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2부 4화
-르네상스-
2. 금환일식(1)
“히이.”
취재 나온 김지우가 연회장을 둘러보며 혀를 내둘렀다.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연회장 어디를 둘러봐도 눈에 익은 사람뿐이었다.
프랑스 출신 예술가뿐만 아니라.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미로, 영국의 프랜시스 베이컨, 미국의 윌리엄 토마스, 일본의 하라 요시토모 등 각국을 대표할 만한 거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정‧재계 미술 애호가로 알려진 이들도 수두룩했다.
권위 있는 국제 행사에서조차 보기 힘든 얼굴이 한데 모여 있으니 정말 세계 미술의 중심에 마르소 미술관과 쇼콜라티에가 있는 것 같았다.
“신사, 숙녀 여러분. 마르소 미술관 3주년 행사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관장 미셸 플라티니입니다.”
미셸 플라티니가 나서서 인사하자 내빈과 기자들이 박수를 보냈다.
“우리 마르소 미술관은 개관 이래 미술이 삶에 스며들기를 바라며 여러 행사를 기획, 진행해 왔습니다.”
중앙 스크린에 마르소 미술관의 2033년 성과분석표가 떠올랐다.
“작년 한 해 1,447만 3,588분이 방문해 주시면서 재작년 대비 1.8%의 증가율을 보였습니다.”
내빈석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3~4년 전만 해도 연간 1,000만 명이 방문하는 미술관은 루브르 박물관 정도였다.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미술 전람회인 베네치아 비엔날레나 휘트니 비엔날레도 1,000만 명을 기록하기 힘들었으니.
여러 전문가가 개관 첫해 1,300만 명을 동원한 마르소 미술관도 일시적인 현상일 거라고 예상하였다.
한데 매해 꾸준히 성장하니 미술계에 종사하는 이들로서는 기쁘기 그지없었다.
김지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부흥하고 있는 거야.’
6년 전, 서울 미술관 신인 작가전에서 처음 고훈을 만났을 때 예상한 일이었다.
그녀의 바람대로 고훈은 단짝 앙리 마르소와 함께 휘트니 비엔날레, 아르누보 공모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눈부시게 빛났다.
또한 쇼콜라티에를 운영하며 아이들과 함께하는 공공미술 등의 활동으로 미술과 대중 사이를 이어갔다.
그뿐일까.
영화 <뤼팽> 트릴로지의 콘셉트 아트를 총괄하여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 2031년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 <파우스트> 무대를 꾸미는 등 미술과 타 예술 장르의 조화를 도모해, 대중 예술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기도 했다.
고훈과 앙리 마르소는 축소되는 미술 시장의 경계에서 전선을 밀어내는 선구자나 다름없었다.
“다음으로 고훈 작가께 축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미셸이 고개를 돌려 미소 지었다.
17세의 고훈이 무대 위로 올라가 자리를 양도받았다.1)
“안녕하세요. 고훈입니다.”
고훈이 주변을 둘러보며 여유롭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축사를 부탁받아 올라오긴 했지만, 준비한 말이 없어요. 앙리 일은 제 일이기도 하고. 스스로 축하한다는 게 이상해서요.”
고훈이 진심을 부드럽게 전했다.
“앞서 미셸 관장이 설명해 드린 것처럼 마르소 미술관은 정말 많은 일을 해왔습니다. 소외되는 작품이 없도록 정말 다양한 주제로 전시회를 열었죠.”
마르소 미술관을 다녀간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과정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예술가도 생겨났고요.”
쇼콜라티에 갤러리와 마르소 미술관은 유명한 예술가뿐만 아니라, 여러 예술가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다.
변변한 기회를 얻지 못했던 예술가들에게는 단비 같은 존재였고, 몇몇 이는 마은찬처럼 그것을 발판으로 경제적 독립을 이룰 수 있었다.
“그것이 오직 그들과 저희만의 성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여러분이 함께해 주신 덕이죠. 이번에도 여러 작품이 전시되었는데, 차분히 인사 나눠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고훈이 고개를 숙이자 내빈들이 박수를 보냈다.
‘여전하네.’
김지우도 손뼉을 쳤다.
고훈의 예술관은 한결같았다.
예술가가 작품을 만드는 이유는 여럿이고 각각의 작품은 존중받아야 하나, 그것만으로는 생계가 보장되지 않았다.
예술가의 작품을 예술로 받아들이는 건 어디까지나 관객의 몫이었다.
투자자와 수집가 등 일부만 향유하는 예술이 아니라, 모든 이가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미술이야말로 고훈이 추구하는 미학이었다.
“다음은 창립자 앙리 마르소 작가를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무대 뒤 왕좌에 앉아 있던 앙리 마르소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프랑스를 넘어, 명실상부 미술계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남자는 턱을 든 채 사람들을 거만히 내려다보았다.
“나다.”
마르소 미술관 3주년을 맞이하여 중대한 발표가 있을 거라고 알려졌기에 모두 관심을 보였다.
“그동안 미술계를 향한 오해는 쌓이기만 할 뿐이었다. 사기 치는 놈들과 미술에는 아무 관심 없으면서 투자자랍시고 미술 시장을 어지럽히는 버러지들 때문이었지.”
앙리 마르소가 콧김을 내쉬었다.
“그러나 나는 증명해냈다. 지금도 미술을 사랑하는 이들은 많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내년에는 더 많은 이들이 이곳과 쇼콜라티에를 찾을 것이다.”
언제나 그러하듯 단호한 말투였다.
“미술은 죽지 않았어.”
미셸은 앙리의 간지러운 연설에 고개를 저었지만, 고훈과 마은찬은 열렬히 박수를 보냈다.
“미술은 부흥한다. 각자의 손으로 각자의 미학을 표현할 테고, 다시금 너희들의 가슴을 울릴 것이며 우리를 더 나은 단계로 이끌 것이다. 그러기 위한 르네상스다.”
앙리 마르소가 말을 마치자 중앙 스크린에 르네상스란 단어가 떠올랐다.
회장에 모인 이들은 익숙한 단어 아래 적힌 ‘세계 예술 진흥 협회(World Art Promotion Association)’에 집중했다.
“영감.”
SNBA 협회장 셰바송 씨몽이 단상 위로 올라와 목을 풀었다.
기자들과 미술계 인사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크흠. 안녕하십니까. 셰바송 씨몽입니다. 우리 프랑스 국립 예술 협회는 신 영국 미술 협회, 미국 예술 아카데미 등 전 세계 41개국 협회와 함께, 미술의 부활을 도모하고자 세계 예술 진흥 협회를 창설하였습니다.”
기자들의 손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WAPA는 프랑스에서 성공한 앵테르미탕 제도를 도입, 시행하기로 약속하였으며 4년에 한 번 각국의 성과를 뽐내는 자리, 르네상스를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중앙 스크린에 비친 ‘르네상스’ 아래 개벽으로 접속 가능한 가상 미술관이 펼쳐졌다.
“첫 행사는 2035년 6월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셰바송 씨몽이 말을 마치자마자 기자들이 다급히 질문을 내놓았다.
“정확히 무엇을 위한 행사입니까?”
“언제부터 준비하셨습니까?”
“WAPA 구성원은 어떻게 되나요!”
셰바송 씨몽이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며 답했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예술가들이 본인만의 예술을 활동을 존속할 수 있도록 제도를 시행하고, 그 결과를 교류해 보자는 취지입니다. 4~5년 정도 충분한 시간을 들여 준비했습니다.”
“르네상스라고 하시면 중세와 근대 사이를 지칭하는 말인데, 어떤 의미로 사용하셨는지 구체적으로 설명 부탁드립니다.”
“흔히들 착각하고 있다.”
앙리 마르소가 마이크를 쥐었다.
“부르크하르트는 당시를 근대의 초석으로 여겼지. 기독교의 억압에서 벗어나고, 신분제를 해체하는 정신이 깃들었다는 의미에서 르네상스란 이름을 붙였지만. 천만에. 그건 부르크하르트의 바람이었을 뿐이야.”
르네상스가 문명화를 향한 길로 해석되는 일은 수많은 역사학자로부터 비판받아 왔었다.
그러한 사상이 19세기 유럽 제국주의의 기반이 되었다는 주장과.
고대로의 복귀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르네상스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로…….”
“인간성이다.”
앙리 마르소가 답하자 고훈과 마은찬이 깜짝 놀라 하마터면 되물을 뻔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앙리가 고개를 돌렸다.
“뭐야.”
“아니에요.”
고훈과 마은찬이 어색하게 웃자 앙리가 탐탁지 않게 여기며 다시 연설을 이어나갔다.
“산업은 매해 자동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대로 가면 인간은 노동자로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생계가 각박해지며 생존하기 위해 개인과 개인, 계층과 계층, 국가와 국가가 서로 물고 뜯게 된 지 오래다. 그러는 와중에 인간의 존재의의는 대체 무엇인가.”
2034년 프랑스는 기초 산업 직종의 90%가 자동화가 이뤄지며 수많은 실업자가 발생했다.
안전하다고 여겨진 일부 관리직, 기술직, 고학력 직군, 예체능 관련 직업조차 매해 실업자가 늘어났고 시위와 파업이 계속되었다.
앙리 마르소는 이러한 변화의 시대에서 인간이 무엇인지를 심각히 고민했다.
자신이 누군지 고민하던 고집스러운 예술가의 시야가 마침내 확장된 것이었다.
“답은 아무도 내릴 수 없다.”
앙리 마르소가 힘주어 말했다.
“우리 스스로 찾아내야만 한다. 우리만이 우리를 가치 있게 할 수 있다. 멈춰서는 시대의 흐름에 씻길 뿐이란 말이다.”
앙리 마르소가 탁상을 내려쳤다.
“그런 의미에서의 부흥이다.”
* * *
주문했던 피자가 도착했단 메시지를 받고 현관으로 나가니, 마침 드론이 피자 박스를 내려놓고 있었다.
언제 봐도 참 기특한 녀석이다.
조종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스마트폰으로 결제만 하면 척척 가져다준다.
“은찬이 형, 피자 먹어요.”
“피자?”
마은찬이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멈칫한다.
“난 안 먹을래.”
“밥은 먹어야 하잖아요.”
“아니야. 난 닭가슴살 샐러드 먹을래.”
마은찬이 축 처진 어깨와 무거운 발을 이끌고 냉장고를 열었다.
“선생님은?”
“WAPA 일로 나가셨어요.”
세계 예술 진흥 협회 이사직을 권유받으신 뒤로 꽤 바쁘시다.
“또? 엄청 바쁘시다.”
“내년에 하는 르네상스에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이 있나 봐요.”
“하긴. 두 달 간격으로 전시장을 옮긴다면서?”
“네.”
개벽으로 아주 현실감 넘치는 가상 전시관을 운영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실물 전시가 더 선호되고 있다.
전 세계가 참여하는 만큼 여러 지역에서 접근하기 좋은 장소를 물색하다가 순회전을 하기로 한 모양이다.
그만한 규모를 수용할 수 있는 도시가 몇 없긴 하지만 말이다.
“음. 훈아.”
언제 먹어도 풍요로운 식감을 느끼며 고개를 들자 마은찬이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실 그제 마르소 미술관에서 프랜시스 베이컨 선생님을 만났는데.”
프랜시스 베이컨이라면 영국의 거장이다.
“네.”
“내 작품 좋게 본 분을 소개해 주시더라고. 게리 리드라고 영국에서 갤러리 운영하시는 분이야.”
이 마요네즈를 참을 수 없지.
“개인전 할 생각 없냐고 물으시더라.”
“컵.”
너무 기뻐서 옥수수를 씹지도 않고 삼켜버리고 말았다.
“괜찮아? 무, 물!”
고개를 젓고 잔을 내려놓았다.
“잘 됐잖아요! 그걸 왜 지금 말해요!”
“하항. 그게.”
마은찬이 손가락을 꼼지락댔다.
“난 쇼콜라티에 소속인데 다른 곳에서 개인전 하는 게 이상하잖아.”
“그게 무슨 말이에요!”
독점 계약을 생각한 것 같은데, 마은찬이 잘못 이해하고 있다.
“최종 목표는 완전 독립이라고요. 형이 개인전 열면 앙리랑 저 빼고 처음 있는 일인데, 그걸 왜 막겠어요.”
“정말?”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작업 다큐멘터리 같은 것도 찍더라고. 그래서 아예 1년쯤 영국에 살면서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라.”
“그건 뭐예요? 홍보용?”
“응…….”
계약 조건은 자세히 알아봐야겠지만 여러 면에서 신경 써 주려는 것 같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소개한 사람이니 사기꾼은 아닐 테고.
정말 기쁘다.
“태호 아저씨하고 같이 말해봐요. 문제없는지 잘 확인하고.”
“응.”
두 팔을 들었다가 숨을 크게 내쉬며 내려놓았다.
영국에서 개인전이라니.
“축하해요. 정말.”
“나 운이 좋은 편이니까. 이번에도 운이 좋았을 뿐이야.”
“실력 없으면 운도 못 잡아요. 자, 이런 날 안 먹을 수 없죠.”
“그, 그런가?”
“이런 날에 닭가슴살 먹을 거예요?”
“그건 그래.”
* * *
1)한국 나이 17세. 만 15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