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2부 76화
-르네상스-
13. 르네상스(12)
1888년. 6월 즈음이었나.
당시 난 강둑에 앉아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밤이 오면 강물이 오늘 하루는 어땠냐며 속삭이곤 했다.
호오 호오 상처 난 귀를 달래듯 조심스럽게 찰랑이는 목소리가 참으로 다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조금 더 기다리면 강 건너편 가로등에 불이 들어왔고 하늘에는 별이 빛났다.
그러면 나는 조명과 별빛으로 빛나는 론강에 기대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곤 했다.
강물을 따라 유유히 흐르는 작은 별들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저 작은 배에 타면 나도 흐르고 흘러 별이 있는 곳에 닿을 수 있을까.
별이 될 수 있을까.
강 건너편의 조명처럼, 탄광의 등불처럼, 혹은 저 들판의 해바라기처럼 누군가의 별이 될 수 있을까.
빛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으로 밤을 지새웠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내 몸 어딘가가 망가지기 시작했고, 죽음이 다가왔음을 어슴푸레하게나마 인지했던 것 같다.
다만 죽음이 화가의 첫 번째 고민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각자의 위치에서 빛을 발하는 가로등과 조명 그리고 별처럼 내 자리를 찾아 빛날 생각이 앞섰다.
론강 위에서 빛나는 별들은 언뜻 해바라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해를 동경하던 지상의 해바라기들이 시들면 저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죽음이 그리 큰 문제는 아니리라.
비록 태양은 아니더라도 밤하늘을 비추어 나 같은 이들을 위로해 주니 말이다.
그런 생각에 이르자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생이 다하기 전에 내 모습을 찾는다면 분명 어디선가 빛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로 이루어졌다.
기나긴 시간을 넘어 다시 태어난 세상에서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이름은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동정과 멸시만을 번갈아 받아 온 나를 위한 미술관이 있고, 교과서에 내 그림이 실려 있고, 가장 사랑받는 화가로 손꼽힌다니 믿을 수 없었다.
꽤 오랜 시간을 보낸 뒤에야 제수씨 요한나의 노력 덕에 내 그림이 조명받기 시작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동시에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도 깨달았다.
예술의 완성은 소통.
그림은 화가와 그것을 알아봐 주는 이가 만나야 비로소 가치를 지니게 된다.
나와 테오가 나누었던 시시콜콜한 편지와 그림이 우리 형제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했듯이.
그 마음이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번졌을 뿐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할아버지, 방태호, 앙리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이 덕에 지금 이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별은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우주 어딘가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홀로 빛나서는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근처 다른 별에 의해서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다.
각자의 위치를 잃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를 더해주는 저 별들의 관계야말로 사랑이 아닐까.
그 외에 어떤 단어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림을 그린다는 건 나와 타인을 사랑하는 일.
오늘 밤도 별이 빛나는구나.
태양을 품은 해바라기처럼 열렬히 사랑하는구나.
* * *
웃음소리가 점차 잦아들자 고수열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람 쐬러 나갔다 온다던 손자가 꽤 오래 안 보였다.
‘먼저 자러 갔나.’
고수열이 정원을 살폈다.
연못 주변에 작은 등불이 빛을 냈고 그 옆으로 이젤과 화판, 손자의 그림자가 보였다.
뭔가 영감을 받아 그림이라도 그리고 있던 모양이었다.
‘못 말리지.’
종일 걸어 다니르라 피곤할 텐데도 붓을 든 손자가 기특하기도 걱정되기도 했다.
고수열은 슬쩍 일어나 정원으로 향했다.
손자에게 다가가니 과연 작은 등불에 의존해서 잘 보이지도 않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오오.”
고수열이 미완성의 그림에 감탄했다.
작은 해바라기들이 꼭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검푸른 하늘에 점점이 박혀 노란 잎을 자랑했다.
별과 해바라기를 겹쳐 봤던 모양.
고수열은 생기가 흘러넘치는 해바라기 별에 마음을 빼앗겨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해바라기구나.”
“…….”
“이렇게 두니 꼭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생각나네. 그 그림에서도 별이 해바라기처럼 빛나지 않느냐.”
의자에 앉은 손자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를 이상하게 여긴 고수열이 손자 곁으로 다가가자 붓을 들고 있던 손이 스르륵 떨어졌다.
“훈아?”
“…….”
“훈아!”
“네?”
큰 소리에 깜짝 놀란 고훈이 벌떡 일어났다.
주변을 둘러 보다가 할아버지를 찾고 나서야 숨을 길게 내쉬며 안도했다.
“왜, 왜요?”
놀라기로는 손자보다 배는 더 놀란 고수열이 눈을 깜빡이다가 호통을 쳤다.
“이 녀석아! 할애비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
옛 추억과 별 그리고 친우들과의 시간에 취해, 그림을 그리다가 졸았던 고훈은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영문을 모른 채 눈만 껌뻑이니 고수열이 숨을 돌렸다.
“피곤할 텐데 얼른 들어가 자.”
“조금 졸았더니 괜찮아졌어요.”
고훈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보다 할아버지.”
“왜.”
“천문학자들이 말하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저 별들을 못 보게 된대요.”
“음. 공기가 안 좋아져서?”
고훈이 고개를 저었다.
“우주가 계속 팽창하니까 별과 별 사이의 거리가 멀어진대요. 그래서 아주 먼 미래의 사람들은 저 별들을 못 보게 될지도 모른대요.”
“그건 몰랐구나.”
크게 감흥이 없었다.
대체 얼마나 긴 세월이 흘러야 그러한 때가 올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요.”
“다행이라고?”
“네.”
고훈은 여전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우주의 역사로 보면 우리가 별을 볼 수 있는 시기는 정말 짧은 시간이잖아요?”
“그럴지도. 아니, 그렇겠지.”
“별을 볼 수 있는 아주 짧은 시간에 인류가 태어난 거라고 생각하면 정말 신기하지 않아요?”
“껄껄. 그러게. 더 늦게 태어났으면 저 예쁜 별을 못 볼 뻔했구나.”
“네.”
고훈이 캔버스로 시선을 옮겼다.
“그래서 먼 미래 사람들은 하늘을 봐도 아무것도 못 보니까 이 넓은 우주에 인간밖에 없다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외롭겠구나.”
“네. 분명 있는데, 보지 못해서 외로워할 거예요.”
고훈이 고수열을 보며 말했다.
“화가는 보여주는 사람이잖아요?”
“그렇지.”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빛나고 있는데, 다들 서로를 못 보고 있어요. 멀어져서 그러기도 하고 벽 때문에 그러기도 하고.”
“훈이가 보여주면 되겠구나.”
고수열의 말에 고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완-
후기
안녕하세요, 우진입니다.
고훈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서 한 번 말씀드렸지만 <다시 태어난 반 고흐>는 위대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위한 소설이 아닙니다.
가족에게도, 교회에서도, 사회에서도 소외 받고 멸시당했던 인간 빈센트 반 고흐가 사랑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생전에 여러 번 사랑을 언급했습니다.
비록 세상 모든 것이 그를 미워하고 밀쳐내도 그는 더 많은 것을 사랑하고 더 많이 사랑하자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제게는 정말 크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저는 사람을 미워했으니까요.
제 첫 직장은 월급을 3개월이나 주지 않으면서 온갖 인신공격을 해대는 곳이었습니다.
두 번째 직장에서는 팀원들의 성과급을 챙긴 팀장과 싸우다가 대표로부터 퇴사 권유를 받았습니다.
1년간 만났던 사람이 다른 사람과 사랑을 나누었던 일이나, 돈을 빌려주지 않자 제 험담을 하고 다니는 일을 겪으면서 조금씩 사람 만나는 일이 무서워졌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전작 <다시 태어난 베토벤>을 쓰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비록 사람이 싫고 무서워도 이야기만큼은 따뜻하게 쓰고 싶었습니다.
속된 표현을 쓰자면 현실이 개떡같으니 이야기만이라도 희망차게 쓰자는 생각이었죠.
그랬던 제게 아주 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분이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셨고 사랑을 나눠주셨습니다.
그 벅찬 경험을 토대로.
어쩌면 미워하고 꺼리고 단절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고, 때마침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났습니다.
그의 일생은 정말 안타깝습니다.
자기가 있을 자리를 찾아 헤맸지만 학교도 사회도 교회도 미술계도 모두 그를 배척했습니다.
그럼에도 사랑을 말할 수 있었던 그에게 이끌려 <다시 태어난 반 고흐>를 쓰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필사적으로 살아가실 분들께.
혹은 반 고흐처럼 어떤 곳에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분들께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며 집필했습니다.
반 고흐가 <감자 먹는 사람들>을 그리며 그들 저녁 식탁에 투박한 감자를 놓았듯이요.
그 때문에 민감한 문제를 많이 다뤘습니다.
그중 하나가 무슬림에 관한 일입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이르러 용기를 내 말씀드립니다만.
이메일을 보내어 항의하신 몇 분이 이 글을 볼 리 없으나 분명히 밝히건대 저는 IS와 탈레반 그리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그 누구도 옹호하지 않습니다.
비다 라바니라는 캐릭터로 전하고 싶었던 말은 이슬람 사회에서 벌어지는 폭력 행위(비다 라바니는 무슬림 사회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이유로 폭행당했습니다)와 프랑스 사회에 적응하고자 노력함에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심어놓은 이미지 때문에 배척받는 상황, 즉 폭력적인 이슬람인들을 향한 비판에 가까웠습니다.
물론 인종과 종교, 출신으로 차별하는 사회를 향한 문제의식도 포함해서요.
저는 비다 라바니라는 개인이 거대한 양쪽 사회 틈에 끼어 발버둥치는 모습에서 어느 집단의 소속원이 아니라, 각 개인의 소중함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관계를 맺고 수많은 단체에 속해 있지만 개개인 모두가 유일하고 소중한 존재니까요.
그렇기에 누구든지 그런 혐오와 갈등 속에 놓일 수 있고, 그런 상황이 이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와 같은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이런 민감한 문제를 다루기를 무척 꺼립니다.
수입과 직결된 문제니까요.
저 또한 다루기 전까지 정말 많이 고민했고 모른 척할 수도 있었지만 적어도 빈센트 반 고흐를 다루는 글에서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 모든 이가 자신을 미워해도 더 많은 걸 사랑하자고 말했던 그를 위한 이야기에서 현실과 타협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동성애 관련 이야기도 소개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던 반 고흐가 동성애와 무슬림을 옹호하는 모습이 말이 안 된다며, 제 개인의 사상을 반 고흐에게 투영했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었지만, 신실했던 반 고흐는 당시 교회의 그러한 탄압과 강박에 회의를 느껴 목사 시험을 포기했습니다.
그는 교회법에 연연하지 않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누구보다도 가슴 깊게 새기고 이행한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편견 없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지 않았을까, 저는 그리 생각합니다.
실은 무섭기도 했습니다.
댓글과 메일을 통한 항의가 이어지고 실제로 매출에도 큰 영향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에도 끝까지 함께해 주신 여러분 덕분에 용기를 얻어 제 이야기를 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사람을 미워하고 무서워하고 꺼리던 제가 여러분의 사랑으로 구원받았듯이.
여러분이 지켜봐 주신 덕에 고훈도 그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파리 달리다 공원과 뷰그레넬리 쇼핑몰, 센강 강둑 그리고 온 세계에 피어난 해바라기처럼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르네상스’는 우리가 잊고 지냈던 사랑이란 감정의 부활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남을 미워하지 않기 너무도 힘든 세상에서 제게 사랑을 가르쳐 주신 여러분께 진심을 담아 인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모든 꽃과 모든 별에게 이 이야기를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