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외전 33화
Golden Age
6. 신윤복의 사랑(4)
한국 예술인 조합에서 상패를 준다기에 백설기, 마은찬을 만났는데 믿기 힘든 말을 들었다.
“100억이요?”
보상에 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렇다 해도 보상액이 너무 컸다.
“최소 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던데. 그치?”
마은찬이 백설기를 보며 물었다.
“정확한 금액은 감정단이 정하지만 그 이상 되지 않을까?”
“1억 원 안 되는 작품도 많지만 넘는 건 엄청 비쌀 테니까.”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를 들어보니 틀린 말은 아니다.
수천만 원 상당의 문화재도 있지만 국보급 중에서는 수억 원을 호가하는 경우도 많다.
어쩌면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르니 최소 100억 원이라는 말이 허황되진 않다.
“거절할 생각은 아니지?”
축하하러 온 장미래가 탕수육 하나를 입에 넣으며 물었다.
“받아야 해. 네가 한 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고 이번 일로 문화재 환수 작업에 탄력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그만한 보상을 받았다고 하면 전보다는 관심이 높아지겠죠.”
방태호가 장미래에게 호응했다.
어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느꼈지만 인사를 거절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었다.
문화재를 환수하는 일이 중요한 만큼 감사 인사를 받아들여야 했다.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하는 이에게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별일 아니라고 치부할 수 없었다.
장미래와 방태호의 말처럼 문화재 환수를 도와서 큰 보상을 받았다고 알려지면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각인될 테고.
거절만 할 일이 아니다.
“어제 중앙박물관에서 박재욱 사무관님을 만났는데 너무 고맙다고 하시는 거예요.”
“당연하지.”
“지금까지는 별일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실 필요 없다고 했는데 막상 반환 받은 문화재를 보니까 내가 잘하긴 했구나 싶어서 그 말이 안 나오더라고요.”
민망해서 웃자 마은찬이 나섰다.
“그래! 잘한 일은 잘했다고 해야지! 얼마나 장한데. 자, 새우 먹어.”
마은찬이 마지막 남은 깐쇼새우 하나를 앞접시에 덜어주자 다들 크게 웃었다.
“받아야죠. 받아서 뭔가 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내게 있어서도 큰돈이다.
지금까지는 부담스러워서 하기 힘들었던 일이 가능해질 정도로 말이다.
“생각하고 있는 게 있나 봐.”
장미래가 물었다.
“네. 가능할지 모르겠는데 아마 기술력에는 문제가 없을 거예요.”
다들 관심을 보인다.
“금동삼존불감이라고 아세요?”
국보라고는 해도 모든 문화재를 알 리 없다.
할아버지와 방태호는 아는 눈치지만 장미래와 백설기는 고개를 저었고 마은찬은 짜장면을 흡입하고 있다.
“간송 미술관에 있는 국보인데 2022년에 외국계 암호화폐 투자자 모임에 팔렸대요.”1)
마은찬이 입 한 가득 짜장면을 물고선 고개를 들었다.
“해외 반출이 금지되어 있기도 하고 그 모임에서 금동삼존불감의 지분 51%를 기부해서 관리는 간송 미술관에서 하고 있고요.”
“신기하네. 어차피 국내에서 관리해야 하는데 구매해서는 간송에 지분을 기부한 것도 이상하고.”
다들 장미래의 지적에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라서 국보라도 개인간 거래에 제한은 없지만.
외국인이 한국 문화재를 사들여 국내 미술관에 지분의 51%를 기증한다는 게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저도 이상해서 좀 찾아봤는데 멋지더라고요.”
16년 전 기사를 찾아서 읽어 주었다.
“국보 중에서 개인이 소유한 작품은 대중이 감상할 방법이 없잖아요? 그게 안타까워서 국보를 구입한 다음 미술관에 기부했대요.”
“와.”
“허허. 대단한 분들이구나.”
장미래와 백설기가 감탄했고, 할아버지는 기분 좋게 웃으셨다.
“그러게요. 투자자 모임에서 수익은커녕 오히려 기부라니.”
“수익이 없진 않더라고요.”
“어떻게?”
방태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금동삼존불감을 그래픽으로 작업해서 NFT를 만들었어요. 그걸로 메타버스 세계관에서 전시할 수 있도록이요.”
“아.”
VR기기가 발전하면서 지금은 실제 전시관보다는 가상 전시관이 더 많은 방문객을 유치하고 있다.
금동삼존불감을 구매한 투자자 모임은 세계 곳곳의 문화재를 구입해서 메타버스 게임 세계에 자신들만의 전시관을 운영하여 수익을 올리고 있다.
“너무 좋은 일이다 싶어서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사실 돈이 많이 들어서 엄두를 못 냈거든요.”
“그럼.”
“네. 보상액이 그렇게 크면 하나씩 늘려나갈 순 있을 것 같아요. 모든 문화재를 등록할 순 없겠지만.”
가상 현실에 문화재를 완벽히 구현한다는 게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지 않는 이유는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데다 투자 대비 수익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좋은 일이긴 한데 걱정도 된다. 따지고 보면 자기들 수익 주는 일이라서.”
백설기가 우려를 표했다.
당연히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이번에 이야기 들어보니까 자금 문제를 겪는 미술관이 많더라고요. 지자체 지원금에 의존하는 곳도 있고.”
“아무래도 그렇지.”
인구 감소는 여러 문제를 야기했고 박물관도 예외는 아니었다.
교육을 목적으로 찾는 가족 단위 방문객이 크게 줄면서, 박물관은 수익 창구를 마련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했다.
“문화재를 판매하면 전시할 작품이 없어지니 더 큰 문제가 될 거예요. 대신 지분을 판매하는 거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그러네.”
백설기가 내 의도를 알아듣곤 동조했다.
“적어도 그렇게 번 돈으로 다른 일에 투자할 수 있으니까.”
박물관 입장에서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들 스스로 가상 전시관을 만들고 싶어도 자금 문제로 여의치 않으니, 일부 문화재의 지분을 판매해 다른 일을 도모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쪽으로 설득해 보려고 해요.”
“가상 전시관 만들면 해외에서도 쉽게 볼 수 있겠다.”
장미래가 거들었다.
“네. 접근성이 좋아지니까 이것저것 시도해 볼 수 있을 거예요.”
“엄청 큰 사업인데.”
방태호가 턱을 쓸었다.
“문화재를 3D로 구현하는 일도 시간이 걸리고 가상 전시관 유지할 서버도 사야 하고, 결제 시스템도 구축해야 하고 홍보도 해야 하니까. 사람 구하는 일부터 쉽지 않겠어.”
“맞아요. 아저씨가 없었으면 생각도 못 했을 거예요.”
“……나?”
방태호가 당황한 듯 손가락으로 본인을 가리켰다.
“네.”
“내가 해?”
고개를 끄덕이니 눈을 휘둥그레 뜬다.
“3D 모델링은 개벽으로 하면 돼요. 스캔만 하면 되니까 어렵지 않을 거예요.”
“전국에 있는 박물관하고 얘기하려면 적어도 몇 달은 걸릴 텐데? 쇼콜라티에는?”
“미셸이 맡아줄 거예요.”
“가상 전시관 만들려면.”
“우리 갤러리 직원들도 만들었잖아요.”
“그 사람들은 했지. 근데 이건 다른 사업이잖아. 하려면 법인도 새로 만들어야 할 텐데.”
“쇼콜라티에 처음 만들 때도 다 하셨잖아요. 이번에도 믿을게요.”
“훈아 그때는.”
“할 수 있어요.”
“선생님, 뭐라 말씀 좀 해주세요. 이게 1, 2년으로 끝날 일도 아닌데.”
“크흠. 오랜만에 중국음식을 먹었더니 속이 불편한데. 잠시 자리 좀.”
“미래 씨.”
“…….”
“미래 씨?”
“네? 아, 죄송해요. 배가 너무 고파서 먹느라고. 부르셨어요?”
방태호가 할아버지와 장미래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두 분 다 모른 척했다.
쇼콜라티에 갤러리를 처음 만들 때 가상 전시실도 꾸며봤으면서 엄살이다.
“필요한 거 있으면 얼마든지 구해요. 혼자 할 필요도 없고.”
방태호가 크게 낙심한 듯 보여서 위로했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인제 보니 티를 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본인이 사장이라서 휴가든 뭐든 알아서 잘 챙겨갈 터라, 그런 쪽으로는 보상해 줄 수 없고 나중에 그림 한 점 선물해 줘야지 싶다.
“그만 좀 먹어.”
“왜애.”
“얼마나 더 먹으려고 그래? 많이 먹었잖아.”
“오랜만에 먹으니까 너무 맛있는걸.”
“당 오르면 어쩌려고.”
“맨날 먹는 거 아니니까 괜찮아.”
“그렇게 방심하다가 큰일 나.”
“걱정해 주는 거야?”
“그럼 죽길 바라겠냐?”
“히.”
마은찬이 젓가락을 내려놓곤 입을 닦았다.
알콩달콩 잘 지내는 모습을 보니 유럽을 떠나 한국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느낌이다.
* * *
훈장과 문화재 반환 보상액은 정부에서 알아서 처리해 줄 테고.
여기저기서 연락 온 감사패도 받았겠다.
방태호가 문화재 가상 전시관 사업에 필요한 일을 준비해 주는 덕분에 느긋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김홍도의 작품에 매료되어 요며칠 조선시대 풍속화를 들여다봤는데 신윤복 또한 명불허전이었다.
간송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혜원전신첩>은 지금까지 내가 알던 조선시대 그림과는 사뭇 달랐다.
“교과서에서 봤어.”
차시현이 <단오풍정>을 가리키며 말했다.2)
“색을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차시현이 다홍치마를 두고 감탄했다.
전체적으로 채도가 낮은 그림인데 단 하나, 그네 타는 사람의 치마만이 아주 선명한 다홍색으로 눈길을 끈다.
“치마 때문에 훔쳐보는 사람은 거의 안 보여.”
“그러니까.”
김홍도도 그렇고 신윤복 또한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에 통달해 있다.
“이 빨간색은 신윤복만의 특징입니다.”
박재욱 사무관이 몰랐던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러고 보니 김홍도는 쓰지 않았죠.”
“빨간색이 비싼 안료였어요?”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전에 왕을 상징하는 색이었거든요. 그래서 금기시 되었습니다.”
“아.”
조선시대 그림에서 빨간색을 찾기 힘든 이유를 알게 되었다.
김홍도, 신윤복이 활동했을 때와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서는 강렬한 색채를 활용한 우키요에가 생겨났는데.
문화적 교류가 많았음에도 두 나라의 미술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서 의아했거늘.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전에는 사용되지 않았던 빨간색을 과감히 사용한 것처럼 조선시대 풍속화는 신윤복에 이르러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색을 하나 더 쓴 것만으로도 큰일인데 신윤복의 작품은 얼핏 봐도 김홍도와는 또 다르다.
“천인을 다뤘죠?”
차시현이 정답을 말했다.
“그렇습니다. 김홍도만 해도 양반, 중인, 상민을 다뤘지만 신윤복은 기생, 마부 등 소외된 이들도 다뤘습니다. 조선의 진짜 모습을 담은 최초의 화가죠.”
조선의 진짜 모습이라.
왕과 양반이 아닌, 당시를 살았던 대다수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신윤복에게 또 어떤 비밀이 있을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 * *
1)국보 문화재에도 소유지분이 있나요?[궁즉답], 이윤정 기자, 이데일리, 2022.03.17.
기사 주소: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4480486632264304&mediaCodeNo=257&OutLnkChk=Y
<다시 태어난 반 고흐 황금시대 033화>는 위 기사의 내용을 기반으로 한 픽션으로 기사 외 내용은 허구임을 밝힙니다.
2)신윤복, 혜원전신첩 中 단오풍정, 간송 미술관, 국보 제13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