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328화 (328/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2부 2화

-르네상스-

1. 마르소 미술관(2)

미술 전문 매체 아트 뉴스페이퍼는 개관 첫해 1,300만 명이 다녀간 마르소 미술관을 그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찾은 미술관으로 소개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를 시작으로.

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야수주의, 입체주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추상주의 등 중세와 근‧현대 미술의 작품 총 118,000여 점 중 32,000여 점이 상설 전시되었고.

창립자 앙리 마르소를 비롯한 동시대 예술가의 작품 6,000여 점 또한 찾아볼 수 있었다.

그동안 마르소 가문이 보유하느라 관람할 기회가 없던 국보급 미술품은 미술 애호가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흥밋거리였고.

찾는 이는 매해 늘어나 프랑스 파리 벵센느 숲에 위치한 마르소 미술관은 매일 인파로 넘쳐났다.

“안녕하세요. 오늘 여러분을 안내해 드릴 도슨트 비다 라바니입니다.”

3년 동안 미술 공부를 하여 도슨트로 활동하기 시작한 비다 라바니가 인사했다.

오늘 첫 팀은 근처 학교에서 방문한 학생 여덟 명이었는데, 단 한 명만 인사를 받아주었다.

스물한 살 청년 비다 라바니는 개의치 않고 안내를 이어갔다.

“이곳 마르소 미술관은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퐁피두 센터와 함께 프랑스 4대 미술관으로 불릴 정도로 다양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비다 라바니는 미리 준비한 동선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1층은 중세부터 르네상스 시대 작품을 전시하고 있어요.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 작품도 있으니 나중에 꼭 한 번 둘러보시길 추천할게요.”

계단을 올라 2층 중앙 전시관에 들어선 학생들이 눈을 크게 떴다.

“앙리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입니다.”1)

비다 라바니가 학생들을 둘러보며 차분히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상하죠?”

한 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티스는 색을 부자연스럽게 사용했습니다. 피부, 배경이랑 모자, 옷 모두 본래 색이 아니라 마티스만의 방식으로 표현했죠.”

말 그대로 강렬하고 과감했다.

“이 작품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한 평론가가 야수 같다고 말해서 야수주의로 불렸다고 해요.”

비다 라바니는 지루해하는 학생들을 살피곤 설명 방식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그림의 표현 방식이나 미술사적인 의의보다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편이 호응을 얻기에 좋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평론가뿐만 아니라 마티스의 아내도 화를 냈다는 거죠.”

“왜요?”

그나마 관심을 보였던 한 학생이 되물었다.

“그녀가 이 그림의 주인공이었거든요. 남편이 초상화를 그려준다고 해서 멋진 모자와 장갑을 끼고 부채까지 들었는데 코를 녹색으로 칠해 놨으니까요.”

눈을 빛내던 학생이 살짝 미소 짓다가 입을 열었다.

“화났을 때 그렸나 봐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어……. 붓을 엄청 거칠게 쓴 것 같아서요.”

“맞아요. 칠했다기보다는 문질렀다는 표현이 어울리죠? 화가 나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마티스는 인상주의에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존 러셀이란 인상주의 화가를 통해 인상주의 색채 이론과 빈센트 반 고흐의 드로잉 기법을 배웠습니다.”

비다 라바니는 반 고흐와 마티스의 붓 터치를 비교해 보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아무튼 이 작품으로 앙리 마티스는 당대 미술계의 선구자가 됩니다. 그 유명한 파블로 피카소조차 마티스에게 영향을 받죠.”

“어떻게요?”

“당시 마티스는 묘사를 단순히 하고 색채 자체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또 폴 세잔에게 영향을 받아 하나의 그림에 여러 시점을 넣는 걸 시도하죠.”

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자를 쓴 여인을 본 피카소는 정말 크게 충격받았습니다. 마티스를 넘어서지 않으면 본인이 설 자리가 없다고 생각할 정도였죠. 그래서 마티스의 장점을 받아들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해냅니다. 이 작품으로요.”

비다 라바니가 바로 옆에 걸린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에 시선을 주었다.

“평면 위에 여러 시점을 넣은 아비뇽의 처녀들이 발표되고 미술계의 관심은 피카소에게로 쏠립니다.”

비다 라바니가 목을 풀고 계속해서 설명했다.

“마티스로서는 기가 막힌 일이었어요. 호의로 대했던 사람에 의해 본인이 이뤄놓은 세계를 정면으로 부정당했으니까요.”

“…….”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습니다. 보시다시피 피카소의 입체주의는 정말 파격적이었거든요. 심지어 마티스를 지지하던 사람들조차 후원을 끊고 피카소의 작품을 찾으니 마티스는 절망했죠.”

이야기를 듣던 학생이 안타까워했다.

“피카소가 아무에게도 관심받지 못했을 때, 유일하게 그를 인정해 주었던 마티스는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피카소의 작품을 쓰레기라고 할 정도로요. 피카소도 마티스를 비난했습니다. 호의를 가졌던 미술계 선후배의 관계는 그렇게 파국으로 치달았습니다.”

두 천재 화가 사이에 불화가 있었다는 말에 학생들이 조금씩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이 싸우기만 했다면 우리가 그 이름을 기억하긴 힘들었을 거예요.”

비다 라바니가 미소 지었다.

“시간이 오래 흐른 뒤, 마티스는 예전 자기가 그린 작품을 찾게 됩니다. 힘들었던 시절 그렸던 작품이 그리웠었나 봐요.”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만 해도 작품 거래 내역이 명확하지 않아서 찾기 힘들었다고 해요. 그렇게 고생 고생해서 겨우 찾았는데.”

비다 라바니가 학생들을 둘러보며 잠시 뜸을 들였다.

“찾았는데요?”

“마티스가 찾아 헤매던 그 그림을 소장하던 사람이 바로 피카소였던 거죠.”

“아.”

“자신을 도와주었던 마티스의 작품을 비판하며 성장했지만, 피카소도 내심 그를 존경했던 거예요. 두 사람은 그렇게 선후배에서 경쟁자로, 경쟁 관계에서 둘도 없는 친구로 남게 되었습니다.”

비다 라바니가 <모자를 쓴 여인>과 <아비뇽의 처녀들> 사이에 적힌 문구를 가리켰다.

[내 그림을 피카소의 그림과 함께 전시하지 말라. 내 그림이 불꽃처럼 강렬하고 번뜩이는 그의 그림 옆에서 초라해지지 않도록.]

-앙리 마티스

[나를 괴롭히던 마티스가 떠났다. 마티스는 내 작품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었다. 그는 나의 영원한 멘토다.]

-파블로 피카소

“위는 앙리 마티스가 죽기 전에 남긴 말이고, 아래는 마티스가 사망했단 소식을 전해 들은 피카소의 말입니다.”

학생들이 두 천재의 말을 주의 깊게 읽었다.

“이렇게 미술계에는 서로 깊은 영향을 주고받은 사람이 많습니다. 특히 앙리 마티스와 파블로 피카소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화가로 사랑받고 있죠.”

비다 라바니가 전시관 안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저쪽에는 이 시대 가장 사랑받는 두 화가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감상할 작품이 있죠.”

어린 고훈이 짜장면을 먹는 그림이 대문을 장식하고 있었다.

* * *

“그래. 조정해 볼게.”

마르소 미술관으로 가는 도중에 그리스에 갈 생각이라고 말하니, 방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8월부턴 바쁠 테니 그 전에 휴가 삼아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8월 5일부터 센강 환경 조성을 해야 한다.

파리시가 공개 모집한 센강 환경 조성 사업을 따내서 올해 여름 방학은 유독 바쁠 듯하다.

방태호 말대로 그 전에 휴가 다녀오는 느낌으로도 좋겠다.

“그런데 선생님은?”

“집에서 쉬신대요.”

“어디 아프셔? 통화할 땐 모르겠던데.”

“그냥 복잡한 데 피하고 싶으신 것 같아요.”

“하핫. 하긴 마르소 미술관이 그렇긴 하지.”

고개를 돌리자 마은찬이 창밖을 보고 있었다.

평소 밝은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우울한 분위기를 풍긴다.

“무슨 일 있어요?”

“응…….”

무슨 일 있다고 말할 정도라니 보통 일이 아닌 듯싶다.

“뭔데요. 말해봐요.”

마은찬이 입을 열었다가 한숨을 쉬길 반복하다가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발톱.”

“발톱?”

내성 발톱 같은 거라도 생겼나 싶어 재차 물으니 마은찬이 또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발톱을 못 깎겠어.”

“……네?”

“뱃살 때문에 발톱을 못 깎겠어!”

마은찬이 왈칵 소리 질렀다.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났을 때보다 살이 많이 붙었다.

그때는 제대로 못 먹고 다녀서 광대가 도드라질 정도였는데, 지난 3~4년간 생활이 안정된 덕에 후덕해졌다.

“마른 것보단 낫죠.”

“아니야! 그동안 나 살 안 찌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지금은. 지금 나는 발톱도 혼자 못 깎는 돼지라구!”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맞아. 좀 쪄 보이긴 해도 얼마나 나간다고. 자책하지 마.”

방태호도 거들었다.

“138㎏.”

차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건 좀 빼는 게 좋을 것 같긴 하네…….”

나로서는 못 먹고 굶주리는 것보단 낫다 싶지만 너무 우울해하니 기분을 달랠 겸 초콜릿을 꺼냈다.

마은찬이 고개를 저었다.

“안 먹을래.”

뭔가를 굳게 마음먹은 듯 주먹을 쥐었다.

“그래. 맛있는 것만 먹다 보니까 이렇게 찐 거야.”

못 먹고 살았던 설움 때문이지 않을까.

4년 전 베네치아 비엔날레 이후 마은찬은 꽤 인기를 끌게 되었다.

작품이 팔리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생활도 안정되었다.

2년 전부터는 쇼콜라티에로부터 지원금을 받지 않아도 되었고, 빚도 갚은 데다 회사에 수익을 가져다주는 몇 안 되는 작가가 되었다.

그렇게 지갑이 풍요로워지니 억눌린 감정이 흘러넘치는 것이리라.

나 또한 다시 태어난 이후 줄곧 먹는 데 집착했으니 충분히 이해한다.

초콜릿 입에 넣자 마은찬의 시선이 느껴졌다.

“왜요?”

“너랑 큰형님도 먹는 거 좋아하는데 날씬하니까 신기해서…….”

“훈이랑 마르소 씨는 운동을 열심히 하니까.”

방태호가 웃으며 말했다.

할아버지와 앙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매일 1~2시간씩 운동해 온 덕을 봤다.

거기다 난 성장기니 아무래도 살이 덜 찔 테고.

앙리도 디저트에 타락하긴 했지만 자기 관리에 철저해서 과식하진 않는다.

“일부러라도 움직이는 게 좋아. 활동량이 적으면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아지거든. 불규칙하게 생활하면 더 그렇고.”

앉아서 작업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시간 내서 움직이지 않으면 운동량이 적을 수밖에 없다.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잘 생각해 봐.”

“그럴게요.”

마은찬이 각오를 다진 듯 다부지게 답하자 마르소 미술관이 보였다.

언제 봐도 멋진 전경이다.

부지가 얼마나 넓은지 한눈에 담기 힘든데, 본관은 기둥을 최대한 배제하고 창을 크게 내어 실내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런 본관 뒤로 높이 선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베르사유 궁전이나 오스트리아의 쇤브룬 궁전을 높이 지었다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서 1층으로 올라가니 미술관 직원이 마중 나왔다.

“식장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앙리는요?”

“위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직원들이 사용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서 내렸다.

사람이 너무 많고 기자들도 모여 있을 터라 조금은 각오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편히 이동할 수 있었다.

연회장에 들어서니 앙리가 황금으로 만든 의자에 앉아 체리를 먹고 있다.

“큰형님은 옛날에 태어났으면 폭군 잘하셨을 것 같아.”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잖아요.”

* * *

1)<모자를 쓴 여인>, 앙리 마티스, 1905, 캔버스에 오일, 81.3㎝×60.3㎝.

현재는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에서 보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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