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389화 (389/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2부 63화

-르네상스-

12. 제육볶음과 백설기(8)

마은찬과 백설기가 발표를 성공적으로 치른 뒤에도 전시회는 뜨거운 관심 속에 계속되었다.

기자들이 워낙 많이 몰린 탓에 마음껏 구경하지 못해 아쉬울 정도였다.

그러나 일부를 둘러본 것만으로도 두 사람이 얼마나 치열하게 이 날을 준비했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극심한 스트레스로 빠진 머리카락을 심어서 만든 <창작의 고통>이 방점을 찍었으나.

전시품 한 점, 한 점이 모두 놀라운 발상으로 이뤄져 있었다.

“너무 예쁘다.”

“같이 그렸나 본데?”

그중 두 작가의 공동 작업물 <춤추는 두 사람>은 내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200호 정도 크기의 넓은 캔버스에 왈츠를 추는 두 사람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표현했다.

독특한 점은 양쪽의 화풍이 너무나도 달라서 마치 남자와 여자의 생각과 감정 차이를 나타내는 것 같았다.

작품 왼쪽은 아주 사랑스러운 핑크색을 배경으로 한 남자가 있고.

오른쪽 여자는 다소 평온한 하늘색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백설기의 그림은 5년 전 베네치아 비엔날레 이후로 보지 못했지만, 마은찬은 쭉 봐 왔던지라 그가 여성을 그렸다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맞아. 남자가 생각하는 여자랑 여자가 생각하는 남자란 콘셉트였어.”

마은찬이 그린 여자는 담백하고 백설기가 그린 남자는 귀여운 느낌이다.

“색감이 좋네요.”

“정말?”

“네. 정말로.”

마은찬은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렇게 사랑스러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건 크나큰 무기라고 생각한다.

“야.”

앙리가 마은찬을 불렀다.

“네, 형님!”

“저것도 경매 출품작이야?”

<창작의 고통>을 보고 있다.

“아직 고민 중이에요.”

“왜.”

“……실은 전시하려고 만든 게 아니었거든요.”

앙리가 고개를 돌렸다.

나도 무슨 말인지 궁금해서 다른 작품을 두고 대화 중인 할아버지, 장미래, 백설기, 유라임을 따라가지 않고 마은찬의 설명을 기다렸다.

“너무 힘들었거든요. 남한테 잘 보이기 위한 작품만 생각하다 보니, 부담없이 뭔가 하고 싶었어요.”

“계속해 봐.”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손 가는 대로 만들었는데 게리 형님. 아, 여기 수석 큐레이터신데 그분이 너무 좋다고 전시하자고 해서 그렇게 됐어요.”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품 중 하나가 출품하려던 게 아니었단다.

“다들 좋게 봐주셔서 좋긴 한데.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고.”

이렇게 멋진 전시회를 열고도 표정이 밝지 않은 이유가 이것이었다.

평소 마은찬이라면 팔짝팔짝 뛰면서 좋아했을 텐데, 자신이 없어 보여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흥.”

앙리가 콧방귀를 뀌었다.

“사람들이 네가 대머리라서 저걸 좋아하는 것 같아?”

“대, 대머리 아니에요! 아직 남아 있어요!”

“아무튼.”

“……머리가 빠질 만큼 열심히 해서. 불쌍하니까.”

아니다.

“전혀.”

앙리가 먼저 말을 꺼내기에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았다.

“세상에 열심히 하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어. 민머리도 많고.”

미셸이 앙리의 옆구리를 또 찔렀다.

“민머리도 아닌데…….”

“네 생각대로면 세상 모든 대머리들의 작품이 인정받겠지. 정말 미술을 계속하고 싶다면 사람들이 왜 저 작품을 좋아하는지 생각해.”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잖아.”

미셸이 앙리를 탓했다.

“이런 것도 모를 정도로 멍청한 놈은 아니야.”

“앙리.”

앙리가 자리를 떠났다.

미셸은 험한 말을 들은 마은찬을 위로한 뒤에 앙리를 쫓아갔고.

숙제를 받은 마은찬은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어깨를 들썩였다.

때아닌 건강 악화.

성공해야만 한다는 부담과 1년간 지속된 강행군으로 지칠 대로 지친 마은찬은 지금 위로가 필요하다.

“형.”

“응?”

“잠깐 얘기 좀 해요.”

전시실 밖으로 나와서 차가운 음료를 한 잔씩 들고 의자에 앉았다.

“미안해. 나 너무 한심하지.”

“아니요. 너무 멋져요.”

“난. 난. 내가 만족하지 못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게 무서워. 다음에는 어떡하지. 기대치는 더 높아질 텐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차라리…….”

횡설수설하지만 어떤 걱정을 하는지 알 것 같다.

“창작의 고통은 가장 형다운 작품이었어요.”

마은찬이 눈물을 닦았다.

“내가 봐도 닮긴 했어.”

“그런 거 말고…….”

마은찬에게 맞춰서 이야기를 하면 자꾸 대화가 엇나가려 해서 바로 본론을 꺼냈다.

“처음 그림 그릴 때는 저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담았어요.”

농부, 광부, 공장 노동자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에게 본인들의 삶이 얼마나 고귀한지 알려주고 싶었다.

저녁 식탁의 감자처럼 그들에게 작은 행복을 전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저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그림을 알아봐주는 사람은 없고, 경제적으로도 너무 힘들었으니까.”

“……어?”

마은찬이 눈을 끔뻑였다.

나도 모르게 빈센트일 적 이야기를 꺼내고 말아 당황스럽다.

“그. 다섯 살 때 이야기예요. 그땐 용돈도 못 받고 그림도 잘 못 그렸으니까.”

“…….”

“아무튼. 아무튼이요. 부모님이 사고로 떠나시고 도대체 그 마음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더라고요.”

부모 없이 자란 마은찬도 나와 같은 상처가 있을 것이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부터는 그림을 그릴 때 저를 되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어디가 아팠고. 왜 아팠고. 무엇이 부족하고. 그걸 받아들이는 시간이요.”

“알 것 같아.”

“그렇게 그린 작품이 여름 너울이었어요.”

그 전에 <서리 밀밭>, <해바라기>는 물론이고 훨씬 이전에 <노란 집>도 그러했다.

생각해 보면 내가 나다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건 모두 스스로를 위로하면서부터였다.

“창작의 고통이 사랑받는 이유도 그 때문 아닐까 싶어요.”

절망적인 상황을 이겨내고자 붙잡았던 <창작의 고통>이야말로 마은찬이란 인간을 고스란이 담고 있다.

화이트채플 수석 큐레이터 게리 무어가 ‘전시된 모든 작품을 아울렀다’고 표현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모든 예술가의 근원은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사회에서 얻을 수도 있고 내게서 얻을 수도 있다.

나와 마은찬 그리고 앙리는 모두 본인에게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 결핍을 달래고 위로하고 극복하고자 붓을 들었다.

결과는 가장 나다울 수밖에 없고.

그 진솔함은 분명 누군가에게 닿는다.

“그러게.”

마은찬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보일지만 생각했어. 겉멋만 들어서.”

그렇지도 않다.

정말 잘해냈다.

한 작품, 한 작품이 모두 생명을 지녀서 구경하기 참 즐거운 전시회다.

“……맞아. 다시 생각해 보니까 창작의 고통이 제일 자랑스러워.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해줬거든.”

“맞아요.”

* * *

“뭐야. 우는 소리 하더니.”

유라임이 백설기를 가볍게 치며 기뻐했다.

재능이 있어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친구가 마침내 화이트채플 갤러리 프리미어 전시회란 큰 무대에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낸 것 같았다.

자랑스러웠다.

“왜 그래? 피곤해?”

유라임이 백설기의 표정이 좋지 않음을 확인하고 물었다.

“모르겠어.”

백설기가 고개를 저었다.

“내 생각을 너무 포장했나 싶기도 하고. 잘 전달된지도 모르겠고.”

“껄껄. 아주 멋진 시도였다. 훈이도 자기라면 절대 못 할 거라고 하더구나. 고생했다. 참 고생했어.”

고수열도 나서서 제자를 칭찬했다.

언젠가는 색과 형태를 잃지만, 작품이 남긴 인상과 메시지는 계속된다는 생각을 담아, 작품의 물질적 수명을 극단적으로 줄인 시도.

고수열은 자기만의 미술관으로 세계 무대에 당당히 나선 제자가 대견하기 그지없었다.

“정말 그럴까요?”

“암. 그렇고말고.”

백설기가 숨을 내쉬고 그간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잖아요. 또 무엇이 영원하길 바라는 게 어리석은 생각으로 많이 비치고.”

“그럴 리가.”

장미래가 나섰다.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 미래를 생각하는 거라고 보는 학자도 많아.”1)

백설기가 관심을 보였다.

“사람이 보통 불안해하거나 안정감을 얻는 건 모두 미래를 생각하기 때문이래.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면 불안하고. 미래가 보장되어 있으면 안도하는 것처럼.”

“하긴. 동물은 그런 생각 안 할 것 같긴 하다.”

유라임이 맞장구쳤다.

“그래서 사람은 미래를 안정적으로 가져가기 위해 노력하고 움직인대. 영원한 걸 바라는 게 노욕은 아니라는 말이지.”

“응…….”

“다들 그래서 죽음은 받아들여도. 뭔가를 남기고 싶어하잖아? 그 마음을 잘 보담아준 작품 같아. 멋져.”

이 시대 최고의 미술가 이전에.

가장 존경하는 작가에게서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뒤늦게 만족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근데 마은찬 작가랑 무슨 일 있었어?”

유라임이 끼어들었다.

“어?”

“엄청 친해진 것 같던데? 아까.”

작품 발표 때 등을 때린 일과 발표를 마치고 끌어안았던 일이 떠올랐다.

“얘 봐. 뭔데. 어?”

* * *

[화이트채플 프리미어 전시회 개막]

[마은찬‧백설기는 누구인가?]

[고수열, “진솔한 미술가다. 모든 작품에서 애정과 고민이 묻어나온다.”]

[치열해진 경매 상황]

14일 런던 경매장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화이트채플 갤러리 프리미어 전시회에 전시 중인 마은찬 작가의 <창작의 고통>이 치열한 경쟁 끝에 50만 파운드에 낙찰되었다.

이 날 마지막까지 경매를 이어간 사람은 세계적인 부호로 알려진 더들리 부부와 찰스 브라움 베를린 필하모닉 악장 그리고 미술가 앙리 마르소다.

앙리 마르소는 마지막 호가에 10만 파운드를 높여 50만 파운드로 <창작의 고통>을 구입했으며, 같은 날 경매에 올라온 백설기 작가의 <화무십일홍> 또한 65만 파운드라는 거액을 들여 낙찰받았다.

영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마은찬‧백설기 작가의 작품은 경매 출품작 16점을 완판하는 기염을 토해내며, 새롭게 주목해야 할 작가로 우뚝 섰다.

화가 고훈은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본 고민을 진솔하게 풀어낸 전시회”라고 말하며 “예술가 마은찬, 백설기의 진면목을 볼 수 있어 기쁘다”는 말을 덧붙였다.

영국과 유럽에 새로운 작가를 소개해 왔던 화이트채플 갤러리는 현재 8만 명을 대동하며 여러 우려 속에서 이번에도 성공 신화를 이어나가고 있다.

* * *

1)마틴 셀리그먼(1942년~).

긍정 심리학, 웰빙 이론, 무력감 이론 등 여러 심리학 이론을 펼친 미국의 학자이다.

작중 장미래의 말은 마틴 셀리그먼의 이론 중 극히 일부를 자의적으로 받아들인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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