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416화 (416/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외전 12화

Golden Age

2. 햇빛이 드는 창가(2)

알아볼 일이 많았다.

녹색 커튼이 걸려 있던 방을 찾으면 그 방이 누구의 방이었는지 추측해 볼 수 있으니까.

<열린 창에서 편지를 읽는 소녀>를 보면 자수를 정성스레 넣은 테이블보가 놓여 있었고 창문은 먼지 하나 없이 관리되었으며 녹색 커튼 끝도 섬세하여 분명 중요한 사람이 머문 장소였다.

그렇게 아주 작은 흔적이라도 반드시 찾아내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누구였는지 실존했는지 알아볼 계획이었다.

그런데 오래 전에 철거되었다니.

생각지도 못한 것을 놓치고 말았다.

계획해 둔 일이 어긋나자 사고가 멈추고 말았다.

멍하니 시청 건물 앞 벤치에 앉아 있기를 얼마간 차시현이 문득 반가운 말을 꺼냈다.

“일단 와플이라도 먹을까?”

“와플?”

“저기.”

차시현이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옮기니 스트룹와플 매장을 볼 수 있었다.

네덜란드에 왔으니 스트룹와플을 안 먹을 수도 없으며, 머리가 복잡할 땐 당분을 섭취하는 게 좋다.

최선의 판단이다.

스트룹와플을 하나씩 사서 다시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방금 구운 거라 온기가 남아 있다.

“이렇게 납작한 와플 처음 봐.”

차시현이 한입 먹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음음.”

나는 와플을 반으로 쪼개서 카라멜이 늘어지는 모습을 즐긴 뒤 작게 입에 넣었다.

맛있는 음식은 천천히 음미하며 즐겨야 한다.

“음?”

표면은 잘 구워진 덕에 바삭한데 카라멜이 진득하게 달라붙어 묘한 식감이 되어버린다.

은은하게 전해지는 시나몬 향과 단만 그리고 응축된 와플 맛이 절묘하다.

“아.”

인심 좋은 주인장이 듬뿍 발라준 카라멜이 조금씩 흘러내린다.

서둘러 입에 넣자 카라멜이 혀를 감싸안는데, 천천히 음미하며 먹으려던 계획이 얼마나 무지한 생각이었는지 깨닫고 말았다.

스트룹와플의 유혹은 너무도 치명적이라 버틸 재간이 없다.

저항하길 포기하고 허겁지겁 입에 넣으니 카라멜의 단맛과 쫀득한 식감이 입안 가득해졌다.

행복하다.

“맛있다.”

“맛있네.”

베르메르가 살았던 집은 살펴보지 못했지만 요니 크라머르에게 작품 이야기를 듣고 스트룹와플도 먹었으니 아주 헛걸음한 건 아니리라.

* * *

[네덜란드 미술 협회 공식 성명 발표]

네덜란드 미술 협회가 <델프트의 여인>을 국보로 지정하려는 프랑스에 대해 유감 성명을 발표했다.

네덜란드 미술 협회는 20일(현지시각) 기자회견을 열어, 프랑스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을 독단적으로 다룰 순 없다며 비판하며.

일찍이 렘브란트의 <기수>를 사례로 들며 대화를 통해 해결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네덜란드 미술 협회장 얀 더부르는 “프랑스는 우리의 오랜 우정을 기억해 달라. 우리는 충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호소했다.

한편 프랑스 문화부는 18일 <델프트의 여인>의 국보 지정 심의위원회를 발족했다.

프랑스가 <델프트의 여인>을 국보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네덜란드도 가만있을 수 없었다.

네덜란드 국민들은 국보급 문화예술품을 빼앗겼단 생각에 분노했으며 그에 따라 네덜란드 미술 협회가 성명문을 내는 데 이르렀다.

정치권에서도 <델프트의 여인>을 반환해 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날로 높아졌다.

하원의원 71명이 나서서 정부에 <델프트의 여인> 반환을 요청했고.

정치적 문제로 번질 것을 우려해 신중한 태도를 견지했던 네덜란드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프랑스에 공식 입장을 전하는 데 이르렀다.

└프랑스 대변인 말 들었음? 개인 수집품이랰ㅋㅋㅋㅋㅋ

└진짜 막 나가네 시대가 어느 때인데 저런 양아치짓을 하지?

└정작 프랑스에선 잘한다고 칭찬받더랔ㅋㅋㅋㅋㅋ

└난 좀 이해가 안 되는데. 아무리 유명한 작가 작품이래도 저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나? 욕 먹어 가면서?

└위에 답 있네. 프랑스인들이 원하니까 그러지. 정치인들이 표 받으려고 뭔 짓을 못 함?

└국뽕에다가 돈까지 걸린 문제라서 그럼. 쉽게 말해서 저거 전시되면 파리 관광객 엄청나게 늘걸? 숙박, 요식, 여행, 가이드, 미술관, 교통 등등 혜택 누릴 업종이 얼마나 많은데.

└나도 돈 좋아하지만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자기 일 되면 안 그런다고 보장 못 함. 막말로 연수입 20퍼센트 오른다면 못 할 게 뭐 있음?

└그건 너무 근시안적인 발상 아니야? 이미지 나빠지면 찾는 사람도 줄지 않나?

└그건 아무도 모름. 솔직히 몇 년 지나면 기억하는 사람도 없을 듯.

└그래서 프랑스가 잘했다는 뜻?

└그건 아니지. 잘못했지. 근데 쟤들도 생각없이 저러는 게 아니라는 말이야.

└난 저게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음. 솔직히 개인 수집품이잖아. 그걸 국보로 지정하든 말든 프랑스 마음 아님?

└문화재적 가치가 크거나 불법‧부당반출된 작품을 반환하는 건 국가 사업임. 루이 갈렌이 <델프트의 여인>을 500유로에 샀다는데 그게 말이 되냐? 가치 모르는 사람 코 베어 간 거지.

<델프트의 여인>에 관련한 논란은 프랑스와 네덜란드뿐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회자되었다.

여러 입장이 혼재했으나 프랑스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다수였고 일부에서는 셰바송 씨몽이 세계 예술 진흥 협회(SNBA)의 협회장직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런 상황에서 한 작가의 글이 주목을 받았다.

[양심과 지조를 지킨 예술가]

최근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델프트의 여인>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네덜란드는 자국을 대표하는 베르메르의 작품을 돌려받길 바라고, 프랑스는 그것을 국보로 지정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사건의 시비는 루이 갈렌이 <델프트의 여인>을 구입한 과정이 정당했는가로 귀결되고 있다.

프랑스 측은 루이 갈렌이 네덜란드 델프트 소재의 잡화점에서 정당한 흥정을 통해 작품을 구입했다고 주장하며.

네덜란드 측은 작품의 가치를 은닉하여 이루어진 부적절한 거래였다고 반론한다.

사실 문화재 반환은 문화 전쟁이란 단어로 표현될 정도로 민감한 사안이고 여러 가치 판단이 복잡하게 결부된 문제다.

그럼에도 원산국에 반환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역사적으로도 일반적인 당위성을 지닌다.

나폴레옹 전쟁은 어마어마한 양의 문화재가 루브르 박물관에 비치되는 데 일조했다.

유럽 여러 국가는 전쟁 이후 프랑스에 자국 문화재를 반환받길 요구하게 된다.

이와 같은 흐름에 따라 1874년에 각국 문화재를 보호하고 돌려줘야 한다는 국제 협약이 이뤄지는데.1)

제1차 세계대전 이후로도 문화재의 원산국 반환이 이뤄저야 한다는 국제적 규범이 생겨나기도 했다.2)

이러한 노력은 1960년에 들어서 다시금 힘을 받는다.

피식민지 국가가 독립하는 과정에서 강한 민족주의가 생겨났고 이를 통해 약탈당한 문화재를 반환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3)

상술했듯 문화예술품이 본국에서 보호되고 관리되어야 하는 건 인류가 오랜 세월에 걸쳐 합의해 온 일이다.4)

때문에 최근 프랑스의 행보는 무척 실망스럽다.

프랑스 정부와 국민이 <델프트의 여인>을 국보로 지정하고자 하니 과거 그들이 행했던 문화재 반환 작업이 무색하다.

그러나 이러한 와중에도 올바른 길을 걷는 이들이 있다.

프랑스 파리에 주재한 예술인 단체 쇼콜라티에의 고훈과 앙리 마르소다.

앙리 마르소는 최근 본인 소유 미술관이 보유한 예술품 중 약탈 및 부당한 경위로 수집된 작품을 선별해 본국에 반환하겠단 성명을 발표했다.

한편 고훈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델프트의 여인>의 진위여부를 밝히고자 만사를 제쳐두고 사비를 들여 직접 조사를 이어나가고 있으며.

아직 <델프트의 여인>의 그림자도 확인하지 못한 네덜란드 미술계는 환영 의사를 밝혔다.

프랑스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날로 커지는 와중에도 프랑스 미술계를 옹호하는 이들이 존재할 수 있는 건 이 두 사람이 있기 때문 아닐까.

<델프트의 여인>을 둘러싼 진위여부와 프랑스, 네덜란드 양국 사이의 갈등이 원만히 해결되길 고대한다.

-김지우(보자르)

문화재를 원산국에서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재차 강조하며.

고훈과 앙리 마르소의 행동을 되짚은 김지우의 글은 미술계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델프트의 여인>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던 프랑스 내부에서도 조금씩 자정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회장님, 젊은 작가들이 보낸 탄원서입니다.”

셰바송 씨몽이 비서가 전해준 탄원서를 받아들었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20~30대 젊은 예술가 227명이 <델프트의 여인>을 네덜란드와 공동으로 검증하고 최종적으로는 돌려주자고 말하고 있었다.

“끄응.”

탄원서를 읽은 세바송 씨몽이 신음했다.

프랑스를 위한 일이라고 판단했거늘 조금씩 그의 신념이 흔들리고 있었다.

세계 각국 언론의 수위 높은 비판과 자국 내 젊은 작가들의 요청을 접할 때마다 앙리 마르소가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었을 때 그의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

‘내가 잘못 생각했던 건가.’

한숨이 길게 이어졌다.

“괜찮으십니까.”

“나가 보게.”

비서가 고개를 숙이고 집무실을 벗어났다.

셰바송 씨몽은 얼굴을 감싼 채 고민을 이어가다가 답답함을 덜어내고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문 앞에 서니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

처음에는 단순히 프랑스를 위한 일이었다.

프랑스의 관광 수입은 날로 어려워지고 있었다.

파리가 유럽 최고의 관광 도시란 말은 이제 옛말이 된 지 오래였다.

마르소 미술관과 쇼콜라티에 갤러리를 찾는 이는 날로 늘었으나 다른 미술관은 이야기가 달랐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일이 필요했고.

그런 상황에 찾아온 <델프트의 여인>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지키려 했다.

현실인가 당위인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 노을이 질 즈음 셰바송 씨몽이 스마트폰을 들었다.

통화음이 이어지다가 곧 루브르 박물관의 롤랑 데 카르와 연결되었다.

-회장님.

“오, 통화 괜찮으신가.”

-괜찮다마다요. 무슨 일이십니까.

“흐음. 관장 생각이 궁금해서 말일세. 전화로 할 이야기는 아니고 저녁이라도 하면서 나누는 게 어떤가.”

-예. 어렵지 않죠. 한데 무슨 일이길래 그리.

셰바송 씨몽이 한 번 더 고민했다.

마침내 마음을 굳힌 그가 마른침을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델프트의 여인을 검증하는 것만이라도 네덜란드와 함께했으면 하네.”

-예?

롤랑 관장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델프트의 여인>을 국보로 지정하는 사안은 정치권에서 개입하고 있었다.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셰바송 씨몽이 작품을 네덜란드와 함께 검증하자는 말을 꺼내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관장도 아시다시피 반대하는 사람들 말에도 일리가 있네. 타협점을 찾아보자는 말일세.”

-하지만.

롤랑 관장으로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문제였다.

루브르 박물관 관장직은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 직접 임명하는 자리였다.

정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제가 나선다고 바뀔 일이 아닌 것 잘 아시잖습니까.

“장관님하고 의논은 할 수 있지 않은가. 나도 이야기만 꺼내놓고 뒷짐 쥐고 있진 않겠네.”

-…….

“아직 진위여부도 확실하지 않잖은가. 고훈 군이 괜히 저러는 건 아닐 테고. 만약 진품이 아니면 뒷감당은 어찌하려고.”

롤랑 관장도 괴로웠다.

문화부 장관과 대립해도 문제였고.

고훈이 <델프트의 여인>이 위작임을 밝혀내기라도 하면 루브르 박물관 역사상 최악의 불명예를 뒤집어쓸 터였다.

-당장 답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알겠네. 내 그리로 가겠네. 만나서 이야기하지.”

통화를 마친 셰바송 씨몽은 서둘러 모자와 외투를 챙겼다.

* * *

1)the declaration of brussels(1874)

2)1907년, 육전법규 및 관례에 관한 조약.

3)인류학자 케이스 니클린은 문화재 반환을 두고 발생하는 문제는 문화제국주의가 현재까지도 살아 숨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4)참고문헌: 이보아, “문화재의 원산국으로의 반환에 대한 고찰(1999),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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