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363화 (363/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2부 37화

-르네상스-

8. 그가 내린 결말(4)

2020년 프랑스의 항공산업 투자를 시작으로 개발에 착수.1)

2032년에 출고된 몽모랑시 AP-1은 현대 항공 기계, 항공 시스템, 항공 우주 공학을 집대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전장 106m, 전폭 100m, 전고 28m, 총적재량 575,000㎏, 최대 항속거리 13,000㎞.

항공기 역사상 가장 큰 전략‧전술 수송기 몽모랑시 AP-1의 착지 과정은 마치 하늘에서 고층 빌딩이 내려온 듯했다.

공항 직원과 방태호는 격납고로 들어선 몽모랑시를 올려다본 채 굳어버렸다.

고훈과 차시현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체 뭘 부른 거야?”

차시현이 고훈에게 물었다.

“……모르겠어.”

설마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 몰랐던 고훈이 눈만 껌뻑이다가 수송 책임자가 다가와 인사하자 정신을 차렸다.

“반갑습니다, 고훈. 개벽 수송을 맡은 에반 푸르니에입니다.”

두 사람이 악수를 나누었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바로 이동 가능할까요?”

“물론이죠.”

방태호가 섭외해 둔 한국 운송사와 에반 푸르니에가 이끄는 수송팀, 개벽 개발진 등 백여 명이 협력해 개벽을 트레일러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방태호가 중얼거렸다.

“나중에 우주 가고 싶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뭐라고 하셨어요?”

“아니. 아무것도.”

방태호가 당황하여 고개를 저었다.

“마르소 씨 대단하다고. 이런 걸 보낼 줄이야.”

“대단하죠.”

“너도 마찬가지고. 그런 일은 생각도 못 했어.”

“할 수 있는 일은 해야죠. 다들 싸우는데.”

고훈의 단호한 태도에 방태호가 작게 웃었다.

앙리 마르소, 장미래와 같이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건 아니나, 고훈이 하려는 일이야말로 예술가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 그럼 서울광장 앞으로 옮겨달라고 할게.”

“네.”

* * *

운송업체 직원들이 서울광장 잔디밭에 개벽을 설치해 주고 있다.

예상보다 시간이 덜 걸렸고 이동 중에 사고도 없었다. 업계 최고 업체에 의뢰한 보람이 있다.

“여길 다 빌린 거야?”

차시현이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잔디밭만 빌린 거야.”

갑자기 대형 트레일러가 나타난 탓인지 사람이 벌써 많이 모였다.

서울시청 앞 광장이니 어느 정도 이목을 끌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일 줄은 몰랐다.

“며칠 빌렸어?”

“일주일.”

“히이. 돈 엄청 많이 들었겠다.”

2시간 대여료가 15만 원이고 18시부터 다음 날 06시까지는 30%가 더 붙어서 하루에 2,070,000원.

일주일 합산 1,449만 원이 들었다고 알려주니 차시현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2)

“왜?”

“난 갤러리 일주일 빌리는데 천만 원 들었는데. 여기서 할 걸 그랬어.”

정산할 때는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시현이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그렇다.

서울시청 앞이라는 집중된 장소를 일주일 동안 사용하는 데 1,400만 원이면 그리 비싸다고 할 수 없다.

“1,400만 원뿐이겠어?”

방태호가 다가왔다.

“일주일 내내 작품 지켜줄 업체 고용했지. 당장 오늘부터 홍보도 들어가지. 또 개벽도 공항에서 여기까지 옮겼잖아.”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보험까지 들었고 모두 3억 원 정도 들었다.

“일주일 전시하는 데 3억?”

“마르소 씨 덕분에 그 정도로 멈췄지.”

방태호의 말대로다.

개벽 대여료, 특히 그 괴물 같은 수송기의 사용료를 지불하게 됐다면 나라도 타격이 컸을 텐데 앙리 덕분에 싸게 먹혔다.

“지금부터 할 일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아. 오히려 그 돈으로 해낼 수 있으면 싼 편이지.”

“뭐 할 건데?”

“조형물 만들 거야.”

“공공조형물은 허가 필요하다며.”

며칠 전에 이야기했던 내용을 잘 기억하고 있다.

“그건 국가나 지자체에서 입찰을 열 때 일이야. 내가 땅 빌려서 만든다는 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

“아.”

“훈아,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잔디 조심해야 해.”

“네. 걱정 마세요.”

방태호가 잔디를 훼손하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 시민들의 시야, 이동을 방해하면 안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서울광장을 대여하는 데 조건이 몇 있는데, 이를 어기면 추가로 비용이 나가게 된다.

이미 상당한 비용을 지출했으니 불필요하게 돈이 새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아서 운송업체에도 단단히 일러두었다.

“근데 여기 계속 빌릴 순 없잖아. 일주일 뒤에는 철거해야 하는 거 아니야?”

차시현이 핵심을 찔렀다.

“그거야.”

“응?”

“아주 멋진 공간을 만들어서 시민들한테 제대로 된 예술품이 주는 즐거움을 알리는 거야.”

“지금 공공예술 이미지가 나쁘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시장을 독점한 기업이나 지원금을 목적으로 한 가짜 예술인이 아니라, 진짜 예술가가 공간을 어떻게 조성하는지 보여줄 거다.

“또 나는 이런 조형물을 만들어도 유지할 수 없다는 것도 알릴 수 있고.”

잠시 고민하던 차시현이 스스로 답을 찾아냈다.

“아. 그러네. 공공조형물 입찰 조건이 부당한 것도 말할 수 있겠다.”

똑똑한 녀석답게 금방 이해한다.

내가 만든 공간을 스스로 철거함으로써 현행 규정으로는 유명한 예술인이 만든 예술품조차 존속할 수 없음을 알릴 것이다.

“설치 끝났습니다!”

개벽을 설치해 주려고 파리에서부터 날아온 개발진이 소리쳤다.

모서리 길이가 6.2m인 정육면체와 컴퓨터가 연결되어 있다.

앙리의 작업실에 있던 개벽이 서울광장 잔디밭 한가운데에 그대로 옮겨져 있어 만족스럽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

개발진과 운송업체 직원들이 믿음직스럽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그럼 난 일 보러 갈게. 정리할 게 많아서.”

“네. 부탁드려요.”

방태호가 운송업체, 개벽 개발진들과 남은 일을 처리하고자 자리를 떴다.

서울광장 대여부터 잔업까지 신경 쓸 일이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 잘 처리해 주어서 고맙다.

아마 방태호가 없었더라면 시도해 보기도 전에 지쳤을 거다.

“그럼 이제 저걸로 그림 그리는 거야?”

차시현이 개벽을 가리키길래 그쪽으로 발을 옮기며 대답했다.

“응. 혼자서 다 하기는 힘드니까 너도 도와줘.”

“내가? 한 번도 안 써 봤는데?”

깜짝 놀라 되묻는다.

“게임 하는 거랑 똑같아. 금방 익숙해질 거야.”

“그래도. 너희 할아버지가 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

“할아버지는 멀미 때문에 못 하셔. 미래 이모는 바쁘고. 너밖에 없어.”

“으음. 난 좀 걱정돼.”

“그럴 필요 없어. 하던 대로 하면 되니까.”

“아무거나 그려도 돼?”

“그건 아니야. 숲을 꾸민다고 생각해 줘. 일단 VR 쓰고 들어가서 이야기해 줄게.”

서울광장을 찾은 사람에게 나 빈센트 반 고흐의 캔버스를 여행할 기회를 주려고 한다.

차시현이 볼을 부풀리곤 고민한다.

갑자기 공개된 장소에서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니 부담스러운가 보다.

“나 아직도 잘 모르겠어. VR 쓰고 그리면 현실에서는 어떻게 되는데?”

“저 정육면체 보이지?”

“응.”

“저기서 똑같이 만들어 줘.”

“3D 프린터 같은 거야?”

“달라. 3D 프린터는 적층해서 만들잖아. 개벽은 모서리랑 벽에 촘촘하게 분사구가 있는데 그게 움직이면서 바로 조형을 만들어.”

“……어떻게?”

어깨를 으쓱였다.

앙리에게 설명을 듣긴 했지만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미셸이나 방태호도 과학기술보다는 마법 같다고 말했다.

“자.”

차시현에게 개벽 컨트롤러와 헤드셋을 넘겨주었다.

“하나 그리고 기다렸다가 조형물 옮기고. 또 하나 그리고 반복할 거야.”

“나 이해가 안 돼.”

“해보면 알아.”

* * *

2034년 9월 20일.

서울시청 앞 잔디광장에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틀 전,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예술가 고훈이 거대 트레일러를 대동해 이동시킨 ‘개벽’으로 단풍나무, 은행나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개벽에서 완성된 조형물은 마치 캔버스에 있는 그림을 현실로 꺼낸 듯했고.

서울 한복판에서 이뤄지는 마술 같은 광경에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저게 뭐야?”

“개벽이래. 앙리가 만든 거.”

“저기 훈이가 뭐 쓰고 그림 그리고 있잖아. 그게 저 안에서 만들어지는 거래. 실시간으로.”

“마술 아니야? 어떻게 저렇게 빨리 나와?”

“그러니까.”

개벽으로 만들어진 조형물은 물감의 형태와 질감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었다.

“평면에 그린다고 생각하면 안 돼. 뼈대부터 잡고 물감을 입혀 봐.”

“너무 어려워.”

이틀 동안 작업했지만 차시현은 도무지 새로운 방식에 적응할 수 없었다.

단면이 아니라 부피로 표현해야 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익숙하지 않은 빈센트 반 고흐의 화풍으로 그리려고 하니 좀처럼 감을 잡지 못했다.

“이렇게 해봐.”

“이렇게?”

“아니. 이렇게.”

“이렇게?”

“아니. 이렇게라니까?”

“이렇게가 대체 뭔데!”

고등학생 나이의 두 소년이 광장 한복판에서 VR헤드셋을 끼고 허우적대며 티격태격하는 모습 또한 볼거리였다.

“어려우면 필터 설정 들어가 봐.”

“필터 설정?”

“임파스토라고 있을 거야.”

“어……. 이거?”

“그래.”

“아, 된다. 빨리 말해줬으면 됐잖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리고 필터 쓰면 세밀한 표현이 안 된단 말이야. 아, 그거 그렇게 하면 안 돼.”

“나 안 해.”

“조금만 더 하면 돼.”

“안 할 거야. 맨날 혼내기만 하고.”

“알았어. 미안. 이것만 하고 프라페 먹자.”

“…….”

“크로플도.”

“두 개 먹을래.”

“그래. 그래.”

* * *

1)프랑스 항공산업에 20조 투입...“우주전쟁 뒤질 수 없다”, 아주경제, 윤은숙, 2020.06.09.

몽모랑시는 가상의 수송기.

2)서울광장 잔디광장 사용면적은 최소 500㎡에서 최대 6,449㎡.

면적에 따른 사용료는 2021년 기준 2시간에 최소 1만 원에서 최대 12만 8,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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