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73화
19. 친구(2)
힘겨운 수학 시간이 끝났다.
황폐해진 마음을 달래고자 인터넷에서 그림을 찾았다.
보통 화가 이름으로 찾았는데, 그러다 보니 내가 아는 사람들 작품만 볼 수 있었다.
‘뭐라고 검색해야 할까.’
뭐라고 검색해야 좋은지 몰라 일단 유명한 그림을 찾아보고자 명화라고 검색했다.
검색 결과 맨 처음에 내 <별이 빛나는 밤>이 나왔다.1)
“뭐 보는데 웃어?”
차시현이 말을 걸었다.
학교에 있는 내내 고개도 들지 않고 태블릿에 그림만 그리던 녀석이 이젠 제법 친해졌는지 먼저 다가온다.
“별이 빛나는 밤.”
태블릿을 돌려서 보여주니 눈을 빛낸다.
“멋있다.”
차시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나무야?”
“응. 사이프러스 나무.”
“이상하게 생겼다. 엄청 크고.”
사이프러스에 관심을 두는 걸 보니 내 그림이 차시현에게 닿은 모양이다.
“상징이야.”
차시현이 눈을 깜빡인다.
“사이프러스는 죽음을 의미하거든. 하늘에 닿을 것처럼 그린 건 죽어서 별에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서였어.”
아무래도 모르겠단 표정이다.
“빈센트는 그렇게 믿었어. 늙어서 편히 죽으면 별로 가는 여행이 시작된다고.”
내 이야기를 남 이야기하듯이 전하려니 어색하다.
“죽는 건 슬프잖아.”
“꼭 그렇게 보고 싶지 않았던 거야. 봐. 별을 이렇게 환하게 그렸잖아.”
“그래서 자살했어?”
“아니. 절대 아니야.”
혹시나 이상한 생각을 가질까 봐 걱정되어 한 번 더 부정했다.
“빈센트가 살 적에만 해도 죽음의 상징을 많이 그렸어. 죽음 앞에 겸손하고 겸허해지려는 의미로.”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모두 언젠가는 떠나게 되니까 삶에 충실하라는 뜻이야. 그리고 빈센트는 최선을 다해서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다면 그 끝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어.”
“그때는 별을 이렇게 많이 볼 수 있나 봐.”
이해하지 못해서 관심이 없어진 듯 차시현이 말을 돌렸다.
“예전에는 대기가 맑아서 별을 잘 볼 수 있었대.”
대신 자기가 아는 이야기를 꺼낸다. 아이다운 반응이다.
실제로 그러기도 했고.
<별이 빛나는 밤>은 생레미 요양원에서 머물 적에 그렸는데.
당시에는 정신적으로 크게 혼란스러웠던 탓에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깨어 있거나, 노을이 질 무렵까지 자는 등 생활이 불규칙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해가 뜨기 전 강렬한 샛별이 창문 밖을 가득 채우고 있음을 발견했다.
고요하기 짝이 없는 병실과 생레미 전경 위에 눈부시게 빛나는 샛별에 취해 그것을 볼 수 없을 때까지 창가에 기대어 있었다.
그것은 동경 혹은 그리움이었다.
“이 뾰족한 건물은 뭐야?”
차시현이 상념을 깼다.
“교회.”
작게 표현한 다른 건물 사이에 교회 첨탑만이 그나마 눈에 띄는 걸 잘 포착했다.
“빈센트의 아버지가 목사셨거든. 교회를 볼 때마다 고향이 떠올랐던 거야.”
차시현이 음 하는 소리를 내며 골똘히 생각했다.
“고향에 가고 싶었나?”
“……그랬을 수도.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린 거지.”
차시현의 말대로 나는 어쩌면 샛별과 고향을 동일시했을지도 모른다.
정확히는 행복했던 시절.
아무런 걱정 없이 가족이 단란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정신병원에 스스로 들어갈 만큼 지쳐 있었으니까.
“훈아.”
차시현과 그림 이야기를 하고 있던 중 학우 한 명이 다가왔다.
박현우라고 반 분위기를 주도하는 똘똘한 아이다.
무슨 일인지 대화하던 차시현이 시무룩하게 고개를 돌리고 자기 자기로 돌아갔다.
박현우는 그런 차시현을 보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우리 투자 동아리 들어올래?”
“투자?”
“응. 주식만 다루지만. 코스피랑 나스닥 위주로 하고 있어.”
언젠가 할아버지가 나도 알아야 하는 지식이라고 말씀하신 적 있다.
그림만 그리고 싶다고 하니 따로 잘 알고 계신 전문 투자자를 소개해 주신다고 하셨다.
“난 맡기고 있는데.”
“그래도 괜찮지만 직접 해보면 엄청 재밌어. 배우는 것도 많고. 그렇지?”
박현우가 고개를 돌려 학우들에게 동의를 구했다. 다른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딱히 배울 생각은 없지만 호의를 이유 없이 거절하기도 미안하다.
교우관계는 중요하고 그림 그리는 데 방해만 되지 않으면 나쁘지 않겠다.
“언제 하는데?”
“학교 끝나고 한 시간. 동아리방도 있어.”
10살 난 아이들이 하는 동아리에 방을 따로 내주기도 하는 한국 초등학교의 배려심이라고 할지.
등록금의 힘이라고 할지 모를 일이다.
“그래. 한번 해보고 정할게.”
“정말? 그럼 내일 올래?”
“그래.”
달콤했던 쉬는 시간도 금방 지나고 가혹한 과학 시간이 찾아왔다. 다행히 물체는 고체, 액체, 기체로 분류할 수 있다는 나도 아는 이야기가 나와서 안심했지만.
곧 액정, 초임계유체, 플라즈마, 페르미온 응집, 초전도체, 초유동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나와 어김없이 좌절하고 말았다.
곧 있을 점심시간에 기대어 버티고 나니 기나긴 과학 시간도 끝이 났다.
“감사합니다!”
아이들의 명랑한 목소리와 함께 점심시간이 시작되었다.
바로 움직일 힘이 없어 책상에 엎드렸다.
고개를 돌리니 평소라면 밥 먹으러 가자고 했을 차시현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그림 그리나 싶어서 슬쩍 고개를 드니 몸을 더 움츠린다.
“밥 먹으러 가자.”
반응이 없다.
“배 안 고파? 오늘은 부식으로 초코우유도 나와.”
엎드린 채 가만히 있으니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닌가 걱정되어 흔들었다.
“몸 안 좋아?”
언뜻 본 녀석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어디가 아픈데. 어? 양호실 가자.”
“안 아파.”
“그럼 왜 울어?”
“안 울어!”
얘가 왜 이러는지 모를 일이다.
등을 토닥이며 달랬다.
“뭔지 몰라도 말을 해야 알 거 아냐. 이 형한테 다 털어놔 봐.”
“……누가 형이야.”
“나 열한 살이야. 너 열 살이지?”
대한민국은 나이를 참 잘 따지는 나라다. 이해할 수 없는 면도 있지만 이럴 때는 참 편하다.
“거짓말.”
“진짜야.”
인터넷에서 내 기사를 검색해서 보여주었다. 김지우가 처음 낸 기사에 언제 태어났는지 명시되어 있다.
“그치? 형이라고 해 봐.”
“싫어.”
“그럼 친구니까 얘기해 봐. 친구한테 못 할 말이 어딨어.”
차시현이 뚱한 표정으로 있다가 중얼거렸다.
“걔들이랑 논다고 했잖아.”
“응.”
“흐이잉.”
차시현이 또 엎드렸다. 서럽게도 울길래 등을 툭툭 쓸어내렸다.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왜 그래? 놀지 마?”
고개를 끄덕인다.
“왜?”
또 대답이 없어졌다. 답답해 미칠 노릇이다.
“자꾸 울면 너랑 안 놀 거야.”
“…….”
“뚝.”
“……뚝.”
눈물을 닦아주자 울먹거리며 말했다.
“나도. 나도옵. 놀고 싶단 말이야.”
“놀면 되잖아.”
말을 뱉는 순간 깨달았다.
이 아이에게는 내가 첫 친구고, 함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유일한 친구다.
내가 다른 학우들과 놀게 되면 그럴 수 없다는 생각에 서러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분을 풀어주고자 농담을 꺼냈다.
“내가 그렇게 좋아?”
“진짜 싫어.”
차시현이 또 엎드렸다.
농담이 안 통한다.
“그럼 너도 같이 가. 친구 많아지면 좋잖아.”
“……걔들은 나 싫어한단 말이야.”
그 때문이었나.
둘이 있을 때는 그렇게 밝은 아이가 반에서는 겉도는 느낌이다.
조금 전 박현우가 다가왔을 때 슬그머니 자기 자리로 돌아간 것도 그렇고 혹시나 따돌림을 당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너도 걔랑 놀면 나 싫어하게 될 거야.”
“그런 일 없으니까 걱정 말래도.”
“현우가 괴롭혀?”
차시현이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답답하다고 무시하고.”
답답한 면이 없지 않아 있긴 하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다.
특히 감정 변화가 많은 시기니 세심하게 대해줘야 한다.
“그래. 걱정하지 마.”
“어떻게 하게?”
“사랑으로 대하면 다 통하는 법이야.”
차시현의 얼굴이 걱정으로 물들었다.
“마태복음에도 나오잖아.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을 돌려서 대라고.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고.”
“싫어!”
* * *
용산구에 사무실을 차린 방태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비싼 월 임대료를 계속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그간 모아두었던 돈과 대출을 받아 좁은 사무실을 샀다.
월세는 없어지는 돈이고 전세 매물은 거의 없다시피 하니, 차라리 구입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책상과 테이블, 책장 몇 개를 두니 그림 걸어둘 자리도 부족했지만 방태호로서는 처음 가진 자신만의 사무실이었다.
“후.”
그가 의지를 다지며 숨을 내쉬었다.
“축하해, 사장님.”
이한나가 어깨를 부딪치며 축하했다. 열악한 사무실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도리어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꿈을 위해 용기를 낸 남편이 멋지기만 했다.
자신이 선택한 남자라면 1년이고 3년이고 10년이고 포기하지 않고 반드시 성공하리라 믿었다.
“자.”
이한나가 통장과 카드를 겹쳐서 남편에게 건넸다.
방태호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게 뭐야?”
“사업하려면 자금 필요할 거 아니야. 써.”
이한나가 당황한 방태호의 가슴팍에 통장과 카드를 밀어 넣었다.
방태호는 그것과 아내를 번갈아 보다가 조심스레 통장을 펼쳤다.
2억 2,189만 원.
“잠깐. 이게 뭐야?”
생각지도 못한 큰 금액이었다.
아내가 제법 인기 있는 웹소설 작가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수입은 각자 관리하던 터라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나중에 안 갚으면 고소할 테니 무슨 일이 있어도 갚아.”
“아니. 아니야. 이건 아니야.”
방태호가 고개를 저었다.
“이걸 어떻게 받아.”
“왜? 갚을 자신 없어?”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 내가 당신 어떻게 일하는지 뻔히 아는데 어떻게 받아.”
방태호가 이한나의 손에 통장과 카드를 쥐여 주었다.
“고마워. 진짜 힘 난다.”
그러고는 평생 모은 돈을 흔쾌히 넘겨주며 응원해 준 아내에게 감격한 마음을 그대로 표현했다.
이한나가 자신을 끌어안은 남편을 흘겨보았다.
“이러고 어떻게 사업할래?”
“어?”
“투자자가 왔으면 깍듯하게 대해야지. 투자한 돈을 어떻게 쓰겠다. 우리 작가랑 회사가 얼마나 유망하냐 그런 거 말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긴 하지. 그렇긴 한데.”
“다시 해봐. 첫 투자자 이한나 작가님 만난 거야.”
이한나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들었다. 그 모습이 제법 진지했다.
방태호는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고 입을 열었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한나 작가님.”
“반가워요. 미술가 매니지먼트 회사라고 들었어요.”
“그렇습니다. 최근 1,400만 달러에 낙찰되어 신기록을 경신한 서리 밀밭의 고훈 작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앞으로 예정은요?”
“세계 최대 규모의 미술제 휘트니 비엔날레에 출품할 예정입니다. 고훈 작가의 명성은 더욱 높아질 테죠.”
“전시 이력만 챙긴다고 해결되나요?”
“물론 작품 활동에 집중하지 못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고훈 작가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루에 한 점씩 그리며 지금도 무섭게 발전하는 작가입니다.”
“아직 어리니까 더 발전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어린 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잖아요? 도중에 흥미를 잃으면 어쩔 생각이세요? 다른 작가도 없는데.”
“슬럼프는 있을 수 있겠지만 고훈 작가는 미술을 포기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걸 어떻게 믿죠?”
“이름을 떨친 미술가 중에는 그걸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있죠. 고훈이 바로 그렇습니다.”
“작품 활동을 안 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대비책이 없다는 뜻이네요?”
“그런 일이 없도록 하는 게 저와 이 회사 선플라워가 할 일이죠.”
“그래요? 전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모르겠크흡흐흫.”
“흐흐흐흐흫.”
대화를 이어가던 부부가 결국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방태호가 아내의 허리를 두르고 들어 올렸다.
“정말 고마워. 정말.”
“떼먹으면 죽일 거야.”
“어…… 그런데. 뻔뻔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킵 해두면 안 될까?”
“킵?”
“나 망하면 빌붙어야 하니까.”
“죽을래?”
“하핳하하. 농담이고. 실은 투자처를 구했거든. 조건 조율 중이라 말 안 하고 있었어.”
“정말? 어디?”
이한나가 반색하며 물었다.
“쉬민케.”
아내가 잔뜩 놀랄 것을 기대했던 방태호는 눈만 깜빡이는 이한나의 반응에 당황했다.
“아니. 몰라? 엄청 유명한 물감 브랜드잖아.”
“흐응?”
“정말 몰라?”
“뭐 그런 거겠지. 우리 남편 멋지네.”
“아니, 그 정도 반응이면 안 된다고. 막 소리치고 정말? 진짜? 대박? 이래야 한다고.”
“그래. 알았어. 우리 남편 멋지네.”
“…….”
* * *
1)별이 빛나는 밤, 빈센트 반 고흐, 1889, 캔버스에 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