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362화 (362/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2부 36화

-르네상스-

8. 그가 내린 결말(3)

[최규서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들]

[고려당 이성진 의원, 자녀 공공예술사업 비리 연루]

[신라당 박혜영 의원, 고양시 환경조성 사업 기금 횡령]

[최만수 그는 누구인가]

[고수열의 통렬한 비판 “예술가와 시민을 기만하는 행위”]

[장미래, “기필코 바로잡겠습니다.”]

[한국화의 대가로 알려진 정일례 부정 수령한 창작지원금 19억 원에 달해]

[공공 예술품, 예술가가 만드는 게 아니다?]

한국 예술인 조합이 마침내 칼을 빼 들었다.

장미래는 최규서가 남긴 명단에 해당하는 천여 명을 고발했고 대한일보는 이들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실명 공개했다.

충격은 극심했다.

유명 예술인은 물론, 정‧재계를 아울러 존경받는 인사가 대거 연루되어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진짜 환멸 난다.

└정일례 개역겹네 ㅅㅂ 젊은 사람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녔으면서 뒤에서는 돈 챙긴 거잖아

└저번에 다 끝난 거 아니었어?

└세금으로 지들 배때지나 채우고 있었네 개같은 놈들

└이럴 거면 예술 지원금 다 없애라고. 예술 같지도 않은 거 만드는 놈들한테 뭔 지원금이야.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님. 어려운 상황에서 열심히 하는 사람들 있잖아. 그런 사람 위해서 만든 건데 없애면 어떡해. 잘 돌아가도록 개선을 해야지.

└너 돈 받아먹었지?

└애초에 공공예술 혐오스러운 거 다들 공감하지 않나? 그딴 데 수십, 수백억 원 쓸 거면 차라리 그 돈으로 진짜 어려운 사람 도와주라고.

수십 년 동안 수백억 원의 세금이 특정 인원을 위해 사용되었단 사실에 국민 여론은 들끓었다.

예술인 일부는 예술 창작 지원금의 본래 취지를 알리며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과열된 여론을 달래기는커녕 도리어 화를 키울 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장미래 조합장은 예술인들의 의견을 모으려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여러분, 지금은 힘을 모아서 뿌리 내린 폐단을 뽑아내야 할 때입니다.”

장미래가 조합원들을 앞에 두고 강력히 주창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창작 지원 사업이 사라질 판이에요.”

“당장 지원금이 사라지면 거리에 나앉을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아십니까?”

“어휴. 왜 상의도 없이 일을 벌여서는.”

“이보세요, 박 교수! 지금 누구한테 한 말입니까!”

“누구한테 하는 말이겠습니까?”

박 교수가 장미래를 보자 조합원들이 벌떡 일어섰다.

“너, 박상식이! 입조심해! 네 아들도 명단에 있더만 무슨 낯짝으로 여기 와 있어!”

“뭐?”

회의장에 고성이 오가기 시작했다.

예술계를 향한 실망과 분노로 인해 국가 지원금을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는 터라 모두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탕!

장미래가 책상을 내려쳤다.

“진정하세요!”

최규서가 예상한 대로 모든 게 엉망이었다.

당장 조합 회원 중에서도 부정한 일에 일조해 득을 본 사람이 있었고, 개혁보다는 지원금이 폐지되는 걸 걱정하는 이가 상당수였다.

그러나 더는 물러날 수 없었다.

“오늘 여러분을 모신 이유는 관련 명단에 명시된 인원과 그 관계자를 퇴출하기 위함입니다.”

“아니, 누구 마음대로 퇴출한다는 거야?”

“말 가려서 하세요!”

장미래가 박상식 교수를 노려보았다.

정년을 바라보는 박상식은 스무 살 이상 차이가 나는 대선배였으나, 장미래는 그가 더 이상 미술계의 어른으로 보이지 않았다.

“당신 같은 쓰레기를 처리하러 모였다고 했어요. 내쫓기든가 얌전히 나가세요.”

박상식과 몇몇 사람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합원 대부분이 경멸의 눈초리로 노려보고 있었다.

“허. 참. 벌써 작당질이 다 끝난 모양이네. 어디 잘 되나 봅시다. 어?”

박상식은 이번 일도 4년 전과 별다르지 않으리라 믿었다.

예술인뿐만 아니라 정계와 재계 유력 인사가 다수 연루된 사건이었다.

여론이 들끓긴 하나 천 명 이상이 고발되었으니, 집중된 사람이 나타나게 마련.

그들만 처벌받으면 나머지는 조용히 묻어갈 수 있다고 믿었다.

박상식과 몇몇 사람이 회의장을 떠나자 장미래가 숨을 몰아쉬고는 다시금 회의를 이끌었다.

“창작 지원금 문제는 이 일을 해결한 뒤에 생각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때 가면 이미 늦습니다.”

“그래요. 같이 해결할 생각을 해야지, 나중에 폐지로 가닥이 잡히면 돌릴 수가 없어요.”

“지금 국민들이 전부 지원금 없애라고 하는데 그걸 반대하면 누가 우리 편을 들어주겠습니까.”

조합원들이 또다시 앞다투어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너무나 많은 문제를 앞둔 장미래는 당장에라도 쓰러지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누르며 좌중을 진정시켰다.

“여러분의 의견은 잘 알고 있습니다.”

조합원들이 헛기침을 하며 장미래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고 또 어느 분의 생각도 틀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당면한 과제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겠죠.”

“음.”

“그러니 가장 중요한 문제부터 해결하자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힘을 모으지 않으면 저들을 영원히 내쫓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은 다들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 * *

“뭐 봐?”

차시현이 턱을 받치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공공조형물 입찰 방법.”

“조형물 만들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그건 왜 봐?”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공공조형물에 들어가는 지원금이 부당하게 사용된다고 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찾아보려고.”

“아. 요즘 그 이야기 많이 하더라. 왜 그런지 알겠어?”

“응.”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황당하기 짝이 없다.

이런 환경이니 흔히들 말하는 식으로 물이 고일 수밖에 없다.

“공공조형물은 지자체에서 공개 입찰을 걸어서 진행돼.”

“공개 입찰이면 보는 사람이 많지 않아?”

“맞아. 자격이랑 선정 기준도 빡빡하고.”

“그럼 이상하잖아. 공개 입찰에 조건도 까다로우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돈을 빼돌린 거야?”

나도 차시현과 같은 의문을 가져서 찾아봤는데, 답은 너무나 간단했다.

“자격이랑 선정 기준이 지나쳐서.”1)

“응?”

차시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공공조형물 공모에 참가할 수 있는 업체는 환경 디자인, 종합 디자인 분야로 신고한 산업디자인 전문회사뿐이야. 종합건설업 면허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신용평가도 좋아야 해.”

차시현이 눈알을 굴리더니 눈썹을 좁혔다.

“그래야 하지 않아? 공공조형물이라고 해도 건축이고. 그럼 신뢰가 가는 회사에 면허가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하잖아.”

“다들 그렇게 생각했어.”

“응?”

“책상 행정에서 생긴 문제야. 나름대로 합리적인 방식으로 조건을 달아두었는데, 현장에서 발생할 일을 예상하지 못한 거야.”

“뭔데?”

“종합건설업 면허와 산업디자인 전문 회사를 소유한 예술가가 몇이나 될까?”

“아.”

“우리나라 공공조형물은 예술가가 만든 게 아니야. 건설업 면허를 갖춘 업체가 만든 거지.”

예술가들이 업체를 차리는 것도 문제다.

건설업 면허를 따는 건 어떻게 해본다고 해도, 최근 5년 안에 관련 사업을 수행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2)

“공공조형물을 만들어본 적 없는 업체나 예술가는 애초에 심사 과정에서 탈락하게 되는 구조야.”

“조건을 충족하는 업체는 적고 하던 사람들만 계속하게 되니까 독점하게 됐다는 말이야?”3)

“맞아.”

“그게 뭐야. 처음부터 잘못된 방식이었던 거잖아.”

차시현의 말대로 규정이 놓친 부분을 철저히 이용해 먹은 것이다.

“빨리 알려야지.”

“할아버지랑 미래 이모도 알고 있을 거야. 이인호 기자도 오늘 아침에 기사를 올렸고.”

“근데 왜 안 바뀌어?”

“이런 규정이 바뀌려면 절차가 필요하니까. 현재 무슨 문제가 있는지 입증하고 어떻게 바꿀지도 고민하고, 설득할 시간도 필요하고.”

“그럼 너무 늦잖아.”

맞는 말이다.

늦어도 너무 늦다.

이미 수십 년간 이어진 병폐를 하루라도 빨리 처리해야 하는데, 정부가 하는 일이다 보니 챙겨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이래서 법과 규정은 처음 만들 때 여러 상황을 최대한 많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유동적으로 적용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그게 돼었다면 이렇게 고생할 필요도 없을 거다.

“그럼 계속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는 거야?”

“아니.”

차시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있어? 아, 우리도 탄원서 같은 거 써볼까?”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정치하는 사람들이 싸우는 방법이야.”

“그럼?”

“예술가는 작품으로 얘기해야지.”

* * *

마르소 저택 연회실에 400여 벌의 웨딩드레스가 줄지어 깔렸다.

“다음.”

웨딩드레스를 입은 미셸을 스케치하던 앙리가 다음 드레스를 입길 권했고.

미셸 플라티니는 풀썩 주저앉았다.

“빨리 갈아입어. 한참 남았어.”

“나 이거 마음에 들어. 이걸로 할래.”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그딴 게 우리 결혼식에 어울린다고 생각해?”

“뭐가 어때서. 예쁘기만 한데.”

“시간 없어. 빨리 갈아입어.”

“여기 있는 걸 다 입힐 생각이야?”

“어.”

벌써 4시간째 드레스를 갈아입은 미셸이 드러누워 버렸다.

“안 해. 못 해.”

미셸이 파업을 선언하자 앙리 마르소가 도와주던 사람들에게 눈짓을 주었다.

“신부님, 조금만 힘내세요.”

“맞아요.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시는 예비 신랑님 없어요.”

“정도가 지나치잖아요. 두 분은 안 힘드세요?”

드레스를 시착하는 것만으로도 돈이 되니 힘들 리 없었다.

“그럴 리가요. 신부님께는 한 번뿐인 일인데 저희가 힘들어하면 되나요? 자, 일어나세요.”

“아, 그런데 이 드레스는 따로 정산을 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바닥에 앉으시고 눕고 하셔서.”

“하아…….”

이젠 쓰러질 수도 없단 생각에 절망한 미셸 플라티니가 탈의실로 들어갔다.

앙리 마르소는 마음에 들었던 웨딩드레스를 스케치한 것을 넘겨 보며 미셸만을 위한 드레스를 구상했다.

그러기를 얼마간 핸드폰이 울렸다.

“훈이입니다.”

아르센이 핸드폰을 넘겨주며 고훈에게서 온 전화라고 알려주었다.

“어.”

-잘 지내고 있어요?

“바빠. 용건만 말해.”

-개벽 한국으로 좀 보내줄 수 있어요?

스케치북에 집중하고 있던 앙리 마르소가 눈썹을 모았다. 너무나 황당한 요구라 잘못 들었는지 의심했다.

“뭐라고?”

-개벽 여기로 보내줄 수 있냐고요.

“헛소리 마. 그걸 무슨 수로 보내.”

오랜 시간 개선해 왔고 지금도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나 개벽은 아직 상용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가상 현실에서 자유롭게 그린 ‘그림’을 현실로 옮기는 장치의 크기와 제작 비용 때문이었다.

기존 VR에 맞춘 축소판이 있지만 말 그대로 기능이 제한되어 있었고 현실에 재현하는 핵심 기술이 빠져 있었다.

-앙리는 뭐든지 할 수 있잖아요.

“…….”

-꼭 필요해서 그래요.

앙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르센, 개벽 한국으로 옮길 수 있겠어?”

“선편으로 가능합니다. 다만 석 달 정도 소요될 겁니다.”

-그럼 너무 늦어요. 비행기로 보내주세요.

“말 같은 소릴 해. 그게 들어갈 비행기가 어디 있어.”

“있습니다.”

앙리 마르소가 아르센을 올려다봤다. 무슨 헛소리냐는 시선에 아르센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샤를 드골 공항에서 운용하는 초대형 수송기라면 개벽이라도 충분히 적재 가능합니다. 안토노프 An-124보다 큰 전략수송기입니다.”

“군사 전략용이잖아!”

-가능해요?

“시끄러워!”

-개벽을 알릴 좋은 기회예요. 돈은 제가 댈게요.

“네 코 묻은 돈 따위 필요 없어.”

-그럼 결혼 기념 그림은 어때요?

“…….”

-사진보다 훨씬 가치 있을 거예요.

앙리 마르소가 대답을 망설이다가 시큰둥하게 입을 열었다.

“200호.”

-좋아요.

200호 대형 캔버스에 그리란 말에 고훈이 흔쾌히 답했다.

* * *

1)참고 자료.

[특별 기고] 공공조형물 입찰방식의 문제점과 대안, 박찬걸 교수, Fn투데이, 2020.11.25.

본문에 소개된 내용은 현재 대한민국 공공조형물에 관련한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임을 밝힙니다.

2)공공조형물 입찰 심사 총 100점 중 5년 안에 관련 사업 수행한 실적은 8점으로 배점된다.

사실상 경험이 없으면 입찰을 따낼 수 없는 구조로, 신규 유입을 막는 부당한 평가 기준으로 꼽힌다.

3)박찬걸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 겸 충남대 조소과 교수의 SBS 인터뷰에 따르면 3개 업체가 돌아가며 공공조형물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다시 태어난 반 고흐>의 해당 이야기는 현실의 공공조형물 입찰 과정의 부당함을 참조하여 재구성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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