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440화 (440/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외전 36화

Golden Age

7. 다시 황금의 시대로(1)

신국보보물전 개막식에 맞춰 대한민국 정부는 고훈에게 문화훈장을 수여했다.

고훈의 개인 일정을 고려해 문체부 장관의 추천부터 수여식까지 모든 과정이 긴급히 추진되었는데.

해당 분야에서 15년 이상 공적을 쌓은 이에게 수여한다는 규정에 예외를 두어서.1)

최연소 수훈자 배도빈에 비견될 정도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화가 고훈. 귀하는 문화 활동을 통하여 국민문화 향상에 이바지한 공모라 큼으로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다음 훈장을 수여합니다.”

사회자의 안내와 함께 고훈이 훈장을 받았다.

“금관문화훈장. 2038년 9월 3일.”

고훈의 가슴에 금관문화훈장이 달리자 박수가 물결을 이루었다.

“2027년 처음 활동을 시작한 화가 고훈은 아르누보 공모전 준우승,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등 국제 미술 축제에서 성과를 보였습니다.”

사회자가 고훈의 이력을 소개했다.

“또한 취약계층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쳐 미술의 가치를 고취하고, 그들과 함께 공공미술 사업을 진행하는 등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고수열이 무대 위에서 웃고 있는 손자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뛰어난 작품을 그리고 저명한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는 것 또한 자랑스러웠으나.

쇼콜라티에를 운영하며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에게 놀이터를 마련해 주는 등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 더욱 기뻤다.

어느 순간부터 고수열의 손자란 말보다 고훈의 조부란 표현이 자주 사용되니.

고수열은 더 바라는 일이 없었다.

“대표작 해바라기는 박애의 상징이 되어 EIE 운동의 깃발로 사용되었으며 밀밭은 평화와 자애로 인식되었습니다.”

사회자는 정치적 문제가 될 소지를 우려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간접적으로나마 러시아를 비판하고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용기를 준 고훈을 치하했다.

“또한 국보급 문화재 100점을 반환받는 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며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뛰어난 공적을 쌓는 등 모든 미술인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작가님.”

사회자가 안내를 마치자 상장과 훈장을 받은 고훈이 앞으로 나섰다.

“감사합니다.”

그는 따뜻한 미소를 띤 할아버지를 보았다.

“요새 이런 자리가 많은데 할아버지가 말을 너무 길게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해서 짧게 하겠습니다.”

행사장에 웃음이 번졌다.

“제가 용산에서 살 때.”

고훈이 말문을 트자 내빈들이 또 한 번 웃었다.

└짧게 한다몈ㅋㅋㅋㅋㅋ

└박찬호ㅋㅋㅋㅋㅋㅋ

└훈이 센스 있네

└훈이 저런 자리 있을 때 농담으로 시작하는 거 너무 좋아

└짧게 한다면서 바로 투머치토커 드립ㅋㅋㅋㅋ

└박찬호가 누구임?

└코리안 특급을 모르는 세대가 있다니…….

└훈이가 아는 게 신기한 거짘ㅋㅋ 20년도 전 드립인데

시청자나 내빈은 고훈이 분위기를 풀고자 유머를 꺼내들었다고 생각했으나, 정작 고훈은 그들이 왜 웃는지 알 수 없었다.

“기억을 잃기도 했고 여러모로 혼란스러웠어요.”

고해성과 이수진이 사망하고 고훈이 기억을 잃은 사건이었다.

콕 집어 말하진 않았지만 그가 어렸을 때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모르는 이는 없었다.

└아니 여기서 그 이야기를 꺼내실 줄은 몰랐죠;;

└웃어서 죄송합니다 ㅠㅠ

“그때 할아버지께서도 많이 힘드셨을 텐데 제가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고훈이 고수열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제가 지식과 경험은 대부분 할아버지를 통해서 얻게 된 거예요.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던 절 데리고 여기 국립중앙박물관이나 배움 미술관을 찾으셨죠.”

고수열이 옛 일을 떠올렸다.

받아쓰기 공부를 하면 미술관에 데려다 준다고 하니 기를 쓰던 어린 손자의 모습이 바로 엊그제처럼 선명했다.

“이번에 한 10년 만에 다시 찾았는데 그때와는 느낌이 또 다르더고요. 김홍도나 신윤복 작품처럼 유명한 작품에서 몰랐던 의미를 알게 되고 또 이름 모를 누군가가 남긴 물건이 왜 가치 있는지도 알 수 있었어요.”

고훈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신국보보물전을 미리 둘러보니 아, 내가 잘했구나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다.

농담을 꺼냈는데 웃지는 않고 박수를 보내니 고훈으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또 작품 설명을 들을수록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우리 문화재의 가치는 우리가 가장 잘 알고 느낄 수 있다고요.”

고훈은 성찬호 관장과 박재욱 사무관에게서 김홍도와 신윤복을 포함한 여러 문화재를 소개받으며.

네덜란드에서 <델프트의 여인>을 조사했을 때를 떠올렸다.

파리에 있을 때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던 수수께기가 네덜란드를 찾자 금방 해결되었던 것처럼 러시아에서 반환받은 100점의 작품이 한국에 이르자 본 모습을 되찾았다.

“델프트의 여인과 햇빛이 드는 창가가 네덜란드에 있어서 더욱 가치 있듯이. 우리 문화재 또한 다른 어떤 나라도 아닌 우리나라에 있을 때 가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훈의 말을 듣고 있던 이들이 또 한 번 박수를 보냈다.

그 소리가 꼭 같은 생각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래서 꼭 되찾아야 하고. 그래서 꼭 소중히 보존, 보관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고훈이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번 일로 큰 보상을 받을 겁니다. 염치없지만 그것으로 이와 같은 일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소중한 물건을 되찾고 보호하고 더 알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고훈, 138억 원 보상 받는다]

[고훈, “문화재 환수 작업에 사용할 것.”]

[고훈 금관문화훈장 수훈]

3일 화가 고훈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금관문화훈장을 수여받았다.

이날은 러시아로부터 반환받은 문화재 100점을 포함한 전국의 국보, 보물급 문화재가 한 자리에 전시되는 신국보보물전이 개최되었다.

문화재 반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고훈에게는 문화훈장 중 최고등급인 금관문화훈장이 수여되었고 이에 고훈은 음악가 배도빈 이후 최연소로 수훈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고훈은 “우리 문화재의 소중함은 우리가 가장 잘 알고 느낄 수 있다”고 말하며 “문화재 반환에 대한 보상금으로 반환 작업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고훈은 100점의 문화재를 반환하며 총 138억 원을 보상받게 되었다.

└ㅁㅊ 138억?

└어마어마하넼ㅋㅋㅋㅋ 저거 전액도 아니라고 하던데

└아마 구매해서 전달한 게 아니라 그럴 거임. 일부라고 기사에도 적혀 있음.

└일부가 138억이라고?

└문화재 100점 가져왔다고 해서 대단하다고만 생각했지 금액으로 보니까 황당하넼ㅋㅋㅋㅋ

└아니 ㅠㅠ 사리사욕 채워도 되는데 그걸 또 반환 사업에 사용한다고 하네

└그니까 진짜 난 놈인듯.

└저 돈 없어도 이미 수백억 원 있을 텐데 뭐.

└야 월급 300만 원에서 100만 원 자기랑 관련 없는 일에 쓰기 얼마나 힘든데.

└그건 그러네.

└난 러시아가 저걸 돌려준 게 신기함ㅋㅋㅋㅋㅋ

└그만큼 고훈 파급력을 생각했던 거지. 원래도 돈 주고 작가 초청하려던 거 보면 저 정도 지출은 생각했던 것 같음.

└근데 엿먹었으니ㅋㅋㅋㅋㅋ

└그래서 지금 난리잖아. 시상식 때 훈이 주변에 경호원 서 있는 거 못 봄?

└그 일 있은 뒤로 계속 경호원하고 같이 다니더라.

└그니까.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훈이 지켜줘야 하는 거 아님?

└설마 무슨 일 있으려고.

└그 미친놈들 협상 테이블에서 우크라이나 사람한테 독 먹이는 놈들이야. 제정신이 아니라니까?

└미틴 오늘내일 한다며. 죽으면 괜찮지 않을까? 러시아 내부에서도 혁명 났다고 하던데.

└그러면 좋지만.

미술 애호가, 고훈의 팬들은 고훈이 공익적 일을 행함에 기뻐하고 여러 방향으로 보상받는 그를 축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그의 신변이 안전하다고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저도 그렇고요.”

행사 이후, 고훈을 만난 알렉스 우드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다 안부를 물었다.

고훈이 씁쓸하게 웃었다.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죠. 사실 그 이후로 여러 가지로 신경 쓰고 있어요.”

“예를 들어서. 아, 곤란하시면 대답하지 마세요.”

다른 일도 아니고 고훈의 안위에 관련된 일이었기에 알렉스 우드는 카메라를 켤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만약 고훈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알려지게 되면, 러시아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하게 될지도 몰랐다.

“음. 보시다시피 앙리가 경호를 붙여줬고요. 음식 같은 것도 조심하는 편이에요. 파리에 있을 땐 제 피자 매장이나 앙리네에서 먹었어요.”

“하.”

알렉스 우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벌써 한 달 가까이 그런 생활을 했다니, 그 고초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언론에 비친 밝은 모습으로는 고훈의 고립된 일상을 유추하기 힘들었다.

“다른 방법은 없는 거예요?”

“글쎄요.”

확답을 피하긴 했으나 고훈으로서도 조심하고 또 조심할 뿐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 일을 후회하진 않아요.”

고훈의 대답에 알렉스가 눈을 크게 떴다.

“분명 제겐 가치 있는 일이었어요. 문화재뿐만 아니라 독재자의 욕심 때문에 죽어간 우크라이나 사람과 러시아 사람을 위해서라도 어울릴 순 없었어요.”

고훈의 굳은 얼굴을 본 알렉스가 핸드폰을 꺼냈다.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뭔데요?”

“우크라이나에서 사는 구독자가 보내준 영상이에요.”

알렉스가 영상을 틀자 요란한 소리가 났다.

우크라이나말이라 고훈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거리를 행진하는 이들은 저마다 황금 밀밭 그림과 해바라기를 들고 있었다.

그들의 국기를 상징하는 <황금이 녹아내린 땅>을 모사한 그림과 그들의 국화이자, 고훈의 상징 <해바라기>를 들고 있었다.

EIE 운동 때 무료로 배포했던 이미지였다.

고훈이 입을 막았다.

“모스크바 국제 아트페어에서 작가님이 보여준 일에 감동했나 봐요.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작가님 그림을 들고 작가님을 보호하자고 시위하고 있어요.”

고훈은 목 아래가 묵직해짐을 느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에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고 거리로 나선 이들의 얼굴을 눈에 담고 싶었으나.

눈물이 차올라 쉽지 않았다.

“러시아도 마찬가지에요.”

알렉스가 러시아 구독자가 보낸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건.”

러시아 혁명군으로 보이는 이들이 고훈의 해바라기를 들고 있었다.

“러시아에서도 해바라기는 중요한 꽃이에요. 국화이기도 하고 해바라기씨유는 중요 사업 중에 하나죠.”

알렉스가 고개를 들었다.

“우크라이나도 러시아도 모두 작가님에게 기대어 용기를 내고 있어요.”

* * *

1)2022년 현재 15년 이상 해당 분야에서 공적을 쌓아야 한다는 규정에서 벗어난 사례는 단 하나뿐이다.

방탄소년단은 활동 5년 만에 우리말 확산의 공로로 문화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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