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2부 42화
-르네상스-
9. 세상에서 가장 많은 하객이 찾은 결혼식(1)
[고훈, 미술의 새 길을 밝히다]
[서인호, “미술계는 고훈이 제시한 길을 걷고 있다.”]
[캐롤라인 스트릭, “고훈이 최근 서울에서 보인 퍼포먼스는 공공예술이 어떻게 확장되어야 하는지 정확히 지목하고 있다.”]
[비비안 이스트우드‧고훈 콜라보레이션 계약 체결]
[안 페이셰르 웬델 수석 디자이너, “고훈은 이 시대 최고의 컬러리스트.”]
파리로 돌아오자마자 비비안 이스트우드와 협업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금과 수익 분배율은 기존에 이야기 나눴던 대로 10만 유로에 8%를 유지했는데, 덤으로 비비안에서 새로 발족할 레이블 회사의 지분을 5% 얻었다.
현재 가치로는 대략 19만 유로 정도 되는데 새 회사가 성공적으로 상장하면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한다.
다음 달까지 디자인 초안을 넘겨주기로 약속하고.
보기에도 민망한 기사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방태호를 통해 들어오는 인터뷰 요청도 모두 거절한 채 곧장 앙리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준비해야만 했다.
앙리와 미셸의 결혼식이 2주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뉴튜브 스트리밍을 트니 3주 동안 기다린 시청자들이 몰려들어 불 모양 이모티콘을 마구 올려댔다.
└해명해
└2주 전에 올린다던 색깔 이야기는 왜 안 올라오죠?
└오솔길 잘 봤어요!
└훈하
└초심 잃은 훈이 때문에 나 마구 속상함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초심 안 잃었어요. 일단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사과는 새 영상으로 하라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다들 장난스레 말하지만 정말 기다린 것 같아서 미안함에 앞서 기쁘고 고맙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할게요. 아, 근데 색깔 이야기는 좀 미뤄야 해요.”
겨우 진정되었던 채팅창 분위기가 다시 뜨거워졌다.
“사실 앙리랑 미셸 결혼식 그림을 그려주기로 했거든요.”
└아, 결혼하지.
└나도 결혼할 때 훈이 그림 받아보고 싶다
└하객 엄청 많이 가겠지?
└그럴 것 같은데 성격 보면 아무도 안 갈 것 같기도 하고.
└앙리가 개인적 친분 나누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그렇지 엄청 존경받을걸? 인기도 많고.
└농담이얔ㅋㅋㅋ 왤케 진지하게 받아
└그치만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얘가 젤 나빠.
└그런 일이면 좀 늦어져도 어쩔 수 없지. 친구 결혼식인데.
└그거 다 그리면 됨?
“그다음엔 비비안이랑 하는 일이 있어요. 또 그다음엔 아시다시피 르네상스가 있잖아요?”
└형은 대체 뭐가 중요해? 우리야 일이야?
└ㅁㅊㅋㅋㅋㅋㅋㅋㅋ
└헐 이 방에 훈이보다 어린애가 있었어.
└형은 항상 그런 식이야. 말로는 소중하다고 하면서 맨날 외롭게 하고. 나 이제 지쳤어.
└그만해 미친놈앜ㅋㅋㅋㅋㅋ
“외롭지 않게 할게요.”
웃으며 말하니 이응 두 개로 대답한다.
그 모습이 귀여워 또 웃고 말았는데, 아무래도 다음에는 시청자들을 위한 선물이라도 준비해야겠다.
구독자 107만 명에게 모두 선물하려면 통장 잔고가 남아나지 않을 것 같지만 뭔가 좋은 방법은 없을까.
장미래가 이쪽으로는 잘 아니까 의견을 구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다.
“자, 그럼 오늘 방송 시작할게요.”
대충 안부를 나눴으니 본론으로 들어가야 한다.
한시도 낭비할 수 없다.
“오늘부터 일주일 정도는 작업 방송을 하려고 해요. 앙리랑 미셸에게 줄 그림이요.”
약속을 지키려면 이 방법뿐이다.
다만 종일 그림만 그리는 걸 보여주는 것도 따분할 것 같고, 결혼식 그림을 다시금 되뇌고자 이야기 하나를 준비했다.
“결혼식을 그릴 텐데. 그전에 결혼식 그림은 어떻게 그리는지 같이 공부하고 시작하려고 해요. 혹시 결혼식 그림 기억나는 작품 있어요?”
채팅창이 잠시 멈췄다.
“보시면 다들 아, 이거 하는 작품일 거예요.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란 작품입니다.”1)
예상대로 다들 한 번쯤은 본 작품인지 여러 이야기가 올라온다.
그림 이야기를 할 때.
특히 이렇게 멋진 작품을 소개할 때는 괜히 기분이 들뜬다.
“1434년에 그려졌는데. 현재 남아 있는 작품 중에서는 유화로 그려진 가장 오래된 작품이에요.”
르네상스 시기.
화가들은 사실적이고 정밀한 표현을 위해 유화 물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또 상징물을 가장 잘 다룬 작품이기도 하고요. 지금부터 차근차근 어떤 상징물이 있는지 알려드릴게요.”
흰색 펜을 선택해서 빨간 커튼이 달린 침대에 동그라미를 쳤다.
“우선 배경을 둘러볼게요. 침대가 있어서 침실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 당시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는 응접실에 침대를 두는 유행이 있었어요.”
└왜 하필?
└편하게 누우라는 뜻인가?
└아 친구 집 놀러 가면 침대에 눕는 게 예의지 ㅋㅋ.
└진짜 엄청 싫은데.
“응접실이 외부 사람에게 자기 집을 알리는 공간이기도 하잖아요. 당시 사람들은 응접실을 화려하게 꾸밈으로써 돈이 많은 걸 자랑했어요. 고급침대도 그런 의미였어요.”
침대와 소파 아래에 깔린 카펫에 동그라미를 쳤다.
“이 독특한 카펫은 당시로서는 구하기 정말 어려운 물건이었어요. 유럽 기준에서는 동쪽에서 가져온 물건인데 교통이 불편했으니 비쌀 수밖에 없죠. 이런 카펫은 지금도 네덜란드에서는 부유한 느낌의 인테리어 소품으로 많이 사용돼요.”
시선을 옮겨 두 인물이 입고 있는 옷을 가리켰다.
“여성이 입고 있는 옷도 볼게요. 드레스 소매랑 안쪽을 보면 하얗죠? 흰담비 모피를 사용해서 만든 옷이에요. 게다가 치마에 이 장식 보이세요? 대깅이라고 이걸 한땀 한땀 수작업으로 만든 거예요.”2)
└옷 디테일 장난 아니다;;
└확대해서 보니까 모피 털 하나하나 다 표현했네.
└금팔찌도 끼고 있음.
└근데 임신한 거임? 배가 너무 나왔는데
“아, 임산부가 아니라 당시 유행이었어요. 비싼 옷감으로 드레스를 엄청 길게 만들어서 저렇게 잡고 다녔어요. 아래 보시면 바닥을 다 덮고 있잖아요?”
└저 비싼 옷으로 뭐 하는 짓이야
└엄청 불편했을 것 같은데 왜 유행했지?
└돈 많다고 자랑하려고 했나?
“맞아요. 내가 이렇게 비싼 옷감을 많이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어요. 또 저렇게 앞부분은 잡고 있을 수 있지만 뒷부분은 누군가 잡아줘야 하니까 하인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죠.”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지 정답을 맞힌 시청자가 깜짝 놀랐다.
“남자 옷도 비싸긴 마찬가지예요. 남자는 검은담비 모피로 만든 타바드를 입고 있는데 검은담비 모피도 비싼 옷감이었어요. 또 창가에 놓인 오렌지. 이것도 당시 부르고뉴 지방에서는 구하기 힘든 과일이라 비쌌거든요.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는 말할 것도 없고요.”
└ㅋㅋㅋㅋㅋㅋㅋ인제 보니 자기 돈 많다고 엄청 말하고 싶었나 보넼ㅋㅋ
└근데 돈 많은 거 자랑하려고 저런 그림을 의뢰하나?
└그러네. 얀 반 에이크면 당시에도 엄청 유명한 화가 아니었나?
다들 작은 정보로 여러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맞아요. 보통 재력을 과시하려고 이런 그림을 의뢰하진 않죠. 사실 처음에 이 작품을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라고 소개했지만, 다른 여러 제목이 있어요. 아르놀피니의 결혼,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이라고도 불러요.”
결혼식이란 말에 다들 수긍하는 눈치다.
사랑하는 사람과 연을 맺는 중요한 행사니 가급적 화려하게 꾸미고 싶을 테니까.
“결혼식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는 상징을 알아볼게요. 먼저 여기.”
두 사람이 손을 포갠 부분에 동그라미를 쳤다.
“이때는 결혼할 때 손을 잡았어요. 원래는 서로 마주 보고 오른손을 내밀어야 하는데, 지금 남자는 왼손, 여자는 오른손을 내밀고 있죠? 이런 경우를 왼손 결혼이라고 해서 남자와 여자의 신분 차이가 클 때 이렇게 잡았다고 해요.”
└갑자기 팍 식네.
└아니 근데 오렌지부터 진짜 손잡는 것까지 하나하나 의미가 있넼ㅋㅋㅋㅋ
└신분사회 ㅠ
└결혼식 때도 꼭 저렇게 차별을 둬야 했냐…….
같은 생각이다.
“또. 거울 옆에 빗자루 보이세요? 그 빗자루 위의 조각상이 출산을 수호하는 성녀 마르가리타예요.”
작아서 잘 안 보이는 사람들을 위해 확대해 주었다.
“또 두 사람이 신발을 벗고 있어요. 남자의 나무 신발은 왼쪽 아래. 여자의 빨간 신발은 소파 아래 있죠. 보통 실내에서 신발을 벗지 않는데 예외가 있어요. 아주 특별한 공간에 들어서거나 의식을 치를 때는 신발을 벗었어요.”
지금도 비슷한 문화가 있기에 다들 금방 수긍했다.
“마지막으로 샹들리에를 보면 초가 하나만 켜져 있죠? 촛불 하나는 신, 즉, 하나님의 눈으로 해석되어서 신이 바라보는 가운데 두 사람이 서약을 맺는다고 볼 수 있어요. 결혼이죠.”
└교수님 오늘 수업 너무 어려워요.
└진도 천천히 좀 해주세요ㅠ
└한줄요약: 돈 많은 사람이 결혼하는 그림이다.
└앙리랑 미셸이넼ㅋㅋㅋㅋㅋ
“재밌는 이야기는 지금부터예요.”
창문 밖으로 보이는 열매를 확대해 보여주었다.
“이거. 체리 나무인데 열매가 달려 있죠? 여름에 나는 과일인데 모피 옷을 입고 있는 게 이상하지 않아요?”
└그르네?
└왜지?
└저 옷이 제일 좋은 옷이었나?
└아무리 그래도 한여름에 털옷 입나? 부잔데?
“또 하나 여쭤볼게요. 혹시 정면에 있는 거울 테두리에 10개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보이세요?”
그림을 확대해서 보여주니 시청자들이 뭔가 그려져 있는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고화질 원본 사진을 본다면 좀 더 확실히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거울 테두리에 그려 넣은 10개의 그림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표현한 거예요. 12시 방향에서 시계방향으로 5개는 예수의 죽음을. 6시 방향에서 시계방향으로 5개는 예수의 삶을 의미하죠. 이게 실제 그림으로 보면 엄청나게 작은 크기인데 모두 알아볼 수 있도록 섬세하게 그렸어요.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뜻이에요.”
└맞네. 여자 쪽은 예수의 죽음이고 남자 쪽은 예수가 살아 있을 때 장면이네.
└고글에 고화질 사진 찾아서 보니까 진짜 그려져 있음ㅋㅋㅋㅋㅋ
└이런 걸 대체 어떻게 찾아내지?
이 작품 하나를 해석하는 논문만 수백 개에 이른다.
“또. 두 사람 가운데 귀여운 강아지가 있죠? 보통 여성의 무덤에 개를 조각해 두었어요. 수호의 의미로요.”
└ㅁㅊ
└나 지금 되게 이상한 기분 들었어.
└설마 진짜야?
“맞아요. 사실 이 그림은 남편이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의뢰한 그림이에요.”3)
얀 반 에이크의 천재성은 여기서 드러난다.
“그림을 잘 보시면 각 물체의 세부 묘사는 지금 화가들도 따라하기 힘들 정도로 정밀해요. 옷감에 따른 질감이라든가, 나무 바닥과 나무 신발, 오렌지 표면, 샹들리에의 반사광, 거울 옆 진주가 빛을 받아들이는 각도, 심지어 강아지 눈동자까지 빛이 어떻게 들어오는지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어요.”
지금까지 짚었던 모든 상징물에 동그라미를 쳤다.
“이렇게 사실적 묘사에 뛰어난 얀 반 에이크가 각 상징물에는 각기 다른 소실점을 부여했어요. 원근법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거죠.”
가운데 소파가 아래로 갈수록 길어지는 점.
두 인물의 하체가 늘어나 보이는 점 등 자세히 보면 원근법에 문제가 많다.
“사실적인 묘사와 어그러진 원근법. 이로 인해 그림 속 방은 현실이 아닌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켜요.”
그러나 그 모든 게 얀 반 에이크의 의도였다.
죽은 아내와의 결혼식을 표현하니,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답게 그렸으나 그것이 현실이 아님을 알리고자 여러 상징물을 기용했고 동시에 원근법을 의도적으로 뒤튼 것이다.
“마지막으로 얀 반 에이크의 상냥함이 돋보이는 부분이 둘 있어요.”
그림 가운데 거울 위를 가리켰다.
“johannes de syck fuit hic. 얀 반 에이크가 여기에 있었다라는 말이에요.”
실제로 존재할 수 없는 결혼식에 얀 반 에이크는 본인이 있었다고 적어두었다.
아내를 먼저 잃은 남편을 위해.
두 사람의 결혼식을 축하하고자 스스로 하객이 된 것이다.
“두 번째는 가운데 거울이에요. 보시면 부부의 앞에 두 사람이 있는 걸 볼 수 있어요. 한 사람은 아마 얀 반 에이크일 것이다. 다른 사람은 아마 이 그림을 보고 계신 여러분일 거예요.”
거울을 확대해서 보여주니 다들 파란 옷과 빨간 옷을 입은 두 사람을 발견하고 놀란다.
“얀 반 에이크는 이 두 사람의 결혼식에 가능한 많은 하객이 찾아와 주길 바랐어요. 그래서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하객처럼 기능하도록 그린 거죠.”
덕분에 그림의 주인공인 조반니 디 니콜라오 아르놀피니와 코스탄자 트렌타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하객을 받은 부부가 되었다.
이 얼마나 따뜻한 마음인가.
얀 반 에이크를 본받아 내 둘도 없는 친구의 결혼식을 축하해야 할 것이다.
* * *
1)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오크 화판에 유화, 1434
2)Dagging. 옷 가장자리 장식. 유럽에서 1340년대에 시작되어 15세기 말까지 가운의 밑단, 소매, 옷 가장자리 등에 만든 장식.
옷을 접어서 바느질한 후 나뭇잎 모양이나 톱니 모양으로 잘라냈다.
3)마가렛 코스터는 2003년 그림 속 여자가 조반니 디 니콜라오 아르놀피니의 첫 번째 아내 코스탄자 트렌타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다시 태어난 반 고흐>에서는 마가렛 코스터의 가설이 옳다는 가정에서 서술되었고 이는 여러 추측 중 하나일 뿐 사실로 확정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