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360화 (360/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2부 34화

-르네상스-

8. 그가 내린 결말(1)

“그거 잘됐구나.”

차시현이 연 가족 전시회 이야기를 전해드리니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 그렇게 서로 다독이며 사는 게 가족이지.”

내색하지 않으려고 하시지만 씁쓸한 마음을 다 감추진 못하셨다.

아마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시는 것 같다.

끝내 화해하지 못하고 떠나보낸 아들 부부를 향한 그리움과 후회는 아마 평생 할아버지를 괴롭힐 거다.

나 또한 마찬가지고.

“우리도 그러잖아요.”

할아버지는 작게 미소 지으실 뿐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다음 소식입니다. 화가 최규서 씨가 대표로 있는 시클라멘 갤러리가 법원에 파산 신청을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작게 틀어놓은 TV에서 최규서의 소식이 전해졌다.

-지원금 부정 수령으로 논란을 낳았던 시클라멘은 지난 4년 동안 적자를 이어온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TV 볼륨을 높였다.

-한편 시클라멘 갤러리에서 대금을 받지 못한 예술가들의 제보가 이어지고 있어 한동안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시클라멘 갤러리가 파산했다는 내용이다.

그런 일을 하고도 어떻게 멀쩡할 수 있는지 의아했는데, 그동안 계속 적자를 봤던 모양이다.

“못된 녀석.”

할아버지가 혀를 찼다.

“돈 못 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돼요?”

“우선순위에 따라 다르겠지. 재판 결과에 따라서 또 달라지니 힘들 거야.”

재판 내용에도 신경 써야 하지만, 그 재판이 빨리 끝나리란 보장도 없다.

당장 몇십만 원이 아쉬운 사람도 있을 텐데 법이 그들의 권리를 지켜주기엔 너무 느리다.

“수수료 적게 해주겠다고 꼬셨나 봐요.”

거실 회복 캡슐에 누워 있던 장미래가 입을 열었다.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어떤 정신 나간 인간이 저기에 작품을 주겠어요. 수수료를 거의 안 받고 팔아주겠다고 했나 봐요.”

하긴.

대한민국 미술계를 뒤집어 놓았던 최영수, 최규서 부녀에게 작품을 넘기는 것도 이상하다.

“그놈들도 똑같아요. 돈 좀 더 만져보겠다고 붙은 거 보면요.”

최규서도 시클라멘에 작품을 준 사람도 자업자득이란 말이다.

“근데 시현이 그림 그렇게 두기엔 좀 아깝지 않아?”

“애초에 가족에게 보여주려던 거니까요.”

“이쪽으로는 관심 없고?”

“있는데 공부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취미로 하면 더 좋지. 전업 작가로 활동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걸?”

확실히 지금에 들어서는 전업 작가보다 병행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어쩌면 직업보다는 취미로 순수하게 즐기는 편이 더 즐거울지도 모른다.

“그것도 그러네요.”

“응. 분명 좋은 그림 그릴 거야.”

이번 쇼콜라티에 전시회에 작품을 걸어보자고 제안해 봐야겠다.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구나. 훈이 뭐 먹고 싶니.”

“생선구이요.”

“생선구이?”

“네. 배달하는 데 있더라고요.”

아주 가끔 생선구이가 당길 때가 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생선살을 집어 포슬포슬한 밥 위에 얹어 먹으면 그토록 마음이 편안해질 수도 없다.

기름지고 살이 통통하게 오른 고등어를 즐기다가 지루해질 즈음 잘 익은 배추김치를 집어 먹으면 더할 나위 없다.

그뿐일까.

바삭해질 때까지 익힌 껍질도 놓칠 수 없다.

“난 전어!”

장미래가 소리쳤다.

“전어가 뭐예요?”

“생선이지. 전어 안 팔아?”

애플리케이션을 검색해 보니 전어구이도 메뉴에 있었다.

“고등어 먹는 게 좋아요.”

“에이. 고등어는 좀 추울 때 먹는 게 맛있지. 지금은 딱 전어 먹을 때야.”

“노르웨이산 고등어는 엄청 고소해요.”

장미래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가을 전어 먹어 봤어?”

고개를 저었다.

“그럼 오늘 한번 먹어봐.”

“껄껄. 그래. 오랜만에 전어 맛 좀 보자.”

빠바바바- 빠바바바-

할아버지와 장미래가 강력히 추천하길래 전어 세 마리와 보험용 고등어 한 마리를 주문하려던 차.

갑자기 음악 소리가 크게 났다.

회복 캡슐 안에 있던 장미래가 팔을 휘저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발신자를 확인하더니 곧장 받지 않아서 덕분에 베토벤 5번 교향곡을 감상할 수 있었다.

“어.”

좀 더 듣고 싶었는데 음악이 끝나고 말았다.

“……지금?”

누구랑 대화하는지 목소리에 날이 서 있다. 잘 보기 힘든 모습이다.

“난 너랑 할 말 없어.”

고개를 돌리니 할아버지도 의아하신 듯 어깨를 으쓱였다.

“알았어. 주소 보내.”

몇 번 더 대화를 나누다가 전화를 끊은 장미래가 일어났다.

“선생님, 저 가볼게요.”

“무슨 일이니?”

“별일 아니에요. 최규서가 잠깐 만나자고 해서요.”

“규서가 너한테 또 무슨 볼일이 있대?”

“차 한 잔 마시자는데 분위기가 좀 이상해서 가보려고요.”

할아버지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나 또한 걱정되긴 마찬가지다.

벼랑 끝에 내몰린 최규서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걱정 마세요. 별일 없을 거예요.”

“아무래도 불안하구나. 혼자 가지 말고 아니면 공개된 곳에서 보지 그러냐.”

그러고 보니 예전에 앙리가 준 선물이 있다.

방으로 올라가서 책상 서랍을 열자 전기충격기가 놓아두었던 그대로 있었다.1)

충전기를 꽂으니 금방 충전된다.

순식간에 30% 정도 충전되어서 거실로 나서니 장미래가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이모. 이거 가져가요.”

“이게 뭔데?”

“전기충격기요.”

장미래가 눈을 크게 뜨고 나와 전기충격기를 번갈아 보다가 웃었다.

“아핳핳핫. 괜찮아. 그럴 일 없어. 세상에. 이거 어디서 났어?”

“앙리가 줬어요.”

억지로 쥐여 주자 크게 거절하진 않았다.

“그래. 고마워.”

“이거만 누르면 돼요.”

“이렇게?”

파지지지지직-

장미래가 전기충격기 버튼을 누른 순간 눈앞에 파란 번개가 쳤다.

“…….”

“…….”

장미래가 말없이 전기충격기를 내게 돌려주었고, 나도 더는 권할 수 없었다.

이딴 걸 사람에게 댔다간 살인자가 될 게 분명하다.

장미래가 집을 나서고 할아버지가 조용히 전기충격기를 가지고 가셔서 배터리를 분리해 쓰레기통에 넣으셨다.

“훈아, 마르소가 주는 거 덥석덥석 받지 마라.”

“그러려고요.”

* * *

시클라멘 갤러리를 찾은 장미래가 눈살을 찌푸렸다.

모던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바닥은 깨진 액자와 유리 파편, 벽을 허물며 생긴 돌가루로 가득했다.

“왔어?”

최규서가 불을 켰다.

“…….”

“들어와.”

최규서가 집무실로 들어오길 권했다.

장미래는 경계를 늦추지 않으려 했으나 한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다녀간 갤러리였던 시클라멘의 현재가 너무나 적나라해 동요하고 있었다.

최규서의 집무실은 여기저기가 비어 있었으나, 다른 장소에 비해 그나마 정돈되어 있었다.

“앉아.”

최규서가 소파에 앉으며 자리를 권했지만 장미래는 그러지 않았다.

조금 전 전화 내용을 확인하는 게 급선무였다.

“오래 대화할 생각 없어. 설기 이야기 무슨 뜻이야?”

최규서는 대답하지 않고 눈짓으로 건너편 소파를 가리킬 뿐이었다. 여유롭고 느긋하여, 앉지 않으면 이야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장미래가 어쩔 수 없이 마주 앉았다.

“요즘 열심히 내 뒤꽁무니 찾고 있는 것 같은데. 손 떼라고 해.”

최규서가 논개 신분 논란을 의도적으로 일으켰다고 판단한 백설기는 얼마 전부터 관련 정황을 조사하고 있었다.

“왜. 찔려?”

장미래의 질문에 최규서가 싱긋 웃었다.

“귀여운 후배 잃고 싶지 않으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좋아. 나도 데리고 있어서 알지만 제법 말귀를 알아듣잖아?”

“뭐?”

사람을 종처럼 여기는 태도에 장미래가 눈을 치켜떴다.

“백설기가 쫓는 놈 위험한 인간이야. 괜히 증거 찾겠답시고 눈에 띄면 죽어.”

최규서가 장미래를 노려보았다.

그 시선이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진 않아서 혼란스러웠다.

“그래. 이제야 볼만한 표정을 짓네.”

“이딴 협박이 통할 것 같아?”

“받아들여야 할걸.”

최규서가 테이블 위에 핸드폰을 올렸다.

“지금까지 아버지와 거래했던 놈들 명단 들어 있어.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했는지까지.”

최영수 협회장과 거래했다면 분명 정당한 방식은 아닐 터였다.

“이걸 나한테 주는 이유가 뭐야?”

“글쎄.”

최규서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이고 연기를 깊게 빨아들였다가 내쉬었다.

“다 잃으니 이제야 제정신이 들어?”

“착각하지 마.”

장미래의 질문에 최규서가 눈을 부릅떴다.

두 사람은 물러나지 않고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얼마간 최규서가 입을 열었다.

“네가 정당하고. 네가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마. 이건 단지 승자가 가져야 할 당연한 보상일 뿐이야.”

장미래는 최규서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가져가. 그걸로 네가 그토록 바라던 개혁이란 거 해봐.”

“…….”

“탈세, 투기, 사기, 조작, 청탁. 이 나라에서 이름 좀 날렸다는 인간이 몇이나 남을까?”

최규서가 빙그레 웃었다.

핸드폰 안에 저장된 사람만 천 명이 넘었다.

개중에는 대학교수로 활동하는 사람과 존경받는 예술가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최규서는 그들 모두가 고발된다면 대한민국 예술계는 존속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웃기지 마.”

장미래가 비웃었다.

“미술계가 그딴 인간들 덕에 유지되었다고 생각하면 잘못 생각해도 단단히 잘못 생각했어.”

“…….”

“작품에 진심을 담고, 그걸 알아봐 주는 사람들 덕에 지금까지 성장해 온 거야. 여기 들어 있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더 좋아진 환경에서 더 사랑받겠지.”

존경받는 예술가들이 사실 범법을 저질렀단 소식이 달가울 리 없다.

분명 크게 흔들리기도 할 터다.

그러나 부정한 땅에 세워진 건물이 오래가지 못하듯, 언젠가는 건물을 허물고 새 땅에 새 건물을 짓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미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분명 가능하리라 믿었다.

“그래?”

최규서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그것도 이긴 사람 마음대로 처리하는 거겠지.”

최규서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더는 할 말이 없다는 태도였다.

장미래는 핸드폰을 챙겨 일어나 오랜 악연의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진주에서도 말했지. 이기고 지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

“네가 이걸 왜 넘겼는지 몰라도. 만약 돌아오고 싶다면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반성하고.”

“닥쳐.”

최규서가 책상을 내려쳤다.

장미래는 한숨을 내쉬고 밖으로 나섰다.

* * *

어제 먹었던 가을 전어가 너무 맛있어서 장미래를 불러 또 주문했다.

“와. 진짜 미쳤다.”

장미래가 전어 한 마리를 통째로 들고 먹더니 연신 감탄을 터뜨렸다.

“안 뜨거워요?”

“전어는 원래 이렇게 먹는 거야. 아, 선생님 와사비 꺼내올까요?”

“좋지.”

간장에 와사비가 이미 풀어져 있는데, 좀 더 강한 맛을 원하는 모양이다.

분명 나쁘지 않은 선택이리라.

-속보입니다. 화가 최규서 씨가 오늘 오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조사에 나섰습니다.

그렇게 맛있게 저녁을 먹던 중 뉴스에서 믿기 힘든 소식이 전해졌다.

할아버지는 수저를 떨어뜨렸고 장미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리모컨으로 볼륨을 높였다.

-경찰은 오늘 오후 1시 반포역 근처 아파트 침실에서 사망한 최규서 씨를 가사도우미가 발견해 신고했다고 전했습니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경찰은 최 씨 근처에서 다량의 수면제가 발견된 점과 다른 범죄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은 점을 고려해 최근 우울증을 겪던 최 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습니다.

* * *

1)고압의 전기충격기는 소지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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