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329화 (329/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2부 3화

-르네상스-

1. 마르소 미술관(3)

다가가서 체리를 집으려 하자 앙리가 손등을 쳤다.

“먹지 마.”

개의치 않고 옆에 놓인 케이크를 드니 또 가로막는다.

“먹지 마.”

“먹는 걸로 왜 이래요. 치사하게.”

“아무튼 먹지 마.”

“뭐, 독이라도 들었어요?”

“어.”

“뭐래.”

청포도 한 알을 뜯어 입에 넣는 와중에도 앙리의 시선이 느껴졌다.

위아래로 훑는 게 몹시 불쾌하다.

“너, 키 몇이야.”

“뜬금없이 무슨 말이에요.”

“몇이냐고.”

“선생님이랑 비슷하던데요?”

옆에서 케이크를 먹던 마은찬이 대신 답했다.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할 모양인데,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와 눈높이가 비슷해졌다.

할아버지가 180㎝를 조금 넘으셨으니 그 정도이지 않을까 싶은데 할아버지랑 아버지가 큰 편이기도 했고, 잘 먹고 잘 자니 성장이 빠른 듯하다.

학교에서도 작은 키는 아니니까.

앙리는 그게 못마땅해 보인다.1)

“곧 있으면 형님보다 크겠다.”

마은찬의 말에 앙리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설마 내가 더 크는 게 싫어서 그래요?”

고개를 돌리고 답하지 않는 걸로 봐서는 정말이지 싶다.

어쩌면 매번 이런 참신한 발상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지 모를 일이다.

“내려다보는 것도 좋겠네요.”

“뭐?”

“더 커져도 놀아줄게요.”

입술을 씰룩인다.

놀리는 재미가 있는 친구다.

“너도 그만 먹고 운동해.”

앙리가 타박하자 마은찬이 먹고 있던 케이크를 내려놓았다.

“그러지 않아도 오면서 말했어요. 살 빼기로.”

“빼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예술가라면 한두 사람 정돈 제압할 수 있어야지.”

“예술하고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건강이라면 몰라도 예술가가 왜 사람을 제압해야 하는지 싶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몰라?”

알기야 안다만 무슨 연관인지 몰라서 마은찬을 보니 역시 모르는 눈치다. 어깨를 으쓱인다.

“다 빈치의 인체 비례도 모델이 본인이었대.”

방태호가 웃으며 끼어들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인체 비례도>라면 잘 안다.

삼각근과 이두, 흉근, 전거근, 늑간근, 복직근, 대퇴직근, 비복근 모두 그 당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잘 발달해 있었다.

“그거 그릴 때가 아마 40세 정도였다지?”

젊은 나이긴 해도 대단하다.

아니, 15세기였으니 젊다고 말하긴 힘든 나이려나.

“근육뿐만 아니라 체구도 엄청 컸다고 하더라고.”

“다 빈치만 그랬던 거 아니에요?”

내가 알기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화가이자 조각가이기도 했지만 건축, 과학, 음악, 요리, 지리, 수학 등 여러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했다.

그야말로 신의 축복을 받은 남자였다.

“아! 조각하셨으니까 그랬을 수도 있겠네요.”

재료를 옮기는 일부터 다루는 일까지, 조각과 소조는 힘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당시에는 혼자 할 일이 많았을 테니 자연스레 근육이 붙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검술에도 능했어.”

앙리가 끼어들었다.

“당시 미술 재료는 비쌌으니까. 금이나 울트라 마린처럼 비싼 안료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울트라 마린은 19세기에도 너무 비싸서 구하기 힘들었다.

“재료가 비싼 거랑 검술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마은찬이 내가 묻고 싶은 말을 대신 꺼냈다.

“도둑놈들이 노리기 좋잖아.”

“아.”

동시에 소리 내고 말았다.

확실히 치안이 발달하지 않았던 중세와 르네상스 시절에는 비싼 재료를 탐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내가 살았던 19세기만 해도 경찰이란 조직은 있어도 군대에 소속되었을 뿐이었다. 전문적인 수사나 방범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시민의식 자체가 덜 발달했을 테니까.

“화가가 몸을 단련하고 지키는 건 오래된 전통이야. 고수열 경도 그렇잖아.”

“할아버지는 괴롭힘당하지 않으려고 몸을 키운 거예요.”

“아무튼.”

앙리가 날 보더니 인상을 썼다.

“징그러우니까 저리 가.”

“싫어요. 좋다고 할 땐 언제고.”

“누가. 언제.”

“형님이 훈이 좋아하는 건 세상 사람들 다 아는데요. 뭘. 악!”

앙리가 고디바 초콜릿을 먹으려던 마은찬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웃으며 옆에 앉았다.

“저리 가라니까.”

“나 없으면 외로워할 거면서.”

앙리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소리치려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축사는?”

“축사?”

“준비했냐고.”

“아니요.”

노려본다.

“휴가 계획 짜느라 시간이 없었어요. 다음 주에 그리스 놀러 갈 거예요. 같이 갈래요?”

“그리스?”

“금환일식 볼 수 있대요. 이번에 놓치면 언제 볼 수 있을지 몰라요.”

“관심 없어.”

입꼬리가 살짝 내려가는 걸 보면 거짓말이다.

마음에 없는 말을 꺼낼 때마다 나오는 버릇인데, 셰리, 미셸, 아르센 모두 아는 것을 본인만 모른다.

“작업실에만 있으면 감정이 메말라요. 경험은 많이 할수록 좋다고 하잖아요. 아테네 관광도 재밌을 테고.”

“…….”

“아테네 미술관도 볼 게 많대요. 여인의 머리 보고 싶지 않아요? 피카소.”

“…….”

“그러고 보니 미셸도 작년에 여름 휴가 못 가서 아쉬워하던 것 같던데.”

“…….”

“아, 나랑 가는 게 싫구나. 그래요. 어쩔 수 없죠.”

“누가 싫댔어?”

참 다루기 쉬운 친구다.

* * *

2034년 5월 20일.

마르소 미술관은 개관 3주년을 맞이해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했다.

미셸 플라티니가 기획한 ‘르네상스’란 주제 아래, 서로 경쟁하며 영향을 주고받은 예술가들이 소개되었다.

본관 1층 제1전시실에서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두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를.

같은 층 제2전시실에서는 인상주의를 이끌었던 마네와 드가.

본관 2층 제3전시실에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화가로 손꼽히는 앙리 마티스와 파블로 피카소를 다루는 기획전이 열렸고.

제4전시실은 21세기 가장 사랑받는 화가 앙리 마르소와 고훈을 다루었다.

“하여튼 알아줘야 한다니까.”

마르소 미술관을 방문한 뉴튜버 알렉스 우드가 팸플릿을 확인하곤 감탄했다.

미술사를 장식한 거장들과 본인을 나란히 놓은 앙리 마르소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근데 솔직히 황당하게만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게 대단하죠. 저도 제4전시실 먼저 보고 싶거든요. 바로 가볼게요.”

└근데 촬영해도 됨?

└또 쫓겨나가는 거 아님?

└형, 민폐 좀 끼치지 마.

└우리 알렉스가 잘못했습니다. 저희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아니. 너희는 맨날 이러더라? 내가 언제는 확인도 안 하고 막 그러고 다녔냐?”

알렉스가 서운함을 내비쳤다.

└ㅇㅇ

└촬영 허락은 받았겠지. 근데 보안요원이 몰라봐서 거부당한 적도 많았잖아.

└ㅋㅋㅋㅋㅋ쫓겨난 거 모아서 올려도 1시간 영상 뚝딱일 듯.

└미술관에서 쫓겨나는 거 이 채널 메인 콘텐츠 아니었음?

└이 방송 보는 4만 명 중에 99%는 기대하고 있을걸?

시청자들이 방송 사고가 나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하자 알렉스가 헛웃음 지었다.

“하. 어이가 없네. 저기요. 나 여기 정식으로 초청받아서 왔거든요? 이거 안 보여?”

목에 건 언론인 출입증을 보인 알렉스가 그대로 카메라를 들었다.

└근데 왜 카메라 돌림ㅋㅋㅋㅋ

└으엑. 콧구멍 털 봐.

└선생님, 멋진 작품 두고 저희가 왜 선생님 콧털을 봐야 하죠?

└님 인중에 토마토소스 묻었음.

“……혹시 모르니까. 내 얼굴 봐. 시끄러워. 이만하면 잘생겼지. 여기로 올라가면 되나?”

알렉스 우드가 지도를 살피며 중앙 계단을 올랐다.

“지도 보니까 제4전시실은 제3전시실 지나서 있나 봐요. 미친. 이게 왜 여기 있어?”

알렉스 우드가 앙리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과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진짜는 아니겠지?”

20세기를 대표하는 작품이 나란히 걸려 있으니 설마 진품이겠냐는 의심이 들었다.

“진품이에요.”

알렉스가 고개를 돌렸다.

마르소 미술관 관장 미셸 플라티니가 손을 내밀었다.

“미셸 플라티니 관장님.”

“반가워요. 알렉스 씨. 영상 잘 보고 있어요.”

“크. 이렇게 좋은 기회를 주신 덕분이죠. 봤어? 관장님도 알렉스 팩토리 구독하신다잖아.”

미셸과 악수를 나눈 알렉스가 카메라를 보며 잔뜩 뻗댔다.

아르누보 공모전, 베네치아 비엔날레 등을 거치며 세계 무대에서 능력을 증명해낸 큐레이터이자 마르소 미술관 관장에게 인정받았으니, 시청자들도 알아주길 바랐다.

“구독은 안 했지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형 제발 좀 가만히 있어 ㅠㅠ

└그냥 예의상 해준 말인데 왜 그래 진짜 속상하게 ㅠ

└우리한테 맞는 걸론 부족해? ㅠ

└형 방송 봐주는 건 우리뿐이라고.

“원래 구독하게 되면 영상이 보던 것만 올라와서 안 하시는 분들도 있더라구독.”

“네?”

“아뇨. 시청자들한테 한 말이에요. 근데 정말 대단하네요. 프랑스 4대 미술관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어요.”

알렉스가 <모자를 쓴 여인>과 <아비뇽의 처녀들>을 보며 감탄했다.

“마르소 작가가 특히 좋아하는 화가예요. 작품 모으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럴 것 같아요. 사실 돈 많다고 구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잖아요.”

개인이 소유한 국보급 작품이 경매로 나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경제적으로 큰 문제가 발생하거나 소유자가 사망하여 상속에 어려움이 생기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시피 했다.

더군다나 미술관이 보유한 작품은 그런 문제가 생길 일이 없으니 더더욱 어려웠다.

“이 정도로 모을 정도면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알렉스의 질문에 미셸이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콕 집어서 말할 순 없어요. 서로 경쟁하며 각자의 화풍을 정립한 관계도 좋아했고. 또 마티스의 경우에는 작품을 향한 열정을 높이 샀죠.”

“열정?”

“네. 이 작품 잡아주실래요? 시청자들도 볼 수 있게.”

“촬영해도 괜찮아요?”

“그럼요. 그러라고 모셨는데요.”

알렉스가 카메라를 돌려 그의 콧구멍을 보지 않아도 되자 시청자들이 기뻐했다.

창백한 파란색을 배경으로 검은 남자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카루스네요.”2)

“네. 마티스의 말년 작품이죠.”

미셸 플라니티가 숨을 내쉬었다.

“마티스는 노년에 관절염이 심해져서 붓도 쥐기 힘들었어요. 붕대로 손과 붓을 고정했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못했죠.”

“힘들었겠네요.”

“네. 이미 이뤄놓은 일도 많고, 나이도 들었으니 쉴 만도 한데 그러지 않았어요. 붓 대신 색종이를 오려서 붙이는 콜라주 작업을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죠.”

“마티스가 1869년생이니까 이 작품을 만든 1946년이면……. 77세. 정말 대단하네요.”

이미 아는 내용이었지만, 알렉스는 시청자의 관점에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니까요.”

“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배경이 바다예요? 아니면 하늘이에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저 창백한 느낌과 검은색이 주는 허무하고 닫힌 감정, 그 와중에 태양을 동경한 붉은 심장 같은 이미지를 말하고 싶어 했죠.”

알렉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채팅창을 확인했다.

└근데 진짜 추락하는 느낌이 들긴 한다.

└그러게. 엄청 단순한데 절망감이나 그런 게 와닿네.

└미술 뉴튜브 하면서 그런 것도 모름?

└근데 관절염 때문에 붓도 쥐기 힘들었다면서 가위는 어떻게 들었지?

└몰라서 묻겠냐. 우리 들으라고 묻는 말이잖아.

“시청자 질문인데. 이건 저도 궁금하네요. 관절염 때문에 붓도 쥐기 힘들었는데 가위는 어떻게 들었을까요?”

“그림을 그리려고 붓을 쥐는 힘하고 가위로 종이를 자를 때 드는 힘하고 차이가 나니까요.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해보시면 금방 아실 거예요.”

미셸 플라티니에게 미술관 직원이 다가왔다.

“관장님, 10분 전입니다.”

“네. 고마워요. 알렉스 씨도 같이 가시죠.”

“네. 오늘 마르소 작가와 고훈 작가 모두 참석한다고 하셨죠?”

“맞아요. 싸우고 있진 않나 걱정되네요.”

* * *

1)2019년 Imperial College London과 연결된 프로젝트인 NCD Risk Factor Collaboration에서 운영하는 의료 데이터베이스의 평균 키 데이터에 따르면 프랑스 남성의 평균 키는 179.73㎝다.

2)밀랍 날개를 달고 태양에 다가가려다가 추락사한 신화 속 인물.

<이카루스>, 앙리 마티스, 1946년, 과슈를 칠한 색종이 콜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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