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42화
11. 반 고흐의 마지막 그림(2)
마틴 얀센은 눈을 의심했다.
지난 40여 년간 그토록 찾아 헤맸던 <나무뿌리>가 오래된 엽서에 인쇄되어 있었다.
방향이 달라서 언뜻 보면 알 수 없지만, 빈센트 반 고흐의 <나무뿌리>를 비스듬히 맞춰보면 나무가 자라 있는 방향이 정확히 일치했다.1)
오베르 쉬르 우아즈 복원‧보존 사업 도중, 이곳의 옛 모습을 조사하기 위해 모았던 엽서에 정답이 있을 줄이야.
마틴 얀센은 차오르는 희열에 몸을 떨었다.
“이걸. 이걸 어떻게?”
그가 고개를 들었다.
어린 소년이 작은 미소를 띤 채 답했다.
“운이 좋았어요.”
아니. 운이 좋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마틴 얀센뿐만 아니라 반 고흐 연구소 직원들도 수십 년간 함께해 온 일을 어찌 이리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기나긴 세월 찾아 헤매던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직접 확인하지 않고선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마틴 얀센이 다급히 외투를 둘렀다.
“수열아.”
“어서 가보자고.”
고수열도 이미 나설 채비를 마치고 있었다.
그도 가슴이 뛰긴 마찬가지였다.
미술사에 독보적인 입지를 쌓은 빈센트 반 고흐가 마지막으로 화폭에 담은 장소를 확인하고 싶었다.
오래된 엽서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 도비늬가 37번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마틴 얀센은 문득 사무실에 들어오기 전, 고훈이 그 근처를 둘러보던 것을 떠올렸다.
‘설마.’
그때 이미 눈치챘던 걸까.
마틴 얀센은 오랜 친구의 손자를 살폈지만 그 속내를 알 수 없었다.
‘정말 운이 좋았을 뿐인가.’
“뭐 하고 있어. 빨리 확인해야지.”
고수열이 마틴을 재촉했다.
“아, 그래. 그래야지.”
세 사람은 추위를 뚫고 라부 여관에서 152m 떨어진 오르막길을 찾았다.
그러나 엽서의 배경이 된 곳을 찾을 수는 없었다. 사진 왼쪽과 길 일부가 건물로 가려져 있었다.
“뒤쪽이 막혀 있나?”
고수열의 말에 마틴 얀센이 대답보다 발을 먼저 움직였다.
건물 뒤에 난 작은 길로 향한 마틴 얀센은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니야.”
그러나 예전 모습을, 엽서의 배경이 된 곳이자 <나무뿌리>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무엇에 홀린 듯 두리번거리며 뛰었다.
뒤따라온 고수열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장소를 찾고도 너무나 달라져 버린 이곳을 두리번거리는 친구가 안타까웠다.
“마틴.”
“이럴 리가 없어! 이럴 리가 없다고!”
“…….”
“나, 난. 난 대체.”
1987년 이후.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과 사업체를 운영하며 모은 돈의 절반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 보존 사업에 투자했던 마틴 얀센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인간 빈센트 반 고흐를 기리고 알아가기 위한 그간의 일이 모두 허망하게 느껴졌다.
정력적으로 활동하던 반 고흐 재단 이사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한 노인이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친구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는 고수열이 다가가 등을 토닥였다.
상심하지 말라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런 가벼운 말로는 그를 위로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찾았다.”
그때 앳된 목소리가 밝게 울렸다.
두 노인이 고개를 돌렸다.
“여기예요.”
고훈의 손짓을 멍하니 바라보던 노인이 발을 옮겼다. 망설이던 걸음이 점차 바쁘게 움직였다.
혹시나.
만에 하나라도 남아 있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발을 재촉했다.
그러나 고훈이 가리킨 곳은 <나무뿌리>와 전혀 달랐다.
“끙.”
두 노인의 어깨가 축 늘어지자, 고훈이 수풀을 걷어냈다.
그 순간.
마틴 얀센 이사장과 고수열 작가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길옆 아주 작은 경사에.
수풀에 가려져 있던 그곳에 <나무뿌리>의 일부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겨우 나뭇가지만 거둬내는 것만으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렇게나 가까운 곳에 있었다니.
전율이 허리 부근에서 치솟아 등과 팔로 뻗어나갔다.
“훈아!”
“흐하하핳핳하하!”
두 청춘이 소년을 번쩍 들어 올렸다.
* * *
[반 고흐의 마지막 작업 장소 발견되다]
[백 년 전 엽서로 찾아낸 반 고흐의 흔적]
[반 고흐 재단 이사장 마틴 얀센, “고훈이 나무뿌리의 배경을 찾았다.”]
[발칵 뒤집어진 미술사학계]
지난 4일. 후기 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마지막 작품 <나무뿌리>의 배경이 한 소년에 의해 발견되었다.
반 고흐 재단 이사장 마틴 얀센은 그가 운영하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 복원사업 연구소로 학계 인사를 초대해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반 고흐 연구소와 미술사학계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빈센트 반 고흐의 사망과 관련된 여러 의문을 풀기 위해 이 일대를 수색해 왔었다.
단서는 1905년에 제작된 낡은 엽서 한 장.
오베르 쉬르 우아즈 도비늬가 37번지를 배경으로 한 이 엽서는 마틴 얀센 이사장이 마을을 보존하기 위한 자료로 수집해 둔 것이었다.
이를 현재 <해바라기>와 <손님>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고수열 화백의 손자, 고훈이 살피다가 <나무뿌리>와 유사한 점을 발견한 것이다.
이날, 반 고흐 연구소는 고훈의 발견이 타당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으며 좀 더 자세한 조사를 진행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한편 일부에서 주장한 빈센트 반 고흐의 마지막 작품이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라는 설은 이 발견으로 힘을 잃을 것으로 추측된다.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에 관한 논란이 어떻게 정리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미술계가 발칵 뒤집혔다.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을 둘러싼 여러 의문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게 된 것이었고, 동시에 가장 위대한 화가로 손꼽히는 반 고흐의 마지막 작품에 대한 논란도 불식되었다.
그동안 빈센트 반 고흐의 마지막 작품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은 크나큰 화두였다.
죽음을 암시하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 시기상 가장 마지막에 그렸을 것으로 추측하는 <밀밭>이 후보였다.2)
마틴 얀센과 반 고흐 연구소 등에선 두 작품 모두 말년에 그린 작품이긴 하나 <나무뿌리>야말로 가장 유력한 작품이라고 주장했지만, 앞선 두 작품과 달리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발견으로 인해 지금까지 통용되던 이야기가 틀리고 마틴 얀센의 주장이 옳았음이 증명된 것이었다.
└아니 그럼 <밀밭>은?
└반 고흐 마지막 작품이면 엄청 비쌀 텐데;;
└<밀밭> 런던 소더비에서 최소 2,800만 달러 예상했던 걸로 기억함.
└맞음. 최소 2,800만 달러에서 3,500만 달러가 적정가라고 했음.
└3,500만 달러면 얼마임?
└400억 넘지.
└미쳤다. 마지막 작품인 줄 알고 산 사람은 개억울하겠네.
└ㄴㄴ 뉴욕 소더비 경매에 나오긴 했는데 아무도 입찰 안 했음.
└엥? 왜?
└마지막 작품이라고 하는데 미심쩍은 게 너무 많아서 그럼.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 마지막이냐, <밀밭>이 마지막이냐 하면서.
└확실하지 않아서 아무도 안 산 거구만.
└ㅇㅇ 진짜 논란 많았지.
└근데 이번에 진짜 마지막 작품이 밝혀진 거네?
└대박이다 진짜. 고훈이 또 일 하나 해냈네.
└나 얘 진짜 좀 신기해 ㅋㅋㅋ 아니 어떻게 10살 먹은 애가 이런 걸 하지?
비단 학계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미술계 포럼,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이어진 대화처럼 빈센트 반 고흐의 마지막 작품은 그 자체로 큰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특히나 여러 박물관, 미술관, 수집가들에게는 중요한 문제였다.
논란이 있긴 했지만, 마지막 그림으로 알려진 <밀밭>은 그 가치가 크게 떨어질 것이 자명했다.
그리고.
<나무뿌리>를 소장하고 있던 반 고흐 미술관은 때아닌 호황을 맞이했다.
관리처장 케빈 맥컬리는 밀려드는 문의 전화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네. 아직 예정에 없습니다. 네. 정해진 일은 없습니다.”
“기존 전시회가 진행되고 있고 진품 공개는 신중히 해야 하기 때문에 확답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관리처는 오전부터 전화가 끊이질 않았다.
각종 언론사와 미술애호가들의 문의를 감당하지 못한 반 고흐 미술관은 홈페이지에 <나무뿌리> 공개 일정을 공지하겠다고 밝혔으나 소용없었다.
일반 업무를 볼 수 없을 만큼 문의가 쇄도했다.
케빈 맥컬리가 한숨을 푹 내쉬곤 고개를 저었다.
“어딜 가도 시끌시끌하네.”
그는 며칠간 함께했던 고훈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암스테르담에서는 반 고흐 미술관 관람객을 상대로 해설사를 자처해 주목받았고.
파리에서는 앙리 마르소와 협업해 둘도 없는 걸작, <마르소의 보석>을 완성했다.
이제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마지막을 기리니 화두에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 * *
작고 한적한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연구소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데 앙리 마르소가 코피를 흘렸을 때보다도 인원이 많다.
“그게 아니지! 권총을 들고 나갔잖아!”
“권총을 휴대했다고 계획적인 자살이라고 단정할 순 없습니다!”
“그럼 뭐 때문에 가져갔겠어?”
“호신용일지도 모르죠. 산길이니 짐승이 나올지도 모르는 거 아니겠습니까?”
“자기 옆구리에 총을 쐈잖아!”
“결과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가 어떤 경위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밝혀야죠! 가능성을 최대한 넓게 열어두잔 뜻이에요!”
연구소를 둘러싼 기자들보다 이쪽이 더 시끄럽다.
반 고흐 연구소 연구진이 설전을 벌이고 있다.
당사자 앞에서 왜 죽었는지, 어디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언제 총을 쐈는지 같은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나눈다.
‘이 일이 빨리 끝나야 조용히 그림도 그릴 텐데.’
그동안 내 마지막 그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전이 오갔던 듯하다.
그림 가격에도 영향이 있을 테니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만, 그리고 싶었던 건 따로 있는데 알릴 방도가 없다.
죽기 직전에 <나무뿌리>를 그리고 있었던 건 사실이고.
다음 날 밀밭을 그리려고 했던 내 계획은 머릿속에만 남아 있으니 말이다.
“어디서 총을 쐈는지 찾기 전엔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야! 정황을 보라고!”
콜라를 쭉 들이켜고 연구원들 앞으로 걸어갔다.
“총 쏜 곳이 어딘지 알면 되는 거죠?”
다들 서로 눈치만 보다가 어리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 것 같아요.”
* * *
1)반 고흐 미술관 제공 합성 사진
2)KBS 뉴스 2007년 10월 31일 보도에 따르면 <밀밭>을 빈센트 반 고흐의 마지막 작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http://mn.kbs.co.kr/news/view.do?ncd=1451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