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외전 40화
Golden Age
7. 다시 황금의 시대로(5)
“끄으아.”
원고를 쓰던 김지우가 기지개를 켰다.
잡지 보자르에서 연재하는 칼럼 외에도 그녀는 하나의 이야기를 집필하고 있었는데, 바로 화가 고훈의 평전이었다.
수 년째 이어온 작업이었으나 고훈이 왕성히 활동하는 작가였기에 자꾸만 추가할 일이 생겨났고.
처음에는 조금이라도 빨리 원고를 완성하고 싶었던 김지우도 마음을 느긋이 먹게 되었다.
‘애초에 욕심이었지. 훈이보다 오래 살 리 없는데.’
고훈과 나이 차가 많이 났기에 그의 평생을 담아낼 순 없었다.
다만 미술을 다시 부흥하고 예술로 세상을 바꾸는 그의 일생과 예술관을 어떤 형식으로든 다루고 싶었다.
평론가나 작가이기 전 그를 지지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바람이었다.
김지우가 그동안 쓴 원고와 기록을 대강 훑었다.
화면 하단에 표시된 2,298,238글자를 확인하고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많이도 썼다.”
책 한 권 분량이 12만 자에서 15만 자 정도 되니 대략 17권 분량이었다.
잡다한 이야기를 덜어내고 압축할 이야기가 많다고는 해도 정리된 원고를 모두 출간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만한 분량이면 분절해서 출간해야 할 텐데 판매량이 부진하면 온전히 책을 낼 수 없었다.
어떻게든 글자 수를 줄여야만 했다.
고민하던 김지우가 짧게 숨을 내쉬었다.
“더 쓸 수야 있겠지만.”
정리할 때가 온 듯했다.
앞으로 고훈이 해나갈 일을 생각해 보면 몇 권을 더 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차피 그의 끝까지 다루지 못할 바에는 지금까지 고훈이 한 일을 아울러 조만간 마침표를 찍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언제 다 하지.’
그러나 2,298,238자에 달하는 방대한 원고를 다시 한번 살펴서 중요한 내용을 정제하고 명확히 하기가 쉽지 않았다.
고훈이란 미술가의 예술관을 담아낼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바꾼 세상을 어떻게 표현할지 알 수 없었다.
‘커피나 마실까.’
서두른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작가 생활을 오랫동안 해 온 경험으로 장기전이 될 것 같았다.
김지우는 우선 원고를 처음부터 다시 읽기로 마음먹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밤이 길어질 것 같기에 카페인의 힘을 빌리고자 냉장고 앞으로 향했다.
아침에 내려둔 콜드 브루 커피가 제법 모여 있었다.
‘뭐 듣지.’
그녀는 커피를 따르며 무슨 곡을 들을지 생각했다.
최근 즐겨 듣는 곡은 피아니스트 최지훈의 연주였다.
커피향처럼 감미롭고 짙은 감수성과 귓가에 스며드는 섬세한 타건은 곁에 누운 연인처럼 설레면서 동시에 안도감을 주었다.
커피를 챙긴 김지우는 모니터 앞에 앉아 베를렌 필하모닉 가상 콘서트홀 DOBEAN에 접속했다.
“어?”
메인 화면에 고훈의 <해바라기>가 걸려 있었다.
‘무슨 이벤트 하나?’
DOBEAN을 둘러보았지만 공지사항은 따로 없었다.
고훈과 베를린 필하모닉은 일찍히 <파우스트>를 함께 꾸민 적이 있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 사이트를 열었다.
‘여기도?’
검색 사이트 고글의 대문에도 고훈의 해바라기가 걸려 있었다.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한 그녀는 곧장 고훈의 SNS 계정을 찾았고, 그가 새로운 뉴튜브 영상을 게시했음을 알게 되었다.
핑구 채널로 이동한 그녀는 고훈이 업로드한 영상을 보고는 입을 틀어막았다.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짓이 자행되었고, 시민들은 그에 항거해 해바라기를 높이 들고 있었다.
영상이 끝난 뒤에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김지우는 차가운 커피로 속을 달랬고.
천천히 고훈이 남긴 말을 읽었다.
모두 함께하자는 말에 핑구 채널의 구독자들이 댓글로 해바라기 이모티콘을 달아 응답하고 있었다.
‘다들 같이하고 있구나.’
모두가 독재에 저항하는 이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사랑한다고 말했다.
‘혹시.’
뉴튜브 메인 화면으로 전환하니 추천 영상 몇몇 개가 이미 고훈의 <해바라기>를 썸네일로 삼고 있었다.
채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온라인 환경이 태양을 머금은 듯한 황금빛 물결로 일렁이고 있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응집한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뉴스에서는 매일 갈등을 다루었다.
세대, 정치, 국가, 민족,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치열하게 싸움이 일었다.
기나긴 싸움은 사람들을 점차 회의적으로 만들었으며 갈등을 외면하는 데 이르게 했다.
그런 상황에서 모두가 하나의 마음으로 무엇을 바라는 모습을 보니, 새삼 감격스러웠다.
김지우는 본인 블로그 대문을 바꾸어 해당 운동에 동참했고.
동시에 오랜 세월 고민해 온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 지을지도 결정할 수 있었다.
키보드 위에 손을 얹고 눈을 감은 채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천천히 하나의 문장을 완성해 나갔다.
다시 황금의 시대가 찾아왔다.
그녀가 출간할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 * *
기이한 일이었다.
눈부시게 빛나는 해바라기가 거대 포털 사이트와 웹사이트, 커뮤니티 사이트, 포럼, 개인 SNS 곳곳에 피어났다.
어떤 사이트에 접속해도 생기 가득 머금은 황금빛 꽃잎이 손을 흔들었다.
이틀이 지난 무렵에는 거리에도 해바라기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타임스퀘어, 피카델리 서커스 등 랜드마크 지역을 포함해서.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역, 횡단보도, 작은 매장에도 고개를 들고 당당히 미소 짓는 꽃이 싱그럽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피티 라이터에 의해 다리 아래와 폐건물 벽면에서도 빛을 발했다.
사람들은 단 이틀 만에 찾아온 기적 같은 일에 고무되었다.
거리에는 고훈의 <해바라기>를 프린트해서 나눠주는 사람도 있었고, <해바라기>를 든 채 러시아 시위대를 응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평화와 사랑을 노래하는 사람이 생겨났고.
각 지역 오케스트라는 <해바라기>를 배경 그림으로 삼아 인류애를 주창했던 베토벤의 아홉 번째 교향곡을 연주했다.
한 라디오 방송에서는 하루동안 특집으로 저항음악을 틀어주었으며,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는 가슴에 해바라기 뱃지를 달고 카메라 앞에 섰다.
“이게 네가 하고 싶은 일이냐.”
이동하는 자동차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던 앙리 마르소가 고훈에게 물었다.
“네.”
반대편 창문으로 거리를 살피던 고훈이 답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예전에. 아주 예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 있어요.”
고훈이 말문을 뗐다.
“이 세상은 완전한 걸까. 어쩌면 신이 완성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신은 정말 선량할까.”1)
신이 선량한 의지로 세계를 구성했다면 어찌하여 고통받는 이들이 있을까.
빵 한 조각 얻고자 광산에서 생명을 줄여가는 이들이나 굶주림에 허덕이며 물감 하나 사기에도 급급한 내게 신이 정말 존재할까.
고훈은 그런 불경한 생각을 하곤 했다.
다시 태어난 후에야 비로소 행복을 얻었다고 생각했건만, 세상은 잔인하게도 두 분 부모님을 앗아가고 기억마저 지우고 말았다.
그럴 때마다 고훈은 시험에 들었다.
신은 인간에게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 준다는 말이 용기를 주었던 말이 점차 저주처럼 느껴졌다.
“신 같은 건 없어.”
앙리 마르소가 단호히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죠.”
고훈이 피식 웃었다.
“아직 무엇이 답인지는 모르겠어요. 아마 평생 고민해도 알 순 없겠죠. 근데.”
앙리가 고개를 돌리자 고훈도 시선을 그와 마주했다.
“만약 이 세상이 신이 그린 그림이라면 지금도 열심히 수정하고 있지 않을까.”
“…….”
“그림을 수정할 수 있는 건 그림의 주인이니까요.”
고훈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만약 이 세상의 주인이 우리라면. 우리는 우리의 그림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그렇게 싸우는 거 아닐까.”
“자기 맘대로 하고 싶어서 싸우는 거겠지.”
“하핫. 그럴지도 몰라요.”
앙리 마르소의 일침에 고훈이 소리내어 웃었다.
어쩌면 그의 말대로 한정된 캔버스에 각자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렇게 싸우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싸우지 않는 건 불가능할지도 몰라요. 나 혼자 그림 그릴 때도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고민하니까 다른 사람이랑 함께하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앙리 마르소는 고훈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함께하려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홀로 작업할 때도 구도를 어떻게 할지, 색은 어떻게 처리할지, 빛을 어디에 둘지와 같은 문제를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자기 안의 여러 가치관이 부딪치고 또 부딪혔다.
“그래서 삶은 고통이라고 하나봐요.”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말이었다.
인간은 태어났을 때부터 부조리함에 노출되고, 결코 충족될 수 없는 환경에서 발버둥친다고 주장했다.
처음에는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먹을 것과 잘 곳, 입을 것을 위해 일하고.
그것이 충족되면 명예를 찾고.
부와 명예를 모두 이루면 지루함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다가 결국에는 만족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고 했다.
인간의 삶은 애초에 그렇게 부조리하다고.
“근데 그럼 왜 살아야 하는지 궁금해지잖아요. 어차피 고통받을 텐데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야 할까.”
태어났으니 산다는 것만으로는 납득할 수 없었다.
“완성하기 위해서.”
앙리 마르소가 대답했다.
“내 생각도 그래요. 조금 더 나아지길 바라고. 그보다 조금 더 나아가길 바라니까. 그림을 더 멋지게 그리고 싶은 것처럼요.”
고훈이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오래전 같은 고민을 했을 때가 떠올랐다.
스케치를 고치는 일처럼 망가진 몸과 삶을 고치고 싶었던 그 날, 동생 테오도르에게 적어 보낸 말이 불현듯 뇌리를 스쳤다.
만약 삶이 갈등의 연속이라면.
사랑을 경험하고 사랑할 줄 알게 된 지금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으리라.
고훈은 그리 생각하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도착했습니다.”
아르센이 자동차를 루브르 박물관 앞에 세웠다.
고훈과 앙리 마르소가 차에서 내리자 카메라 셔터음이 소나기처럼 내렸다.
* * *
1)“이 세계를 가만히 보면, 선량한 신에 대해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점점 강하게 든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그가 망쳐버린 습작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빈센트 반 고흐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