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외전 20화
Golden Age
3. 대화(4)
긴 여행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오니 처리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쇼콜라티에 갤러리는 방태호와 미셸 플라티니 덕분에 잘 운영되었지만 학교와 관련된 일은 남에게 맡길 수 없어서 꽤나 고생이었다.
꽤 오래 자리를 비운 탓에 강의 대신 틈틈이 과제를 내주었는데, 한 달이나 쌓인 탓에 연구실에 빈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물을 허투루 볼 수도 없는지라 이틀 내내 잠을 줄여가며 코멘트를 적어야 했다.
에릭 조교는 무리하지 말라고 했지만 과제물만 봐도 학생들이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지 느껴져서 마냥 힘들지만은 않았다.
기특하고 대견할 뿐이다.
그렇게 학교 일을 정리하고 일요일 오후, 느즈막이 일어나 쇼콜라티에 갤러리를 찾았다.
“일정 비는 전시관 있어요?”
“글쎄? 다른 일 준비하게?”
방태호가 전시 일정을 확인하면서 고개를 기울였다. 아무래도 시간 내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학생들 작품이 좋아서 전시해 주고 싶어요.”
“이번 분기는 다 차 있을 텐데. 어디 보자. 2관이 다음 달 3일부터 6일까지 3일 정도 비네. 빠듯하게 하면 이틀 정도는 시간 낼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라도 부탁드릴게요.”
방태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래. 참, 공문은 읽었어?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불법으로 유출된 문화예술품을 환수하기 위한 단체로 이번 일에 감사를 표하며 동시에 도움을 청했다.
“홍보대사라는 게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안 적혀 있더라구요.”
“명예직이야. 보수도 없거나 적고. 그래서 하는 일도 특별히 없지.”
“그럼 굳이 할 이유가 없잖아요.”
“네 이름만 빌려줘도 그 사람들한테는 큰 도움이 되니까. 내키지 않으면 내가 잘 거절할게.”
“아니에요. 그런 거라도 도와야죠.”
작품 활동과 강의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손 들이지 않고 문화예술품을 환수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리 하는 게 옳다.
“네 성격에 가만있진 못할 것 같은데. 괜찮겠어?”
방태호가 걱정스레 물었다.
“계속 돕진 못해도 자리 정도는 마련해 줄 수 있으니까요. 어차피 많이 소개해 줄 수도 없고요.”
내가 알기로 프랑스와 네덜란드보다 다른 나라가 문제다.
일본 94,341점, 미국 54,185점, 독일 15,402점, 중국 13,000점 등 6,326점을 가진 프랑스보다 월등히 많다.
내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나라는 프랑스와 네덜란드, 영국 정도니 자리를 마련하는 일도 한계가 있다.
“그래.”
방태호가 날 보더니 묘하게 웃는다.
“왜요?”
“내가 사람을 잘 보긴 했지 싶어서.”
싱거운 농담이다.
딱히 받아칠 말이 없어서 피식 웃자 방태호가 집무실을 나서려 일어났다.
“참참참.”
뭔가 깜빡한 일이 있나 보다.
“모스크바 아트페어 일은 거절할게.”
“아.”
워낙 일이 많아서 잊고 있었다.
모스크바 근대 미술관이 주최하는 아트페어인데 레나 자고예프가 준비하고 있는 행사다.
아트페어 자체가 본래는 예술가와 구매자가 곧장 만날 수 있는 행사지만 꽤 큰 금액을 제시하며 참가해 달라고 했었다.
“거절하려고 하긴 했는데. 다른 이유가 있어요?”
“응. 러시아 이미지가 좋지 않잖아. 그래서 다들 거절하더라고. 뱅크스랑 이클립스처럼 할 필요는 없어도 굳이 참가할 필요도 없다고 봐.”
많은 단체와 예술가가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와 거리를 두려는 건 알고 있지만 뱅크스와 이클립스 일은 처음 듣는다.
“둘이 뭐 했어요?”
“델프트의 여인 때문에 못 봤구나. 엄청나더라고.”
방태호가 뱅크스와 이클립스를 검색했다.
모스크바 아트페어 초청장 위에 가운데손가락만 올린 손을 그려넣어 SNS에 공유해 두었다.
뱅크스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지만 비다 라바니는 몇 년간 스승에게 제대로 물든 것 같다.
“멋진데요?”
“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방태호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익명으로 활동한다지만 두 사람 모두 참 대단하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다.
“왜?”
“생각해 보니 걱정돼서요. 자고예프가 오래 준비했거든요.”
“자고예프한테는 자기 나라 행사니까. 어쩌면 압력이 들어갔을지도 모르고. 자고예프 교수한테.”
레나 자고예프의 아버지 미하일 자고예프는 수리코프 미술대학 교수이자 러시아 전통 화가로서는 최고로 손꼽힌다.
아버지든 딸이든 러시아로서는 자국 행사에 참가하길 바랐을 거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얘기를 한번 나눠봐야겠다.
* * *
월요일 오전.
한 달 만에 강의실을 찾으니 학생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교수님! TV 봤어요!”
“훈장 받으면 진짜 가는 데마다 방송해 줘요?”
“과제로 보강 대체하시는 거 맞죠? 그렇죠? 제발 그렇다고 말씀해 주세요!”
“몸 괜찮으세요? 피곤해 보이시는데 하루도 못 쉬신 거 아니에요?”
언제 봐도 활기찬 친구들이다.
수업을 듣기 싫거나 귀찮아서 결석하는 학생도 많다고 하던데, 한 명도 빠짐없이 출석하고 내 몸 걱정도 다해주고 감동이다.
“괜찮아요. 여러분은 어떻게 지냈어요?”
노력하긴 했나 보다.
근황을 물었을 뿐인데 학생들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나로서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일을 경험시켜 주고,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고 싶었으나.
차시현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빠르게 많은 것을 공부하는 게 어떤 부작용을 낳는지 깨닫기도 했고.
오늘 하루 정도는 쉬어가기로 하자.
“과제 확인해 봤는데 다들 성실히 임해줬더라고요. 안드레이아 씨부터 한 사람씩 나와서 코멘트 받아가요.”
학생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서요.”
안드레이아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와서 코멘트를 받아갔다.
어떤 말이 적혔는지 궁금한지 학생들이 안드레이아를 둘러싸고 수근거린다.
“말도 안 돼.”
“이걸 다 봤다고?”
“네덜란드 안 갔던 거 아냐?”
지적하기보다는 장점을 알려주고 그것을 더 연마할 방법을 적었는데 잘 받아들이면 좋겠다.
한 사람씩 나눠주다 보니 시간이 꽤 흘러서 강의 시간이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일이 쌓이면 이렇게 처리하는 것도 벅차다.
“시간도 얼마 안 남았고. 오늘은 가볍게 이야기를 풀어볼게요. 태블릿은 켜지 않아도 돼요. 필기도 안 해도 되고요.”
차시현이 손을 들었다.
“네.”
“어디 아파요?”
“네?”
“아니 평소랑 너무 다르니까. 그냥 하던 대로읍.”
차시현과 친하게 지내는 학생들이 녀석의 입을 틀어막았다.
저렇게들 좋아 하니 가끔은 풀어줘도 될 것 같다.
“이번 일로 네덜란드 황금시대 작가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어요. 렘브란트나 요하네스 베르메르는 물론이고 얀 스테인, 피터르 더 호흐, 게릿 도우, 살로몬 반 루이스달 등등 정말 많죠.”
교탁에서 물러나 천천히 걸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황금시대는 약 17세기 무렵을 가리킵니다. 1600년부터 1800년까지 네덜란드에서 그려진 작품은 500만 점에서 최대 1,000만 점으로 보는데 정말 예술의 황금기라고 볼 수 있죠.”
학생들이 입을 벌린 채 놀랐다.
나 또한 당시 네덜란드에서 만들어진 작품 수를 알게 되었을 땐 눈을 의심했으니 무리도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천천히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네덜란드 귀족층은 독립 전쟁 이후 힘을 잃었습니다. 즉, 예술가를 후원할 여력이 없었죠. 후원자를 잃은 예술가들은 새로운 고객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 해상 무역의 중심이었던 암스테르담에는 막대한 부를 쌓은 새 계층 부르주아가 형성되고 있었죠.”
여기 있는 학생들 중에 이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예술가들은 부르주아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풍속화가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다 다양하게 말이죠.”
부르주아들은 왕과 귀족, 종교가 원했던 권위적, 신적, 영웅적 그림이 아니라.
스스로 그림의 주인공이 되길 바랐다.
대상이 원하는 방향으로 예술이 변화한 것이다.
“무역이 발달했다고 말씀드렸죠. 화가들은 전과는 다른 대상을 그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재료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들어오는 염료와 낯선 문화는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작품들이 다양화되고 세분화되는 데 일조했죠.”
학생들의 표정을 보니 잘 따라오는 듯하다.
“대상이 변화하고 기술이 발달하며 다른 문화와 만나고 새롭게 무엇을 발견하면서 그야말로 눈부신 도약이 이뤄졌죠. 빛을 다루기 시작한 겁니다.”
렘브란트를 시작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 시대를 황금시대로 부르는 데에는 논란이 있습니다.”
몇몇 학생은 내가 무슨 이야기를 꺼낼지 눈치챈 것 같다.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분 계신가요?”
레나 자고예프가 손을 들었다.
“자고예프 씨.”
“황금시대란 표현은 네덜란드의 번영을 국가적 자부심으로 여겨 생겨난 말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당시에 일어난 식민지 전쟁, 강제 노동, 인신 매매 등이 고려되지 않았죠.”
“정확해요.”
역시 우수한 학생이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17세기 네덜란드 예술계는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며 급속도로 성장했습니다. 호흐의 노란색, 렘브란트의 빛과 그림자,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도 모두 해상 무역이 발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이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식민지 침략 전쟁을 기반으로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칠판에 황금시대라고 적었다.
“2019년 9월 12일. 암스테르담 박물관은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네덜란드는 스스로 황금시대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1)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이 표현을 사용하고 저 또한 렘브란트, 베르메르가 활동한 시기를 황금시대로 이야기합니다.”
워낙 많은 사람이 사용하고 또 그 시대를 지칭하는 대체어가 없는 탓이다.
또 네덜란드 안에서도 황금시대란 단어를 폐지하는 걸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
“다만 저도 여러분도 이 단어를 사용할 때는 이러한 일이 있었음을 상기해야 합니다.”
황금시대 때 활동했던 예술가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침략 전쟁이 아니라 대화와 교감을 통했더라면 황금시대란 단어가 정말 잘 어울렸을 거라고요. 예술을 하는 우리는 어떠한 폭력에도 순응해서는 안 된다고요.”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레나 자고예프는 드물게 박수를 보냈는데 내 말에 크게 공감해 준 듯하다.
* * *
“…….”
모스크바 아트페어 참가가 걱정되어서 강의를 마치고 레나 자고예프의 작업실을 찾았다.
러시아를 제외하고 전 세계 모든 미술인이 꺼리는 행사라, 추후 자고예프의 이미지에 상처가 생길까 봐 걱정되었는데.
다른 의미로 걱정된다.
“멋있죠?”
자고예프가 팔짱을 끼고 자랑스레 물었다.
“조금 걱정되기도 했는데 오늘 교수님 수업 듣고 제출하기로 정했어요.”
“아니.”
“다행이에요. 같은 생각이라.”
너무도 결연한 표정에 차마 대꾸하지 못하고, <키예프에서 키이우>로 시선을 옮겼다.
전범이자 현 러시아 대통령의 초상화인데 콧수염을 그려넣었다.
영락없이 히틀러다.
“이상해요?”
“이상하진 않은데.”
“그럼요? 여기가 마음에 걸리는 거면 수정 중이에요.”
“그런 게 아니라.”
말을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알 수 없다.
“이거 제출한다고요?”
“네.”
“모스크바 아트페어에?”
“네.”
“어…….”
“아까부터 왜 그러세요? 부족한 게 있으면 평소대로 말해줘요.”
“일단 가족들하고 같이 이민부터 준비하는 게 어때요?”
* * *
1)암스테르담 박물관의 디렉터 마르흐르트 셰버마커르는 “황금시대는 승자의 표현이고 식민지배로 인해 희생된 이들을 고려하지 않고, 은폐할 뿐.”이라고 말했다.
더치 뉴스, 더 가디언, 뉴욕 타임즈 등이 나서서 암스테르담 박물관의 결정을 대대적으로 보도할 정도로 큰 파문이 일었는데 네덜란드 사회에서는 이에 대해 찬반이 엊갈렸다.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는 암스테르담 박물관의 결정에 큰 유감을 표하며, 황금시대란 표현을 계속 사용할 것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