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438화 (438/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외전 34화

Golden Age

6. 신윤복의 사랑(5)

“이 작품을 보시죠.”

박재욱 사무관이 <연소답청> 앞에 섰다.1)

“연소란 젊은 사람을 뜻하고 답청은 푸른 풀을 밟는다는 뜻입니다.”

“꽃놀이 가는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어린 양반과 기녀들이 꽃놀이를 가는 장면입니다. 가운데 큰 갓을 쓰고 곰방대를 들고 있는 남자가 입은 옷을 보면 알 수 있죠.”

박재욱 사무관이 양반이 입은 옷을 창의(氅衣)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창의는 사대부가 남성의 평상복인데 그 아래 누비 배자를 입고 있죠. 아마 날이 쌀쌀했던 모양입니다.”

“봄이었나 봐요.”

“그렇게 추측할 수 있죠.”

한 폭의 그림에 이렇게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당시 사람이 무슨 옷을 어떻게 입었는지를 알 수 있고, 그것으로 날씨나 계절도 파악할 수 있다.

예술적 가치 외에도 양반 문화, 복식 연구 등 사료적 가치도 있다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가운데 곰방대를 든 남성 앞에 말을 탄 기녀가 있죠. 뒤에서 따라오는 양반에게 곰방대를 달라고 손을 내밉니다.”

“네.”

“그 앞에서는 양반이 기녀가 탄 말을 몰고 있고요.”

“의외네요. 조선시대는 계급에 엄격한 줄 알았어요.”

양반이 기녀에게 담배 시중을 들고, 그의 마부를 자청하니 신기하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신분제가 조금씩 흔들렸죠. 공식적으로는 신분제를 더더욱 공고히 하려 했지만 일상은 달랐습니다.”

“말 끄는 사람이 양반이에요?”

차시현이 물었다.

“잘 보셨어요. 갓이 작죠?”

“네.”

“수염을 기르고 비싼 누비 배자를 입은 것을 보면 양반이라고 할 수 있죠. 그의 갓은 맨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에게 들려 있습니다.”

“아.”

왼쪽 위에 일행과 조금 떨어져서 따라오는 사람이 큰 갓을 들고 있다.

“양반이 갓을 바꾸자고 해서 그러기는 했지만, 차마 마부 입장에서 양반들이나 쓰는 큰 갓을 쓸 수 있을 리 없죠.”

그래서 들고 있는 듯하다.

“표정이 좋지 않네요.”

“그럴 수밖에요. 아마 속으로는 상전 욕을 하고 있을 겁니다.”

박재욱 사무관이 작게 웃었다.

“근데 상투 틀고 있잖아요. 결혼한 사람들 아니에요?”

차시현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상투를 틀고 있다.

“맞습니다. 물론 외자상투라고 혼례를 올리지 않고 상투를 트는 경우도 있었지만 여기 나온 사람들은 결혼한 사람들로 보입니다.”

“결혼도 했으면서 이러고 노는 거예요?”

“네. 신윤복이 비판할 만하죠?”

결혼한 사람이 시중까지 들며 기녀와 놀았다는 설명에 차시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신윤복의 집안은 대대로 화원을 했습니다. 종증조부 신세담, 종조부 신일홍, 아버지 신한평 모두 도화서의 화원이었고 신한평은 어진을 3번 그릴 정도로 당대에 인정을 받았죠.”

“김홍도와 시기가 비슷하다고 알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도화서에서 함께 근무한 기간이 있는데 정조의 어진을 그릴 때는 신한평이 일을 맡았고 김홍도가 보조했다고 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죠.”

정조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은 김홍도가 보조를 했다니 당시 신한평은 조선 제일 가는 화원이었을 거다.

“그렇게 대단한 집안이었지만 중인이란 신분을 어찌할 순 없었죠. 신윤복은 이러한 양반들의 모습을 비판하며 중인으로서의 설움을 달랬을 겁니다.”2)

“대단하네요. 쉽지 않았을 텐데.”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양반을 비판하는 그림을 그렸다니, 보통사람이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그 때문에 도화서에서 쫓겨난 걸지도 모르죠.”

“여자라서 쫓겨난 거 아니었어요?”

차시현이 물었다.

“아. 그런 소설이 있었죠.”

“소설이요?”

“몰라? 바람의 화원.”3)

차시현이 자기는 드라마로 봤다고 말했다.

“2008년에 나온 드라마를 어떻게 알아?”

“뉴튜브 알고리즘에 떠서. 재밌어.”

뉴튜브 알고리즘은 알 수가 없다.

“저도 재밌게 봤습니다. 신윤복이 여성이란 설정이었는데 화풍이 섬세한 점이라든지 여성을 대상으로 그렸다는 것 등이 근거였죠. 하지만 사실로 받아들이기엔 아무래도 근거가 부족하죠.”

박재욱 사무관은 만약 신윤복이 여자라서 도화서에서 퇴출당했다면 왕을 능멸한 죄로 살아남기 힘들었을 거라고 덧붙였다.4)

“드라마 재밌었는데.”

차시현이 작게 아쉬움을 내비치자 박재욱 사무관이 난감하게 웃었다.

“직업상 사실만을 전달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창작물이 잘못되었단 건 아닙니다. 정확히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소설 덕분에 관심 가진 분이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고요.”

창작물을 통해서 흥미를 느끼고.

그로 인해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다.

무엇이든 좋아하는 마음이 우선이니까.

“신윤복에 관해서는 기록이 거의 없어서 그것 말고도 여러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도슈사이 샤라쿠란 주장도 있고요.”

“네?”

깜짝 놀라 되물었다.

19세기 유럽에 일본의 우키요에가 전해지면서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는데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생전 처음 보는 강렬함에 영향을 받아 그림자를 생략하기도, 화려한 색을 대담하게 사용해 보기도 했었다.

그 우키요에의 대가로 알려진 사람이 도슈사이 샤라쿠다.

“신윤복하고 샤라쿠가 동일인물이라고요?”

믿기지 않는다.

샤라쿠와 신윤복의 그림은 큰 차이를 보인다.

도중에 화풍이 바뀌었을지도 모르나 샤라쿠의 그림은 익살스럽고 선이 굵은 반면, 신윤복의 그림은 섬세하고 서정적이다.

“하하. 어디까지나 그런 이야기가 있다는 거죠. 이 역시 근거는 미약합니다.”5)

“……재밌을 것 같아요.”

“추리 소설로는 훌륭하더군요.”

신윤복과 샤라쿠 둘 모두 관심 가는 작가인지라 두 사람을 어떻게 엮었는지 한번 읽어봐야겠다.

“저 그런 이야기 좋아해요. 다른 얘긴 없어요?”

차시현이 나섰다.

나도 궁금해서 쳐다보니 박재욱 사무관이 난감한 듯 주변을 둘러보다가 발을 옮겼다.

“그럼 이 그림은 어떨까요.”

“이건.”

<혜원전신첩> 중 <월하정인>이란 작품이라고 설명되어 있다.6)

“달 아래 정인. 달 아래 사랑하는 두 사람이란 뜻의 제목입니다.”

박재욱 사무관의 풀이대로 가운데에서 왼쪽 상단 쪽에 달이 떠 있고 남자가 등을 들고 있으니 밤이다.

“헤어지려는 장면이네요.”

차시현이 제법 예리하게 그림을 분석했다.

<델프트의 여인>을 추적했던 일이 도움이 된 것 같아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습니다. 두 사람의 발 방향을 보면 이제 막 헤어지는 장면으로 볼 수 있죠.”

여자의 몸이 남자를 등지고 있고 고개를 숙인 걸로 봐서는 떠나는 남자에게 인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남자 또한 여성이 서 있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발을 옮기고 있으니 헤어지는 순간이 맞다.

“다른 비밀이 또 있어요?”

그림을 살피던 차시현이 전시장에서 몸을 떼려 물었다.

“네. 작가님께서는 어떠신가요.”

박재욱 사무관이 물었다.

“글쎄요.”

정보와 지식이 부족해서 특별한 점은 발견할 수 없는데 달이 마음에 걸린다.

“달이 좀 신기하네요.”

박재욱 사무관이 눈썹을 들어올렸다.

“보통 달이 차고 기울 때는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이동하잖아요. 초승달이라고 하기엔 달빛이 비치는 위치가 너무 위에요.”

조선시대 풍속화에 관련한 지식은 부족하지만 달이라면 누구보다도 많이 봤다고 자부한다.

이런 형상의 달은 본 적 없다.

“또…….”

정보를 찾다 보니 가운데 글에 의지하게 된다.

한자는 알고 있지만 휘갈겨 적혀 있고 생략된 한자라 알아보기 힘들다.

“여기 적힌 글은 무슨 뜻이에요?”

“월침침야삼경입니다.”

월침침야삼경(月沈沈夜三更).

달빛이 침침한 삼경이란 뜻이다.

“삼경이면 12시쯤 되죠?”

“그렇습니다. 자정 전후죠.”

“그 시간이면 달이 가장 높이 떠 있을 때인데 너무 낮아요. 처마 위치 정도니까요. 신윤복이 달 위치를 정확히 그렸다면 여름으로 봐야겠네요.”

“너 천재야? 어?”

차시현이 주접을 부린다.

“또 12시쯤이면 초승달을 볼 수 없어요.”

초승달은 초저녁에 볼 수 있다.

밤이 깊어지면 서쪽 지평선 아래로 지기 때문에 관찰할 수 없게 된다.

“삼경이라고 적었으니 시간은 틀리지 않았을 테고. 없는 초승달을 굳이 방향까지 틀어서 그려 넣은 이유가 따로 있을 거예요. 두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을 더 애틋하게 그리기 위함이라든가.”

“라든가?”

“혹은 실제로 달이 이런 식으로 떴거나.”

좀 더 살폈지만 이 이상 찾아낼 순 없을 듯하다.

고개를 들자 차시현이 눈을 깜빡이고 있었고 박재욱 사무관은 미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 걸 대체 어떻게 알아?”

“델프트의 여인 때도 알아봤지만 정말 대단하시네요.”

쑥스럽다.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밤 12시에 뜬 달이 너무 낮으니 여름으로 추정할 수 있고. 달 또한 초승달이나 그믐달로 볼 수 없죠.”

박재욱 사무관이 내가 한 말을 반복하자 문득 다른 경우가 떠올랐다.

“월식. 월식이에요?”

“하핫. 이거 제가 설명 드리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해주세요. 정말 월식이에요?”

“그렇게 볼 수밖에 없죠. 해서 재밌는 연구가 있었습니다.”

“설마.”

“네. 조선시대에서는 일식이나 월식 같은 현상을 모두 기록했습니다. 덕분에 신윤복이 생존한 시기에 월식이 언제 있었는지 찾아볼 수 있었죠.”

정말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집념은 대단하다.

<월하정인>을 보고서 월식이 언제 있었는지 사서를 뒤져본 사람에게 경의를 표한다.7)

“언제였어요?”

신윤복은 언제 죽었는지조차 기록에 없다.

작품을 정확히 언제 그렸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는데, 만약 일식 날짜를 알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단 두 번 있었습니다. 한 번은 1784년 8월 30일이었고 또 한 번은 1793년 8월 21일이었죠.”

신윤복의 출생은 1758년이고 사망연도는 1814년 무렵으로 추정한다.

어느 쪽이든 가능성이 있다.

“둘 다 여름이네요?”

차시현이 내 말을 기억하곤 여름이라는 걸 짚어냈다.

“그렇죠.”

“둘 중에 언제 그렸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나요?”

“없죠. 하지만 알 수 있었습니다.”

“네?”

“1784년 8월 30일에는 비가 내렸다고 합니다. 그러니 아무래도 1793년 8월 21일이었을 가능성이 더 높죠.”

언제 죽었는지, 그림은 몇 년도에 그려졌는지 알 수 없었거늘.

이렇게 한 작품이라도 알아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1793년 8월 21일…….”

이 그림을 연구한 분들의 노고를 헤아리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리고 마지막 비밀은 여기 이 문구에 있습니다.”

박재욱 사무관이 그림 가운데 적힌 문구를 가리켰다.

* * *

1)신윤복, 혜원전신첩 중 연소답청, 간송 미술관 소장

2)신윤복은 신숙주의 후손이다.

그러나 7대조 신수진이 서자였기에 그의 후손은 신분이 중인으로 강등되었고 그 탓에 족보에서도 기록되지 않아 20세기 이후에야 그의 가계도가 밝혀졌다.

3)이정명의 소설 『바람의 화원』.

드라마로도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재밌다.

4)1939년 평론가 문일평은 서유구가 쓴 임원경제지를 단서로, 호함전집에 나온 구전을 인용해 “신윤복이 너무 비속한 것을 그리다가 도화서에서 쫓겨났다”고 전했다.

5)김재희의 소설 『색, 샤라쿠』의 설정. 재밌다.

6)신윤복, 혜원전신첩 中 월하정인, 간송 미술관 소장, 국보 제135호.

7)이태형 충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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