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351화 (351/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2부 25화

-르네상스-

6. 보여주는 사람(4)

-안녕하십니까. 시사 토론회 진행을 맡은 이병인입니다.

논개 표준영정을 둘러싼 논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가운데 NBC에서 토론회를 마련했다.

-얼마 전 논개 영정이 소실된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에 한국화가 장미래 화백이 표준영정 제작을 맡게 되었는데요. 논개의 신분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일고 있다고 합니다.

진행자 이병인이 차분한 목소리로 상황을 전달했다.

-오늘은 전문가 네 분을 모시고 관련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진행자는 논개가 기생이었다고 주장하는 측 두 명과 최경회의 양첩이라고 주장하는 측에서 두 명을 소개했다.

장미래가 주먹을 쥐었다가 펴며 토론회를 지켜보았다.

점잖게 시작된 토론은 점차 과열되어 고성이 오갔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논개가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 기생이라는 이유로 입전되지 못하여 유몽인이 안타까워했다고요. 이게 광해군 9년 때 일이에요. 임진왜란 일어나고 20년도 안 돼서 기록된 일입니다.

-오해에서 온 일이라고 몇 번을 말합니까. 의일휴당실기를 보면 충의공 최경회의 부실이 공이 죽던 날 좋은 옷을 입고 강가 바위를 거닐다가 적장을 유인해 끌어안고 죽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1987년에 발행한 책으로 당대 기록에 반박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뭐라고요? 그럼 당시 현장 기록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은 왜 배제하는 겁니까?

토론회를 지켜보던 장미래가 고개를 저으며 TV를 껐다.

1594년 어사 유몽인은 진주성 전투에서 희생된 이들을 조사하다가 논개를 알게 된다.

왜장을 죽여 나라를 지킨 자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음을 의아하게 여긴 유몽인은 이내 그녀가 기생이란 이유로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서 입전되지 못함을 확인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유몽인은 본인의 저서『어우야담』에서 논개의 행동을 충의롭다고 표현했다.

진주 지역 사민 또한 논개가 순국한 바위에 의암이라고 새기며 그녀를 기리는 등 여러 노력 끝에 논개는 의인으로 받아들여진다.

기존 조선 사회의 관념에서 어디에도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논개가 기생이었던 여부는 18세기 영조 때 이르러서는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후.”

장미래가 숨을 길게 내쉬고 눈을 감았다.

다음 날.

진주에 도착한 장미래는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서 진주성으로 향했다.

공북문 앞에 차를 대고 입장하니 시야가 탁 트였다.

바로 난 큰길을 따라 걷다가 남강을 오른쪽에 두고 올라가니 곧 촉석루에 이르렀다.

과거 장군이 병사들을 지휘하던 곳이었으며, 과거시험 장소로 활용되기도 한 만큼 상당히 넓었다.

촉석루와 이어진 높은 돌계단에 신발 몇 짝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올라갈 수 있나 보네.’

신발을 벗고 촉석루에 올라선 장미래가 아 하고 감탄을 터뜨렸다.

남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촉석루에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논개 표준영정으로 심란했던 장미래는 눈을 감고 한동안 강바람을 맞으며 안정을 찾았다.

‘좋다.’

눈을 뜨고 주변을 살피니 아래 논개가 투신한 장소로 알려진 의암을 볼 수 있었다.

계단을 찾아 내려가니 의기논개지문과 의암이란 단어가 새겨진 바위를 만나볼 수 있었다.

‘여기서…….’

그녀는 감히 논개의 마음을 짐작할 수 없었다.

제2차 진주성 전투 당시.

진주성을 돕고자 근처까지 이른 조선군은 압도적인 전력 차이를 확인하고 지원을 포기한다.

명군마저 조선의 구원 요청을 무시하여 진주성만이 전투에 임했고 군인과 민간인 6만 명이 학살당했다.

그러한 지옥 속에서 아득한 강 밑으로 열 가락지를 끼고 뛰어든 용기는 대체 어디서 기인했을까.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남강 주변을 카메라에 담고 계단을 올랐다.

촉석루 옆 의기사는 아주 작은 문을 지나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고개 숙여 논개를 추모하고 주변을 둘러보던 차 석류나무가 눈에 띄었다.

뒤늦게 핀 꽃이 너무도 선명하여 장미래는 잠시 넋을 놓고 석류꽃을 바라보았다.

원숙한 아름다움.

꽃말에 담긴 뜻을 상기하며 석류꽃을 대하자 곧 머릿속에 논개의 모습을 떠올랐다.

* * *

서울에 도착한 장미래는 짐도 풀지 않은 채 곧장 작업실을 찾았다.

파리, 진주 여행으로 지쳤으나 가슴 속에 자리 잡은 이미지를 끄집어내지 않고는 잠들 수 없었다.

미리 준비해 둔 비단을 뒤집어 펼쳐놓고 붓을 들었다.

때로는 과감하게 때로는 섬세하게.

붉게 물들어가는 비단 위에 머나먼 과거가 눈앞에 펼쳐졌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조총에 대항해 싸우다가 쓰러져 간 진주 백성들의 곡소리와 피로 물든 진주를 바라보는 논개의 한 맺힌 설움이 들리는 듯했다.

업화가 치솟아 천지를 삼키고

곡소리는 백 리에 울렸다

지척에 다다랐다던 원군은 어디에 있으며 어둠을 밝힌다던 명은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외로이 싸운 진주 백성만이

강과 땅에 피 흘려 누워

하늘도 땅도 강도 붉게 들였구나

원통한 마음 아는지 모르는지

남강은 무심히 흐르는데

피라도 머금은 듯

볼긋하게 피어난 석류꽃만이

울 어매, 울 아배

깔깔 웃던 가시내, 심통 맞던 머시매를 기억하네

이 한을 어찌하나

부질없이 살 바에야

석류꽃 한 송이가 되어

남강에 묻겠네

울 어매, 울 아배

깔깔 웃던 가시내, 심통 맞던 머시매 어디로 데려갔냐고

열 가락지 깍지 쥐고

남강에 묻겠네

이 한과 왜놈을

깊이깊이 묻겠네

장미래가 붓을 내렸다.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내고 안료가 마르기를 기다렸다.

붉게 칠한 치마는 비탄에 젖어 있었다.

진주 백성들의 피로 꽃피운 석류꽃처럼 아름답고, 피로 물든 남강처럼 서글펐다.

그런 와중에도 기개가 흘러내리니 퍽 만족스러웠다.

‘잘 말라야 할 텐데.’

물감을 비단 뒤에 칠하여 앞면에 우러나온 상태에서 채색과 음영을 보강하는 배채법이었다.

색을 깊이감 있게 활용할 수 있어 인물의 내면을 잘 드러내는 방식이라 오래전부터 초상화에 활용되어 온 방식인데.

장미래는 여러 빨간색을 활용해 논개의 의로움과 각오, 비장함, 비통함을 표현하고자 선택했다.

“…….”

숨을 길게 내쉬자 며칠 동안 쌓인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가 한순간에 밀려들었다.

작업실 한편에 놓아둔 소파에 눕자 금세 잠들고 말았다.

* * *

앙리와 함께 다시 촬영한 영상이 게시 3일 만에 조회 수 390만을 기록했다.

나도 나름대로 홍보했고 앙리도 개인 SNS를 통해 알렸지만 이렇게 빨리 반응이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거 시리즈로 만들어야겠는데?”

싱글벙글 웃던 방태호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죠. 초록색, 노란색 대본 초안도 만드셨습니다.”

“훈이가 말을 편하게 하는 것 같아. 예전에는 엄청 길게 이야기했는데 중간중간 끊을 줄도 알고.”

“방송하신 지 6년 정도 되셨으니까요.”

“그치. 하. 하핫. 영상 하나밖에 안 올렸는데 구독자가 벌써 70만이라니.”

“저희가 안 넣은 자막도 생기더라고요.”

“봤어. 스페인어랑 독일어. 러시아어도 있던데?”

방태호와 성귤 과장이 신을 내니 나도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간다.

사실 자극적인 내용이 아니라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인데 결과가 좋았다.

“그럼 이사님, 한국 가기 전에 미리 찍으시는 게 어떨까요?”

성귤 과장이 물었다.

한국 집을 오래 비워두기도 했고, 음식도 그립고 무엇보다 장미래와 차시현이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어 며칠 다녀올 계획이다.

“그래. 텀이 너무 길면 안 좋으니까 두 편 정도 찍어 놓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네. 앙리하고 시간 맞춰서 말씀드릴게요.”

대강 일정을 맞추고 사무실에서 나오니 비다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어머니가 살 집을 구했고 모레 런던으로 간다는 내용이다.

주변 귀가 신경 쓰여서 작업실 문을 잠그고 전화를 걸었다.

-응.

“혼자 가도 괜찮아?”

슬슬 신원을 감추는 작업을 하는 터라 영국으로 가는 일조차 숨기고 있다.

내가 배웅이라도 나섰다간 여러모로 결과가 안 좋을 거다.

-그럼.

비다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도슨트 일을 하면서 밝아졌던 모습을 되찾은 것 같아 한시름 마음이 놓인다.

-사실 조금 떨리지만. 아니, 많이.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다.

-참. 나 활동명 정했어.

뱅크스처럼 예명을 지은 모양이다.

“뭔데?”

-이클립스.

“이클립스?”

-응. 뱅크스는 유치하다고 하지만 이러기로 마음먹게 된 계기니까.

<금환>과 <푸른 해>를 염두하고 지은 이름이리라.

뱅크스의 말처럼 예명으로 쓰기에는 다소 식상하지 않나 싶은데, 내 작품을 통해 한 사람의 예술가가 태어났다고 생각하면 영광스러운 일이다.

“멋있다.”

-그치? 잘돼야 하지만. 아무튼 이름이 아깝지 않게 열심히 할 거야.

“응원할게. 파리에서도 네 그림 보고 싶다.”

-너무 먼 이야기인데?

비다가 작게 웃었다.

-그럼 잘 지내. 정말. 정말 고마워. 넌 내 영웅이야.

“친구로서 한 일이야.”

상황이 어려워지면 언제든지 돌아오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비다의 자존심과 각오를 위해서 말을 삼켰다.

그런 일 없이 잘되길 바란다.

통화를 마치고 책상으로 눈을 돌리니 검토할 서류가 잔뜩 쌓여 있다.

앙리와 연 합동전 이후로 여러 곳에서 강연 의뢰를 받고 있지만 대부분 작품 해설이나 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법 등을 요구해서 전부 거절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요청들이라 대충 넘기고 있으니 비비안 이스트우드라는 곳에서 온 제안서가 눈에 띄었다.

패션 브랜드로 알고 있는데 디자인이 강렬해서 기억에 남는다.

‘안 페이셰르 웬델.’

수석 디자이너라는 사람 이름도 어디선가 본 듯하다.

메일을 열어보자 이번 전시회를 인상 깊게 봤다는 간결한 인사 뒤에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음.”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나누고 싶으니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면 맞춰 나오겠단다.

자신감과 의욕이 넘치는 문장이다.

‘이야기나 들어볼까.’

다른 일이라면 신경 쓰지 않았을 텐데 독특하고 개성적인 브랜드에서 제안한 일이라 관심이 생긴다.

편지 내용으로 봐서는 내 해바라기 연작을 활용하고 싶은 듯. 미팅 자리에 시안도 가져오겠단다.

내선 번호 2번을 누르자 방태호가 전화를 받았다.

-응. 훈아.

“잠깐 작업실로 와주실 수 있어요?”

-어. 그래. 지금 갈게.

어떤 시안을 가져올지 궁금해서 오래 기다리긴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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