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2부 39화
-르네상스-
8. 그가 내린 결말(6)
고훈과 차시현의 <오솔길>을 찾는 사람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생전 처음 보는 신기술 개벽.
세계적인 거장과 어깨를 나란히 한 천재 예술가를 향한 호기심.
도심 속에 갑자기 나타난 숲.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현실로 옮겨놓은 듯한 광경까지.
관찰자 입장에서 바라만 보다가 작품 안으로 들어서서 경험할 수 있게 되니 너도나도 <오솔길>을 찾게 되었다.
SNS는 <오솔길>을 방문한 인증 사진으로 가득했고 뉴튜브, 블로그 등 1인 매체 또한 <오솔길>을 찾은 경험담이 속속들이 올라왔다.
└오솔길 가본 사람 있어? 안 가봤으면 진짜 꼭 가봐
└ㅋㅋㅋㅋ난리던데? 소풍 간 사람 엄청 많음.
└4일 만에 그런 걸 어떻게 만들었는지 너무 신기하더라
└개벽 덕분이라고 하던데. 그리면 바로 만들어 준대.
└갔는데 기분만 상하고 돌아옴. 애들이고 어른이고 나뭇가지 부러뜨리고. 감상을 하자는 건지 훼손하자는 건지.
└그거 훈이가 아무 상관 없다고 땅땅 결론 내렸음.
└[기사 링크]
└[고훈, “산에 가면 부러진 나뭇가지는 흔하게 볼 수 있잖아요. 찾아와 주신 분들이 오솔길을 더 그럴듯하게 만들어 주시는 거예요.”]
└우리 핑구 어쩌면 말도 저리 이쁘게 하니 ㅠ
└그거 개웃기던뎈ㅋㅋㅋ 회사에서 주말에 단풍 구경 가자고 했는데 등산하기 싫은 사원들이 오솔길 보러 가자고 했단 겈ㅋㅋㅋ
└나도 봄ㅋㅋㅋㅋㅋ 부장님 얼탱 털렸을 듯ㅋㅋㅋㅋ
└근데 왜 고흐 풍으로 했지?
└훈이 아주 어렸을 땐 반 고흐 느낌 많이 나긴 했는데. 영향을 많이 받은 듯.
└한국 사람한테 가장 익숙한 화풍이라서 그랬대. 예술이 공공 영역에 들어서도 충분히 아름답고 즐길 수 있다는 걸 알리려고.
└지금 미술계 돌아가는 꼬라지 보면 공공예술이고 지원금이고 싹 다 없애면 좋겠는데, 훈이 오솔길 보면 또 괜찮은 것 같고.
└걍 능력 차이임. 훈이 정도 되는 사람이 하면 좋고, 실력 없고 눈치 없고 센스 없는 사람이 하면 흉물되는 거지. 뭐.
갑작스레 번진 유행이 증명하듯 시민들은 <오솔길>을 즐기고 있었다.
일상에 찾아온 휴식을 새롭게 경험하고 가족, 친구, 연인 혹은 혼자만의 시간을 더욱 풍요롭게 보낼 수 있었다.
미술계에서도 고훈이 보여준 가능성에 기대어 목소리를 내었다.
“서울광장에 가보셨습니까? 고훈 작가의 오솔길을 보려고 다녀간 사람이 백만 명이 넘었답니다. 이래도 공공예술이 쓸모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연일 이어진 토론에서도 고훈의 <오솔길>을 언급하는 경우가 빈번해졌고.
공공예술을 없애야 한다는 공공예술 비효용론자들의 주장은 점차 힘을 잃어갔다.
“한때는 분위기가 막 쏠려서 어찌 되나 걱정했는데. 참. 훈이가 진짜 큰일 했어.”
고수열, 고훈, 장미래, 마은찬, 백설기 등 황금세대를 이루어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참여했던 유라임이 기지개를 켰다.
자칫 잘못했다간 공공예술 자체가 사라질 순간에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대응한 고훈이 대견하고 대단해 보였다.
함께 있던 친구 백설기가 뭐라 대꾸하지 않자 유라임이 고개를 돌렸다.
“야.”
“…….”
“백설기.”
“어?”
유라임이 안타깝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백설기는 최규서가 자살한 뒤로 넋을 놓고 있을 때가 많아졌다.
“그만 잊어. 널 그렇게 괴롭혔는데 뭐 하러 그래.”
“알아. 아는데.”
백설기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죽었다고 생각하니까 뭔가 좀 그래. 막 안타깝다 그런 게 아니라. 뭐라 설명이 안 되네.”
여러 감정이 뒤섞인 가운데 일말의 인정이 남았을 뿐이었다.
“에휴. 그래. 뭐, 사람 죽었는데 잘 죽었다 하는 것도 이상하지. 기운 내.”
“힘들고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 마. 해야 할 일도 있고.”
친구의 대답에 유라임이 안심했다.
예술인 조합 내 의견이 분분한 지금, 장미래에게 힘을 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다행히 고훈의 <오솔길>로 공공예술이 불필요하다는 의견은 달랬으니, 조합원을 설득해 부패 방지를 위한 개혁에 앞장서야 했다.
“그래. 반드시 해야지.”
“응.”
“그전에.”
“그전에?”
“오솔길 보러 가자. 미래 언니 데리고. 먹을 것도 사서.”
유라임의 제안에 백설기가 웃었다.
확실히 개벽으로 만들어낸 공간이 어떤지 보고 싶고, 또 최근 여러 문제로 지친 장미래를 위해서라도 그러는 게 좋아 보였다.
* * *
단 며칠 사이에 수백만 명이 다녀간 <오솔길>은 단 이틀만 유지될 수 있었다.
장소 대여 계약에 따르면 고훈은 25일 새벽 6시까지 <오솔길>을 폐기하고 서울광장 잔디밭을 그전 모습으로 돌려놓아야 했다.
9월 23일 토요일 오후 3시.
고훈이 <오솔길>을 찾은 사람들 앞에 나섰다.
“안녕하세요.”
취재를 나왔던 사람들은 고훈이 모습을 드러내자 곧장 카메라를 돌렸다.
“우선 제 생각 이상으로 많이 찾아와 주셔서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고훈이 고개 숙여 인사하자 어리둥절하던 사람들이 박수로 화답했다.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겨 다들 의아해하셨을 텐데. 예상하신 대로 오솔길은 현재 공공예술에 관련한 문제 때문에 만든 작품입니다.”
고훈은 5년 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10년에 한 번, 마을 사람들과 동화될 예술 작품을 만드는 행사는 어느새 전 유럽이 사랑하는 축제가 되었다.
개중에는 물론 환영받지 못하는 작품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시민과 함께 뮌스터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저는 항상 고민했습니다. 현대미술을 향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저조차 이상하다 싶은 작품이 있고 그것이 그 작품의 문제인지, 제 편견 때문인지 확실히 알 수 없었던 탓입니다.”
너무나 많은 예술 작품이 계속해서 태어났고, 그중에는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도, 이해할 수 없는 작품도 있었다.
또 사기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무엇인가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분명해서 여러분께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예술은 혐오스럽거나 여러분을 불편하게 만드는 게 아니에요.”
고훈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짧게나마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 한 명, 한 명과 시선을 교환했다.
“오솔길이 여러분께 편안함을 드렸나요?”
“네!”
“좋아요!”
오솔길을 찾았던 사람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그 목소리들이 고훈을 벅차게 했다.
시민들이 공공예술이 불필요하지 않음을 가슴으로 느끼는 듯해 다행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고훈이 다시 한번 인사하자 시민들이 또 한 번 박수를 보냈다.
바쁜 일상에 치일 때, 지나가다가 언뜻 눈에 들어온 비일상이 주는 해방감.
<오솔길>이 주는 비현실적인 이미지 가운데 묘한 편안함이 좋았다.
이러한 장소를 마련해 준 고훈을 향한 고마움과 감동을 가득 담아 손뼉을 쳤다.
“이제 이틀 뒤. 월요일 아침 6시면 오솔길은 철거되게 됩니다.”
고훈의 발언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오솔길은 제가 사비를 들여 장소를 임대하고, 한시적으로 설치한 작품입니다.”
고훈이 <오솔길>을 만든 두 번째 이유를 밝히기 시작했다.
“지자체나 정부가 시행하는 공공예술 사업은 관련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저는 그럴 자격이 없거든요.”
시민들은 황당했다.
전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고훈이 공공예술을 할 자격이 없다면 누구에게 자격이 있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공공예술을 할 수 있는 건 종합건설업 면허를 가진 전문업체뿐입니다. 그중에서도 산업 디자인이나 종합 디자인 분야로 신고된 곳뿐이죠.”
“무슨 말이야?”
“그럼 지금까지 만들어진 공공예술은 뭔데?”
좌중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맞아요.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뤄지는 공공예술은 예술가가 아니라, 특정 업체를 통해서만 이뤄지고 있습니다.”
취재 나온 기자들이 내심 쾌재를 불렀다.
시민들이 <오솔길>을 어떻게 즐기는지 중계차 나왔는데, 갑작스레 특종을 잡게 되었다.
“몇몇 업체가 수십 년간 독점해 온 공공예술 사업은 분명 실패했습니다. 여러분이 느끼셨던 그 불편함은 지원금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흉물이었습니다. 여러분을 위한 예술이 아니었고 예술을 위한 예술도 아니었습니다. 이권을 챙기기 위한 이들만을 위한 흉물이었습니다.”
고훈의 발언이 너무나 직설적이라 자리에 있던 기자들은 크게 놀랐다.
고작 17살 먹은 소년이 사회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예술이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여러분을 향해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지금은 비록 이 장소가 사라지지만, 다음에 만들어질 공공예술은 여러분의 손으로 지켜주세요.”
<오솔길>이 큰 사랑을 받을수록 그것이 철거되는 충격은 클 터였다.
고훈은 최선을 다해 <오솔길>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예술이 주는 여러 즐거움을 알리고.
그것을 스스로 철거함으로써 공공조형물을 둘러싼 규정의 허점과 현상의 부정을 고발하고자 했다.
그러한 의도는 생중계를 나섰던 여러 방송국을 통해 실시간으로 알려졌고.
미술계 전체를 향했던 비난 여론은 곧 부패 세력을 겨냥하게 되었다.
* * *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자마저 참여하지 못하는 공공예술 관련 규정]
[오솔길 25일 새벽 6시에 철거 예정]
[세계적 예술가의 간절한 읍소]
[고훈, “예술이 올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도와주세요. 여러분을 향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토요일 오후 3시, 전국에 방영된 고훈의 연설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여태 흉측하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공공조형물이 폐지를 주장하던 사람들은 크게 충격받았다.
└아니, 훈이가 못 하면 우리나라에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함?
└내 말이.
└예술가가 아니라 건설 업체가 했다잖아. 제정신이 아닌 거야.
└그러니까 즐거움도 감동도 의미도 없는 걸 만들었겠지.
└결국 국가 사업, 지자체 사업을 몇몇 업체가 돌아가며 챙겼던 거네.
└나 좀 이해가 안 돼. 무슨 유명한 예술가가 만든 것도 있었잖아.
└아~주 가끔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예술가가 있기도 했고, 아니면 업체가 돈 몇 푼 쥐여 주고 잠시 고용한 거기도 함.
└이름값만 산 거네?
└ㅇㅇ
└ㅅㅂ 나라 꼬라지 봐라
└아니, 그건 그렇고 오솔길 철거하지 말라고.
└그러니까. 서울시가 생각이 있으면 다른 건 다 없애도 오솔길은 남겨놔야지.
└우리나라 공공예술 중에 오솔길보다 상징성 있는 작품이 또 있나?
└그런 건 모르겠고 내가 못 가봤음. 제발 좀 유지해 주라 ㅠㅠ
“됐어.”
여론을 살피던 방태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고훈이 원하던 대로 시민들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정확히 인식하고 반응하고 있었다.
수많은 전문가가 토론회에 나서서 주장했던 것보다 <오솔길>을 통해서 전달한 메시지가 더욱 명확했다.
고훈이야말로 진정 작품으로 말하는 예술가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 됐습니다. 훈이 생각대로 됐어요.”
“음.”
미술계 부패 청산과 공공예술 존폐가 달린 중요한 시기에 고군분투하던 고수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진중하여, 방태호는 아직 모든 일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리 김칫국을 마신 것 같아 머쓱해졌다.
“물론 기쁜 일이지.”
고수열이 입을 열었다.
“예. 선생님.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아직.”
“하나 우리 훈이 오솔길이 철거되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방태호가 순간 멈칫했다.
“예?”
“그러지 않나. 자네도 보지 않았나. 내 손자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참으로 잘 만들었어.”
“…….”
고수열이 손자바보였단 걸 잠시 잊었던 방태호가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그렇죠. 하하. 다들 아쉬워하더라고요. 심지어 서울시청 홈페이지에 철거하지 말라는 글도 올린다고 합니다.”
“끄응. 아까워. 참 아깝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