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401화 (401/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2부 75화

-르네상스-

13. 르네상스(11)

“각자의 위치에서 피어난 각기 다른 꽃 모두를 응원하고 사랑합니다.”

처음에는 침체된 미술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아이로 생각했다.

세계적인 거장의 손자, 비극적인 가정 환경, 한국화와 빈센트 반 고흐 화풍을 섞어 놓은 듯한 독특한 화풍, 어린 천재, 귀여운 외모 등 고훈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자질을 갖추었다.

고수열, 장미래의 뒤를 잇고.

나아가서는 앙리 마르소처럼 미술계를 선도하는 인물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서울 미술관에 전시되었던 첫 번째 <해바라기>를 본 순간부터 난 저 아이가 가는 길을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고훈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몰리면 미술계도 부흥할 테고, 그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날 찾는 사람도 생길 테니까.

하지만 고훈은 내 그러한 욕심과 기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유럽에서 심상치 않은 행보를 보이더니, <서리 밀밭>을 선보인 첫 개인전에서 그 해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발돋움했다.

믿기지 않게도 곧장 휘트니 비엔날레에 참여하여, 갤러리 앞에서 그림을 찢는 퍼포먼서를 보이는가 하면.

그 콧대높은 앙리 마르소가 본인 작품에서 고훈의 그림을 다루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르누보 공모전에서는 이 시대 최고의 미술가 앙리 마르소와 어깨를 나란히 했고.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는 기어이 미술가로서 최고의 자리에 서버렸다.

순수미술뿐만이 아니었다.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흥행수익을 올린 뤼팽 트릴로지의 콘셉트 아트 디렉터로, 비비안 이스트우드와 협업하여 패션 브랜드를 출시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고훈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더 높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음에도 기꺼이 몽마르트르로 돌아갔다.

그 어떤 일정보다 몽마르트르구에서 사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걸 중요하게 여겼다.

유럽 사회에서 배척받는 여러 국가 출신의 아이들에게 사탕과 초콜릿, 쿠키를 나눠주며 미술을 공유하고.

해바라기를 그렸다.

어쩌면 해외 생활을 오래한 경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최근 논란이 되었던 파리 보자르의 한 교직원의 발언처럼 고훈도 그런 차별에 노출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미술계에서는 백 년에 한 번 나올 천재이자, 이 시대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그조차 혐오와 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고 분하면서도.

그럼에도 자신을 잃지 않고 선한 영향력을 펼치는 모습에서 내가 그동안 잘못 생각했음을 깨달았다.

경매 낙찰가 기록을 갈아치울 때마다, 큰 상을 받을 때마다 그가 목표에 다가간다고 생각했지만 고훈은 처음부터 그런 일에 관심이 없었다.

본인의 그림이 누군가의 위로와 희망, 용기가 되길 바랄 뿐이었다.

그러했기에 새로운 것에 목매고 수집할 가치가 있는 작품에만 관심을 보이는 수집가들과 주류 미술계에서 벗어나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다.

인상주의가 시작할 무렵과 같다.

교회와 귀족, 부르주아가 아닌 가난한 농부, 광부, 노동자를 그렸던 위대한 화가들처럼.

고훈은 이 시대에 다시금 평범한 사람과 함께했다.

더 위대한 작품.

미술 교양을 갖춘 이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상징과 기호로 만들어진 수준 높은 작품.

기발하고 신선한 발상으로 예술사적 가치가 높은 작품.

소장에 중점을 둔 비싼 작품이 아니라 꽃, 해, 바다 그리고 사람을 그렸다.

소장이 목적인 작품이 아니라 감상, 즉 교감이 목적이었다.

돈 많은 특정 집단이 소유하려는 미술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이 시대가 향유할 작품을 그렸다.

그 증거가 바로 르네상스.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을 넘어서, 소통 자체를 포기한 작품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작가가 본인의 개성을 한껏 뽐내면서도, 대화의 창을 열어둔 이른 바 열린 작품이 주를 이룬다.

개나리, 데이지, 라일락, 벚꽃, 민들레, 아카시아, 유채꽃, 철쭉, 튤립, 나팔꽃, 무궁화, 백합, 수국, 수련, 장미, 코스모스, 국화, 동백꽃 등 각자의 아름다움을 마음꽃 자랑하고 있다.

300송이의 각자 다른 꽃들이 모여서 하나의 형태를 이룬다.

이 모든 현상이 바로 그에게서 시작되었다고.

감히, 아니, 확신한다.

“그럼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손을 들었다.

준비 중인 평전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 될 거다.

지금이 아니라면 따로 연락을 해서라도 들어야 하는 질문이다.

“네. 흰 셔츠 입고 계신 여성분께 기회 드리겠습니다.”

운 좋게 기회를 얻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자르에서 칼럼 쓰는 김지우라고 합니다.”

그는 그때와 같이 순진무구하고 사랑스러운 눈으로 날 보았다.

“르네상스 본선에 출품된 작품들은 이전과 다른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각자 다른 미학에서 출발해 독특하게 표현되었지만 작가 본인이나 평범한 사람을 다루는 작품이 많습니다.”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새로운 경향이 나타난 것은 사실이고 전 그 중심에 작가님이 있다고 봅니다. 이마저도 부정하시나요?”

제각각의 꽃들이 모여서 분명 하나의 상징을 이루고 있다.

작년 겨울부터 시작된.

어쩌면 고훈이 아이들과 함께 달리다 광장에 해바라기를 심었을 때에.

아니, 그가 처음 <해바라기>를 발표했을 때부터 이어진 일이다.

고훈은 빙그레 웃었다.

“각자가 피운 꽃들이 멀리서 보면 어떤 형태를 띄울 수 있겠죠. 그것이 해바라기처럼 보이기에 이런 질문을 반복해서 주시는 것 같아요.”

고개를 끄덕였다.

넌 이미 상징이다.

이 시대를. 쇼콜라티즘을 좇는 수많은 해바라기들이 선망하는 태양이다.

“전 그것이 정말 많은 분이 함께하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함께요.”

기쁜 듯 쑥쓰러운 듯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연다.

“그런 의미에서의 동시대 예술이잖아요?”

너무나 다른 예술품이 너무나 많이 나와서 차마 설명할 수 없기에 생겨난 이름이.

그에 의해서 정의되었다.

* * *

행사에 참여하느라 밤 10시가 되어서야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이거 맛있다!”

“그래?”

차시현이 돼지 고기와 야채를 함께 익힌 요리를 권해서 먹었는데 눅진한 향과 감칠맛이 굶주렸던 위장을 한 번에 달래주었다.

“누님, 이거 먹어봐요.”

“나도 손 있어.”

“아~”

마은찬은 포기하지 않고 백설기에게 구애하는 중이다.

“좀 받아줘. 그렇게 자꾸 튕기다가 마음 바뀌면 어쩌려고 그래?”

“그래. 적당히 해. 매일 은찬 씨 이야기하면서.”

“내가 언제!”

“진짜요? 진짜, 진짜 제 얘기해요?”

백설기가 완강하게 나오지만 마은찬이 진심을 다하는데다 장미래, 유라임에게 지원까지 받으니 곧 마음을 열지 않을까 기대한다.

“빨간색 뽑는 게 일이었어요.”

“…….”

“예쁘죠?”

“아르센, 이 자식 쫓아내.”

앙리와 블랑쉬도 모처럼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행사가 끝나고 잠시 이야기 나눴는데 앙리가 조언을 해주었단다.

목표이자 스승에게 처음 받는 관심에 들뜬 모습이다.

보기 좋다.

“윌리엄 토마스 작품 보셨어요?”

“아뇨. 루브르 쪽으로도 벅차서 말이죠. 내일은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게요. 보도 자료만으로는 느낌이 안 드니까.”

미셸과 방태호는 윌리엄 토마스가 어떤 작품을 전시했는지 무척 보고 싶은 눈치다.

“선생님, 내일 일정 정리해 왔습니다.”

“오오, 고맙네. 성 과장도 같이 자리하지.”

“저는.”

“그러지 말고 앉게. 여기, 자리 하나 더 마련해 주세요.”

할아버지는 늦은 시간까지 일하다 온 성귤 과장을 챙기시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니. 이게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이러면 전시회 돌 시간이 없지 않나.”

슬쩍 할아버지가 든 표를 보니 오전에는 언론 인터뷰와 감상평, 오후에는 예선 심사위원들과 함께하는 간담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WAPA 쪽에서 의뢰한 일이고 선생님도 수락하셨다고 들었는데, 전달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나 봅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아니. 아닐세. 하기로 했는데 시간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허어.”

“어차피 사람이 많아서 좀 기다렸다가 보시는 게 편할 거예요.”

할아버지가 너무 아쉬워하시길래 한 마디 거들었다.

“그거야 그렇지만. 이 녀석아, 네 그림을 세상 사람들이 다 봤는데 할애비만 못 보는 게 말이 돼?”

“그랬어요?”

“네가 르네상스 시작하면 보라고 꽁꽁 싸매지 않았느냐.”

작품 진행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보시다 보니, 감동이 덜한 것 같아서 이번에는 보여드리지 않았다.

“사진은 있는데.”

“사진 가지고 될 것 같았으면 가상 전시관으로 봤지.”

“내일 오전에 시간 만들어 보겠습니다.”

“오오, 그래 주겠나?”

성귤 과장이 아니었으면 할아버지가 삐질 뻔했다.

연세가 드셔서 그런지 요새 서운해하시는 일이 많아지는데, 다행이다.

시끌벅적하게 식사를 마치고 문득 고개를 드니 문득 아버지,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가 생각난다.

장난기 많은 두 분 덕에 매일매일 크게 웃었는데 지금도 그때와 다르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이 평범한 일상이 그리웠다.

가족도 친구도 없던 내게 이런 날이 올 줄 누가 알았을까.

“왜? 무슨 일 있어?”

할아버지가 걱정스레 날 살핀다.

잠시 감상에 젖었던 모양이다.

“아니에요. 너무 많이 먹었나 봐요.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요.”

주스를 들고 정원으로 나섰다.

앙리 신선이 준 금 자각상, 은 자각상, 무지개 자각상이 연못 한 가운데에서 조명을 받아 빛나고 있다.

<오줌싸개 소년>처럼 특정 부위에 구멍을 뚫어서 물이 나오게 개조하면 어떨까.

“뭐야.”

앙리가 다가왔다.

“고민하고 있었어요.”

“뭘.”

“브뤼셀에 있는 오줌싸개 소년 알아요?”

“제롬 듀케노아가 만들었잖아.”

“네. 1619년에 만들었는데 어떻게 물이 나오게 만들었는지 신기하지 않아요?”

별 관심 없는 듯하다.

“알아서 뭐 하게.”

“저기에도 접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앙리가 내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더니 금새 얼굴을 구겼다.

“미쳤어?”

“세 개니까 하나만.”

“개소리하지 마. 손 끝 하나 건드려 봐.”

“건드리면요?”

“네가 바지 벗고 있는 동상을 파리 거리마다 둘 거다.”

“이쯤에서 합의 보는 게 좋겠네요.”

그동안 얌전해져서 놀리는 맛이 덜했는데 오늘은 모처럼 재밌는 반응을 보여준다.

화가 덜 풀렸는지 씩씩대며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길래 불러세웠다.

“앙리.”

“뭐야.”

생각해 보면 사고 이후 기억을 잃고, 도대체 뭐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그를 만나 즐겁게 미술을 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가지지 못했던 경쟁심을 느낄 수 있었고, 오래된 친구보다도 편하게 대할 수 있었다.

정말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었지만 그와 만나 참으로 다행이다.

“그냥. 내일 같이 구경하자고요.”

고맙다는 말을 꺼낼 생각이었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굳이?”

“뭐 어때요. 윌리엄 토마스 작품 보고 싶지 않아요? 미셸도 그런 눈치던데.”

“바빠.”

“일정 있어요?”

앙리가 대답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섰다.

왜 저러지 싶다가 어쩌면 내일 내 그림을 볼 계획이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귀엽다니까.

“하아.”

종일 걸어다닌데다 배까지 든든하게 채우니 피곤이 몰려든다.

슬슬 일어날 생각으로 고개를 들었는데 오늘도 별이 아름답다.

별은 저 작은 빛을 전하기 위해 얼마나 먼 길을 걸어왔을까.

“…….”

이젤이 어디 있더라.

이 밤하늘을 캔버스에 담지 않고는 잠들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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