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2부 74화
-르네상스-
13. 르네상스(10)
‘이제 다시 시작이야.’
하나의 작품으로 유명세를 얻어 성공가도를 걷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다음 작품의 성공이 보장되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도 작품이 좋지 않으면 관심이 줄기 마련이었다.
명성, 마케팅에 휘둘리는 것 같으면서도 대중은 그 어떤 평론가보다도 냉정했다.
‘들뜨면 안 돼.’
어렸을 적 작은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수년간 실패를 반복했던 블랑쉬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블랑쉬는 지갑을 감싸 쥐고는 숨을 골랐다. 벅찬 가슴을 간신히 다독이며 오래 전부터 상정해 온 목표를 되새겼다.
행사장으로 이동하고자 대기실을 나선 그녀는 곧 루브르 박물관 르네상스 전시실에 이르렀다.
폐관 시간이 되었기에 조명이 부분부분 꺼져 있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발 디딜 틈 없던 장소라고는 믿을 수 없이 적막했다.
“작가님, 시간이.”
“알고 있어.”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앙리 마르소와 그의 비서 아르센이었다.
블랑쉬가 시계를 확인했다.
8시 5분 전. 작가와의 대화에 참석해야 할 앙리 마르소가 왜 본인의 작품이 전시된 오르세 미술관도 아닌 이곳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혹시?’
블랑쉬는 앙리가 <리터치>를 봤을지도 모른단 기대를 품었다.
어떻게 봤을까.
자신 있는 작품인 만큼 이번에는 돌아봐 주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를 걸고 발을 옮긴 그녀의 시야에 한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고훈의 <화가>.
‘그럼 그렇지.’
앙리 마르소가 다른 일을 제쳐두고 루브르 박물관을 찾을 이유라면 고훈뿐이었다.
고훈이 첫 작품을 발표했을 때부터 줄곧 그랬었다.
“…….”
앙리 마르소는 당장에라도 달려들 기세로 고훈의 <화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언제쯤 저 날카로운 시선이 자신에게 향할지, 과연 그런 날이 오기는 할지 알 수 없었다.
대체 언제부터 그를 의식했을까.
가는 곳마다 기행을 일삼고 꺼내는 말마다 논란을 일으키면서도 사랑받는 그가 한때는 치사하게 느껴졌다.
‘특이한 척하지 마.’
‘네가 앙리야?’
‘얘 좀 봐. 벌레 사진 보고 있어. 기분 나쁘지 않아?’
그저 좋아하는 마음에 솔직했을 뿐인데 미움받는 자신과 그가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었다.
질투의 시작이었다.
언젠가는 그보다 멋진 그림을 그리겠다고, 더 유명한 화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별다른 친구가 없었던 어린 화가에게 앙리 마르소는 적이자 목표였고 스승이었다.
그의 전시회를 찾아다니며 이번에는 무엇을 그렸는지, 붓은 어떻게 다루고 어떤 도구를 사용했는지 빠짐없이 눈에 담았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자 어느샌가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보기와 다르게 앙리 마르소는 모든 이에게 사랑받는 예술가가 아니었다.
그를 사랑하는 이만큼 미워하는 사람도 많았다.
여러 평론가가 수백 점의 자화상을 발표한 그를 나르시시즘에 잠식된 화가라고 비판했지만, 앙리 마르소는 계속해서 본인을 그렸다.
블랑쉬 파브르도 처음에는 그들과 별다르지 않았다.
다양한 기법과 소재가 있음에도 전통적인 회화만 고집하고 자화상만 그리는 그가 게을러 보였다.
그러나 앙리의 자화상을 모두 찾아보며 그 속에 그가 무엇을 담았는지 알 수 있었다.
같은 작품은 단 하나도 없었다.
대체 얼마나 많이 고민했으면 수백 점의 자화상이 모두 다를 수 있을까.
답은 간단했다.
자신을 끊임없이 마주하고 발전시켜 왔기 때문.
앙리 마르소가 여러 비판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은 바로 그곳에 적을 두고 있었다.
그렇게 강한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블랑쉬가 앙리에게 다가갔다. 그림 봤냐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르고 나란히 섰다.
‘아.’
<화가>를 마주한 순간 앙리 마르소가 왜 이곳을 떠나지 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
자애롭게 내려쬐는 햇살과 거룩한 손길.
농부는 기도하듯 씨앗을 심고 있었다.
‘뭘까.’
고훈은 농부가 심은 씨앗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관객의 몫으로 남겼다.
해바라기인지 붓꽃인지 밀인지 알 수 없었다.
“해바라기 씨앗을 심어도 생각했던 대로 크진 않아.”
행사조차 잊을 정도로 넋놓고 바라보던 차에 앙리가 입을 열었다.
“100개를 심으면 100송이 모두 제각각이지. 마음대로 크는 경우는 없어.”
블랑쉬가 고개를 끄덕였다.
곤충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자 집 앞뜰에 여러 꽃을 키웠다.
“그림도 마찬가지야. 뭘 담을지 정해도 막상 그리다 보면 달라져.”
“알 것 같아요.”
“한 점, 한 점이 쌓아서 다가갈 순 있지만 닿을 리 없지.”
앙리 마르소가 팔짱을 풀었다.
머리와 가슴이 충만해지는 작품을 그리고 싶지만 좀처럼 만족할 수 없었다.
무한히 다가갈 뿐이었다.
“그러니까 계속하는 거야. 가만히 있으면 씨앗으로 남을 뿐이거든.”
노력이 의미없는 일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붓을 놀려도 그림은 나아지지 않고 대중은 매몰찼다.
그럼에도 계속 심어야 했다.
그 과정만이 본인을 깨닫고 가꾸고 위로하고 나아가는 길이기에 기꺼이 평생을 밭과 함께했다.
앙리 마르소가 뒤돌았다.
“나라면 물감을 뿌린 채로 내지 않았어.”
<화가>를 보고 있던 블랑쉬가 깜짝 놀라 시선을 옮겼다.
“내 그림 봤어요?”
“보는 앞에서 멀쩡한 걸 망쳐야 효과적이지.”
“…….”
쇼콜라티에에 가입한 지 5년이 지났으나 처음 듣는 조언이었다.
“어, 어땠어요?”
“말하잖아. 미숙하다고.”
앙리 마르소가 미술관 밖으로 향하자 블랑쉬 파브르가 그 뒤를 따랐다.
“꽃처럼 쏟았는데.”
“어.”
“무슨 꽃인지 알겠어요?”
“아니.”
“자세히 봐요. 어차피 늦었잖아요.”
“볼 만큼 봤어.”
“얼마나 봤는데요? 뭐가 어떻게 좋았냐고요.”
앙리 마르소가 귀찮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꽃을 피웠으면 포장하는 법도 익혀.”
“…….”
“아르센, 몇 시야?”
“8시 10분입니다.”
“빌어먹을. 또 잔소리 늘어놓겠네.”
앙리가 셰바송 씨몽을 염두에 두고 인상을 썼다.
행사 첫날 방문객을 최대한 많이 동원하기 위해 마련한 ‘작가와의 대화’가 지연되고 말았다.
“포장하는 법이라니. 무슨 뜻이에요?”
앙리 마르소가 발을 재촉하려던 차 블랑쉬가 그를 불러세웠다.
“그만큼 좋았다는 말이죠?”
앙리가 발을 멈췄다가 이내 다시 걸었다.
비록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부정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갖고 싶어요?”
앙리 마르소는 블랑쉬의 질문을 무시하고 행사 이야기를 꺼냈다.
“씨몽 영감이 기다린대?”
“먼저 시작하셨습니다.”
“앙리 선생님한테는 줘도 되는데.”
“그럴 거면 왜 빨리 오라고 해?”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됐어. 요새 늙어서 그런지 삐진 게 오래 가.”
“솔직하게 말하면 그냥 줄 수도 있어요.”
앙리가 블랑쉬의 해맑은 얼굴을 보다가 콧방귀를 뀌었다.
* * *
정신없는 하루도 이제 거의 다 저물었다.
주변 불빛 덕에 광장은 환하지만 조금만 고개를 들어도 어두컴컴한 밤하늘을 볼 수 있다.
“이이이익!”
행사 시작까지 5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앙리가 나타나질 않는다.
“이 망나니 같은 놈이 어디서 뭘 하길래 전화도 안 받아!”
덕분에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셰바송 씨몽 협회장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기다리는 사람이 몇인데 이러는지 모를 일이다.
직원들과 뭔가를 의논하던 씨몽 협회장이 다가왔다.
“고훈 군, 정말 미안하네. 마르소 이 녀석이 당최 연락이 안 돼서 말이야. 혹시 먼저 올라가도 괜찮나?”
“네. 괜찮아요.”
“아이고. 정말 고맙네.”
“별말씀을요. 바로 올라갈까요?”
“소개 멘트 뒤에 올라와 주시면 됩니다.”
씨몽 협회장과 함께 있던 직원이 그를 대신해 설명했다.
“하아.”
정말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 정도로 바쁜 하루였는데, 무대 밖에서 웅성이는 소리를 들으니 감개가 무량하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미술 축제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거늘.
이 들뜬 공기를 마주하니 정말, 평론가들이 말하듯 미술계에 두 번째 르네상스가 찾아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큰 박수로 맞이하겠습니다. 태양의 작가, 빛의 작가, 해바라기의 작가 고훈입니다!”
진행자의 소개를 받아 무대에 오르자 콩코르드 광장을 가득 메운 이들이 격하게 환영해 주었다.
“와아아아!”
“고훈이야!”
“여기! 여기 봐 줘!”
이런 반응은 처음이다.
인기 가수라도 된 듯한 기분이다.
“안녕하세요. 고훈입니다.”
허리를 숙여 인사하자 함성이 해일처럼 밀려들어 가슴을 때렸다.
부풀었던 가슴이 이제는 터질 듯 요동친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르네상스의 첫 번째 날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소감이요.”
목을 풀었다.
“감사하게도 정말 많은 분이 찾아와 주셔서 본 전시회를 둘러보진 못했어요. 예선 출품작과 루브르 박물관 전시실만 조금 훑어 봤는데, 정말 감탄만 나오더라고요.”
“고훈 작가님이 감탄했던 작품이 무엇인지 안 여쭤볼 수가 없는데요.”
짓궂은 질문이다.
300명의 작가 중에 누굴 언급하는지에 따라 주목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나만 집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작품이 빛나고 있었어요.”
객석을 둘러보니 몇몇이 고개를 끄덕인다.
“제 그림을 보셨을지 모르겠는데.”
“봤어요!”
꼭 전하고 싶은 말을 막 꺼내려던 차, 누군가가 믿을 수 없이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감사합니다. 마이크도 없으신데 저보다 목소리가 크셔서 놀랐어요.”
너무나 앙칼져서 나도 관객들도 웃고 말았다.
다시 분위기를 잡았다.
“화가는 씨앗을 심는 손을 담아낸 그림이에요. 씨앗은 정말 놀라운 가능성을 갖고 있는데, 그것만으로는 싹을 틔울 수 없어요. 햇살도 잘 받아야 하고 물도 잘 머금어야 하고요. 또 농부가 얼마나 정성스레 보살피냐에 따라 열매도 달라져요.”
할아버지가 흐뭇한 얼굴로 지켜보고 계시다.
“전 누구나 가슴 속에 씨앗을 품고 있다고 믿어요. 그 씨앗을 심고, 키우는 일이 쉽진 않죠. 바람이 불고 서리가 내리고 벌레가 끼기도 하는 것처럼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배가 고파도 당장 빵 하나를 구할 수 없었고, 사랑하던 사람이 하나 둘씩 멀어져 갈 시기에는 몇 번이나 세상을 저주했다.
내가 처한 상황과 날 밀어낸 혹은 멀어져 간 이들을 증오했다.
“씨앗을 포기하면 꽃은 피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내 안의 씨앗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나뿐이란 것도요. 그러니 주변에서 아무리 못났다고 안 될 거라고 해도 저만은 제 씨앗을 사랑해야 해요.”
내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할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있는 차시현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다.
“그래서 씨앗 심는 농부의 손을 빌려서 화가에 빗대어 봤어요. 지나가다가 눈에 띄면 지금 드린 말씀을 한 번쯤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말을 마치자 관객들이 박수를 보냈다.
무대에 오를 때처럼 거칠고 힘찬 물결은 아니지만, 잔잔하게 밀려드는 파문에 가슴이 젖어든다.
“말씀을 들어보니 비단 화가에게만 적용되는 말은 아니네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 같습니다.”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을 위해 설문 받은 질문이 많은데. 가장 많은 질문이 쇼콜라티즘에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작년 EIE 운동부터 시작해 전 세계가 해바라기로 물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데요. 심지어 이번 르네상스에서도 해바라기를 다룬 작품이 보이고 있습니다. 쇼콜라티즘의 문을 연 입장에서 쇼콜라티즘의 정의가 무엇인지 여쭙습니다.”
“제가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에요.”
당황한 진행자를 뒤로하고 객석에 앉은 사람들과 잠시나마 시선을 교환했다.
무대 뒤쪽이 웅성이는 걸 보니 아마 앙리가 드디어 도착한 모양이다.
“비슷한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지만, 저도 쇼콜라티즘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해요. 그건 제 작품을 봐주신 여러분이 지어주신 이름이니까요.”
기대에 미치지 못한 모양이다.
듬성듬성 아쉬워하는 얼굴이 보인다. 기자석에 앉아 있는 이인호와 김지우는 특히 더 그렇다.
“그래서 쇼콜라티즘, 해바라기에 의미가 있다면 그건 여러분과 제가 함께 만든 그 무엇이지 않을까 싶어요.”
장미래가 손을 높이 들어 손뼉을 치자 사람들이 그에 동조했다.
“르네상스에 참가하신 300명의 미술가와 지금도 어디선가 자신만의 씨앗을 키우고 계실 모든 사람, 그리고 여러분이 모두 쇼콜라티즘을 이루고 있습니다.”
오랜 꿈이었다.
사회와 교회, 미술계, 하물며 가족에게도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난 평생을 내가 있을 곳을 찾아 헤맸다.
내가 온전한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장소.
사랑하면 사랑하는 대로, 다르면 다른 대로 서로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는 세상을 바랐다.
물론 지금도 시기와 질투, 미움이 남아 있지만 적어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이렇게나 많지 않은가.
“각자의 위치에서 각기 다른 꽃을 피우는 모든 분을 응원하고, 사랑합니다.”
지금도 황금으로 일렁이는 그곳이 눈앞에 선하다.
은혜로 잉태한 밀과 땀 흘리는 농부와 그것을 지켜보는 해바라기를 바라보고 있자면 가슴 한 쪽이 따스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는 그들을 사랑했고.
그들의 태양이고 싶었다.
태양은 동경하기에는 너무나 높이 떠 있었다.
가까이 하면 그 찬란함에 눈이 멀 것 같아서 고개를 숙였고 그 대신 해바라기를 그렸다.
하나뿐인 생명과 삶을 오직 그를 사랑하는 데 다한 해바라기는 그 얼마나 숭고한 사랑을 했는가.
고개를 높이 들어 얼마나 당당히 사랑을 했는가.
해 바라기.
태양을 올려다보지 못했던 해 바라기는 해바라기를 만나 비로소 사랑을 깨우쳤다.
혼자서는 결코 될 수 없는.
태양보다 눈부시고 햇살보다 따스한 해바라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