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2부 49화
-르네상스-
10. 크리스마스의 기적(1)
가능한 많은 사람이 축하해주는 결혼식으로 그리고 싶었다는 고훈의 말처럼.
<앙리와 미셸의 결혼식>은 치밀하게 계획된 작품이었다.
거울 위에 그린 덕분에 감상자의 얼굴이 그림에 비쳤고.
적당한 위치에 선다면 누구든 앙리와 미셸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관찰자가 그림에 들어서도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앙리 마르소는 고훈의 기발한 발상에 놀랐고, 미셸 플라티니는 고훈이 남편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은 데 기뻐했다.
앙리가 <앙리와 미셸의 결혼식>에 다가갔다.
무슨 접착제를 사용해야 하는지, 비중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거울 위에 물감을 올리고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평소 물감을 두텁게 바르길 즐기는 고훈이 물감을 얇게 여러 번 칠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
앙리가 눈매를 좁혔다.
가까이에서 보니 일부분은 또 임파스토 기법처럼 물감을 부조처럼 활용하였다.
거울 위에 두껍게 바른 유화 물감이 어떻게 고정되어 있는지 의아했다.
“……캔버스잖아.”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던 앙리가 <앙리와 미셸의 결혼식>이 캔버스에 그려진 작품이라는 걸 발견했다.
“맞아요. 전부 거울로 하니까 보관 문제도 있고 물감 고정하는 것도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빈 곳만 잘라내서 거울을 댔어요. 뒤에 볼래요?”
앙리와 미셸이 캔버스 뒤편으로 돌아갔다.
캔버스를 잘라낸 부분에 거울을 댔고, 거울 무게 때문에 캔버스가 망가지는 것을 방지하고자 철사로 위치를 고정되어 있었다.
‘얘는 대체.’
미셸은 새삼 고훈이 대단하게 보였다.
매번 신선한 발상을 떠올리는 것도 신기했으며,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더 나은 활용법을 찾아내는 게 경이롭기까지 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
미셸이 물었다.
“글쎄요.”
고훈이 잠시 고민했다.
본인조차 그 답을 알지 못했기에 명쾌한 답을 줄 순 없었지만, 어떻게 해야 뮤즈가 찾아오는지는 알고 있었다.
“축하받았으면 했거든요. 그것만 생각하며 이것저것 찾아보고 생각하다 보니까 떠올랐어요.”
앙리에게 결혼식 그림을 그려주기로 약속한 순간부터 3개월.
서울에서 <오솔길>을 만들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드라마를 볼 때도 항상 <앙리와 미셸의 결혼식>을 어떻게 그릴지 생각했다.
거울을 활용한다는 아이디어와 앙리의 묘한 표정은 물론, 결혼식장의 샹들리에는 어떻게 빛나고 길을 이룬 꽃잎은 무슨 색으로 칠할지 등.
온통 그림 생각뿐이었다.
“…….”
고훈이 지난 몇 달간 이 그림만을 고민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앙리 마르소는 조용히 손바닥을 내밀었다.
고훈은 그것을 보고 빙그레 웃고는 곧 손뼉을 마주쳤다.
“정말 정성이다. 이거 거울지로 안 하고 두꺼운 거울로 한 이유가 있어? 고정하기 엄청 힘들었을 텐데.”
“거울지요?”
미셸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종이처럼 얇은 거울이 있었음을 몰랐던 고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굴곡이 생기니까 이런 그림에는 적당하지 않아. 선명도도 떨어지고.”
“……그렇다고 해둘게요.”
* * *
[마르소 미술관, 고훈 신작 공개]
[앙리, 미셸 부부의 결혼식. 세상에서 가장 많은 하객이 찾을 예정]
[프란시스코 미로, “놀라운 발상과 끈기.”]
[윌리엄 토마스, “인물들의 내적 심리 상태를 그대로 투영한 걸작.”]
[캐롤라인 스트릭, “모나리자를 연상케 하는 은은한 미소.”]
[고훈, 오솔길에 이어 또 한 번의 대작 발표]
<앙리와 미셸의 결혼식>이 공개되자 언론의 찬사가 쏟아졌다.
미술 애호가들은 그림을 통해서 철저하게 비공개로 진행되었던 앙리 마르소와 미셸 플라티니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며 고훈의 새로운 시도에 감탄했고.
앙리 마르소의 팬들은 그들이 미처 보지 못했던 앙리의 부드러운 표정에 열광했다.
└일렬로 엎드려 있는 강아지들 왤케 귀여움 ㅋㅋㅋㅋㅋ
└천재는 천잰가 보닼ㅋㅋㅋ 어떻게 거울을 넣어서 관람객도 하객처럼 보이게 할 생각을 하지?
└<오솔길>도 그렇고 진짜 발상 자체가 다른 듯.
└앙리 표정 봐. 진짜 사람 눈이 어떻게 저렇게 그윽하냐 ㅠㅠ
└우리 집 고양이가 수술 때문에 하루 금식했는데 수술 마치고 집에 와서 츄르 주니까 울면서 핥아 먹을 때 딱 저런 눈빛이었음.
└?
└그니까. 진짜 눈빛이 대박인데 다들 거울이랑 입술 얘기밖에 안 하네.
└있는데? [링크]
└우리나라 말고. 프랑스 쪽.
└그러게? 눈 이야기 많이 안 나오네. 신기하다.
└표정 볼 때 동양이 눈, 서양이 입 주변을 본다는 얘기가 있던데 그런 것 때문일 듯?
└훈이 그림 예전부터 봤지만 요즘엔 내가 다 뿌듯하다. 프란시스코 미로랑 윌리엄 토마스 다 거장 중의 거장인데 다들 훈이 칭찬만 함.
└나도 훈이 그림 보다가 미술 관심 생겼음.
└요새 미술은 설명 안 들어도 뭔가 오는 게 있더라.
└미술계 흐름이 바뀐 지 좀 됐지.
└어떻게?
└예전에는 미술가들이 대체로 소통에 필요성을 못 느꼈음. 예술은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생각에서. 그걸 가장 잘 드러낸 게 앙리였는데 앙리는 자기가 누군지 끊임없이 탐구했고 그걸로 성공했는데, 고훈은 보는 사람을 작품에 끌어들였음. <여름 너울>도 그렇고 <총탄>도 그렇고 최근에 <오솔길>이랑 <앙리와 미셸의 결혼식>도.
└생각해 보니 그러네?
└둘 다 성격대로 하는 거잖앜ㅋㅋ 앙리는 남들이 자기한테 오도록 했고 고훈은 자기가 먼저 다가간 거네.
└ㅇㅇ 근데 훈이 쪽으로 많이 이동하더라. 앙리처럼 하는 게 더 어려우니까.
└맞아. 다들 훈이 보고 천재라고 하는데 내 눈에는 자기 멋대로 하는데 인기 많은 앙리가 더 천재처럼 보임.
└난 둘이 서로한테 영향을 주고받는 것 같아서 좋던데. 훈이 공간 활용 같은 건 앙리한테서 영향받은 거고. 앙리 최근 작품이 따뜻해진 것은 훈이 영향받은 거잖아.
└둘 다 미친 천재임. 지금 미술계에서 두 사람만큼 파급력 있는 사람 없어. 누가 작품 하나 냈다고 이 난리가 남?
└그렇긴 하지. 마르소 미술관 방문자 수 미쳤던데?
하루 평균 4만여 명을 소화하던 마르소 미술관이 미어터질 정도로 많은 사람이 <앙리와 미셸의 결혼식>을 보고자 몰려들었다.
SNS에는 앙셸 부부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한 인증 사진을 올리는 유행이 번졌고.
두 사람의 결혼식은 고훈이 바랐던 대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하객이 참석한 결혼식이 되었다.
미술계 인사들은 한 점의 작품으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고훈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세계 예술 진흥 협회(WAPA)는 연말을 맞이해 그를 올해의 미술가로 선정하였다.
12월 5일.
고훈이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세계 예술 진흥 협회 본부를 찾았다.
셰바송 씨몽 협회장이 직접 나서서 그를 소개했다.
“위대한 예술가와 동시대에 사는 것만큼 기쁜 일도 없을 겁니다.”
셰바송 씨몽이 주변을 둘러보며 연설을 이어나갔다.
“제가 젊었을 땐 바스키아가 있었고 딸을 얻었을 땐 고수열이 있었습니다. 첫 집을 장만했을 땐 페르디난도 곤잘레스가 있었고 SNBA에 가입할 땐 앙리 마르소가 있었죠. 그리고 지금은 누가 뭐라 해도 이 작가의 시대입니다.”
셰바송 씨몽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중앙 스크린에 <서리 밀밭>, <여름 너울>, <149,597,870.696㎞> 등 고훈의 대표작이 소개되다가 끝에 그 이름이 각인되었다.
짝짝짝짝짝-
미술계 유명인사들이 기꺼이 박수를 보냈다.
셰바송 씨몽이 소개한 대로 지금이 고훈의 시대라는 걸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 오늘의 주인공을 만나 보지요.”
셰바송 씨몽이 고훈을 향해 손을 뻗었다.
고훈은 함성과 갈채를 받으며 단상 위로 올라섰고 씨몽 회장이 직접 건넨 트로피를 받았다.
황금 트로피 아래에는 2034년 올해의 미술가란 문구와 고훈의 이름이 선명히 각인되어 있었다.
마이크 앞에 선 그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친구 결혼 축하했다고 오르기엔 너무 대단한 자리 아닐까 싶네요.”
고훈의 소감에 내빈들이 작게 웃었다.
“하지만 칭찬받을 일이 전혀 없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오솔길은 제가 생각해도 너무 잘했거든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예술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아요. 그럴 때마다 왜 그런 대단한 걸 제게 묻는지 의문인데.”
객석에서 웃음이 번졌다.
“그렇잖아요? 아마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예술이 무엇인지 아는 분이 많진 않을 거예요.”
겸손하게 말하긴 했지만 그 누구도 단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예술에 정통할수록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히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다만 고훈은 왜 예술을 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는 나름의 답을 내리고 있었다.
“적어도 그림 그릴 때 제가 위로받는 것만은 확실하더라고요. 또 어떤 작품을 볼 때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그게 저를 돌아보고, 자신을 받아들이고, 남에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누구나 바라는 바가 있었다.
그것을 자각하고 노력하여 작은 성과를 거두는 성취감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기쁜 일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질 때 더욱 커졌다.
“정말 멋진 상을 주셔서 감사하지만 저는 제가 대단한 작품을 만들었단 생각은 하지 않아요. 대단한 일이란 저와 제 작품을 봐주시는 분 사이에 생긴 교감이죠.”
고훈이 황금 트로피를 들어 보였다.
“이 상은 작품을 봐주신 분들께 주시는 거라 생각하고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짝짝- 짝짝짝짝-
차분히 물결을 이룬 축하의 마음이 고훈에게 닿았다.
* * *
세계 예술 진흥 협회의 시상식을 지켜보던 김지우가 커피를 들이켰다.
쌉싸름한 향이 비강을 타고 올라왔다.
‘진짜 신기하단 말이야.’
김지우는 저 어린 나이에 교만해지지 않는 고훈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WAPA란 큰 단체에서 ‘올해의 미술가’란 명예를 받았음에도 고훈은 본인을 과신하지 않았다.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나라를,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면서도 본인의 작품이 대단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직 작가와 감상자 사이의 교감만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적부터 그랬지.’
모든 사람이 자신을 추켜세우는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미술관.
김지우는 그것이야말로 고훈의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했다.
“뭐 해?”
이인호 기자가 거실로 나왔다.
“아, 어제 시상식이네.”
“응. 정리 좀 할까 싶어서.”
이인호가 피식 웃었다.
“훈이가 알면 놀랄걸. 자기는 17살밖에 안 됐는데 벌써 평전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김지우가 기지개를 켰다.
이인호의 말대로 아직 어린 고훈의 평전을 준비하는 게 우스워 보일지도 몰랐다.
평전은 한 사람의 일생에 평론을 곁들여 적는 전기다 보니 보통 사후에 출판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쩔 수 없어.”
“왜?”
“훈이보다는 내가 빨리 죽을 테니까?”
“아…….”
이인호가 뭐라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망설였다.
“뭘 그래. 별 사고 없으면 그러겠지.”
고훈과 나이 차이가 20살이 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가능하면 끝까지 보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까. 적어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데까지만이라도 확실히 적고 싶어.”
김지우가 잔을 들었다.
“훈이가 무엇을 했고 우리가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
커피 잔으로 가려졌던 신문 기사가 드러났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된 싸움과 증오를 멈추자는 운동의 상징 깃발에 고훈의 해바라기가 그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