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403화 (403/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2부 77화

-르네상스-

에필로그(1)

“오늘은 두 점의 초상화를 살펴보도록 해요.”

프랑스 국립 미술 대학 파리 보자르의 30번째 아틀리에, 해바라기에서 교수 고훈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파리 보자르 학생들은 1년 전 르네상스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단독 대상을 수상한 고훈을 초청해 줄 것을 학교에 강력히 요구했고.

쥘 로카르 총장의 간곡한 설득 끝에 고훈은 만 18세 나이로 교편을 잡게 되었다.

학생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서 개강된 ‘무엇을 그려야 하는가’는 150명의 정원이 한 학기 동안 단 한 명도 지각과 결석을 하지 않는 기록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빈센트의 의자와 고갱의 의자입니다.”

고훈이 빈센트 반 고흐의 정물화 <고갱의 의자>와 <빈센트의 의자>를 화면에 띄웠다.

수업을 듣고 있던 차시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초상화를 보여준다고 하더니, 무슨 의도로 의자 그림 두 점을 보여줬는지 알 수 없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아를에 막 도착한 빈센트는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없는 살림에 방을 네 개나 빌리고 침대 두 개와 의자 열두 개를 사기도 했죠. 특히 손님방에는 아주 멋진 안락 의자을 두기도 했습니다.”

“이 의자는 폴 고갱을 맞이하기 위한 의자입니다. 그를 위해 바닥에는 화려한 러그를 깔았고, 눈부시게 빛나는 해바라기를 그려서 벽에 걸어두었습니다. 근사하지 않나요?”

몇몇 학생이 고개를 끄덕여 호응했다.

“하지만 화가 공동체의 꿈이 오래 가진 않았어요. 둘 다 너무 가난했거든요. 성격도 맞지 않았고 무엇을 그려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달라서 매일 다퉜습니다.”

고훈이 먼 과거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풀어냈다.

비록 힘은 없지만 뜻있는 이들이 힘을 모아 자립하자는 의미에서 시작한 화가 공동체의 꿈은 불과 두 달도 안 되어 깨지고 말았다.

아를에서 만난 두 사람은 언쟁을 이어가다 끝내는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비극적인 상황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그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폴 고갱을 비난하고 싶지 않았다.

“이 그림, 고갱의 의자는 빈센트가 바라봤던 폴 고갱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의자에 팔걸이가 있죠? 팔걸이 있는 의자는 집단에서 높은 사람의 물건으로 취급되었어요. 빈센트가 폴 고갱을 자신보다 높이 대우했다는 뜻이죠.”

고훈이 의자 팔걸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의자에 놓인 책도 비슷한 의미를 갖고 있어요. 에밀 졸라의 삶의 기쁨이란 책인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에밀 졸라는 대단한 지성가이자 소설가였어요. 빈센트는 고갱이 에밀 졸라의 책을 읽는 높은 수준의 예술가라고 말하고 싶었죠.”

차시현이 손을 번쩍 들었다.

고훈이 웃으며 차시현을 지목했다.

“본인을 그리면 되는데 왜 의자를 그렸어? 요……?”

“좋은 질문이에요.”

고훈이 루크 필즈의 <빈 의자, 개즈힐>이란 작품을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이 그림은 찰스 디킨스의 서재를 표현한 석판화예요. 당시에 빈센트가 가장 존경하던 작가였죠. 위트 있게 당시 시대상을 잘 표현하면서도 사회문제를 짚은 대문호였습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소설 연재 중에 갑작스레 사망하고 말아요. 이 그림은 떠나간 위대한 문호를 기리는 작품이고요.”

고훈이 빈 의자를 가리켰다.

“이 그림을 그린 루크 필즈는 찰스 디킨스를 그리는 대신 그가 없는 장소, 그가 앉았던 의자를 그림으로써 그를 대신했어요. 지금 이 이미지에선 잘 안 보이는데 책상 앞에 촛불이 꺼져 있는 것으로 그가 떠나갔음을 알렸죠.”

차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그림에 영향을 받아서 반 고흐는 고갱의 의자를 그려요. 이미 그는 노란집에서 머물지 않았거든요.”

“비록 두 사람은 다시는 만나지 않았지만, 적어도 빈센트는 끝까지 고갱을 높이 평가했어요.”

레나 자고예프가 손을 들었다.

“네, 자고예프 씨.”

“고갱의 의자를 놓을 때는 그랬을지 몰라도 두 사람이 크게 싸운 건 사실로 알고 있어요. 그럼에도 반 고흐가 고갱을 높이 평가했다고 판단하신 근거를 알고 싶어요.”

반 고흐의 귀가 잘린 날, 두 사람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실은 너무나 유명했다.

반 고흐가 자해했다, 폴 고갱이 그의 귀를 잘랐다 등 여러 이야기가 오가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파국을 맞이한 것만큼은 분명했다.1)

그런데도 고훈은 반 고흐가 고갱을 높이 샀다고 단정했다.

“역시 좋은 질문이에요.”

<고갱의 의자>를 자세히 설명할 질문이었다.

“그걸 설명하려면 빈센트의 의자와 같이 두고 봐야 해요. 두 그림은 한쌍이거든요.”

고훈이 <고갱의 의자>와 <빈센트의 의자>를 나란히 두었다.

“오른쪽 빈센트의 의자는 낮을 표현한 그림이에요. 아주 밝은 물감을 활용했죠. 반대로 고갱의 의자는 명도가 낮은 물감을 사용해서 밤처럼 보입니다.”

차시현, 레나 자고예프를 포함한 모든 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양쪽 의자가 놓인 방향도 서로 반대입니다. 고갱의 의자와 달리 빈센트의 의자는 소박합니다. 팔걸이도 없고 흔한 나무와 골풀로 만들었죠. 바닥에 러그도 깔아두지 않았고요.”

고훈이 레나 자고예프를 살폈다.

그녀는 여전히 의문을 풀지 못한 듯했다.

<고갱의 의자>와 <빈센트의 의자>를 비교해서 보면 두 사람이 정반대의 사람이라는 사실이 더욱 명확해질 뿐이었다.

“반 고흐는 고갱이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어요. 당시에는 이미 사이가 많이 틀어지고, 자주 다퉜지만 그래도 고갱을 폄하하고 싶진 않았던 거예요. 낮과 밤. 서로 다른 곳을 향한 의자. 다른 소품을 그려서 차이는 있지만, 고갱이 얼마나 멋진 예술가인지 보여주려고 했죠. 이 밝게 빛나는 촛불과 멋진 의자 그리고 당시에 유명했던 소설책을 둠으로써요.”

레나 자고예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한 시기, 폴 고갱이 <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고흐>로 반 고흐를 술에 취한 머저리처럼 표현한 것과 다르게.

반 고흐는 <고갱의 의자>와 <빈센트의 의자>를 그려 폴 고갱과 본인이 서로 다름을 그렸다.

두 사람의 관계가 극단적으로 치달았을 당시에 그린 그림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할게요. 다음 시간까지 각자의 자화상을 그려와서 이야기 나눠보도록 해요.”

“네?”

학생들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다음 시간이라고 해봤자 당장 내일이었다.

하루, 아니, 반나절 만에 자화상을 그려 오라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고훈 교수가 씩 웃었다.

“열심히 해야죠?”

* * *

“교수님.”

학생들이 아틀리에를 나서자 레나 자고예프가 고훈에게 다가갔다.

“네, 자고예프 씨.”

“이번 주 토요일에 퐁피두 센터 가지 않으실래요?”

고훈이 퐁피두 센터에서 진행 중인 전시회를 떠올렸다.

정체불명의 미술가 뱅크스가 처음 연 전시회라 미술계의 이목이 집중된 행사였다.

또한 뱅크스 본인이 자신의 정신적 지지자이자 예술적 계승자로 밝힌 이클립스의 작품도 공개될 예정이었다.

“그러네요. 다 같이 보러 가면 좋겠어요.”

현 시대가 겪는 여러 사회문제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예술가가 전시회를 연 만큼 학생들에게도 공부가 될 듯싶었다.

“아니요. 둘이서요.”

레나 자고예프의 말에 고훈이 의아해했다.

“둘이서요?”

“네.”

“어…….”

“데이트 신청하는 거예요.”

고훈이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다른 학생은 없었고 차시현만이 흥미로운 듯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안 돼요.”

“왜요?”

“토요일에는 선약이 있어서요.”

“그럼 일요일은요?”

“일요일도 곤란해요.”

“다른 일정이 있어서요?”

“맞아요.”

“다른 이유가 있다면 말해주세요.”

“그럴 리가요.”

레나 자고예프가 고훈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제가 이 학교 학생이라 그런가요?”

“…….”

“다섯 번이나 거절당했으니 이유 정도는 들을 자격 있다고 생각해요.”

고훈이 지난 기억을 떠올렸다.

레나 자고예프와는 작년 르네상스에서 두 번째 만났는데, 추구하는 방향은 달랐지만 이야기가 곧잘 통하여 자주 연락했고 호감을 가졌었다.

다만 교수와 학생 관계가 된 이후로 입장상 거리를 둬야 한다고 판단했다.

“맞아요. 제게도 자고예프 씨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에요.”

“이해해요.”

“고마워요.”

안도와 씁쓸함을 동시에 느끼던 고훈의 눈앞에 서류가 들어왔다.

쇼콜라티에 가입 신청서였다.

“이건?”

“쇼콜라티에에 가입하고 싶어요.”

“네?”

“르네상스에서 입상했으니 자격은 충분하다고 보는데, 이사로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

“충분하죠!”

차시현이 끼어들었다.

“야!”

“뭐, 어때. 자격 충분하고 이렇게 의욕적인데. 거절하는 게 더 이상해.”

어떻게 거절할까 고민하던 고훈이 이내 포기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레나 자고예프와 차시현의 말대로 가입 자격은 충분했다. 개인적인 이유로 가입을 거절할 순 없었다.

“얘기해 볼게요.”

“감사합니다.”

소기의 목표를 이룬 레나 자고예프가 강의실을 빠져나가자 고훈이 차시현의 옆구리를 찔렀다.

“악! 아파!”

“왜 쓸데없는 말을 해.”

“너야말로 왜 그래. 자고예프 씨하고 친하게 지냈잖아. 좋다며.”

“조심해야 할 입장인 거 알면서.”

“더 심한 소설도 보면서.”

차시현이 고훈이 즐겨 읽는 막장 연애 소설을 언급했다.

남편과 사별한 여자와 시아버지의 사랑, 죽은 아내의 쌍둥이 동생을 사랑하게 된 남자 등등 엄한 소재의 이야기는 즐겨 읽으면서 무엇을 걱정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야기랑 실제는 달라.”

한편 지난 삶에서 입장 차이로 여러 번 사랑에 실패했던 고훈은 과거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친근한 동료 또는 사제 관계조차 이어나가지 못할까 두려웠다.

“몇 달 전만 해도 맨날 자고예프 씨가 어쩌구 저쩌구 했으면서.”

“시끄러워.”

“백설기 작가님처럼 결국 받아줄 거면 빨리 받아주는 게 낫지 않아?”

“그만하라고 했어!”

고훈이 버럭 소리치자 차시현이 웃으며 도망쳤다.

* * *

1)2009년, 폴 고갱이 빈센트 반 고흐의 귀를 잘랐다는 독일 예술사학자들의 주장이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에 실렸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사건 당일 반 고흐가 고갱에게 유리잔을 던졌다.

화가 난 고갱은 에페를 챙겨 집을 나섰고, 두 사람은 인근 사창가에 이르기까지 격렬하게 말다툼을 이어갔다.

끝내 고갱이 반 고흐의 귀를 잘랐는데 반 고흐는 떨어져 나간 귀를 레이첼이라는 창녀에게 전해주고 다음 날 경찰에게 사실과 다른 진술을 했다.

이들은 평소 고갱을 높이 샀던 반 고흐가 법적 처벌을 바라지 않아서 사실을 은폐했을 거라고 추측하며 그 증거로 반 고흐가 남긴 편지를 들었다.

반 고흐는 생전에 고갱에게 “너는 조용하구나. 나도 그럴 것이다.”라는 편지를 보냈다.

이를 통해 두 사람 사이에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은 비밀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또한 반 고흐가 귀를 전한 사람이 창녀가 아니라 가브리엘이란 이름의 세탁부였다는 사실이 2016년에 밝혀지기도 했다.

또 고갱과의 다툼이 아닌, 동생 테오도르의 약혼 사실이 원인이라는 주장도 있을 만큼 반 고흐의 ‘귀 사건’은 여러 주장이 혼재된 상태다.

<다시 태어난 반 고흐>는 고갱이 반 고흐의 귀를 잘랐다는 가정으로 기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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