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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반 고흐-41화 (294/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41화

11. 반 고흐의 마지막 그림(1)

큼직하게 썰어 한입 가득 먹었다.

“합.”

풍만한 육질이 이와 혀를 닿자마자 녹아내린다.

부드럽게 녹아내린 양고기가 옛 기억으로 삭막했던 가슴을 흠뻑 적시며 위로한다.

어찌하여 이토록 자애로울 수 있는가.

비강을 타고 올라오는 양고기 냄새가 조금도 부담스럽지 않다. 도리어 그 넉넉함 덕분에 이 훌륭한 양고기 훈제 스테이크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한 번 더.

“합.”

쾌락의 저편에 이른 황홀함에 혀와 턱을 분주히 움직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맛있어?”

할아버지가 너무나 당연한 질문을 했다.

입에 양고기를 문 채 고개를 끄덕이니 흐뭇하게 웃으신다.

“어서 드세요. 합.”

보고 있지만 말고 어서 드시길 바라자 할아버지도 한 입 크게 입에 넣었다.

금방 눈을 크게 뜨신다.

“이거 확실히 괜찮구만.”

“핳하핳. 맛있을 수밖에. 오베르 반경 50㎞ 안에서 생산되는 최고급 제품만 취급하거든.”

마틴 얀센이 이 지역 농부로부터 유기농 식자재를 그날 사용할 만큼만 사서 사용한단 말을 덧붙였다.

유기농이 뭔진 몰라도 어마어마한 과학 기술의 결정체일 것이다.

“이 양도 방임 사육한 거야. 아주 건강한 녀석들이지.”

솜씨가 그리 좋지 못했던 라부 여관장과는 전혀 다르다.

내 이름만 붙었을 뿐이지, 내가 먹었던 음식이라고 할 수 없다.

기분이 좋아졌다.

“반 고흐를 생각하면 참으로 가슴이 아파. 빵 하나 제대로 먹지 못하고 죽기 전까지 굶주렸는데.”

그때 못 먹은 거 지금 다 먹고 있다.

“그러니 혹시 영혼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때 못 먹었던 아쉬움을 채우길 바라는 생각으로 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지.”

아쉬움을 채우고도 남는다.

신선한 달걀을 사용해서 그런지 함께 나온 달걀 프라이마저도 맛있다.

정신없이 먹다 보니 마틴 얀센과 할아버지가 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래서. 찾던 건 어떻게?”

“후. 진전이 없어. 여태 못 찾는 거 보면 포기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흐음. 하긴.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달라지기도 했을 거야.”

양고기를 씹으며 듣고 있다가 마틴 얀센과 눈이 마주쳤다.

그가 허탈하게 웃곤 물었다.

“훈아, 반 고흐가 마지막에 작업하던 그림이 뭔지 알고 있어?”

“나무 덤불이요.”

마틴 얀센이 턱을 당기며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알아?”

대답하기 참 난감한 질문이다.

“그냥요.”

“보통 까마귀가 나는 밀밭으로 알고 있거든. 죽음을 암시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반 고흐 정말 좋아하는구나?”

“이 아이가 어려도 보통 영특한 게 아니야. 자네보다 더 잘 알걸? 핳핳하하!”

“하하하하! 이 친구 농담은 여전하구만! 내가 명색에 반 고흐 재단 이사장인데 훈이한테 지겠어?”

“하하하!”

할아버지가 왜 나에 대해 잘 아는지 의아했는데, 빈센트 반 고흐를 연구하는 마틴 얀센에게 들으셨던 듯하다.

“아무튼 네가 말한 나무 덤불 그림, 나무뿌리는 미완성인 채로 남았단다. 그가 마지막에.”

“마틴.”

마틴이 내가 자살을 시도했던 시기를 언급하려고 하자 할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마틴 얀센도 할아버지의 의도를 눈치챘는지 적당히 말을 넘기려 한다.

“자살한 거 알아요.”

너무 어린 내가 혹시라도 자살을 ‘존경하는 화가가 한 행동’으로 인식할까 봐 경계하시는 거다.

할아버지는 내가 ‘빈센트 반 고흐’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셔서 특히 걱정하시는 듯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자살은 죄악이에요.”

자신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행동이며, 동시에 주변인들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일이다.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큼.”

할아버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그건 왜요?”

화제를 이어나가기 위해 질문을 던지자 마틴 얀센이 작게 신음한 뒤에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우리 재단에선 대체 나무뿌리가 어디를 그린 건지 찾고 있단다. 그러면 그가 마지막에 어디에 있었는지 알 수 있으니까.”

제목을 나무 덤불로 지으려 했는데, 지금은 나무뿌리로 정착된 모양이다.

“그게 왜 궁금해요?”

“아주 중요한 일이야.”

그림을 찾는 거야 감사하지만.

나와 테오가 나눈 편지라든가 내 개인적인 일이 알려진 건 사실 그리 유쾌하지 않다.

나를 좋아한다는 이유가 사생활 침범을 정당화할 순 없다.

“아직 그가 자살한 게 아니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거든.”

마틴 얀센이 생각지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가장 많이 지지받는 이야기는 동네 아이들의 장난에 죽었단 가설이지.”

이건 또 무슨 말일까.

당시 이곳 오베르 아이들이 극성맞긴 해도 장난삼아 사람에게 총을 쏠 정도는 아니었다.

경찰 조사를 받을 때도 스스로 한 일이라고 밝혔고, 특히 테오나 주변사람에겐 죽고 싶단 이야기를 확실히 했다.

그렇게 보여야 했으니까.

“왜 그런 이야기가 생긴 거예요?”

“안타까워서 그래.”

마틴 얀센의 표정이 굳었다.

조금 화난 듯하다.

“위대한 화가가 자살했다는 걸 믿기 싫은 거지. 삶을 포기한 행위 자체가 죄악이니, 타살되었단 것으로 미화하려는 거야.”

“…….”

반 고흐 미술관이나 나와 테오가 나눈 편지를 책으로 엮어낸 일 등.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처음에는 그저 감격했지만 생각해 보면 그들은 빈센트 반 고흐보단 ‘비운의 천재 화가’를 보고 있다.

훌륭한 양고기 스테이크로 나아졌던 기분이 다시 가라앉는다.

입맛이 떨어져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자 마틴 얀센이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그건 그에게 몹시 실례되는 일이야.”

고개를 들자 그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당시 그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려고 하지 않는 거지. 그래. 반 고흐는 죽고 싶지 않았어. 너도 그림을 그리니 잘 알 거 아니냐. 70일간 하루에 한 점 이상 그리는 게 보통 의지로 되는 게 아니야.”

맞다. 그만큼 절박했다.

“그리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지. 사람들은 그런 그가 자살 같은 멍청한 짓을 저지를 리 없다고 하지만, 생각해 봐라. 마비 때문에 붓조차 제대로 쥘 수 없게 된 그가 어떤 심경이었을지. 적어도 빈센트 반 고흐에겐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삶은 의미가 없었던 거야.”

당시 나를.

이렇게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처음 만난다.

“우리가 정말 그를 사랑한다면 그의 삶 자체를 기억해야 해. 난 그걸 밝혀내기 위해서 지난 40년간 그가 죽은 장소를 찾고 있다. 더는 반 고흐를 모욕하지 말고 인간 빈센트 반 고흐를 보라고.”

마틴 얀센이 격앙된 목소리로 날 위로했다.

할아버지가 허허 웃으며 그의 등을 쓸었다.

“이 친구 또 흥분했구만.”

이곳에 와서 안 좋은 기억만 되살리는 것 같았는데 좋은 사람을 만났다.

할아버지가 왜 그를 아끼는지 알 것 같다.

“두고 봐. 내 반드시 찾아낼 테니.”

양고기 스테이크를 다시 입에 넣고 말했다.

“산책하고 싶어요.”

“산책?”

“소화도 할 겸 좋잖아요.”

“뭐, 그러자꾸나.”

라부 여관을 벗어나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내 기억엔 북쪽 오르막길을 얼마 오르지 않은 곳인데, 다행히 주변이 크게 변하지 않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훈아, 어디 가는지는 알고 가?”

“네.”

할아버지와 마틴 얀센을 두고 앞서 걷는데 예전에는 없던 건물이 나타나 조금 헷갈리기도 한다.

‘여기가 어디지.’

표지판에는 도비늬가라고 되어 있다. 이 주변이 맞다.

“허허. 훈이가 오랜만에 신났구나.”

“애라서 그런지 힘이 넘치네.”

찾았다.

지금은 건물이 들어서 있지만, 전혀 알아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40년이나 찾고도 발견 못 한 것도 이해된다.

예전에는 그저 작은 오르막길이었을 뿐인데, 주변 풍경이 사뭇 다르다.

워낙 좁은 공간을 표현한 작품이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은 알아보기 힘들 거다.

‘사진이라도 남아 있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여기라고 알려줘도 증거가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고마운 마틴 얀센.

이곳을 40년이나 찾아 헤맨 그를 위해 이곳이 <나무뿌리>를 그리던 장소인 걸 증명할 수 없을까.

“벌써 끝이야?”

할아버지와 마틴 얀센이 다가왔다.

“이 건물 언제 만들어졌어요?”

“글쎄. 꽤 오래되어 보이는데.”

마틴 얀센이 턱을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빈센트가 살 적에는 없었는데.”

“하하. 예전 모습이 궁금하구나.”

“……네.”

오베르 일대를 전부 사들여 예전 같은 모습을 유지해 준 마틴 얀센.

비운의 천재 화가가 아니라 나를, 빈센트 반 고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그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렇다면 사무실에 예전 사진이 꽤 있지.”

“예전 사진이요?”

내가 살아 있을 적에 이미 사진기가 사용되었기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누가 그 한적한 오르막길을 사진으로 찍어 놓았을까.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평범한 사람들은 무엇을 기념할 때를 제외하곤 사진 남기기가 어려웠다.

“그래. 어떠냐? 보고 싶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마틴 얀센의 사무실로 향했다.

* * *

이럴 수가.

마틴 얀센이 가지고 있던 옛날 엽서를 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도비늬가 37번지의 그 오르막길이 너무나 정확하게 남아 있다.1)

1905년에 이 사진을 엽서에 넣을 생각을 대체 누가 했을까.

“얀센 할아버지!”

반가운 마음에 크게 소리치자 차를 마시던 할아버지와 마틴 얀센이 기겁을 했다.

“앗뜨뜨!”

“이 녀석아! 갑자기 소리를 치면 어떡해?”

“이거 보세요! 여기예요. 여기!”

엽서가 든 바인더를 가져가 테이블에 올려놓으니 할아버지와 마틴 얀센이 눈썹을 좁혔다.

“뭐가 말이냐?”

“여기라고요. 빈센트가 마지막에 그림 그리던 장소.”

두 분이 다시 한번 유심히 관찰했다.

그림을 다루는 만큼 눈썰미가 있으니 알아볼 것이다.

“하하하. 할아버진 모르겠는데.”

“어디 말하는 거냐?”

두 분 다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여기요. 여기. 모르시겠어요?”

콕 집어주어도 얼굴을 잔뜩 구긴 채 고민만 하신다.

답답한 마음에 태블릿을 꺼내 <나무뿌리>와 엽서를 나란히 놓았다.2)

그제야 두 분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살핀다.

“이거…….”

바인더를 든 마틴 얀센이 손을 떨었다.3)

* * *

1)오베르 쉬르 우아즈 우편엽서, 1905, 37 Rue Daubigny, 95430 Auvers-sur-Oise, Française.

2)빈센트 반 고흐, 나무뿌리들, 캔버스에 유채 물감, 1890

3)<나무뿌리들>에 관련한 이야기는 2020년, 미술사학자 판데르빈 박사가 밝혀낸 빈센트 반 고흐의 마지막 그림 <나무뿌리들>이 어디서 그려졌는지에 대한 정보를 재구성했음을 밝힙니다.

내용 출처

“A Clue to van Gogh’s Final Days Is Found in His Last Painting”, Nina Siegal, The New York Times, July 3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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