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외전 30화
Golden Age
6. 신윤복의 사랑(1)
“어디 가?”
차시현이 문 옆에 둔 배기지를 보고 물었다.
“한국.”
“언제? 개강 얼마 안 남았잖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신국보보물전을 연대. 할아버지가 자문위원으로 참여하시는데 같이 가자고 하셔서.”
“아.”
차시현이 소파에 앉았다.
“나도 봤어. 근데 전시는 9월 3일부터던데?”
개강 이후에 개최되는 탓에 정규 방식으로는 감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가보려고. 할아버지랑 같이 가면 전시 전에 구경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네.”
“돌려받은 문화재는 전부 전시한대.”
“나도 갈래.”
“너도?”
“응. 데려가 줘.”
서양 미술은 비교적 접하기 쉽지만 한국 미술 특히 국보, 보물급 문화재를 접하긴 쉽지 않을 거다.
파리에서 유학하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개강 이후에나 전시회가 열리니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순 없는 법.
식견도 넓힐 겸 같이 가는 게 좋을 듯싶다.
“그래.”
차시현이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언제 출발해?”
“모레.”
“빨라! 티켓 구할 수 있나?”
“앙리 비행기 타고 갈 거야.”
모스크바 일 이후 경호부터 음식, 교통까지 여러모로 도움을 받고 있다.
“다행이다. 그럼 어…… 뭘 챙겨야 하지?”
“챙길 게 뭐 있어. 집도 있고.”
나나 차시현이나 한국에 집이 있으니 딱히 뭘 챙길 필요는 없다.
“그럼 이건 뭐야?”
차시현이 배기지를 가리켰다.
“짐 싸려다가 필요없을 것 같아서 그냥 뒀어.”
서울 집에 모든 게 다 있으니 내가 챙겨갈 물건이라고는 스마트폰과 이어폰 정도뿐이다.
차시현도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이곤 소파에 엎드렸다.
“오랜만에 간다.”
“그러게.”
“그러지 않아도 방학 때 엄마가 언제 오냐고 하셨는데 못 갔어.”
“서운해하시겠다.”
“방학에도 보강하는 열정적인 교수님이 계셔서 어쩔 수 없었어.”
<델프트의 여인> 사건 때문에 결국 학기를 마치고도 보강을 열어야만 했다.
그 점은 내 책임이라 할 말이 없다.
“그래도 이번에 가니까. 근데 아까부터 뭐 보고 있어? 전시회 자료?”
“아니. 동선 짜고 있어.”
“하긴. 시간 없으니까 잘 짜야겠다. 어디부터 가게?”
차시현 말대로 오랜만에 하는 귀국이고 또 시간도 한정되어 있어서 동선을 잘 짜둬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먹기 힘든 짜장면과 채끝살, 삼겹살, 막국수 등 먹어야 할 음식이 너무나 많다.
“고민이야. 일단 조건에 부합하는 곳이 몇 없어.”
“조건?”
“수타로 하는데 계란후라이도 올려주는 중국집 알아?”
“……어?”
“요새는 계란후라이 올려주는 곳도 드물고 수타 하는 곳도 없더라고. 계속 찾아보는데 둘 다 하는 곳이 잘 안 보이더라.”
“혹시 짜장면 얘기하는 거야?”
“맞아.”
차시현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라든지 간송 미술관이라든지 문화재환수재단 같은 곳에서 와 달라고 해서 그런 일정 짜는 거 아니고?”
“그것도 고민이야. 일정은 정해져 있으니까 최대한 근처 맛집을 찾아야 하잖아.”
“…….”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다.
“생각해 봐. 모처럼 한국 가는데 못 먹고 오는 게 있으면 얼마나 후회하겠어.”
“훈장 준다, 표창 준다, 상패 준다 얘기 나오는데 먹는 것부터 생각할 줄은 몰랐어.”
“그것 때문에 곤란하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너뿐일걸.”
“상은 중요하지 않아.”
“왜? 다들 한 번이라도 받고 싶어 하잖아.”
“내 만족이니까.”
의자를 돌려서 차시현을 정면에 두었다.
“어렸을 때라면 욕심냈을 거야. 그런 일이 쌓여야 유명해지고 그래야 내 그림을 한 번이라도 더 살펴볼 테니까.”
안타깝게도 작품만으로 인정받기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유명해져야 작품의 진면목을 살피는 사람이 생겨나니까.
그것을 절실히 느낀 탓에 앙리를 처음 만났을 때 그를 이용했었다.
부끄러운 일일지도 모르나 현실이 그랬다.
앙리 본인도 그러했고 심지어 역사상 가장 큰 부를 쌓은 미술가로 알려진 페테르 파울 루벤스 또한 자신을 홍보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미술의 역사는 훌륭한 작품을 그려내려 노력한 시간과 작가 본인을 홍보하기 위해 노력한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 입으로 얘기하기 민망하지만 지금은 안 그래도 되잖아.”
“……”
“유명해지는 것도, 상을 받는 것도 수단일 뿐이야. 관객하고 대화하는 게 목적이지 상을 받고 싶은 건 아니야.”
문화재를 반환받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조금 알 것 같아.”
차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 역시 존경받고 싶어서 붓을 든 게 아니었다.
아버지가 받은 상처를 어루만지기 위해 그림을 그렸으니, 초심을 잃지 않았다면 분명 내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그래도 짜장면보단 상이 더 중요해.”
다소 의견 차이는 있을 수 있다.
* * *
고수열과 고훈이 귀국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대한민국이 들썩였다.
문화재환수재단은 고훈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자 그의 업적을 기리는 행사를 준비했고.
이번 일로 국보‧보물급 문화재를 소장하게 된 국립중앙박물관은 신국보보물전의 한 부스를 모두 고훈을 다루는 데 할애했다.
또한 2011년부터 시행된 국민포상추천제를 통해 압도적 지지를 받은 고훈에게 무궁화장을 수여하기로 결정되는 등.
각계에서 고훈을 맞이하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국장님! 고훈 작가님 입국하셨다고 합니다.”
한국 예술인 조합 사무국에도 고훈이 귀국한 소식이 전달되었다.
백설기 사무국장이 어지럽게 떠 있는 홀로그램 서류창을 내렸다.
“상패랑 표창장 준비 됐죠?”
“네.”
“초빙객 연락은요?”
“전원 참석하신다고 연락 받았습니다. 서인호 작가님도요.”
“행사장은요?”
“들어오기 전에 점검했습니다. 여기 체크리스트.”
조합 사무국 직원이 행사장 점검 내역 목록을 백설기에게 건넸다.
테이블과 좌석 수량 및 배치, 다과, 현수막, 팸플릿 등 확인해야 할 사항이 빼곡했다.
“정신이 없네. 내일 아침에 다시 한번 체크해서 보고해 줘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수고했어요. 오늘은 그만 퇴근해요.”
“감사합니다. 국장님도 푹 쉬세요.”
직원을 내보내고 백설기가 다시 책상 위에 홀로그램을 띄웠다.
행사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곳에서 사람들이 이동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미술계에서 내로라하는 사람은 전부 모이는 대규모 행사라 동선 하나에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 길이 좁아보이는데. 테이블을 조금씩 옮겨야 하나.”
백설기가 행사장 배치를 수정하고 있으니 맞은편에서 한 남자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국장님 나 왔어요.”
“참. 연주진 연락 했나 안 물어봤네.”
“누나.”
“축사하고 싶으시단 분들이 너무 많은데. 너무 늦어지진 않으려나.”
“설기야.”
일에 집중하느라 줄곧 마은찬을 무시하던 백설기가 도끼눈을 떴다.
“자기야아.”
마은찬이 생긋 웃자 백설기도 피식 웃었다.
“나 진짜 바빠. 미안해.”
“밥은 먹으면서 해. 도시락 싸왔지롱.”
마은찬이 회의용 테이블에 도시락을 펼쳐 놓자 격무에 시달렸던 백설기도 마음이 이끌렸다.
“사 온 거 아니야?”
백설기가 테이블 옆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수비드로 익힌 닭가슴살 샐러드와 초밥 그리고 미소 된장국 등 도저히 직접 만들었다고 믿기 힘들었다.
“초밥하고 샐러드밖에 안 샀어.”
“…….”
백설기가 초밥 하나를 입에 넣고 마은찬을 빤히 바라보았다.
“여기 방울 토마토랑 올리브는 내가 올렸으니까.”
마은찬의 뻔뻔한 태도에 백설기가 또 한 번 피식 웃었다.
“맛있다.”
“이거 마시면서 먹어. 매실이 피로 회복에 좋대.”
작업 활동하기에도 바쁠 텐데 매번 식사를 챙겨주는 연인이 고마웠다.
너무나도 고마워서 그만큼 미안하기도 했다.
“파리에는 언제 돌아가려고?”
“농. 농. 좋지 않은 화제야.”
마은찬이 고개를 저었다.
“슬슬 다음 전시회 준비해야 하잖아.”
“전시회는 여기서도 할 수 있어. 아, 이것도 먹어 봐.”
백설기가 초밥에 젓가락을 가져가대자 마은찬이 어깨를 흔들었다.
“아~”
“내가 먹을게.”
“아~”
받아 먹을 때까지 어깨를 흔들 테니 백설기는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생선살이 혀 위에서 탱글거렸고 적당히 뭉쳐진 사리가 풀어헤쳐지면서 와사비의 알싸한 맛이 올라왔다.
“맛있어?”
백설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은찬은 그 모습을 해맑게 지켜보다가 다소 진중한 목소리로 속내를 전했다.
“밥 먹을 땐 다른 생각 안 했으면 싶은데 계속 눈치 주니까 그냥 얘기할래.”
백설기가 입안에 든 음식을 열심히 씹었다.
“알아. 나 신경 쓰고 걱정해 주는 거. 근데 내가 자기 때문에 여기 있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싫을 거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백설기가 작가 활동을 접고 조합 사무국에서 일하게 되면서, 마은찬은 줄곧 서울에 머물렀다.
유럽에서의 앞날이 창창한 그가 본인 때문에 한국에 있다고 생각하니, 그의 연인으로서도 팬으로서도 안타까웠다.
“은찬아.”
“완전 좋아.”
“어?”
“이제야 내가 얼마나 자기 사랑하는지 인지한다는 거잖아. 아, 행복해.”
“그런 문제가 아니야. 너 충분히 더 큰 곳에서 지낼 수 있는데 나 때문에.”
더 신기하고 더 새로운 작품을 반복해 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던 자신과 달리.
마은찬은 매번 놀라운 작품을 내놓았다.
“나 때문에 여기 있는 거잖아.”
백설기가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말을 꺼냈다.
이별과 맞닿아 있음을 알기에 차마 입에 담지 못한 말이 너무도 쉽게 나오고 말았다.
마은찬은 한동안 백설기를 바라보았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무섭게 변했다.
“맞아.”
마은찬이 초밥을 하나 집어먹으며 말했다.
“파리에서 전시회 하는 것보다 자기랑 있는 게 더 좋아.”
“그게 문제라고.”
“하나도 문제 아니야.”
“왜 문제가 아니야. 내가 네 앞길을 막고 있는데.”
“……누가 그래?”
마은찬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내가 선택한 길이야. 내가 좋다고. 그걸 왜 자기가 마음대로 생각해? 내가 한 선택인데?”
“나중에 분명 후회하게 될 거야.”
예술가는 꾸준히 자신을 어필해야 했다.
혹평을 받더라도 작품을 발표하는 게 더 중요했다. 그마저도 하지 않으면 수없이 많은 작품에 묻혀 영영 잊히기 마련이었다.
백설기는 끝끝내 자신을 막아선 사람 때문에 가장 소중한 시기를 놓친 경험을 상기하며 마은찬을 설득하고자 했다.
“전화 많이 하면 되잖아. 가끔 내가 파리 가도 되고. 지금.”
“싫어.”
“고집 부릴 일이 아니야. 지금 네가 얼마나 중요한데.”
“중요하니까 같이 있고 싶은 거야.”
사랑이란 마음은 얼마나 지속될까.
누군가는 3년이 최대라고 하고 누군가는 평생 가는 사랑이 있다고 했다.
지금은 괜찮더라도 언젠가 자신을 향한 마음이 식었을 때.
마은찬이 오늘 일을 후회할 때가 너무나 두려웠다.
“잘 생각해야 해. 네가 진짜 바라는 게 뭔지.”
“내가 진짜 바라는 거?”
두 사람이 눈을 마주했다.
“너랑 같이 그림 그리는 거. 그게 내가 진짜 바라는 일이야. 어디든 언제든 그런 건 아무 상관 없어.”
“…….”
백설기는 말문이 막혔다.
본인 스스로도 끝이라고 생각하거늘 마은찬은 여전히 함께 미술을 해나가고 싶어 했다.
믿기 때문인지.
사랑 때문인지.
아니면 동료로서의 친밀함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난.”
백설기가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채 입을 떼자 마은찬이 황금히 두 팔로 얼굴과 몸을 가렸다.
“……뭐 해?”
“아니.”
“어?”
“때리려는 줄 알았어.”
“뭐?”
“너라고 불러서.”
두 사람이 또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