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60화
16. 금도끼 은도끼(4)
“그래. 좋은 사람이지만 직장이 따로 있잖니. 미술관 일만으로도 벅찰 거야.”
이번 전시회를 처리하는 모습이 퍽 인상 깊었다.
어딜 가도 내 전시회가 소개되었고, 전시실도 내 그림이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잘 꾸며놓았다.
그림 보는 눈도 있고 대화도 통하니 그보다 좋은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 싶다.
그렇게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WH배움 미술관에 도착했다.
“할아버진 차 대고 들어가마.”
“네.”
차에서 내려서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평소와 같이 관람객들을 구경하는데 앙리 마르소가 있다.
오늘도 <서리 밀밭>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오는 걸 보면 정말 마음에 든 것 같다.
이상한 인간이긴 해도 저러는 걸 보면 참 고마운 사람이다.
“또 왔네요.”
슬쩍 다가가 말을 붙였다.
고개를 돌리더니 이내 다시 <서리 밀밭>에 시선을 고정한다.
할 말도 없고 해서 돌아가려던 차 그가 입을 열었다.
“팔리지 않는 건 여기서 전시한다는 게 사실이야?”
시선은 여전히 <서리 밀밭>을 향하고 있다.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왜.”
“그런 조건이었어요.”
수익 배분율을 유리하게 적용하면서 팔리지 않은 작품으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일이었다는 자세한 이유까지 말해 줄 이유는 없다.
프로 작가인 그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을 테고.
그가 고개를 돌렸다.
“전시회 기간 연장한다는 것도?”
“네.”
원래 일주일이었던 기간을 한 주 더 늘린다고 들었다.
“……만족하냐?”
“뭐가요?”
“이딴 곳에 만족하냐고.”
이 인간은 왜 만날 때마다 시비를 거는지 모르겠다.
“여기가 어때서요.”
“파리나 뉴욕이었으면 열 배는 많이 알려졌을 거야.”
순간 반박할 수 없었다.
파리와 암스테르담에 비하면 서울은 미술관을 찾는 사람이 적다.
앙리 마르소의 전시회는 나중에 하루 3만 명이나 방문했으니 말이다.
하루에 만 명이 찾아와 주는 것으로도 행복하지만, 자꾸만 더 많은 사람이 찾아와 주길 바라게 된다.
앙리 마르소가 심통 맞게 말을 이어나갔다.
“완성했다고 다가 아니야. 작품이 있어야 할 곳을 찾아주는 것도 작가가 할 일이다.”
평소 건달 같던 모습과 달리 진지한 태도다.
‘확실히.’
단 한 명의 관람객만으로도 행복했던 내가 지금에 이르러서는 만 명으로도 만족할 수 없다.
솔직해지면, 앙리 마르소의 말대로 더 넓은 세계로 나서고 싶다.
그걸 편하게 하기 위해서는 할아버지와 방태호가 말했던 매니저란 사람을 구해야 하고 말이다.
“좋은 말 고마워요.”
“흥.”
앙리 마르소가 콧방귀를 뀌더니 비서에게 손을 내밀었다.
“훈아.”
방태호 목소리다.
무슨 일로 부르나 싶어 고개를 돌리려는데 앙리 마르소가 색이 들어간 안경을 쓰며 말했다.
“뉴욕에서 미술제가 열릴 예정이야.”
휘트니 비엔날레.
세계 3대 비엔날레라고 했던가.
김지우가 알려 준 미술 축제다.
“생각 있는 큐레이터라면.”
앙리 마르소의 시선이 방태호를 향하고 있다.
“이 그림을 휘트니 비엔날레와 겹치는 시기에 공개하진 않았겠지.”
방태호가 입을 악다문 채 주먹을 쥐었다.
“말이 심하잖아요.”
“심한 건 저 인간이야.”
앙리 마르소가 방태호를 노려보며 말했다.
“고작 미술관 하나의 이익을 위해 저만한 작품을 독점하려는 걸 보니 아주 충직한 큐레이터 같은데.”
마르소가 천천히 방태호에게 다가갔다.
“네가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가져다 붙이고, 전시실을 어떻게 꾸미든 이 상황이 합리화되진 않아.”
“…….”
“작품마다 어울리는 자리가 있기 마련이다. 서리 밀밭이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야.”
방태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목울대에 핏줄이 돋아날 정도로 분해하면서도 자신을 억눌렀다.
“꼬맹이.”
앙리 마르소가 뒤돌았다.
“너도 여기 있을 놈이 아니야.”
사람 성질 긁는 태도지만 이번에는 그가 옳다.
그림은 어디서든 그릴 수 있지만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선 큰 곳으로 나가야 한다.
이미 내 마음속에 욕심이 생겼다.
누군가 그림을 사 주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순 없게 되었다.
더 많은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
“방태호 아저씨는 멋진 큐레이터예요. 누구에게 맡겨도 이 전시회만큼 멋지게 꾸미진 못했을 거예요.”
앙리 마르소와 눈을 마주했다.
“너.”
“다음에는.”
그의 말을 끊어내고 의지를 확고히 한다.
“이번보다 더 멋진 전시회를 열어줄 거예요. 마르소 당신의 전시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찾을 수 있도록.”
방태호에게 물었다.
“그렇죠, 아저씨?”
* * *
방태호는 이번보다 멋진 전시회를 꾸며줄 거냐는 고훈의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앙리 마르소의 전시회보다 훌륭한 전시회를 바라는 마음에 쉽게 응할 수 없었다.
‘달콤한 행복’은 WH배움 미술관 소속으로서 그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한 전시회였다.
국내 홍보는 물론 해외에도 홍보하기 위해 미술관 운영진을 반복해 설득해야만 했다.
최선을 다했고.
전시회는 성공적이었다.
실제로 최근 10년간 대한민국에 있었던 모든 개인전 중 가장 큰 성과를 올리는 중이었다.
그러나 고훈이 바라는 바를 이뤄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해외 전시회 자체가 불가능하진 않았다.
WH배움 미술관이 보유한 예술품을 런던, 파리, 뉴욕 등에서 선보인 경험도 있었다.
그것이 고훈의 기대와 바람처럼 성공적이지 못했을 뿐이었다.
고훈의 작품이라면 해외에서도 통하지 않을까도 생각했지만, 제한이 따랐다.
그가 배움 미술관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
결정권이 없기에 미술관의 허락이 없으면 어떤 일도 할 수 없었고, 공격적으로 나설 수 없었다.
‘훈아.’
말해야 했다.
자신은 그런 능력이 없다고.
좋은 매니지먼트를 만나서 역량을 펼치라고 말해야 했다.
그것이 고훈을 위한 길이었다.
분명 그러할진대.
방태호는 그러한 상황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분했다.
앙리 마르소의 도발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거친 말투와 안하무인격인 태도가 원인이 아니라, 방태호 역시 전시회가 이어지는 동안 그와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수익 배분율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제시했던 1년간의 임대 계약이 고훈의 발목을 잡는 건 아닌지 후회했다.
전 세계 유명 인사들이 속속들이 방문하고.
그것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다시 그 홍보 효과로 방문객이 늘고 있었다.
그런 선순환은 단순히 금액으로 산출할 수 없는 이득을 WH배움 미술관에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고훈의 작품이 한 곳에 묶여 있다고 생각하면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가슴이 아팠다.
고훈의 작품을 모아서 해외 전시전을 열 수도 있겠지만, 해외 전시에 소극적인 배움 미술관에게 기대할 수 있는 지원에는 한계가 있었다.
미술관 자체가 순전히 WH그룹의 자금으로 운용되다 보니 운영진은 큰 수익을 위해 모험하기보다는 손실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환경에서는 해외 시장 개척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맞는 말이야.’
방태호는 앙리 마르소의 의견이 옳다고 판단했다.
만약 <서리 밀밭>이 휘트니 비엔날레에 걸린다면 어떨까.
혹은 뉴욕과 파리처럼 미술을 향유하는 사람이 많은 도시에서 공개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루 만 명이 아니라.
그 이상도 충분히 바랄 수 있었다.
그러한 상황을 상상하면 큐레이터로서의 마음이 뛰었다.
심혈을 기울여 조성한 전시실이 예술의 한 부분으로 대중에게 다가가.
일생일대의 작품을 보다 많은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그리하여 자신이 느낀 감동을 진하게 전할 수 있다면 그보다 값진 일도 없었다.
“그래.”
방태호가 주먹에 힘을 주며 답했다.
“아저씨만 믿어.”
믿음직스러운 대답에 고훈이 미소 지었다.
그 모습을 보던 앙리 마르소가 콧방귀를 뀌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제법 실력을 인정받는 듯했지만 세계 무대에서 방태호는 무명이나 다름없었다.
‘달콤한 행복’을 보면 구성과 기획력은 나쁘지 않았으나.
철저하게 이름값으로 움직이는 미술계에서 방태호가 고훈에게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앙리 마르소가 고훈에게 경고했다.
“솔직해져.”
고훈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림 걸어둘 자리는 무슨 짓을 해서든 차지해. 그림이 제 위치를 찾아야 너도 네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는 거야.”
앙리 마르소는 고훈이 자신과 같은 무대에 올라서길 바랐다.
본인이 인정한 천재 화가가 빌어먹을 평론가와 좁은 시장에 치이길 바라지 않았다.
미술을 마음으로 즐기는 이들 사이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길 바랐다.
그렇게 된 후에야 역사는 앙리 마르소와 고훈을 정당히 평가할 터였다.
그날이 오기까지.
지지 않기 위해 철저히 붓을 놀릴 터였다.
“그래요.”
고훈이 손을 내밀었다.
표현이 무례하고 거칠지만 그의 본심을 알기에 내민 화해의 의미였다.
“…….”
앙리 마르소가 고훈의 손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내키지 않았다.
미셸 플라티니를 제외하고 지금껏 자신의 행동에 기분 나쁜 티를 내는 사람은 없었다.
속으로는 욕하면서 비굴하게 웃었다.
따박따박 대꾸하고, 그러면서도 자신을 이해하는 듯한 고훈은 그에게 무척 낯선 존재였다.
그는 아직 고훈을 어떻게 대해야 좋은지 알 수 없었다.
착-
앙리 마르소가 고훈의 손바닥을 가볍게 쳤다.
“기다리지.”
앙리 마르소가 전시실을 벗어났다.
‘칫.’
그의 자존심을 구긴 화가가 모순되게도 그가 가장 사랑하는 그림을 그렸다.
앙리 마르소는 자신조차 정리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을 추스르며 콧잔등을 주물렀다.
“미움받을 거예요.”
피에르 말로가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앙리 마르소가 그에게 눈길을 주곤 숨을 내쉬었다.
“상관없습니다.”
앙리 마르소는 고훈이 자신을 좋게 여기길 바라지 않았다.
천재 소년과의 관계는 중요치 않았다.
고훈이 작품활동을 계속해 나간다면, 그의 그림을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피에르 말로가 수염을 말며 미소 지었다.
“작은 반 고흐가 말하더군요.”
앙리가 고개를 돌렸다.
“자기는 아직 더 성장할 수 있다고요.”
“……그래야죠.”
겨우 만 9살.
앙리 마르소는 지금도 <서리 밀밭> 같은 작품을 그려내는 고훈이 미래에는 어떤 그림을 그릴지 상상하면 초조해졌다.
넘어설 수 있을까.
아니, 따라갈 수는 있을까.
최고의 화가 앙리 마르소의 자존심을 긁는 그런 생각이, 그가 고훈을 살갑게 대하지 못하는 원인이었다.
그때 피에르 말로가 입을 열었다.
“작은 반 고흐는 의지에 차 있어요. 또 다소 조급해하고 있죠.”
조급해한다는 말이 무척 의아했다.
앙리 마르소가 미간을 좁히자 피에르 말로가 부드럽게 웃었다.
“조부 고수열 경과 장미래 작가 그리고 앙리 마르소와 같은 대가에 한참 못 미친다며 말이죠.”
앙리 마르소의 눈썹이 뒤틀렸다.
도도한 천재를 바라보는 피에르 말로는 즐거워하며 말했다.
“두 천재가 서로 경쟁하게 되었으니 앞으로 액자 만들 일이 늘어날 것 같네요. 정말 기대됩니다.”
농담도 거짓도 하지 않는 피에르 말로의 발언에.
앙리 마르소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