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436화 (436/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외전 32화

Golden Age

6. 신윤복의 사랑(3)

성찬호 관장의 설명을 들으니 김홍도의 천재성이 좀 더 와닿는다.

당시 가장 인기 있던 스포츠를 구경하는 사람이 22명뿐일 리 없다.

많은 인원이 있었을 테고 그것을 표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람을 가급적 많이 그리는 것이다.

그러나 김홍도는 철저히 계산해서 관객을 배치했다.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씨름 선수 두 사람이 묻힐 테니, 그들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인물로 최대한 많은 이가 있음을 표현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 12진법을 활용한 마방진으로 시선의 흐름이 어디로 향하든 사람이 많이 보이게 한 것이다.

“시선의 흐름도 고려했네요.”

성찬호 관장이 씨익 미소 지었다.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할애비한테도 설명해 주겠니?”

할아버지가 모르실 리 없다.

내 생각을 듣고 부족한 부분을 더해주시려고 물어보셨을 거다.

“예전에는 글을 위에서 아래로 썼잖아요.”

“그렇지.”

서양에서는 글을 가로로 썼지만 한국에서는 글을 위에서 아래로 적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그림을 위에서 아래로 보는 법에 익숙했고 그림을 볼 때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보거나,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보면 12명으로 사람이 가득 차 보이는데.”

“음.”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보면 7명이고 왼쪽 위에서 아래로 보면 13명이에요. 균형 속에서 변화를 줘서 자연스럽고 역동적인 효과를 줬어요. 씨름 하는 사람의 자세에 맞춰서요.”

“그렇지. 그렇지.”

“왼쪽 선수가 상대 선수를 들어올린 덕에 힘의 방향이 왼쪽으로 향해 있어요. 그러니 왼쪽에 관객을 더 많이 배치했고 덕분에 이렇게 역동적인 느낌이 나죠.”

곱씹을수록 감탄이 나오는 구성이다.

“각각의 인물은 아주 사실적으로 표현했지만 구성을 달리 짰지.”

어렸을 적 이후로 손을 대지 않았는데 다시금 공부하고 싶은 화가다.

“이 그림은?”

“도담삼봉이구나.”1)

“풍경화도 그렸네요.”

“많이는 아니지만.”

할아버지가 성찬호 관장을 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풍경화 같은 경우에는 지금도 위치를 알 수 있다던데.”

“그렇습니다. 김홍도의 풍경화는 보이는 그대로 옮긴 경우가 많아서 어느 장소에서 그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풍경을 남기고 싶었나 보네요.”

이렇게 구성을 잘하는 사람이 보이는 그대로 그렸다면 자연경관을 그대로 기록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정조 때문이죠.”

박재욱 사무관이 입을 열었다.

“정조는 절경으로 유명한 금강산을 구경하고 싶었는데 업무가 너무 많아서 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홍도를 보내 금강산을 담아 오라고 했죠.”2)

“아.”

할아버지가 방금 김홍도의 풍경화가 많지 않다고 해서 조금 의아했는데 김홍도가 어떤 목적으로 풍경화를 그렸는지 생각하니 이해된다.

“당대에도 인정을 많이 받았나 봐요. 왕이 직접 보낼 정도면.”

“물론입니다. 정조의 시문집 홍재전서를 보면 김홍도가 얼마나 신뢰받은지 잘 나와 있죠.”

박재욱 사무관이 부스 끝을 가리켰다.

[김홍도는 그림에 솜씨 있는 자로 그 이름을 안 지 오래다. 30년쯤 전에 내 초상을 그렸는데 그때부터 그림에 관한 일은 모두 홍도에게 주관하게 하였다.]3)

“김홍도는 정조가 세자였던 시절부터 그의 초상을 세 번이나 그렸습니다. 또 정조가 어머니의 회갑연을 열었을 때도 그림을 맡겼고요.”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이해 벌인 8일간의 일정을 총 8권 1,270쪽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를 말하는 거다.

정교한 기술로 후대 의궤 양식을 정립한 작품이며 동시에.

당시 궁중 음식 만드는 법, 의복, 행사 제식 등이 기록된 귀중한 문화재다.

“세자 시절부터 도화원에 있었던 거예요?”

“네. 스승이었던 강세황의 추천을 받아서 화원이 되었죠.”

“참 멋진 관계였죠.”

성찬호 관장이 박재욱 사무관의 말을 이어받았다.

“강세황은 김홍도를 세 번 만났다고 기록했어요.”

스승과 제자 관계인데 세 번만 만났을 리는 없고 뭔가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읽어 봐요.”

성찬호 관장이 부스 한켠에 붙여진 문구를 가리켰다.

단원기라는 책에서 발췌한 내용 같은데 김홍도의 호가 단원이니 그와 관련된 내용이지 않을까 싶다.

“스승 강세황이 김홍도에 관해서 기록한 책입니다.”

[나는 김홍도를 세 번 다른 형태로 만났다. 처음에는 내게 그림을 배웠으니 사제로 만났고. 중간에는 사포서에서 함께 근무했으니 직장의 상하관계로 만났고. 세월이 지나 그의 그림에 내가 평을 썼으니 우리는 예술로서 만났다.]4)

이렇게 멋진 관계가 있을까.

김홍도 본인도 뛰어났지만 이런 스승과 함께였으니 본인의 역량을 만개할 수 있었을 거다.

“멋지네요.”

“그렇죠?”

성찬호 관장이 기분 좋게 미소 지었다.

“사이가 정말 돈독했나 봐요. 이런 글도 적어 주고.”

“원래는 현판을 적어주기로 했어요. 김홍도가 자기 호를 단원으로 지었는데, 스승에게 글을 써달라고 부탁했거든요.”

“네.”

“그런데 당시 김홍도에겐 현판을 걸어둘 집이 없어서 대신 단원기를 적어 주었죠. 책이라면 보관하기 쉬우니까.”

“아.”

왕의 총애를 받았으면서도 집이 없었다니 아주 젊었을 때 호를 지은 모양이다.

“그 덕분에 우리가 김홍도를 잘 알게 되었지.”

할아버지가 설명을 이으셨다.

“중인 출신이었던 화원은 그리 좋은 대접을 못 받았거든. 해서 따로 기록되는 일이 없었단다. 신윤복만 해도 딱 한 번 이름만 언급되었지.”

“그렇습니다. 해송 선생님 말씀처럼 단원기가 없었다면 김홍도에 관련한 기록도 없었을 겁니다.”

다소 충격이다.

성리학을 중심으로 세워진 나라라고는 해도 이렇게나 뛰어난 화가를 정식으로 기록하지 않다니 아쉬움이 남는다.

“방금 신윤복 말씀하셨는데, 그에 대해서는 남은 기록이 없는 거예요?”

“네. 알 수 있는 정보가 너무 적죠. 그래도 작품이라도 볼 수 있으니 다행이죠.”

박재욱 사무관이 할아버지 대신 답하고 씁쓸히 웃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님의 이번 일은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문화재를 보존하고 반환받는 일의 중요성을 새삼 되새기니 더 이상 별일 아니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저도 사무관님이나 관장님 같은 분이 계시니 안심할 수 있겠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말을 마치자 할아버지가 기특하단 표정으로 등을 툭 미셨다.

* * *

[고훈 4년 만에 귀국]

[고수열 국립중앙박물관서 자문 맡아]

[한국 예술인 조합 문화재 반환 업적에 감사 표의]

[문체부 고훈에게 훈장 수여 결정, 감사패 전달 예정]

[문화재 반환 보상 논란]

고훈의 귀국과 함께 전국이 떠들썩해졌다.

문화재 환수 사업이 시작된 이래 최대 성과를 거둔 일인지라, 고훈은 국가적 환영 아래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반환 재단, 한국 예술인 조합 등 여러 단체에서 고훈에게 감사패를 전달했고.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대통령에게 문화훈장 수훈을 추천해 수여가 결정되기도 했다.

그러한 와중에 일각에서는 문화재 반환에 대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여론이 생겨났다.

└그냥 고맙다고만 하면 끝이야?

└상패도 주잖아.

└실질적으로 훈이한테 가는 보상이 없단 말 같은데?

└나도 같은 생각임. 미틴이 언제 뒤질지 몰라서 망정이지 사실상 목숨 내놓고 한 일인데 말로만 고맙다고 하는 건 좀 아닌 듯.

└관련 법이 있지 않을까?

└있어 ㅋㅋㅋㅋㅋㅋ

└[링크] [“해외서 문화재 사 왔더니 강제 몰수”…보상은 커녕 범죄자 취급]5)

└그럼 이건 뭐임?

└이게 뭔데?

└어떤 사람이 미국 인터넷 경매에서 석재 도장(어보)을 구입해서 국립고궁박물관에 감정 맡겼는데, 박물관이 그냥 먹었단 얘기임?

└????

└안 돌려줬다고?

└6‧25 때 미군이 도난해 간 문화재라서 돈 못 준대.

└내가 지금 이해를 못 하는 거야? 아니면 국립고궁박물관이 미친 거야?

└이거 논란이 좀 있음. 이게 문화재인 걸 알고 샀으면 보상이 안 됨.

└왜????

└문화재인 걸 알면 해당 기관에 제보를 해야 함. 그럼 보상도 나옴.

└아, 그러니까 문화재인 걸 알고 샀다가 나중에 비싸게 팔려는 걸 막으려는 거야?

└ㅇㅇ

└문화재청은 어보가 몇 해 전에 도난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었으니 저 사람이 이미 알고도 금전 이득을 위해 거래한 걸로 본 거임.

└공고된 문화재는 선의취득 대상에서 제외됨.

└선의취득이 뭔데?

└유실, 도난품인 거 모르고 샀으면 구매자의 권리를 인정해 주는 거임. 그래서 저 어보 샀던 사람이 알고 샀냐, 모르고 샀냐가 중요함.

└근데 모를 수도 있잖아. 난 그런 사실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저거 산 사람이 문화재 전문 화상임. 모르는 게 좀 이상하지?

└아…….

└이거 말이 많아. 공고가 늦었으니까.

└그러네. 어보 샀던 날짜는 2016년 1월이고 도난 문화재라고 게시된 건 2016년 12월이네.

└문화재청은 미국에 도난 신청한 날짜가 15년 3월이니까 선의취득이 아니라고 하는 거임.

└아 개복잡하네 ㅅㅂ 그래서 일단 훈이는? 보상 못 받아?

└당연히 받아야지. 훈이가 저걸 사서 금전 이득을 취한 것도 아니고 러시아가 우리나라에 다이렉트로 전달하게 했잖아.

└그럼 뭐가 문제임?

└금액이 너무 커서 그럼.

└??

└보통 민간이 구입하거나 얻은 건 감정가로 주는데 국보급, 보물급 문화재가 100점임. 그럼 얼마나 하겠음?

└ㅗㅜㅑ

* * *

1)김홍도, 도담삼봉도, 병진년 화첩, 리움 미술관 소장

2)금강사군첩

3)홍재전서 中

4)단원기 中

5)“해외서 문화재 사 왔더니 강제 몰수”…보상은 커녕 범죄자 취급, 장혁진 기자, KBS 뉴스, 2018.10.10.

기사 주소: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4048845

'도난문화재' 강제몰수 어느 선까지 가능할까, 김아미 기자, 뉴스1, 2017.07.03.

기사 주소: https://www.news1.kr/articles/3037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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