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외전 14화
Golden Age
2. 햇빛이 드는 창가(4)
미술관 직원이 사뭇 진지한 태도로 설명을 시작했다.
“작가님께서 말씀하셨죠. 델프트의 여인은 분명 17세기 무렵에 그려진 작품이라고.”
“그렇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검증한 결과 작품에 사용된 재료는 모두 300~400여 년 전에 사용된 것이었다.
연대 측정 결과도 마찬가지.
달리 해석할 여지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실존 인물일 수밖에 없다고도 하셨고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그림을 모작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 또한 옳은 말이라 고개를 끄덕이니 미술관 직원이 입술을 두어 번 곱씹고는 이야기를 풀어냈다.
“너무 허무맹랑한 말이라서 주목받지 못했는데. 작가님 말씀을 들어보니 혹시나 싶네요.”
“그렇군.”
직원의 설명을 듣고 있던 고셀링크 이사가 추임새를 넣었다. 그도 뭔가를 아는 눈치다.
답답한 마음에 시선을 보내니 고셀링크 이사가 심호흡을 했다.
“얼마 전 쿠퍼 유니온의 미술사 교수 벤자민 데이비스가 새로운 가설을 제시했습니다.”1)
처음 듣는 이름이다.
“어떤.”
“현재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으로 알려진 그림 중 6~7점이 사실 딸 마리아 베르메르의 작품이라는 주장입니다.”
“……근거는요?”
“베르메르의 기존 작품과 기법이 다르다는 게 주된 논리였습니다. 빨간 모자를 쓴 소녀를 근거로 들더군요.”
장녀 마리아 베르메르가 모델이었다고 알려진 <빨간 모자를 쓴 소녀>는 확실히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 중에서 유독 독특하다.2)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빨간 모자를 쓴 소녀의 시선이 자화상을 그리는 모습처럼 보이니 마리아 베르메르가 본인 즉 자화상을 그린 거라고 설명합니다.”
“……또 있나요?”
“붉은 모자의 털실이 기존 작풍과 다르다는 것도 근거로 들었습니다.”
“확실히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빨간 모자를 쓴 소녀>가 마리아 베르메르의 작품이라고 보긴 힘들다.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지만 결정적인 근거는 아니다.
앞서 미술관 직원이 허무맹랑한 말이라고 표현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마지막으로.”
역시 다른 이유가 있었던 모양.
고셀링크 이사가 스크린에 <빨간 모자를 쓴 소녀>와 엑스레이 촬영본을 함께 띄웠다.
“이건.”
“빨간 모자를 쓴 소녀를 엑스레이로 촬영하니 그 아래 다른 그림이 있었다는 게 확인되었습니다.”
확실히 희미하긴 해도 빨간 모자를 쓴 소녀 아래 남성이 있다.
“벤자민 데이비스 교수는 이것이 본래 그림을 뒤집어서 그렸다고 설명했죠.”
“패널 뒤에 그려진 건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미술관 직원이 고셀링크 이사의 말을 덧붙여 설명했다.
“음.”
흔한 일이다.
나 또한 작품 위에 또 다른 그림을 그린 적 있었다.
패널이나 캔버스는 가격이 많이 나가서 가난한 화가는 팔리지 않은 작품 위에 다른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
벤자민 데이비스 교수가 주장하는 것처럼 패널 뒤쪽에 그림을 그리는 경우도 잦았다.
무엇보다 미술관 직원의 말처럼 엑스레이 촬영본이 있으니 그의 추측이 근거가 없진 않다.
게다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근거가 빈약합니다. 마리아 베르메르와 작품 사이의 결정적인 관계성은 설명되지 않으니까요. 지금으로서는 베르메르가 수정했다고 보는 게 맞다고 봐야죠.”
고셀링크 이사의 말대로 딸 마리아 베르메르가 그렸다는 주장보다는 요하네스 베르메르가 수정했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이다.
“터무니 없는 주장이라고 취급받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고셀링크 이사가 혀를 찼다.
“……아니에요.”
하지만 난 이와 비슷한 사례를 이미 알고 있다.
“예?”
“퍼즐 조각이 하나 더 있다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고셀링크 이사와 마우리츠하이스 미술관 직원들의 시선이 모아졌다.
“재작년에 드레스덴 미술관 고고학 연구실에서 발견한 연구 자료 기억하시나요?”
“재작년이라면 열린 창에서 편지를 읽는 소녀를 말씀하시는 건지.”
“네. 큐피드가 숨겨져 있었죠.”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큐피드와 덧칠된 벽 사이에는 먼지 층이 존재했습니다. 그려진 이후 수십 년의 시간이 흘렀단 증거였죠.”
“그렇습니다.”
“누가 무슨 의도로 베르메르의 작품을 수정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런 사람이 존재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죠.”
고셀링크 이사와 직원들의 눈이 조금씩 커졌다.
“베르메르의 작품 중에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수정한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인물이 있다면.”
“가족이군요.”
“네. 베르메르 사후에 그의 작품을 누군가 관리했다면 가족뿐일 겁니다.”
내 설명에 미술관 직원들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몇몇은 고개를 숙였고 또 몇몇은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하지만 남편이나 아버지의 작품을 왜 수정했는지 의문입니다.”
그러던 차 한 명이 의견을 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죽은 아버지의 작품에 손을 댔다는 게 이상하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말이다.
“왜 수정했는가 이전에 베르메르의 가족들이 그의 작품을 수정할 수 있었는지 살피는 게 우선일 듯싶습니다. 베르메르의 작품은 아내 카테리나 볼네스가 관리했지만 잘 아시다시피 빚을 갚느라 대부분 팔았습니다.”
이 또한 옳은 이야기다.
요하네스 베르메르가 사망했을 때 그가 진 빚은 델프트 기록 보관소에서 발견된 사료를 근거로 대략 28,829길더로 추정된다.3)
1640년 무역 상선 선장의 월급이 60길더였는데 이는 당시 최고 수준이었다.
소득 최상위 직업이 받는 월급의 약 480개월 치에 달하는 액수가 빚이었으니 가족의 부담은 어마어마했고.
아내 카테리나 볼네스는 실제로 남편이 남긴 작품을 최대한 빨리 처분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베르메르의 작품을 보관하고 있었을까?
수십 년 뒤에도?
아버지의 작품을 수정했을 여지는 적다.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요?”
“팔고 싶었지만 팔리지 않은 작품이 있었다고.”
“당시에는 인기 있는 작가가 아니었으니까.”
“그렇죠.”
고셀링크 이사의 의견은 합당하다.
후원자가 있긴 했어도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은 활발히 거래되지 않았다.
카테리나와 마리아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을 팔고 싶었을 테지만 그리 큰 소득은 없었을 거다.
그러니 분명 팔리지 않은 작품도 있었을 거다.
“하나 더. 아버지가 남긴 작품 중 팔리지 않은 것을 어떻게든 팔고 싶었을 테죠.”
“빚을 갚아야 하니까.”
“그래서 수정했다면.”
회의장에 잠시 적막이 흘렀다.
팔리지 않은 작품을 어떻게든 팔아보려고 구매자의 취향에 맞게 수정했다면 모든 일이 설명 가능하다.
예를 들어 <열린 창에서 편지를 읽는 소녀>에서 큐피트를 지운다거나.
본래는 중년 남성이 그려져 있던 그림을 <빨간 모자를 쓴 소녀>로 바꾸었다든가 말이다.
“그러면…….”
생각을 잠시 정리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마리아 베르메르가 아버지의 그림을 수정했고. 그것으로도 빚을 갚지 못했다면.”
“갚지 못했을 테죠.”
고셀링크 이사가 나서서 내 가정에 힘을 실어주었다.
베르메르가 남긴 작품 몇 점으로는 28,829길더나 되는 빚과 그 이자를 갚을 수 없었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본인이 직접 그림을 그려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팔았다?”
“마리아 베르메르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머리가 복잡하다.
하지만 정황상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럴 수 있었을까요? 예를 들어 마리아 베르메르가 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웠단 사실은 저도 알고 있어요. 그 수준이 우리가 헷갈릴 정도로 흡사했을까요?”
요하네스 베르메르가 장녀에게 그림을 가르쳐 준 것은 몇몇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문제는 마리아 베르메르는 화가로서 활동한 기록이 전무하다.
단순히 취미로 그렸다는 게 정설이다.
“그게 관건이겠군요. 마리아 베르메르가 아버지만큼 뛰어난 화가였는지. 한스.”
“네, 이사님.”
“베르메르의 생애로 박사 학위를 받은 걸로 기억하는데.”
“그렇습니다.”
“우리 중에 마리아 베르메르에 관해서 당신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 같네요. 어떤가요.”
“사실 큰 기록은 없습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가 사망했을 때 마리아 베르메르는 21세로 추정됩니다.”
아버지의 교습을 성실히 들었다면 충분히 성취를 이룰 수 있는 나이긴 하다.
“마리아라는 이름은 그녀의 외할머니이자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장모였던 마리아 틴스에서 따왔다고 알려져 있고요.”
“계속하세요.”
쓸모없는 내용이지만 지금은 아주 작은 단서라도 소중히 다뤄야 한다.
“또 요하네스 베르메르가 죽기 1년 전 20살 나이로 결혼했습니다. 델프트에서는 나름 부유한 가문이었는데 실크를 다루는 상인의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이름이…….”
한스가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찾았다.
부유한 가문과 결혼했다면 이야기가 또 복잡해진다.
빚을 탕감하고자 아버지의 그림을 수정하고, 본인 그림을 아버지 이름으로 팔았다면 이해할 수 있는데.
남편 집안이 부유했다면 그랬을 가능성이 줄어드니 말이다.
아니지.
28,829길더라면 내가 살아 있을 때도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당시라면 어지간한 사람은 감당할 수 없었을 거다.
“힐손 크라머르. 네. 힐손 크라머르입니다.”4)
“힐손 크라머르?”
“네. 마리아 베르메르의 남편.”
회의실이 다시금 조용해졌다.
마리아 베르메르의 남편이 어떤 이름이었는지는 그리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알고 싶은 건 마리아가 정말로 아버지처럼 대단한 화가였는지, 아버지 이름을 팔았는지가 중요하다.
“저기.”
옆에서 가만히 앉아 있던 차시현이 입을 열었다.
“응?”
“나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거든.”
“아.”
네덜란드말을 모르니 근 3시간 동안 나눈 대화를 조금도 이해 못 한 모양이다.
“지금 무슨 얘기하는 거야?”
“설명하기 길어서. 나중에 알려줄게.”
“크라머르 씨 얘기하는 것 같긴 한데. 그 사람이 그렇게 중요해?”
“어?”
“크라머르 어쩌고 하지 않았어?”
“크라머르?”
“어제 갔던 데 주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요니 크라머르!”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그 바람에 심각하게 고민하던 직원들이 깜작 놀라고 말았다.
* * *
1)2013년, 벤자민 빈스톡 교수는 뉴욕 인문학 연구소에서 “베르메르의 딸”이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을 열었다.
내용인 즉 딸 마리아 베르메르가 오늘날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으로 알려진 작품 중 6~7점을 직접 그렸다는 내용이다.
베르메르 연구자들에게 이 같은 주장은 터무니 없는 가설로 받아들여졌으며, 근거가 빈약하단 비판이 따랐다.
그런 반면 일부 작품에 한하여 벤자민 빈스톡의 주장이 옳다는 주장도 공존한다.
2)<빨간 모자를 쓴 소녀>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처럼 장녀 마리아 베르메르 혹은 트로니라는 주장이 엇갈리는 작품이다.
3)자료 출처: 『베르메르, 일대기』, 몬티아스.
4)Gilliszoon Cr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