 둔 내용을 토대로 김지우가 쓴 <고훈 평전>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재고해 보고자 했다.

자료를 찾고, 옛 기억을 떠올려보며 적은 글이 노트를 채워나갈 때마다 캐롤라인 스트릭은 온몸에 활력이 도는 것 같았다.

밤을 지나 아침이 가까워질 무렵에도 피곤하지 않았다.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만족감만이 있을 뿐이었다.

“쇼콜라티즘.”

캐롤라인 스트릭은 고훈의 첫 개인전을 떠올리며 일본인 평론가의 비난에서 시작된 단어를 입에 담았다.

당시에는 <서리 밀밭>과 같은 걸작을 평하면서 어쩌면 고훈의 화풍이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지도 모른단 기대로 쇼콜라티즘이란 단어를 사용했을 뿐.

진중하게 다루리란 생각은 캐롤라인 스트릭 본인도 못 했다.

미술은 이미 너무나 다양화되어 있었다.

동시대 예술이라는 포괄적이며, 동시에 비대상적인 개념 너머에 또 다른 무엇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본인이 살아생전에 그 광경을 보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본인이 저술한 미술사조를 개정하기로 마음먹었다.

평론가 김지우의 주장을 보완하여, 새로운 사조가 탄생했음을 알리고 학계로부터 동조를 구하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납득할 만한 정의가 필요했다.

책상 앞에서 고심에 고심을 더하던 캐롤라인 스트릭은 주전자에 물을 부었다.

달짝지근한 밀크티를 마시며 생각을 정리할 요량이었다.

물이 끓기 기다리던 차, 오늘이 아주 중요한 날이란 사실이 떠올랐다.

시간을 확인한 그녀는 서둘러 TV를 틀었다. 붓과 팔레트를 든 고훈을 볼 수 있었다.

하얀 셔츠와 베이지색 면바지 차림의 그는 무대 위에 놓인 거대한 캔버스에 노란 물감을 얹었다.

꽃잎이 피어나듯.

햇살이 내리쬐듯.

싱그럽게 뻗은 노란색은 붓칠이 이어짐에 따라 조금씩 무르익었다.

그 모습이 마치 가을을 맞이하는 밀밭 같았다.

태양의 은혜로 잉태된 어린 생명이 원숙해지는 과정은 왜 그리 벅찬지.

캐롤라인 스트릭은 넋을 놓고 TV를 지켜보았다.

* * *

2038년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사 일대가 마비되었다.1)

노벨 평화상 수상자 고훈과 그 가족, 노르웨이 국왕 및 노벨위원회, 미술계 주요 인사.

또 현장을 취재하기 위한 기자들로 붐볐다.

“축하합니다, 고 교수.”

“감사합니다.”

“오늘 시상식 뒤에 강연도 하신다고 들었는데.”

“네. 길게 하진 않을 거예요.”

“그건 아쉽네요.”

“뭐가요?”

“수상 강연 역사상 가장 긴 강연이 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설마요.”

“반갑습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그러니까…….”

“하하. 니콜라이 룬드비입니다. 이곳 시장이죠.”

“아,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전혀요. 이렇게 뵙게 되어 기쁠 따름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시청사에 도착한 뒤로 고훈은 수백 명과 인사를 나눠야 했다.

직접 축하하기 위해 오슬로까지 찾아온 미술계 인사들은 물론, 노르웨이 왕가와 정치인에 더해 기자들까지 달려드니 정신이 없었다.

“껄껄. 힘들어?”

고수열이 팔을 축 늘어뜨린 손자에게 물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 왔을 거예요.”

“스웨덴에서는 밤새 연회를 한다더구나.”

스웨덴 시상식은 늦은 시간까지 연회가 이어져 새벽 2시에 야참이 나올 정도였다.

“거기는 맛있는 걸 주잖아요.”

“여기도 그렇다고 하더구나.”

고훈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디저트라도 먹으면 조금 살 것 같았다.

“케이크 좀 가져다 줄까?”

“네. 부탁드릴게요.”

방태호가 묻자 고훈이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인파를 뚫고 겨우 자리를 잡았는데 다시 일어서면 또 사람들이 몰려들 것 같았다.

“허어. 내 살다살다 이런 곳도 와 보고.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고수열이 원탁 가운데 놓인 샴페인병을 살피며 넌지시 기쁨을 표현했다.

손자가 한국과 네덜란드에서 훈장을 수여받은 데 이어 노벨상까지 수여받으니 감개무량했다.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아요.”

“끌끌.”

테이블에 이마를 대고 엎드린 고훈이 고개를 슬쩍 돌렸다.

“할아버지.”

“응?”

“정말 좋으세요?”

“암. 좋다 말다. 내 손주가 이렇게 잘났다고들 하는데 싫을 리가 있니. 좋지. 아무렴 좋지.”

고수열이 밝게 미소 짓자 고훈도 작게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숙이니 심경이 복잡해 보였다.

“엄마 아빠도 좋아할 게다.”

고훈은 대꾸하지 않았다.

마침 방태호가 케이크를 들고 왔기에 화제가 자연스레 넘어갔다.

“맛있다.”

고훈이 케이크를 입에 넣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꾸덕한 식감과 비강에 차오르는 독특한 향도 일품이었으나 순도 높은 단맛이 제일이었다.

“그러게. 이거 호박인가?”

“호박이랑 꿀로 만든 것 같아요.”

“아이고 달다.”

고수열이 인상을 쓰며 본인 몫의 케이크를 손자에게 넘겼다.

“안 드시게요?”

“그래. 너 먹어라.”

“맛있는데.”

고수열이 고개를 저었다. 달아도 너무 달아서 먹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덕분에 호박꿀 케이크를 두 조각이나 먹어서 당을 채운 고훈은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잠시 뒤 시상식을 거행하겠습니다. 내빈께서는 자리에 앉아주시길 바랍니다.”

사회자가 나서서 식순을 소개했다.

가장 먼저 노르웨이 국왕이 나서서 인사말을 전했고, 곧장 노벨위원회장이 나서서 시상자 고훈을 소개했다.2)

“우리는 3년 전 참담한 일을 겪었습니다. 특히 푸른 하늘과 밀을 사랑하던 우크라이나는 가족과 연인, 친구를 잃었지요. 그 아픔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었습니다. 감히 그럴 생각을 하지 못했지요. 하지만 올해 8월, 우크라이나는 그들이 바라던 일을 한 영웅이 해냈다고 합니다. 그들의 한과 원통함을 달래주었다고 합니다.”

노벨위원회장이 테이블에 앉아 있는 고훈에게 시선을 주자 시상식장이 고요해졌다.

“존경하는 작가님, 무대 위로 올라와 주시겠습니까?”

고훈이 숨을 길게 내쉬고 일어나자 적막했던 시상식장이 떠나갈 듯 환호가 일었다.

박수갈채를 받으며 무대에 오른 고훈에게 노르웨이 국왕이 직접 메달과 상장을 전달했다.

오늘의 주인공을 위해 모두 무대에서 내려왔고 고훈은 벅찬 가슴을 애써 다독이곤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청중은 고훈이 본론을 꺼내기도 전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냈다.

“호박 케이크가 맛있더라고요. 오늘 만찬을 준비해 주신 쉐프님께 감사드립니다.”

시상식장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고훈이 미식가란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수상 소감 첫 마디로 맛있는 케이크를 만들어 주어서 고맙다고 말할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그리고 이곳에 와주신 분, 노벨상위원회 그리고 노르웨이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람들이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오늘 제가 이곳에 서 있는 이유는 여러분께 있습니다.”

고훈이 본론을 꺼냈다.

“제가 아무리 멋진 해바라기와 밀밭을 그리더라도 그것을 알아보고, 가치를 더해주지 않으시면 이 자리에 설 수 없었습니다.”

고훈의 발언은 분명 동시대 예술이 지향하는 방향과 결이 달랐다.

작품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 작품에는 의미가 없는 걸까.

그렇지 않다는 기존 예술가들과 달리, 고훈은 예술가와 감상자가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더 큰 가치를 가진다고 말했다.

“EIE 운동 때 해바라기를 들고 거리로 나온 분들이 없었더라면, 우크라이나에서 밀밭을 흔들지 않았더라면, 독재자를 규탄하는 이들이 해바라기처럼 일어서지 않았더라면 저는 이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 상은 여러분이 주신 것이고 또 여러분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고훈이 말을 마치자 청중들이 환호와 갈채를 보냈다.

영광을 나누겠다는 말이 상투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고훈은 노벨 평화상이란 영예를 안고도 그것이 누구로부터 나왔는지 분명히 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말로 풀기에는 복잡하고 길어질 것 같아서 제 방식대로 소감을 마치겠습니다.”

고훈이 고개를 돌리자 노벨상 위원회가 미리 밑칠해 둔 대형 캔버스와 물감, 붓, 팔레트를 전달해 주었다.

그림을 그려서 소감과 연설을 대신한다고 하니, 시상식을 지켜보는 이들이 가슴 설레며 숨을 죽였다.

고훈은 크고 넓쩍한 붓에 노란색 물감을 충분히 묻혀 캔버스에 칠했다.

과감한 단 한 번의 붓칠로 120호 캔버스에 빛이 들었다.

“노란색은 생명과 풍요의 상징이었습니다.”

또 한 번 크게 붓칠했다.

“태양과 봄꽃을 상징했고 황금과 같은 색이었으니까요.”

고훈이 붓을 크게 휘둘렀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힘 있는 이들이 즐겨 사용했습니다. 왕이나 귀족, 종교단체에서요.”

고훈이 붓을 바꾸었다.

끝이 뭉툭한 트래블붓이었다.

“서민들은 노란색 옷을 입은 그들을 동경했습니다. 유행을 타기 시작했죠. 하지만 힘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그리 좋은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본인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처럼 보였죠.”

고훈은 검은색과 갈색, 흰색을 대강 섞은 뒤 뭉툭한 붓으로 캔버스를 두드렸다.

“해서 그들은 보다 멋진 노란색을 찾았습니다. 다른 이름을 붙였고, 기존 노란색은 배신자의 이미지를 부여했죠. 유다의 색으로 치부하면서 예전 노란색을 입는 사람은 부도덕한 사람으로 취급했습니다.”

톡톡톡- 소리가 이어졌다.

“생명과 풍요로움을 상징했던 노란색은 순식간에 부정적인 색이 되었습니다. 본래 노란색이 가졌던 긍정적 이미지는 모두 황금색이 가져갔죠.”

고훈은 한동안 말을 멈추고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나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훈이 무엇을 그리는지 조금씩 감을 잡는 이들이 생겨났고.

거대한 해바라기가 어느 정도 형태를 갖추자 고훈은 노란색을 다시금 들었다.

밝은 노란색, 어두운 노란색, 비율을 조절하며 덧칠을 시작했다.

“가을이 다가오면 밀은 조금씩 노랗게 변합니다. 뙤약볕 아래서 인내하면서 높이 떠 있는 태양을 닮아갑니다. 파랗던 밀이 노랗게 되고, 다시 황금빛으로요.”

고훈의 해바라기가 황금처럼 빛나는 듯했다.

“모함당하고 빼앗겨도 끝끝내 자신의 색을 찾아가는 밀과 땅에 붙어 살지만 그 누구보다도 태양과 닮은 해바라기가 여러분 같습니다.”

고훈이 붓을 내려놓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본인의 자리를 지키고 스스로를 보호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사랑합니다.”

* * *

1)노벨상은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스웨덴 국왕이 수여하지만, 노벨 평화상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노르웨이 국왕이 수여한다.

2)보통 시상식 두 달 전에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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