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44화 (297/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44화

12. 서리 밀밭(1)

미술 역사에 크나큰 거인 빈센트 반 고흐.

그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선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일부 사람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반 고흐가 성경에서 죄악으로 여기는 자살을 선택할 리 없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반 고흐가 자살했단 사실 자체를 비판했다.

알려진 것처럼 열정적이지 않았으며 단순히 사후에 만들어진 거장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여러 의문을 제시하며 그가 타살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제부 요한나 반 고흐가 자살을 부추긴 것이다.

동네 아이들이 쏜 총에 죽었다.

외과 수술을 꺼렸던 가셰 박사가 일부러 치료하지 않아서 죽은 것이다.

심지어는 폴 고갱이 죽였다는 주장까지 나돌았다.

그의 죽음에 관련한 가설로, 빈센트 반 고흐가 자살한 게 아니길 바라는 이들의 욕구를 채워줌으로써 명성과 부를 챙기기 위함이었다.

논란과 설전이 오갈 때마다.

빈센트 반 고흐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가 왜 죽었는지 밝히려고 했다.

하지만 진상을 알아내기엔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의 병세가 정확히 어느 정도까지 진행되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하물며 당시 그가 남긴 편지에서조차 죽고 싶다는 말과 살고 싶다는 말이 혼용되고 있었다.

이처럼 진실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반 고흐 연구소는 그를 이해하고 싶은 일념으로 그가 남긴 그림과 편지, 증언을 수집하고 분석했다.

그러던 차.

한 아이의 말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왜 하필 총을 쏘기 어려운 왼쪽 옆구리에 총상이 났는지.

자살하기 위해 권총을 가지고 나갔다면 왜 그림을 그렸는지.

그것을 완성하지 않은 채 죽은 이유는 또 무엇인지.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가 비극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반 고흐 연구소는 고훈의 가설을 따라 도비늬가 37번지 일대를 철저히 조사했고.

조금씩 고훈의 주장과 부합되는 증거를 찾을 수 있었다.

기나긴 논쟁에 끝이 보였다.

* * *

[천재 소년, 반 고흐의 죽음을 밝혀내다]

[반 고흐 재단 이사장 마틴 얀센, “더는 반 고흐의 죽음을 모욕하지 않길 바란다.”]

[반 고흐가 입원한 생레미 생폴 요양원은 의료시설이 아니었다]

[타살 주장은 억측!]

[위대한 거장이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고훈, “천재도 불굴의 철인도, 비극의 주인공도 아니었어요. 힘든 환경을 이겨내고자 발버둥 치던 평범한 사람이었어요.”]

[인간 빈센트 반 고흐를 본 소년]

지난 일요일. 반 고흐 연구가 수십 명 앞에서 열 살 소년이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을 설파했다.

<해바라기>와 <손님>의 작가 고훈이다.

첫 발표작부터 고훈은 빈센트 반 고흐의 향수를 물씬 풍겼다. 두 번째 공개작 <손님>은 그의 시선을 따 온 작품으로, 이 소년의 반 고흐 사랑은 익히 알려져 있었다.

그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도착한 당일, 반 고흐가 마지막 그림에 담은 장소를 발견했다.

사흘 뒤에는 끝내 여러 연구가 앞에서 그가 죽음까지 이르게 된 경위를 설명해냈다.

여러 의문에 명쾌하게 답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묻자, 고훈은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다’고 답했다.

한편 반 고흐 연구소에서는 고훈의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물을 속속들이 발견해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마틴 얀센 이사장은 ‘그림을 그리다가 자살을 기도했다’라는 고훈의 주장에 그가 생전에 사용하던 이젤에 혈흔이 묻어 있을 가능성이 제기했다.

이를 오늘 오전 11시, 반 고흐의 이젤에서 사람의 혈흔이 발견됨으로써 고훈의 가설은 큰 설득력을 얻었다.

고훈은 ‘빈센트는 그저 열심히 발버둥 치던 사람이었습니다. 더 비극적으로 만들지 말아주세요’라고 말하며 그의 죽음을 소재로 의문을 제시하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처절한 삶을 살았던 인간 빈센트 반 고흐를 되짚어 보는 게 어떨까.

-로날트 뤼터(미술 포럼)

빈센트 반 고흐가 죽은 경위가 밝혀지면서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대단한 화가라고만 인식했던 이들은 그가 사실은 누구보다도 처절하게 살았음을 알게 되었고.

자기 귀를 자르는 것으로도 모자라 자살까지 한 미치광이로 인지했던 이들은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냥 대단한 화가라고만 생각했는데 저런 일이 있는 줄 몰랐네.

└불운한 환경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던 평범한 사람이었단 말이 참 와닿는다.

└나도. 위인이라고만 생각했지 저렇겐 생각 못 했어.

└아니 난 다른 건 모르겠고 저렇게 어린애가 저런 걸 대체 어떻게 알아? 정체가 뭐야?

└펭귄.

└?

└반 고흐 이야기 설명할 때 뒷모습 동영상 올라왔는데 너무 귀여움 ㅠㅠ

└고수열한테 영재교육 받았겠지.

└영재교육으로 저런 게 가능할까?

└어린 천재가 아예 없는 건 아님. 피카소 어릴 때 그림 봤음?

└피카소 진짴ㅋㅋㅋ 자기가 12살 때 라파엘로만큼 그렸다고 말한 거 너무 웃김ㅋㅋㅋㅋㅋ

└사실인 게 더 충격이지. 솔직히 11살 때 그린 그림 보면 더 잘 그림.

└예술 쪽엔 어렸을 때부터 재능 있는 사람이 많은 듯. 4살 때 앨범 10만 장 넘게 판 사람도 있는데 뭐.

* * *

정황을 말해준 것만으로도 반 고흐 연구소 직원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방법으로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혀 나갔다.

대체 130년도 전에 튄 피 흔적을 어떻게 찾았으며, 그 모양만으로 이젤 바로 아래서 튀었다는 건 어찌 알아내는지 신통한 일이다.

그 뒤로 언론에서 인터뷰를 요청해 와 시달렸지만, 며칠이 지나니 한가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겨울이라 아쉽지만.’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밀밭은 내가 기억하던 모습과 달랐다.

이곳에 머물렀을 때는 여름이라 서리 내린 모습은 처음 본다.

하지만 까마귀가 수확을 기다리는 밀밭 위를 날던 당시와 전혀 다른 느낌이다.1)

필시 저 아래 생명을 싹틔울 아이들이 잠들어 있을 터.

저 서리가 녹아내리고 태양의 온기를 받아들일 때면 이내 황금처럼 눈부시게 빛날 것이다.

풀 한 포기 없는 싸늘하고 황량한 풍경 앞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앞으로 저곳에서 태어날 생명을 기대하는 것이다.

추수를 앞두고 빛나던 밀밭에서 절망을 느꼈던 내가, 지금은 저 황량한 들판에서 희망과 용기를 얻는다.

“호.”

입김을 불어 손을 녹였다.

‘서둘러야 해.’

날이 춥고 건조해서 물감이 굳거나 얼기 쉽다. 붓도 뻣뻣해서 시간을 끌었다간 쓰지 못할 거다.

되도록 서둘러야 한다.

할아버지가 챙겨 준 손난로 위에 붓과 물감 튜브를 올려두고 다시 한번 <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배경이 되어주었던 그곳을 바라보았다.

심상은 이미 정해져 있다.

저 서리 덮인 밀밭에 돋아날 생명을 캔버스에 옮길 뿐.

가슴이 그린 것을 그대로 전할 뿐이다.

망설일 이유는 조금도 없다.

30F 캔버스에 유채 물감.

제목은 <서리 밀밭>.

튜브에서 옅은 갈색 물감을 짜내 큰 붓에 그대로 묻혔다.

팔과 몸 전체를 움직여 캔버스를 두른다.

이것은 환희에 찬 희망과 기대.

무한한 가능성을 내재한 대지를 그려나간다.

저 땅은 얼마나 자애로운가.

자신 안으로 들어온 작은 생명이 기나긴 추위에 버틸 수 있도록, 손이 어는 것조차 모른 채 씨앗을 품는다.

대지의 얼어붙은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눈보라 속에서 아이를 안은 부모가 속삭이듯.

괜찮아.

다 지나갈 거야.

자식을 안심시키는 고요한 목소리가 매몰찬 겨울바람을 타고 귓가에 맴돈다.

‘할아버지.’

얼어붙은 이삭 위에 내린 서리가.

이제는 친할아버지보다 더욱 애착이 가는 그분의 하얗게 센 머리카락처럼 보인다.

“……염색하셨잖아.”

쓸데없는 생각이다.

물감이 벌써 굳기 시작한다.

파가니니를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처럼 분주해야 한다.

채도가 높은 색을 활용하려면 그것이 더욱 따뜻하고 빛나게 보이려면 그와 반대되는 심상을 넣어야 한다.

밀 씨앗이 기다리는 건 무엇일까.

봄. 온기. 태양.

파란색과 검은색을 같이 짜고 하늘에 발랐다.

바람이 어떻게 불고 있나.

위에서 아래로. 다시 한 바퀴 돌아서 왼쪽으로 비켜 간다.

이 차디찬 바람을 붓끝에 실어 캔버스에 바른다.

그 아래 나부끼는 대지의 자애로움이 빛나도록.

매몰차게.

다시는 봄이 오지 않을 것처럼 냉혹하게 부는 바람을 담는다.

* * *

“이 녀석이 이렇게 추운데 어딜 간 거야 대체.”

점심때 그림 도구를 챙기고 나간 손자가 돌아오지 않자 고수열은 애가 탔다.

저녁 먹을 시간이 지났는데 무얼 하는지 전화도 받지 않았다.

마틴 얀센과 길을 나누어 고훈을 찾아다니던 고수열은 경찰에 알릴 생각으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전화를 거는 도중에도 주변을 두리번거렸는데 저 멀리 뒤뚱뒤뚱 걸어오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전화를 끊고 소리쳤다.

“훈아!”

반갑고 놀란 마음에 뛰어가니 고훈도 뒤뚱뒤뚱 발을 재촉했다.

“할아버지!”

고수열이 손자를 붙잡고 이리저리 살폈다.

볼과 코끝이 빨간 것이 밖에 오래 있었던 듯했다.

“이 녀석아! 뭘 했길래 전화도 안 받아? 안 추웠어! 배 안 고파? 어디 갔었어!”

고수열이 윽박지르듯 묻자 고훈이 당황해서 눈만 껌뻑이다가 매고 있던 이젤을 내려놓았다.

“그림 그리러 밀밭에 갔어요.”

“밀도 없는데 뭘 그린다고 이 시간까지 그러고 있었어? 감기 걸려!”

고수열은 코를 훌쩍 들이마시는 손자를 얼른 건물 안으로 데려갈 생각뿐이었다.

“어서 들어가자.”

“잠깐만요.”

고훈이 이젤에 묶어 둔 캔버스를 보이며 해맑게 웃었다.

“지금 그림 볼 때야? 들어가서…….”

시야에 얼핏 들어온 그것을.

자세히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혹독한 추위 속 서리 내린 밀밭이 어찌 이리도 따뜻해 보일 수 있을까.

과감한 붓 터치로 표현한 바람이 칼날처럼 쇄도하는데, 그 아래 얼어붙은 대지가 그보다 숭고할 수 없었다.

문득 넋을 잃고 그림을 보던 고수열이 그림이 아래로 움직이자 정신을 차렸다.

캔버스 위로 얼굴을 빼꼼 내민 고훈이 코를 훌쩍이며 물었다.

“어때요?”

* * *

1)까마귀가 나는 밀밭, 빈센트 반 고흐, 캔버스에 유채 물감, 1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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