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357화 (357/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2부 31화

-르네상스-

7. 파란 나무(1)

다음 날 점심 무렵에 차시현이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옆머리는 턱선까지 내려왔고 앞머리는 눈썹을 따라 잘라놓아 꼭 초코송이처럼 생겼다.

“시현이구나. 잘 지냈고?”

“네! 매일매일 너무 좋아요.”

“대학 생활이 맞나 보구나. 무슨 과라고 했지?”

“신소재공학과요.”

방실방실 눈웃음친다.

“신소재. 그래. 그랬었지.”

중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한 차시현은 작년에 대학 입시를 치렀다.

15살 나이에 한국대학교 신소재공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해서 한때 언론을 타기도 했다.

초등학생일 적에도 공부를 잘하긴 했지만 참 신기한 녀석이다.

“진짜 재밌어요. 전 에너지 재료 쪽으로 공부해요.”

열심히 설명하지만 도통 알아듣지 못했다.

대강 수소에너지를 친환경적이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연구하는 쪽 같다.

“수소가 예전에는 친환경 대체 에너지로 생각했는데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나왔거든요. 그래서 다들 노력하고 있어요.”

“껄껄. 그거 아주 중요한 일이구나.”

요약하자면 환경을 망가뜨리지 않고 고효율 에너지를 내기 위해 공부하는 것 같다.

“그럼 다녀올게요.”

“그래 잘 놀다 오너라.”

“안녕히 계세요!”

근처 피자 가게로 가는 도중에도 차시현은 쉬지 않고 조잘거렸다.

“종강할 때 다들 술 마시는데 난 콜라밖에 못 먹었어. 왜 웃어?”

“좋아 보여서.”

처음 만났을 때와 정말 많이 달라졌다.

“나이 차이가 있어서 조금 걱정했거든.”

“괜찮아. 나 알아버렸거든.”

“뭘?”

“내가 엄청 귀엽다는 걸.”

볼을 감싸고 눈을 깜빡거린다.

“교수님도 형, 누나들도 다들 귀엽다고 해주니까. 엄청 친절하게 대해줘.”

본인이 좋으면 좋은 거겠지.

“그래서. 할아버지 댁이 어딘데?”

“연천! 경기도야.”

처음 듣는 지명이다.

“확실해? 어딘지 알고?”

“응.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었어.”

“그런 걸로 찾을 수 있어?”

“아빠가 어디 졸업한 지 찾아봤지. 상리초등학교였으니까 그 근처 돌아다니면 기억날 거야.”

“할아버지 얼굴은?”

아주 어렸을 때 보고 한 번도 못 봤으니 기억날 리가 없다.

“그건……. 괜찮지 않을까?”

뭔가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지 묘하게 긍정적이다.

“차라리 부모님께 다시 말씀드리는 게 어때?”

차시현이 고개를 저었다.

“몇 번 말씀드렸는데 할아버지 이야기는 꺼내는 것도 싫어하셔.”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을 고려하면 화해가 힘들지 않을까 싶다.

차시현이 나서서 어찌해 본들 수십 년간 쌓인 감정이 쉽게 해소될 리 없다.

“할아버지 미워하는 아빠가 너무 힘들어 보여.”

다시 생각해 보자는 말을 꺼내려던 차 차시현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녀석이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위해서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그 대상이 아버지라면 평생 한이 될 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다가오기 전에 뭐라도 해보고 싶은 거다.

아버지(테오도루스 반 고흐)와 그렇게 싸운 나도 정작 아버지가 눈 감은 뒤에는 죄책감에 시달렸으니까.

“그래. 가보자. 상리초등학교라고?”

“응!”

스마트폰을 펼쳐서 상리초등학교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검색해 보니 편도 1시간 50분이 나왔다.

서울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차가 꽤 막힐 테니 그걸 감안하면 최소 왕복 5시간은 잡아야 할 거다.

“…….”

“가 줄 거지?”

차시현이 방긋방긋 웃는다.

“갑자기 몸이 안 좋아졌어.”

“거짓말!”

“너무 멀잖아! 가서 찾는다는 보장도 없고!”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차시현이 고개를 숙였다.

아는 건 많아도 여전히 착하고 다정한 아이다. 홀로 마음고생 해온 걸 생각하면 마음이 약해진다.

녀석이 고개를 들었다.

“이렇게 귀여운 날 혼자 보낼 거야?”

“하나도 안 귀여워.”

* * *

“도착했어요.”

택시 안에서 잠들었던 모양이다.

상리초등학교에 도착했단 말에 눈을 떴다.

“35만 원?”

요금이 너무 많이 나와 잠이 순식간에 달아나고 말았다.

무인 택시를 탔다면 훨씬 저렴했을 텐데, 사람이 직접 운전하는 택시라 비싼 것 같다.

기술도 많이 개량되어 괜찮다고 하고, 사람이 운전할 때보다 사고율이 현저히 적다고 하는데.

그날 때문인지 자동주행 차량에 타기 꺼려진다.

“여기요.”

“아니야. 내가 낼게.”

“네가 돈이 어디 있다고 그래.”

차곡차곡 모은 용돈으로 주식을 해서 제법 큰 돈을 벌었는데, 그 돈을 전시회 여는 데 다 써버리고 말았다.

“아빠가 부자야. 여기요!”

차시현이 냉큼 카드를 내밀어 계산했다.

택시에서 내리자 생전 처음 보는 풍경이 펼쳐졌다.

좁은 차로 옆으로 초등학교 건물이 있긴 한데, 문이 잔뜩 녹슬어서 한동안 사용하지 않아 보인다.

“어……. 여기 이제 안 쓰나 봐.”

“그러게.”

인구가 많이 줄어서 이렇게 외진 곳의 초등학교는 폐교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초등학교뿐만 아니라 대학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딘지 알겠어?”

차시현이 주변을 몇 번 둘러보더니 씩 웃는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더니 기억이 나는 모양이다. 다섯 살 무렵의 일을 기억하다니 신기하다.

“모르겠어.”

“…….”

“저쪽으로 걸어가면 왠지 알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이 길을 따라 걸었다.

판자집과 벽돌집이 번갈아 나타났다. 사람이 살지 않는 것처럼 을씨년스러운 집도 보인다.

문제는 주변에 기억에 남을 만한 큰 건물 같은 게 없다는 점이다.

“아! 여기 기억나.”

차시현이 건너편을 가리켰다.

운동기구와 벤치가 있는 작은 휴식 공간이다.

“여기서 할아버지들이 바둑 두고 그랬어. 우리 할아버지는 맨날 훈수 두다가 쫓겨났어.”

“…….”

확실히 주변과 못 어울렸던 사람 같다.

“저쪽 같은데?”

차시현을 따라 골목으로 들어서니 집들이 꽤 많이 모여 있다.

성큼성큼 걷다가 길이 갈라지면 생각에 잠기길 반복하다가 마침내 허름한 1층 건물 앞에 도착했다.

다른 집들은 그래도 깔끔한데 이곳만 유독 휑하다.

외벽에 도색한 페인트가 다 떨어져 나가 곰팡이가 피어 있고 무엇보다 큰 균열이 나 있다.

“여기야.”

말릴 틈도 없이 차시현이 문을 두드렸다.

“할아버지! 저 시현이에요!”

문을 몇 번 더 두드렸지만 반응이 없다.

“어디 가셨나?”

집 주변에 잡초가 무성히 피어 있고 창문도 하나 깨져 있다.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아 보인다.

“빈 거 아니야? 이사 가셨을 수도 있잖아.”

“음…….”

고민하던 차시현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맞은편 집에서 우리를 보고 계시던 노인에게 다가가더니 허리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으응?”

“저 집에 사시는 분 혹시 아세요?”

“아아. 차상철이?”

“네! 맞아요!”

“그 씨부럴 놈은 왜?”

“저희 할아버지예요!”

노인이 눈을 크게 떴다.

“할아버지?”

“네!”

차시현이 밝게 답하자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할아버지 찾으러 온 거야?”

“네.”

“쯧쯧. 엄마 아빠가 얘기 안 했나봐?”

무슨 뜻이지.

차시현도 나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무슨 얘기요?”

“네 할아버지 이제 없어.”

“……네?”

* * *

‘작년에 다녀갔지. 쯧쯧. 거 무슨 일이 있었길래.’

마을 노인은 차시현의 조부가 이미 고인이 되었다며, 작년에 차시현의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다녀갔다고 알려주었다.

연락처를 가르쳐 주지 않은 게 아니라 알려줄 수 없었던 거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화해하길 바라며 전시회를 준비한 차시현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충격이 큰 듯하다.

저렇게 창문을 깨고 들어가려는 걸 보니 말이다.

“뭐 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여기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위험해.”

차시현이 깨진 곳에 손을 넣어 창문을 열었다.

그러더니 낑낑대며 결국 창 안으로 들어가 안에서 문을 열어주었다.

“들어와.”

“네 집이냐.”

어쩔 수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오래 비워둔 탓에 바닥에 먼지가 수북이 쌓였지만 살림은 대강 정리되어 있다.

“할아버지는 엄청 못 됐었대.”

차시현이 찌그러진 주전자와 하나뿐인 유리컵, 나무로 만든 수저 한 쌍 등을 살피며 말했다.

“일도 안 하고 할머니랑 아빠 힘들게만 했대. 고집도 엄청 셌고. 나한테도 하루 종일 그림 그리게 했다는데 잘 기억은 안 나.”

그러니 마을 사람들에게도 씨부럴 놈 소리를 들었을 거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랑 아빠한테 사과하셨을까?”

“글쎄.”

상황을 봐서는 그런 일 없이 장례만 치른 것 같다. 화해했었다면 차시현에게 계속 숨겼을 리 없으니까.

아직 어린 시현이에게 굳이 복잡한 집안일을 알리지 않고 천천히 말해줄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거 봐.”

차시현이 그림으로 가득한 방을 발견했다.

불도 안 켜져서 스마트폰으로 주변을 비췄는데 평생 그림만 그린 사람답게 양이 어마어마하다.

다만 잘 보관할 생각은 없었는지 그림들이 모두 겹쳐 있다.

이런 상태로 방치되었으니 분명 다 망가졌을 거다.

차시현이 그림을 떼려고 하자 역시나 서로 달라붙어 있었다.

“할아버지 그림 엄청 못 그렸다.”

“보관 상태가 나빠서 그럴 거야.”

“이렇게 둘 거면 왜 그렇게 그렸을까?”

여러 이유가 있을 수도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아마 잘 보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일 터.

“완성작이 아니니까?”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는 말이야?”

“그럴지도.”

차시현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주변을 더 살폈다.

제대로 보관된 그림은 하나도 없고 나무와 관련한 사진과 스케치, 습작만 보인다.

그렇다는 건 어쩌면 평생 본인 마음에 드는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는 말일 수도 있겠다.

가족마저 저버리고 나무 그림에 평생을 매달렸던 남자의 쓸쓸한 공간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화가로서의 고집이었나.

나로서는 무엇이 그를 이토록 집착하게 만들었는지 짐작할 수 없다.

다만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채 홀로 화폭 앞을 지켰던 마음만을 유추해 볼 뿐이다.

“진짜 바보였구나.”

시간이 꽤 흐르고 차시현이 입을 열었다.

“진짜……. 너무 한심해.”

녀석이 수첩을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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