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56화 (309/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56화

15. 쇼콜라티즘(3)

[고훈 초대전에 하루 4천 명 방문]

[천재 소년 고훈에 평단의 극찬 잇따라]

[캐롤라인 스트릭, “고훈은 나를 아홉 살로 돌려놓았다.”]

[장미래, “고훈의 가장 큰 재능은 다른 것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포용력.”]

[앙리 마르소, “훌륭하다.”]

[리처드 필립스, “고훈을 어린 천재로 부르는 것은 실례다. 그는 이미 완성된 화가.”]

[고훈, 일본 평론가의 힐난에 “이거 먹고 떨어져.”]

2월 26일 토요일.

신인 작가 고훈의 첫 초대전 ‘달콤한 행복’이 서울시 용산구 WH배움 미술관 특별 전시관에서 개최되었다.

방태호 수석 큐레이터가 기획한 이번 전시회는 작가와 관람객의 만남을 아이가 편의점에서 과자를 고르는 상황에 빗대어 표현되었다.

천재 화가 고훈은 “매대에 전시된 과자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려요. 어떤 맛일까, 무슨 냄새가 날까 하고요. 제 경험을 함께하고 싶었어요.”라고 밝혔다.

이날 고훈 초대전에는 미술계 인사가 이례적으로 많이 방문하였다.

프랑스 유명 화가 앙리 마르소는 훌륭하다는 짧은 소감을 남겼고, 액자 장인 피에르 말로는 마감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며 감탄했다.

작은 소란도 있었다.

일본의 미술평론가 다나카 히로부미는 고훈의 작품이 유치하다며 ‘화가가 아니라 쇼콜라티에’라고 비난했다.

다만 그의 프랑스어 발음과 억양이 좋지 않아 정작 고훈과 앙리 마르소 등 프랑스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고훈은 다나카 히로부미에게 초콜릿을 쥐여 주며 그를 달래는 어른스러운 대처를 보여주었다.

한편 ‘달콤한 행복’은 3월 4일 오후 7시까지 진행된다.

-이인호(대한일보)

WH배움 미술관이 뉴튜브로 생중계했던 ‘달콤한 행복–작가와의 만남’은 최고 동시 시청자 수 11만 명을 기록.

WH배움 미술관의 총구독자 수(9만 명)보다도 많은 사람이 시청했다.

화제의 중심은 역시 고훈이었고 당시 방송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미쳤나 봨ㅋㅋㅋㅋㅋ

└진짜 실화냐? 고수열이랑 장미래는 그렇다 치고, 앙리 마르소랑 리처드 필립스, 캐롤라인 뭔데?

└가슴이 웅장해진다.

└진짜 미친 게 미술계에서 방귀 좀 뀐다는 사람은 대부분 왔음.

└죄송한데 여기 연령대가 어떻게 되죠? 실화 드립이랑 웅장 드립은 아재라고 쳐도, 방귀 좀 뀐다는 표현은 처음 보네요…….

└그냥 고수열 손자라서 그런 거 아님?

└고수열이 존경받긴 해도 그건 아니지. 저 사람들이 시간이 남아돌겠음?

└난 이 기사 왤케 웃기짘ㅋㅋ [고훈, 일본 평론가의 힐난에 “이거 먹고 떨어져.”]

└먹고 떨어지랰ㅋㅋㅋ

└근데 이건 진짜 고훈이 어른스럽게 대처한 거.

└맞아. 거기서 화난다고 뚱해 있거나 반론하면 진흙탕 싸움 났음.

└어른스럽게 대처한 거 맞아? ㅋㅋㅋㅋ 난 엿 먹으라고 한 것 같은뎈ㅋㅋ

└기사도 났지만 진짜 그 일본인 프랑스어가 안 좋아서 프랑스인들은 못 알아들었댘ㅋㅋㅋ

└뜬금없이 화내면서 ‘쇼코라’라고만 하니까 오해할 만하지. 깁 미 쪼꼬렛처럼 들렸을 거임ㅋㅋㅋㅋ

└주머니에서 꼼지락거리면서 꺼낸 초콜릿 주는 거 나만 귀엽나?

└난 발음 가지고 놀리는 것 같아서 좀 불편하더라.

└심지어 손에 꼭 쥐여 줬음ㅋㅋㅋ

└나 이거 실시간으로 봤는데 앙리가 스케치북 주면서 써보라고 하는 게 킬포임ㅋㅋㅋㅋㅋ

└와, 님 프랑스어 할 줄 알아요?

└난 고수열 교수님 화내는 게 신기하던뎈ㅋㅋ 평소에 엄청 인자하신 분인뎈ㅋㅋ

└먹다 만 메기 같은 놈ㅋㅋㅋ

└캐롤라인 스트릭이란 사람이 비평 남겼는데, 평가 좋다.

└뭐라고 하는데?

└이토 히로부미가 고훈한테 쇼콜라티에라고 비아냥거렸는데 그거 반박하는 글임.

└어디서 봐?

└이토 히로부미가 아니라 다나카 히로부미임. 이토 히로부미는 안중근 장군이 죽였어.

└요기. [링크]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달콤한 행복’의 첫날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저명한 미술사학자 캐롤라인 스트릭은 세계적인 미술 잡지 ‘아티스트 뉴스’에 달콤한 행복 전시회를 주제로 한 사설을 실었다.

[어린 쇼콜라티에의 용기]

지난주 주말.

최근 <해바라기>와 <손님>으로 화제를 모으는 어린 작가를 찾았다.

한국화를 정립한 고수열 경의 손자이자 맥스 스튜디오 아트 디렉터 고해성, 이수진의 외동아들 고훈이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앞서 발표한 두 작품이 호평을 받았으나 개별 작품과 전시회가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화가로서 정체성을 보여줘야 하는 전시회를 감당하기에 2018년생 소년은 너무 어렸다.

첫인상도 좋지 않았다.

어린 빈센트 반 고흐를 기대했던 내게 동화처럼 꾸며진 전시실은 낯선 것을 넘어 다소 장난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행복>을 만난 순간 거부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물감을 듬뿍 바르는 것으로, 녹아내린 초콜릿의 질감을 표현한 고훈은 영악한 기술자였다.

큰 붓으로 한 번에 칠한 초콜릿은 당장에라도 흘러내릴 것 같았다.

입안에 군침이 돌았고 나는 오래전에 끊은 밀크 초콜릿을 떠올리며 소녀로 돌아갔다.

평론가 다나카 히로부미는 이를 어린아이의 유치한 학예회로 치부했다.

과연 그럴까.

‘달콤한 행복’을 찾은 관람객은 대부분 성인이었다. WH배움 미술관이 제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3일 차가 된 현재도 방문객은 30대에서 40대가 47.1%로 가장 높다.

혼인율과 출산율이 저조한 대한민국의 환경을 고려하면 가족 단위 방문이라고 할 순 없다.

오랜 고민 끝에 필자는 고훈이 건드린 것이 추억이라고 판단했다.

아이들에게 간식은 일상이며 그림으로 즐기는 것이 아니다.

고훈의 <행복>은 어느 순간부터 다이어트, 성인병 등 여러 이유로 간식을 거세당한 어른을 위한 그림이다.

전시회를 찾은 사람들은 고훈의 작품을 접함으로써 그들이 기억하는 달콤한 향과 맛을 떠올리고, 동시에 그것들을 즐겼던 시기를 회상한다.

비록 그것이 어린아이의 발상이었다고 하더라도 지친 현대인에게 위안이 되었으리라.

기술 발달과 전염병, 가족 단위 해체를 통한 고립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만연한 사회현상이다.

2028년 현재 개인은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철저히 고립되어 있다.

지난 10년간 복고 사업이 큰 호응을 얻은 것 역시 가장 행복했던 시절 즉 가족 구성체가 유지되었던 시기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발현된 것이다.

고훈은 그것을 용기 있게 건드렸다.

예술 작품이 고도의 관념적 사고를 요구하고, 이해를 바라지 않게 된 현재 회화는 추상의 과잉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관념을 전달하기 위한 구상을 유지하는 작가는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평단은 그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그들조차 이해할 수 없는 동시대 미술을 이해하는 척하며, 작가는 그들조차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모르는 자각 없는 작품을 쏟아내는 실태에서 고훈의 이번 전시회는 용기 있는 도약으로 볼 수 있다.

미술의 원초적인 즐거움과 행복을 전하는 고훈이야말로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화가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다나카 히로부미의 모욕적인 발언에 일부 공감한다.

고훈은 행복을 가공하는 쇼콜라티에다.

기회가 있다면 대한민국 서울시 WH배움 미술관에서 3월 4일까지 이어지는 ‘달콤한 행복’을 찾길 바란다.

<서리 밀밭>과 <행복>을 추천한다.

-캐롤라인 스트릭(아티스트 뉴스)

캐롤라인 스트릭의 사설은 순식간에 북미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미술사 박사이자 미국 하버드대학 미술사 교수, 200만 부의 판매고를 기록한 <모나리자에 주석을 달다>의 저자 캐롤라인 스트릭의 영향력은 막강했다.1)

아시아와 유럽과 달리 지금껏 고훈에게 관심이 없었던 북미 미술 애호가들은 고훈의 그림을 찾기 시작했고.

그들의 요구를 포착한 언론은 WH배움 미술관을 취재, 보도하고 나섰다.

성공을 예견한 WH배움 미술관으로서도 생각지 못한 성과였다.

“팀장님, 아무래도 연장해야 하지 않을까요?”

한 직원이 방태호 수석 큐레이터를 재촉했다.

전시 4일 차.

하루 방문자 수가 1만 명에 도달하여,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미술관 WH배움조차 감당하기 벅찼다.

전시회 일정을 늘려달라는 요구 또한 빗발치는 탓에 일정 조절이 불가피했다.

문제는 그 뒤에 예정된 전시회였다.

고민을 이어가던 방태호가 입을 열었다.

“만약 다음 전시회 장소 옮긴다고 치면, 김형우 작가님 마음 상하지 않게 할 수 있겠어?”

“…….”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현재 ‘달콤한 행복’이 진행 중인 특별 전시관과 같은 사양의 전시관을 내준다고 하더라도 감정 문제를 어찌할 순 없었다.

예정된 일정을 다른 작가의 인기 때문에 변경해야 하는 입장이 얼마나 비참하고 분할지 쉽게 생각할 수 있었다.

고민이 깊어지던 중.

“허.”

방태호가 기가 차 헛웃음을 쳤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잘 될 줄은 몰랐지.”

직원들이 따라 웃었다.

몸이 힘들긴 하지만 이런 호응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성 대리는 이런 적 처음이지?”

“네. 7년 동안 이렇게 바쁜 적 없었습니다.”

“성 대리 근속이 벌써 7년이야?”

방태호는 부하 직원의 근속이 7년이 되었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 얼마나 오랜 세월 미술계가 침체되어 있었는지 깨달았다.

사실 그조차 온 나라를 시끌벅적하게 만든 전시회는 오랜만이었다.

심지어 외신에서도 난리였다.

미국의 유명 잡지 아티스트 뉴스와 공영 방송국 PBS를 비롯하여 지난 나흘간 인터뷰한 언론만 마흔 곳에 달했다.

“인물은 인물인가 봐요. 훈이.”

성귤 대리의 말에 방태호가 기지개를 켰다.

“그럼. 인물이지. 경매 내놓으면 작품당 수억은 벌 텐데 정가 달아둔 거 봐. 그림 한 점을 비싸게 파는 것보다 덜 받아도 여러 사람이 사 주는 게 좋대.”

“그릇이 달라요. 전 훈이가 앙리 마르소랑 히로부미 대하는 거 보고 깜짝 놀랐어요.”

“흐흐흐. 나도 놀랐다.”

“정말 커서 뭐가 될지 궁금해요.”

“다 씹어먹고 있겠지. 지금 앙리 마르소 인기는 비교도 안 될걸?”

“핳하하. 다른 사람이면 모르겠는데 훈이라면 정말 그럴 것 같습니다.”

“정말이라니까?”

가볍게 웃은 뒤 방태호가 두 손으로 책상을 짚었다.

“일정 문제는 김형우 작가님 만나보고 결정하자. 이야기 전혀 안 통하는 분은 아니시니까 대화는 해봐야지. 성 대리는 내일 현장 감독하고. 정민 씨는 내일 다른 팀 일정 좀 문의해서 정리해 줘. 조절할 수 있는지 보게.”

“네. 알겠습니다.”

* * *

1)캐롤 스트릭랜드(Carol Strickland):

1968년생. 예술 역사가, 미술사학자. 전 뉴욕 주립대 교수.

저서로는 『The Annotated Mona Lisa』, 『The Annotated Arch』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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