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65화
17. 첫 의뢰(4)
전 세계 미술인이 주목한 고훈의 첫 개인전 ‘달콤한 행복’.
언론과 평단의 찬사는 끊이질 않았다.
<행복>과 <행복2>는 유화 물감으로 표현할 수 있는 질감을 극대화하여, 마치 초콜릿이 흘러내리는 듯한 효과를 연출했고.
<라부 여관>은 의도적으로 무너뜨린 원근감과 과감한 생략, 담백한 표현으로 포근하면서도 어딘가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렇게 여러 작품 중에서도 유독 시선을 모은 작품은 단연 <서리 밀밭>.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빼앗은 그것을 누가 차지할지, 얼마에 팔릴지에 관한 추측이 난무했고.
미술 애호가들은 앙리 마르소가 그림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고훈과의 관계를 차치하더라도, 앙리 마르소가 전시 기간 내내 <서리 밀밭>을 보러 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금액이 나오고 말았다.
1,400만 달러.
캐롤라인 스트릭, 장미래, 피에르 말로 등 미술계 유력 인사들이 극찬을 내놓긴 했으나.
아무도 첫 개인전을 연 신진 작가의 작품이 1,400만 달러에 팔릴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WH 서울 옥션과 배움 미술관이 여러 요소를 후하게 판단하여 예상한 적정가격이 40억 원에서 50억 원 사이.
그조차 기존 WH 서울 옥션 최고가에 근접한 수치였으나.
<서리 밀밭>은 한화 약 163억 원.
한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의 대표작에나 가능할 법한 금액에 낙찰되고 말았다.
더군다나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크리스틴 노먼 감독과 화가 앙리 마르소가 치열한 접전 끝에 형성한 가격이었다.
경매에 누가 참여했고, 누가 소유했는지도 미술품의 가격을 형성하는 중요 요소였기에.
<서리 밀밭>은 앞으로 그 가치를 더욱 높이 인정받을 터였다.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한민국 매스컴은 물론 아시아, 유럽, 북미 미술계가 발칵 뒤집혔다.
커뮤니티 사이트와 포럼에서는 고훈의 <서리 밀밭>에 관한 글이 속속들이 올라왔다.
└와 진짜 미쳤다. 앙리가 작정했나 보네.
└전시회 기간 내내 찾았다고 함.
└나도 한번 보고 싶은데 너무 멀어서 못 갔음. 마르소 갤러리에서 전시하려나?
└그러지 않을까? 저 정도 돈 주고 산 그림 혼자 보기 아깝잖아.
└수집가들이 저거 전시해서 수익 창출하려고 사진 않아. 대부분 자기 집 응접실이나 건물에 걸지.
└앙리 마르소도 <해바라기> 전시 안 하고 있음.
└헐. 그럼 앙리가 전시할 생각 없으면 이젠 못 봐?
└사진 있잖아. 사진으로 보면 되지.
└직접 보고 싶으니까 그렇지.
└미술품이 사진으로 보는 거랑 직접 보는 거랑 차이가 있긴 함.
└아, 진짜 아쉽네. 저런 그림은 지역 옮기면서 전시해야 하는데.
└그러니까. 너무 일찍 팔렸어.
미술 애호가들은 고훈의 작품이 단 2주간 전시되었다는 것에 크게 안타까워했다.
개인 소유가 되었으니 앞으로 언제, 어디서 공개될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라 더욱 그러했다.
그런 한편.
<서리 밀밭>이 1,400만 달러에 판매된 일을 비판하고 나선 인물도 상당수를 이루었다.
추상을 넘어서 형태와 의식을 철저히 배제하던 미술계에서 고훈의 표현적인 선과 색채를 통한 강렬한 이미지가 도리어 신선하게 다가옴을 인정하면서도.
지나치게 과도한 가격 형성을 이룬다는 의견이 한 무리를 이루었다.
2007년.
한국 미술시장을 잠식하고 이후 끝없는 나락으로 향했던 거품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었다.
2016년 기준 한국 미술품 경매 시장의 낙찰 총액은 1,720억 3,100만 원이었다.1)
그중 김현기 화백의 작품이 총액 415억 원으로 24%를 차지하며 1위, 당시 신인 작가였던 장미래가 이례적으로 낙찰 총액 110억 원으로 2위에 올랐었다.
단 두 사람이 전체 경매액의 30%를 차지했던 것이었다.
철저한 독식이었다.
작품 거래 건수는 나날이 증가했고, 총거래 액수는 큰 변동이 없는 상황이 이어져 온 것이었다.
그러다가 작년과 올해.
소수 작가가 시장을 독식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단 한 작품이 2,000억 원 규모의 한국 미술 경매 시장의 8%를 차지하고 만 것이었다.
미술평론가 진성일은 ‘이번 사건은 미술시장의 부흥이 아닌 부의 집중이며 이는 미술시장의 악재’라고 평하며.
앙리 마르소, 크리스틴 노먼과 같은 외국 부호들이 한국 미술시장을 무너뜨렸다고 날선 어투로 비판했다.
반면.
해외 자본이 유입되어야 한국 미술 시장의 총거래 액수가 많아진다는 논리로 이를 반기는 사람도 있었다.
한편 동시대 미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유치한 그림이라고 비난하는 쪽도 한 무리를 이루었다.
열렬히 환영하는 이와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자, 극심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뒤엉킨 경악의 중심에.
고훈이 있었다.
* * *
‘말도 안 돼.’
전부터 께름칙했다.
그림이 팔렸단 기쁨과 내 마음이 저들과 이어졌단 황홀함.
어쩌면 돈 걱정 없이 그림을 그릴 수 있단 기대로 애써 무시했던 감정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뭔가 잘못됐다.’
내 그림을 높이 평가하는 건 기쁘지만 163억 원의 가치를 가질 순 없는 법이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다.
마르소 갤러리에서 할아버지와 했던 대화가 떠오른다.
경매장에서의 가격이 그 그림의 가치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말.
화가에게는 그림 가격이 곧 자신의 가치이기도 하지만, 이 상황은 분명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할아버지.”
옆으로 올려다보니 할아버지도 무척 놀라신 듯하다.
이 시대의 미술은 대체 어떻게 되먹은 건지 더는 외면할 수 없다.
할아버지라면 답을 주시리라.
“너무.”
막 입을 떼려던 차.
기자들이 야단법석을 부려댔다.
“역대 최고가를 갱신했습니다! 지금 기분이 어떠신가요!”
“손자분께서 한국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한마디 해주시죠!”
“해바라기에 이어 서리 밀밭도 앙리 마르소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두 사람의 대표작을 서로가 나눠 가지게 되었는데 불화설에 대해선 어떤 입장이십니까?”
도저히 대화를 이어나갈 상황이 아니었다.
배움 미술관 직원들과 약속한 축하 파티 장소까지 따라올 기세라 어쩔 수 없이 집으로 피신했다.
“후우. 난리다. 난리야. 괜찮아?”
“네. 할아버지는요?”
“괜찮아. 방 팀장이 고생 많았지. 고맙네.”
“하하. 별말씀을요.”
할아버지 말씀대로 방태호 덕분에 그나마 아무 일 없이 올 수 있었다.
음식 배달을 기다리며 인터넷을 훑어보니 <서리 밀밭>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내 그림을 보고 싶어 할 줄은 몰랐다.
‘달라.’
전시회는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얼마나 단순한 발상인지 깨달았다.
‘세계로 나와.’
처음에는 앙리 마르소의 말을 단순히 파리나 뉴욕 같은 도시에서 전시하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WH배움 미술관 뉴튜브 채널에 올라온 여러 언어를 보니, 그곳에 전 세계 사람이 다 모여 있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접근성’이 한 도시나 국가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빠르게 접할 수 있고 비행기 같은 이동 수단으로 마음만 먹으면 반나절 만에 지구 반대편에 갈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이 모이는 곳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된다.
김지우, 방태호, 앙리 마르소가 말했던 휘트니 비엔날레가 바로 그런 장소였던 것이다.
“휘트니…….”
혼잣말로 중얼거린 걸 방태호가 들은 모양이다.
“신경 쓰여?”
“네.”
두말하면 잔소리다.
5월에 참가하기로 했지만 아무래도 개막일에 맞추지 못하는 게 마음에 걸린다.
“몇 명이나 모여요? 휘트니 비엔날레.”
“무료 입장이다 보니 집계가 정확하진 않아. 그래도 보도 자료로는…….”
방태호가 스마트폰으로 휘트니 비엔날레에 관련한 기사를 보여주었다.
“310만 명?”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숫자에 깜짝 놀랐다.
“저번에는 그 정도 방문했대.”
그가 찾아 준 2026년 휘트니 비엔날레의 이런저런 기록을 정리한 기사를 살펴보았다.
5월 15일부터 9월 17일까지라면 대충 넉 달.
참가한 미술가는 212명이나 된다.
한국에서 이례적으로 성공한 전시회로 평가받는 ‘달콤한 행복’이 2주간 13만 명에 그친 것과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원래 이렇게까지 몰리진 않았는데 몇몇 미술제에서 문제가 있었거든. 그러다 보니 다들 뉴욕으로 모이게 됐지. 미술가도 팬들도.”
“무슨 문제요?”
“음. 심사가 공평하지 않았어.”
상을 판다든가, 지인에게 유리하게 심사한다든가 하는 일이리라.
예술은 돈이 있는 장소에서 이뤄지지만, 부정 역시 돈이 쏠린 곳에서 이뤄진다.
“휘트니 비엔날레 자체도 대단하지만 휘트니 미술관은 작품을 주기적으로 돌려. 미국뿐만 아니라 파리, 런던, 베를린 같은 유럽 주요 도시도 마찬가지고. 서울에서도 했어.”
“…….”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휘트니 비엔날레처럼 많은 사람이 찾는 축제로도 모자라 여러 나라를 순회하기까지 하다니.
‘달콤한 행복’을 준비할 때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일을 잘 알고 있는 방태호도 배움 미술관에 소속되어 있기에 생각에서 그쳤을 것이다.
“올해는 한 달 당겨져서 4월 21일부터 열려. 이제 한 달도 안 남았지.”
그림을 오늘내일 안에 완성하면 어떻게든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그린 그림이 만족스러울 리 없다.
그 때문에 방태호가 도중 참가를 권하기도 했다.
“좀 늦어지게 되었지만 5월까지만 준비하면 되니까. 조급해하지 않아도 돼.”
“좋은 자리는 못 구하겠죠?”
“전시 공간이 정해져 있어서 힘들겠지만.”
방태호가 씩 하고 웃었다.
“가능해. 우리 고훈 작가 그림이면 분명히.”
덩달아 웃어 보였다.
“그러면 직장은 어떻게 되나.”
할아버지가 나섰다.
“이번 달까지 다니고 다음 달에는 그만둔다고 말해 두었습니다. 훈이 일정 생각하면 좀 더 서두르고 싶지만 정리할 게 남아 있어서요.”
“그럴 테지. 너무 서두르지 말고 잘 마무리하게.”
“예. 아무래도 앞으로도 볼 사람들이라 신경 쓰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서 전시회를 할 때는 배움 미술관과 함께할 경우가 많을 테니 좋게 헤어지려는 것 같다.
남은 일을 성의 없이 처리하고 나오는 사람이라면 도리어 실망했을 것이다.
볼수록 믿음이 생기는 사람이다.
“참. 그리고.”
방태호가 급히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이른가 싶지만 훈이에게 오는 연락을 제가 받고자 합니다. 연락처가 공개되지 않아서 그런지 배움 미술관 쪽으로도 컨택 문의가 많이 오더라고요.”
“흠.”
“계약해 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일을 빨리 시작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주면 나야 편하지. 한데 어떻게?”
“우선은 연락하는 미술관에 안내 메일을 보내려고 합니다. 고훈과 함께하게 되었으니 연락을 달라고. 보도 자료도 내고요.”
“미봉책이구만.”
“그렇긴 합니다만 사업자 내기 전까진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도록 하게. 나도 주변에 이야기해 둘 테니.”
다음 달까지는 방태호가 회사를 차리고 정식 계약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대강 마무리되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식사하고 가지.”
“하하.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서요. 훈이 오늘 고생했다. 축하해.”
“안녕히 가세요.”
“조심히 들어가게.”
방태호를 배웅하고 돌아서자 할아버지가 현관 앞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끄응.”
턱을 짚고 신음한다.
깊은 고민이 있으신 듯하다.
혹시 휘트니 비엔날레나 방태호와의 매니지먼트 계약에서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 건지 걱정이다.
“왜요?”
“5m는 너무 작지?”
“뭐가요?”
“현수막 말이다. 흠.”
다행히 다른 걱정이다.
“뭐라고 거시게요?”
“내 손자가 한국 기록을 세웠는데 자랑해야지. 가만 보자. 구청에다가 문의해야 하나?”
“…….”
“왜. 싫어?”
“창피해요.”
“뭐가 창피해? 자랑스러운 일이지. 한국 기록이야. 기록.”
“내일 축하 파티 하기로 했잖아요. 그걸로 충분해요.”
“그래. 내일 사진도 찍으러 가자꾸나. 같이 걸어야 알아보지.”
내 말을 안 듣고 계신다.
이미 마음속으로는 대문짝만 한 현수막이 완성되어 있을 터다.
할아버지를 말리려고 할 때 초인종이 울렸다.
골프채를 들어 초인종을 누르자 방금 나갔던 방태호가 숨을 헉헉거리며 돌아왔다.
“뭐 두고 갔어요?”
뭐가 그리도 급한지 뛰어온 모양이다.
“아니. 허윽. 허윽.”
할아버지에게 무슨 일인지 아냐고 물어보려고 고개를 들었다.
할아버지도 같은 생각이셨는지 시선이 마주쳤다.
“노먼. 크리스틴 노먼한테서 연락이 왔대.”
<서리 밀밭>을 사려고 했던 영화감독 이름이다.
“무슨 연락이요?”
방태호가 숨을 길게 내쉬며 호흡을 골랐다.
“내일 잠깐 만날 수 있냐고.”
* * *
1)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발표 자료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