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55화 (308/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55화

15. 쇼콜라티즘(2)

낯선 어감이다.

방태호를 보니 일본에서 온 미술평론가라고 귓속말로 알려주었다.

다나카 히로부미라는 단어가 그의 이름 같다.

“바로 참석하느라 여러 작품을 보진 못했지만 행복이란 작품은 인상 깊었습니다.”

일본인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물감을 듬뿍 칠함으로써 초콜릿의 질감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더군요. 녹아내리는 초콜릿에서 운율마저 느껴졌습니다.”

저 사람만 그런 건지 일본어는 억양이 참으로 특이하다.

누가 통역을 해주면 좋겠는데, 일단은 그와 시선을 마주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역시 어린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뭐랄까. 이 훌륭한 미술관이 너무나 거창하게 느껴지네요.”

19세기 유럽에는 일본의 다색 판화 우키요에가 유행이었다.

폴 고갱을 포함한 여러 화가가 그 독특한 문화에 매혹되어 여러 시도를 거듭했고.

나 역시 생전 처음 보는 강렬한 원색에 이끌렸다.

“하지만 제 기대가 너무 큰 탓이겠죠. 아홉 살이라고 했던가요. 분명 멋진 재능입니다. 이십 년 뒤 즈음 정신적으로 성숙해졌을 때가 기대됩니다.”

한국화를 처음 봤을 때도 그렇고.

문화란 서로 다른 것이 만났을 때 빛나는 것 같다.

만약 내가 우키요에를 보지 않았다면 원색에 가까운 색을 사용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한국화를 접하지 못했다면 <새집>이나 <해바라기> 그리고 오늘을 위해 준비한 여러 작품을 그리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분위기가 왜 이러지?’

다나카 히로부미가 말을 이어갈 때마다 다들 얼굴이 굳어간다.

특히 할아버지와 장미래, 방태호는 표정을 굳힌 채 그를 경멸스럽게 노려본다.

일본어를 알아듣는 모양.

피에르 말로, 미셸 플라티니, 양아치처럼 외국어에는 조금도 관심 없는 프랑스인들만 아무렇지 않다.

“한국에 천재가 나왔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오늘 확인해 보니 천재 화가가 아니라 천재 쇼코루라티에였습니다.”

그가 말을 끝냈다.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했던 터라 곧장 입을 열었다.

“통역 좀 부탁할게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잔뜩 성이 난 방태호가 다나카 히로부미를 노려본 채 대답했다.

“신경 쓸 거 없어. 저런.”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못 알아들었어?”

“일본어 몰라요.”

어깨를 으쓱이자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프랑스어였잖아.”

“……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비판을 받았으면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모른 척하니 참 실망이 큽니다. 저런 태도를 보이는 작가의 그림이 정말 수백만 유로의 가치가 있습니까?”

다나카 히로부미가 또 뭐라 말했다.

역시 프랑스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저 먹다 만 메기 같은 놈이 뭐라고 씨부!”

할아버지가 벌떡 일어나려다가 장미래와 대학생들에 의해 저지당했다.

혹시나 싶어서 프랑스어로 물었다.

“죄송한데, 혹시 프랑스말 하고 계신 거예요?”

다나카 히로부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인가 보다.

“차근차근 다시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무슨 말씀이든지 경청할게요.”

이번에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정중히 부탁했는데 왜 저리 화를 내는지 모를 일이다.

“몹시 무례하네요. 한국에서는 정당한 비평을 모욕으로 돌려줍니까?”

다나카 히로부미와 함께 있던 젊은 남자가 미숙한 프랑스어로 그의 말을 전했다.

“애초에 이런 어린애 같은 전시회가 말이 됩니까? 가당치도 않군요. 직업을 쇼코루라티에로 바꾸는 게 어떻습니까?”

다나카 히로부미의 말보단 이해하기 쉽지만 도대체 저 쇼코루라티에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뭐라는 거야, 시발.”

그때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파던 앙리 마르소가 불평했다.

“우리 말 쓸 거면 제대로 해. 쇼코루라티에가 대체 뭔 말이야?”

“쇼코루라티에 말입니다! 쇼코루라티에!”

“뭐?”

“쇼코라또!”

젊은 남자가 반복해 소리치니 앙리 마르소가 말똥이라도 밟은 듯 얼굴을 구겼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 젊은 남자와 다나카 히로부미에게 다가갔다.

기자들은 신나서 카메라를 터뜨린다.

“야.”

“뭐, 뭡니까.”

“써 봐.”

“크흡끄흐으윽.”

앙리가 크로키북을 건네자 객석에 앉은 몇몇 사람이 흐느끼듯 웃음을 참았다.

기자들은 입술까지 깨물며 견디고.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할 지경이다.

두 일본 사람이 아주 큰 모욕이라도 당한 것처럼 부들부들 떨고 있을 때, 수염을 잡아당기던 피에르 말로가 아 하고 감탄했다.

“혹시 쇼콜라티에라고 한 건가요?”

설마.

그 말을 들은 앙리 마르소가 다나카 히로부미와 젊은 남자 앞에서 또박또박 말했다.

“따라 해 봐. 쇼콜라.”

“아까부터 하지 않았습니까! 쇼코라! 쇼코라!”

유심히 들어보니 초콜릿(chocolat: 쇼콜라)이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혹시 사람이 너무 많이 온 탓에 준비한 초콜릿을 못 받은 건 아닌가 싶다.

방태호도 이렇게 성공할 줄은 몰랐다고 했으니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화를 내며 초콜릿을 외칠 이유가 없다.

“훈아?”

자리에서 일어나 파르르 떠는 다나카 히로부미에게 다가갔다.

“여기요.”

이따 먹으려고 챙겨둔 초콜릿을 꺼냈다.

“이렇게 많이 오실 줄 몰랐어요. 초콜릿을 드리지 않은 건 준비가 부족해서지 당신을 무시해서가 아니에요. 화 풀어요.”

체면 탓인지 그가 초콜릿을 받지 않기에 손을 잡아 억지로 쥐여 주었다.

진심을 담아 손등을 툭툭 감싸 안아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이 전시회를 비판하더라도 내겐 너무나 감사한 사람이다.

이곳을 찾아준 모든 사람이 한 명, 한 명 너무나 소중하다.

내 그림을 보러 와주었으니까.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뭘 준 거야?”

“초콜릿 아니야?”

“초콜릿? 갑자기 초콜릿은 왜?”

“글쎄. 못 받아서 화났나?”

한국어와 영어가 뒤섞였지만 다들 상황을 이해한 듯하다.

“아핳학핳핳핳.”

누군가의 웃음을 시작으로 장내가 웃음바다가 되었다.

영문을 몰라서 두리번거리니 앙리 마르소가 왼쪽 입꼬리를 내린 채 물었다.

“너, 이러는 거 수법이냐?”

“또 뭐요.”

“공개적으로 엿 먹이는 거.”

사람이 진심으로 대하는데 그것을 마치 누군가를 모욕하는 것처럼 여긴다.

“그런 짓 한 적 없어요. 마르소야말로 내 전시회 망치지 말아요. 안녕하세요, 플라티니. 와 줘서 고마워요.”

“흐그흫응. 안흐으녕.”

앙리 마르소, 미셸 플라티니와 인사를 나누던 중 다나카 히로부미와 그 일행이 황급히 자리를 떴다.

다음부터는 좀 더 준비를 철저히 해야겠다.

* * *

한바탕 웃은 덕분에 다나카 히로부미의 폭언으로 경직되었던 분위기가 풀어졌다.

관람객과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고 ‘작가와의 만남’은 큰 탈 없이 마무리되었다.

“마지막 순서로 4전시실을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경매에 올리는 작품들이 전시된 4전시실.

관람객들의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미술관 직원이 커튼을 걷어냈다.

그들의 눈앞에 <서리 밀밭>이 드리웠다.

몇몇이 숨을 들이마셨다.

또 몇몇은 입을 막고 눈을 크게 떴으며 나머지는 자신도 모르게 발을 옮겼다.

“신이시여.”

미술사학자 캐롤라인 스트릭은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했다.

앞선 작품만으로도 고훈을 높이 평가한 그녀는 <서리 밀밭>을 목도한 순간 이성이 마비되고 말았다.

압도적인 심상이었다.

쇄도하는 바람이 어찌나 냉혹한지 그것을 표현한 물감마저 얼어붙은 듯했다.

대지는 치열했던 투쟁의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싸운 수많은 젊은이의 희생 아래 남은 건 얼어붙은 대지뿐이었다.

본디 생명이 자라나야 할 은혜의 땅이 피와 서리로 얼룩져 있었다.

검고 푸른 밤하늘과 바람이 절망처럼 내린 한겨울의 밀밭.

‘따뜻해.’

은은하게 빛나는 서리 내린 밀밭이 이리도 숭고할 수 없었다.

잔뜩 헤집어지고, 얼어붙은 이삭과 눈으로 엉망이 되어서도 그 자리에서 그대로.

앞으로 자라날 밀을 위해 그저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그림이 대체 얼마 만에.’

현대인은 회화의 쇠락기를 살아가고 있었다.

전쟁의 허무함으로 시작된 전통의 파괴는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예술인은 수만, 수십만의 화가들이 이어온 회화의 역사를 부정하는 데 주력했다.

그렇게 회화는 서술성을 잃었다.

전달력을 잃었다.

그 사이에 걸출한 인물이 몇 나오긴 했으나 회화는 점차 그림 자체의 가치가 아니라, 이목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있었다.

그것에 부가 따르기 때문이었다.

하나.

<서리 밀밭>은 달랐다.

마치 단절되었던 회화의 역사를 강제로 이어붙이듯 한 폭의 그림 속에서 밀레와 반 고흐 그리고 고훈이 있었다.

<만종>의 거룩함.

<밀밭>의 인상.

그리고 고훈이 <해바라기>에서 보여준 확고한 운율.

‘마치 미술관 같았어요. 모르는 작가의 그림을 만났을 때, 그에게 다가갈 약간의 용기만 있다면 행복해지는 경험이요.’

미술사학자 캐롤라인 스트릭은 고훈의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몇 달 전 유럽의 여러 미술관을 돌아다녔단 기사를 접한 적 있었다.

‘이 아이야.’

그녀는 확신했다.

단절되었던 회화의 역사를 이어붙일 화가가 마침내 나타났다고.

마네와 모네가 그러했듯.

반 고흐, 고갱, 세잔, 르누아르가 그러하고.

로트렉, 클림트, 마티스, 피카소, 뒤샹, 달리가 그러했듯 또 한 번 장대한 흐름을 이끌 사람이 나타났다고 확신했다.

한편.

젊은 거장 앙리 마르소도 그녀와 다르지 않았다.

그는 마치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처음 봤을 때와 같은 기분을 느꼈다.

등줄기를 타고 올라온 떨림이 전신으로 퍼져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벅차오른 가슴이 요동치고.

동공이 확장되며 손이 떨렸다.

카타르시스.

‘서리 밀밭…….’

앙리 마르소는 미술계를 한심하기 짝이 없는 곳으로 여겼다.

가짜들이 득실대고 푼돈이나 가진 이들이 돈놀이하는 곳이었다.

에드워드 호퍼, 윈 호머, 고수열, 장미래 등 아주 극소수의 화가만이 화가로서의 긍지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앙리 마르소는 그들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 수 없었다.

목이 타버릴 듯한 갈증에 마실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들이켰으나 그를 충족시키는 작품은 없었다.

그렇게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 탐구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자화상을 그리며 자신을 알아가고자 했으나 갈증을 해소할 단 한 방울의 성수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해바라기>를 접했다.

어쩌면 이 그림을 그린 화가야말로 자신의 영적 갈망을 충족시켜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한데 이토록 빨리 찾을 줄이야.

<서리 밀밭>을 보던 앙리 마르소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인정한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속이지 않았다.

꼬마에게 감동했다.

고결한 화가 앙리 마르소가 평생을 찾아 헤매던 것을 만 아홉 살 먹은 꼬마가 첫 전시회에서 당당히 뽐냈다.

재능의 차이였다.

까득-

그러나 예술을 향한 그의 열망이 쉽게 꺼질 리 없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드디어 목표를 찾은 화가 앙리 마르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의지로 충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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