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68화
18. 볼 수 없는 걸 보여주는 사람(2)
크리스틴 노먼은 올해 개봉 예정작 <이어 원>의 음악 작업을 위해 베를린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비행기 안에서도 편집본을 확인하고 있었다.
“노먼.”
아트 디렉터 네이선 에반스가 노먼을 불렀다.
“응?”
“난 항상 당신을 지지해 왔지만 이번에는 동의하기 어려워.”
네이선 에반스의 말에 노먼이 슬며시 웃었다.
“고훈?”
“그래. 그는 아직 너무 어려. 또 콘셉트 아트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았고.”
“그렇게 보이더라.”
노먼은 부정하지 않았다.
어제 고훈이 대화에 잘 따라오지 못하는 듯하여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였다.
“그림이 다 같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잖아. 단지 화풍이 마음에 든다고 그를 선택한 건 성급한 판단이야. 그 아이가 기암성의 분위기를 잘 표현할지 의문이군.”
“맞아.”
노먼은 또 부정하지 않았다.
네이선 에반스 미술감독은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고훈에게 손을 건넨 노먼을 이해할 수 없었다.
노먼이 노트북을 접었다.
“결과물이 좋지 않으면 어쩔 수 없지.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할 테고. 단지 난 그가 어떤 기암성을 보여줄지 궁금했을 뿐이야.”
네이선 에반스가 팔짱을 끼고 노먼의 말에 귀 기울였다.
“당신도 봤지만 기암성에는 강렬한 이미지가 필요해.”
완벽주의자 크리스틴 노먼은 내년에 촬영하기로 예정한 <기암성>을 위해 마을 하나를 통째로 조성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20세기 초 프랑스 분위기를 물씬 살리기 위해서는 명확한 이미지가 필요했고.
철저한 고증을 위한 사전 작업도 차차 준비해 나가고 있었다.
다만 크리스틴 노먼 감독의 머릿속에 있는 근대 프랑스의 모습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제작, 감독, 각본을 책임지고 있는 탓에 스탭에게 일일이 설명할 시간이 없었고, 정보를 말로 전달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것을 해결할 방법이 콘셉트 아트.
크리스틴 노먼은 상상 속의 세계를 표현해 줄 사람이 필요했고, 때마침 고훈이라는 화가를 알게 되었다.
“내가 그에게 바라는 건 이정표야. 방향만 알면 고증은 얼마든지 할 수 있어.”
<기암성>의 콘셉트 아트에서 중요한 건 분위기였다.
고증과 디테일은 전문가와 조율하면 될 터였으나, 산업화를 거치는 당시 프랑스의 삭막함과 허영.
모호함과 허울.
그리고 <기암성> 특유의 기괴함이 중요했다.
“한 장면만으로도 관객을 설득해야 해. 그러기 위해선 서리 밀밭 같은 분명한 심상이 필요하고.”
고훈의 <서리 밀밭>은 특별했다.
얼어붙은 밀밭과 바람 부는 겨울밤이라는 절망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가 느껴졌다.
사실적인 묘사가 없는 단 한 장의 그림에서 서사를 느낄 수 있었다.
영화의 모든 장면이 하나의 요소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서리 밀밭>과 같이 함축적이면서도 선명한 이미지가 필요했다.
특히나 원작 소설보다 추리적 요소를 더욱 강조한 <기암성>은 복선이 여럿 준비되어 있었다.
단순히 대사, 행동, 소품만으로 전달하는 복선이 아니라 장면으로 전달하려는 숨은 의미가 있기에 더더욱 중요했다.
“흠.”
노먼 감독의 말을 이해한 네이선 에반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고훈이 각본을 제대로 읽을 수 있길 바라야겠네.”
“흥미만 있다면 못 할 일은 없어.”
노먼이 씩 웃었다.
“그리고 내 각본이 재미없을 리 없고.”
* * *
잠을 한숨도 못 잔 탓에 눈꺼풀이 몹시 무겁다.
4교시까지 어떻게든 버텼지만 이젠 한계다.
“오늘은 도시개발구역을 지정할 때 생각해 볼 점이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해요.”
“네!”
이곳에서는 국어, 영어, 수학 등 일반적인 과목 외에도 일주일에 다섯 번, 특별 토론 수업이 있는데.
대체 10살, 11살 아이들이 배우는 내용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난해하다.
대체 아이들이 왜 도시 개발에 대해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이들 틈에서 졸음과 싸우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쟤는 항상 뭐 하고 있는 거지.’
학교에 다닌 지 꽤 되었는데 옆자리의 학우는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차시현이라고 했던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종일 태블릿에 무엇인가를 끄적인다.
“그럼 시현이가 한번 말해볼까?”
수업을 듣고 있던 나도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는데, 딴짓하던 아이가 제대로 대답할 리 없다.
“토지 성분, 주변 건축물, 주거와 생활 실태, 수요, 주민 청취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경제 가치와 이해 충돌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아닌가 보다.
뾰로통한 표정으로 일어선 차시현이 또박또박 답했다.
이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대체 어떻게 살았길래 저 지경이 되었을까.
분명 학대에 가까운 교육을 받았음이 틀림없다.
“맞아. 도시를 개발할 때는 정말 많은 일을 고려해 봐야 해. 특히 주민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보는 과정이 꼭 필요하고.”
선생님이 설명을 덧붙이는데 차시현의 태블릿이 눈에 들어왔다.
얼어붙은 호숫가에 자란 파란 나무다.
울트라 마린에 가까운 색상이다.
쓸쓸한 배경이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색의 나무 덕분에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뭘 하나 싶었는데 지금까지 그림을 그렸던 모양.
‘잘 그리는데.’
구도와 형태는 단순하지만 파란 나무가 주는 인상이 무척 신선하다.
꼭 붓을 툭툭 두드리며 표현하는 것 같은데 무슨 애플리케이션을 쓰는지 궁금하다.
태블릿으로 그림 그리는 일에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물어보고 싶은 게 많다.
수업이 끝나면 말을 붙여볼 생각으로 보고 있으니, 자리에 앉자마자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럼 훈이가 말해볼까?”
선생님의 부름에 문득 정신을 차리자 학우들과 선생님이 눈빛을 빛내고 있다.
대단한 대답을 기대하는 눈치라 난감하다.
자연 그대로를 사랑하기에 도시 개발 따위 생각해 본 적 없다. 도리어 반대하는 입장이다.
“자연을 망치지 않는 선에서 하는 게 좋겠어요.”
차시현이나 다른 학우들처럼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라 솔직하게 답하자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한다.
“훈이가 아주 좋은 말을 했어. 개발도 중요하지만 자연을 해치지 않는 것도 중요해.”
“왜요? 아파트 지으면 훨씬 이득인데?”
아이들의 질문에 선생님은 뉴욕이란 도시의 센트럴 파크를 예시로 들었다.
휘트니 비엔날레가 열리는 장소다.
“아파트를 더 지으면 경제 효과는 있겠지만 공원을 가꾸면 삶의 질이 올라갈 거야. 최근에는 이런 요소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고 있어.”
선생님은 자연이 제공하는 휴식처가 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일반 과목은 그런대로 따라갈 수 있지만 특별 수업마다 정말 고역이다.
나눗셈 같은 사칙연산을 배우다가 경제가 어떻고 개발이 어떻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 괴리감이 엄청나다.
“그럼 오늘 수업은 끝!”
“감사합니다!”
유익하지만 지루하고 알쏭달쏭한 수업이 끝났음에도 차시현은 여전히 그림을 그렸다.
다른 아이들이 점심을 먹으려고 부설 식당으로 향하는 건 신경도 쓰지 않는다.
좋은 집중력이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게 많지만 방해하고 싶진 않아서 지켜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완성한 모양인지 고개를 들고 그림을 살핀다.
입가에 살짝 미소가 감돈다.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내가 보기에도 퍽 잘 그렸다.
빛과 어둠을 다룬다거나 질감을 살리는 등의 기술은 없지만 애초에 저런 그림에는 그리 필요 없는 요소다.
그보다는 주제부를 살리는 색채감이 훌륭하다.
제법 공들인 부분도 눈에 띈다.
이 학교에는 유독 뛰어난 아이가 많지만 일반적으로 저 나이 때는 무엇인가를 혼자 완성하는 게 흔치 않다.
어지간히 좋아하지 않고서야 저런 그림을 그릴 수 없다.
아이의 행복한 미소가 보기 좋다.
“……?”
표정이 금방 안 좋아진다.
입술을 씰룩이더니 방금 완성한 그림을 지웠다.
‘마음에 안 들었나?’
아니.
그렇게 행복한 표정을 지었는데 그럴 리 없다.
“왜 지워?”
슬쩍 물어보니 차시현이 움찔거렸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쏘아본다.
어린아이답지 않게 표독스러운 표정도 짓는다.
“왜 맘대로 봐.”
잔뜩 화난 얼굴로 태블릿을 서랍에 넣고 일어선다.
숨기고 싶었던 모양.
나는 어떻게든 내 그림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만,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
따라나섰다.
“미안.”
“따라오지 마.”
“그림이 예뻐서 보게 됐어.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차시현이 멈췄다.
“……알았어.”
기분이 조금 풀린 듯하다.
교실 밖으로 나온 김에 식당으로 향하던 중 앞서가던 차시현이 갑자기 몸을 돌렸다.
“왜 자꾸 따라와.”
“밥 먹으러 가는데?”
얼굴이 빨개진다.
다시 걷기 시작하자 차시현이 보폭을 넓혀 도망가듯 걸었다.
식당에 도착했다.
차림표를 보니 오늘은 한식과 중식, 특식 중에 고를 수 있는 모양이다.
중식은 한 번 먹어 봤다.
도전하지 않으면 새로운 즐거움을 누릴 수 없는 법.
처음 보는 한식과 특식 중에 고르는 게 좋겠다.
한식은 소불고기, 잡채, 호박전, 버섯 무침, 배추김치, 달래된장찌개 등 여러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있다.
카레 우동이라는 특식도 무슨 맛인지 궁금하지만, 다양한 종류를 즐기고 싶다.
한식으로 정했다.
“이 맛에 다니지.”
지식을 쌓는 즐거움으로 다니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이 급식을 먹는 낙으로 다닌다.
할아버지가 직접 해주시는 음식은 짠 편이라 이쪽이 입맛에 더 맞다.
“합.”
이제 제법 젓가락질에 익숙해졌다.
특이한 면과 채소, 고기를 함께 넣어 만든 요리를 입 한가득 넣었다.
재밌는 식감이다.
육질과 채소의 아삭함이 독특한 면빨과 함께 어우러진다.
‘밀가루는 아닌데.’
무엇으로 만든 면인지 궁금하다.
“합.”
정신없이 밥을 먹다 보니 문득 차시현에게 무슨 애플리케이션을 쓰는지 물어보려 했던 게 떠올랐다.
내가 쓰는 애플리케이션은 붓 종류가 만족스럽지 못한데, 얼핏 보기로는 상당히 독특한 느낌의 붓을 사용했다.
크기가 여럿일 뿐만 아니라 모양도 여러 가지인 듯해 꼭 알고 싶다.
‘벌써 돌아갔나.’
주변을 둘러봐도 안 보인다.
점심 이후에는 개인 수업이 한 시간 있을 뿐, 바로 하교한다.
내일 물어봐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이번에는 달래된장찌개에 도전해 보려던 차.
차시현이 시야에 들어왔다.
눈을 마주쳤지만 고개를 돌려 외면한다.
아직 기분이 덜 풀렸나 싶다.
“뭐 먹었어?”
말을 거니 주춤거리며 턱을 당긴다. 기분이 나쁘다기보단 당황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카레 우동.”
마침 궁금하던 걸 먹었다.
“맛있어?”
“그냥.”
“그냥?”
“그냥 카레 우동 맛.”
그 카레 우동 맛이라는 걸 모른다.
좀 더 자세히 말해주면 좋겠는데 나와 대화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차시현이 지나치려고 하기에 다급히 불러 세웠다.
“아까 쓰던 애플리케이션 뭐야?”
“……뭐가.”
“그림 그리던.”
녀석이 식판을 내려놓고 내 입을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