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35화
9. 천재와 괴짜(2)
앙리 마르소의 코를 뭉개주고 이틀이 흘렀다.
오르세 미술관과 루브르 박물관에 가고 싶어도, 밖에 나가기만 하면 기자들이 몰려들어 움직일 수 없었다.
인터넷이란 것 덕분에 소문이 이렇게나 빨리 퍼지니, 세상이 참 좋아진 것 같으면서도 불편한 점이 없지 않다.
김지우만 즐거워한다.
호텔 방으로 찾아온 그녀가 싱글벙글 웃고 있다.
“뭐가 그렇게 좋아요?”
“이런 게 독점이지. 아, 진짜 너 처음 봤을 때부터 느낌 있었다니까?”
“독점?”
“학장님이 다른 기자들 다 끊고 계시거든. 나야 너무너무 감사하지.”
김지우가 수첩과 녹음기를 꺼냈다.
“어떤데요?”
“진짜 난리 났어. 대한민국의 소년, 미술계 망나니 앙리 마르소에게 참교육!”
설마 그런 제목을 기사로 하진 않을 거라 믿는다.
“게다가 그 사람이 완성 못 한 걸 네가 해냈잖아. 어제 취재하러 마르소 갤러리 들렀는데 수정 안 했더라?”
“왜요?”
“글쎄. 그건 앙리 마르소한테 물어봐야지.”
앙리 마르소와 인터뷰는 하지 못한 듯하다.
‘그나저나.’
수정하지 않았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내 바람과 달리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듯싶다.
“아무튼 그 일 때문에 왔어.”
“같이 있었잖아요.”
“뭐라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는걸. 처음에 대체 왜 그랬던 거야?”
“뭘요?”
“신경 안 써도 됐잖아. 그렇게까지 친한 사이도 아니고.”
“비슷한 일 하는 사람이 답을 두고 자꾸 다른 곳에 가 있더라고요.”
“답을 두고?”
“마르소의 보석이요. 제목만 봐도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있잖아요.”
“앙리 마르소 본인을 말하는 거지?”
“네. 본인이 붙인 제목이잖아요. 그런 자신을 표현하는 일에 어떤 보석을 쓸지만 고민해서 알려준 거예요. 손으로 직접 그리라고.”
“근데 받침대에 직접 올라갔고.”
아무리 생각해도 제정신은 아니다.
“……그런 조각상은 처음 봤어요. 사람 피부 같은 질감, 옷은 실크도 그보단 부드러워 보이진 않을 거예요. 그는 기술만으로도 예술의 영역에 들어서 있어요.”
“그렇게 멋진 조각상을 만든 사람이 그런 짓을 해서 화가 났구나?”
“네.”
다시 생각해도 용서할 수 없다.
“그래서 눈을 대신 그렸고. 앙리 마르소는 그걸 보고 화가 나서 네 멱살을 잡고. 아, 진짜 놀랐어.”
보통 성인이 열 살 소년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리는 걸 상상하진 않을 테니까.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게 확실하다.
“근데 거기서 빡! 앙리 마르소 코에서 피가 주륵 흐르는데 세상에 이건 특종이다 싶었지.”
묘한 감상이다.
“얌전한 줄 알았는데 너도 성격 장난 아니다. 학교에서 친구들 때리고 그러진 않지?”
“학교 안 다녀요.”
“엥? 왜?”
“내년부터 가기로 했어요.”
“아, 하긴. 오래 아프기도 했고. 그럴 만하지. 아무튼 조심해. 욱해서 사고 치고 다니다간 나중에 진짜 후회한다?”
“후회요?”
“그래. 너 이미 유명인이야. 책잡힐 짓 애초에 하지 마. 나중에 가서 사과해 봤자 아무 소용 없어. 이건 팬으로서 하는 말이니까 꼭 명심해. 알았지?”
흥분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나를 방어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함부로 주먹 휘두르는 사람처럼 보였나 보다.
열 받는다고 칼 휘두르는 인간은 따로 있는데 말이다.
“아무튼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뭘요?”
“앙리 마르소랑. 그림도 찾으러 가야 할 테고 안 만날 순 없잖아.”
그러고 보니 그렇다.
서류 문제야 보호자인 할아버지가 대리인 자격으로 처리할 수도 있지만 경매장에는 얼굴을 비추는 게 도리다.
“글쎄요. 그 사람 하는 거 봐서요.”
김지우가 날 빤히 보다가 웃는다.
“왜요?”
“어려서 그런가? 앙리 마르소를 그렇게 대하는 건 너밖에 없을 거야. 내 속이 다 시원하다.”
오냐오냐하니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거다.
그렇게 뛰어난 재능을 가졌음에도, 작품 활동에 제약받지 않을 정도로 건강한 몸과 재산을 가지고도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이 안타깝고 화가 난다.
나는 재능도 변변치 않았고 그림도 느지막이 시작했다.
위대한 렘브란트, 스승 밀레와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손이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노력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몸도 건강하지 못해 결국에는 그림을 그릴 수조차 없이 망가졌고, 그림을 팔지도 못해 테오에게 번번이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다.
그는.
자기가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인지 모른다.
* * *
어제 그렇게 돌아간 뒤로 미셸은 단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평소처럼 일하고 다만 나를 무시할 뿐이다.
어차피 다음 달이면 퇴사할 거라는 거겠지.
“빌어먹을.”
미셸만이 아니라 아르센도 직원도 내 시선을 피한다.
언론은 마음대로 떠들고 평론가란 놈들은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발이라도 핥을 기세다.
‘정신 차려.’
미셸의 목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한심하다는 듯, 실망이라는 듯, 슬픈 듯 울린 목소리가 가슴을 헤집어 놓는다.
내 탓이라고?
“…….”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놈을, 그 그림을 본 순간부터 뭔가 잘못되었다.
해바라기.
작업이 더뎌져 기분 전환 삼아 보석과 그림을 사러 다니다 만난 빌어먹을 꼬맹이.
충격이었다.
고고하게 핀 해바라기의 눈부신 자태 앞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재능이란 이런 것인가.
고작 열 살 먹은 꼬마가 그렸다고 믿을 수 없었다.
힘 있게 뻗은 줄기와 놀랍도록 눈부신 잎.
불필요한 요소는 과감히 생략하고도 한 송이 해바라기의 심상을 완벽하게 잡아냈다.
태양을 바라보는 해바라기의 본질을 그 어떤 사진보다, 작품보다 잘 담아내고 있었다.
빈센트 반 고흐처럼.
녀석의 해바라기 앞에서 매일 한 작품씩 하루도 빠짐없이 노력해 온 나의 27년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인정할 수 없었다.
내게 한계가 있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고작 재능이란 것에 그간의 노력이 부정당하는 걸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녀석을 끌어들였다.
나라면 반드시 해낼 수 있다고.
이까짓 벽 따위 얼마든지 넘어설 수 있다고. 지금까지 몇 번을 그러지 않았냐고 마음을 다지고 또 다졌다.
그러나 결국 완성하지 못했다.
여러 보석을 사들여 직접 가공하기도, 물감을 섞어보며 원하는 색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때.
녀석이 날 부끄럽게 했다.
마르소의 보석을 완성할 사람은 나뿐이라며, 왜 그러지 않냐고 다그쳤다.
생각해 보지 않은 방법은 아니었다.
다만 구상할 수 없었을 뿐이다.
대리석 위에 눈을 그렸을 때의 이질감 때문에 몇 번 실험해 보다가 폐기한 방식이었다.
그런데 녀석은 마르소의 보석을 본 지 하루도 안 되어 단 한 번의 수정도 없이 내가 해내지 못한 일을 했다.
정말 나처럼.
마르소의 보석이 나의 또 다른 육신처럼 느껴졌다.
녀석은.
나를 부끄럽게 했다.
어디서 튀어나온 놈인지 멋대로 내 가슴을 뒤흔들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깨닫게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마르소의 보석마저 완성해 버렸다.
수정해 보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명확하게 할 수 없었던 내가 바란 내 눈이 그곳에 있었으니까.
“……아니야.”
마음에 안 드는 놈이지만 녀석이 한 말 중에 단 하나 옳은 게 있다.
나를 완성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그 어떤 인간도 나를 대신할 순 없다.
재능 따위에 굴복할까 보냐.
“…….”
그래.
마르소의 보석을 완성할 사람은 나 앙리 마르소뿐이다.
* * *
전시 3일 차.
앙리 마르소 전시회를 찾은 사람들이 불만을 내비쳤다.
앙리 마르소와 고훈이 공동 작업한 <마르소의 보석>을 보고자 했으나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갤러리에 직접 항의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자연스레 온라인 커뮤니티, 포럼 게시판에 관련 내용이 올라왔다.
└아니 대체 이해할 수가 없네. 그걸 왜 가려둬?
└자기가 못 한 걸 고훈이 했으니 자존심 상한 거지. 공동 작업은 개뿔. 퍼포먼스가 아니라 진짜였던 거임.
└설마. 아무리 그래도…….
└지 잘난 맛에 살던 놈이 자존심 상한 거지 뭐. 그동안 해온 일도 있고 고훈한테 한 짓도 그렇고 조각상 감춘 것도 그렇고 진짜 실망이다.
└정말 그런 이유라면 좀 그러네.
└아니, 근데 고훈도 잘못한 거 아냐?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남의 작품에 손댄 거잖아.
└앙리 마르소가 버린다고 했음.
└헐…….
└정말 자존심 상해서 가렸나? 다른 이유 있는 거 아냐?
└나 오늘 갤러리에 직접 물어보니까 앙리 마르소가 개인 사정으로 가려둔 거 맞대.
└하. 진짜 왜 그러냐. 그래도 좋아하는 작가였는데.
앙리 마르소를 향한 여론은 갈수록 악화되었다.
그의 성격이 모난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적어도 작품 활동을 할 때만큼은 진지했기에 지지했던 팬들도 이번 사건은 이해하지 못했다.
더욱이 그가 칩거에 들어가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었다.
전시회 일정이 끝나는 무렵까지 <마르소의 보석>이 공개되는 일은 없었고, 앙리 마르소마저 공식석상에 모습을 내비치지 않자.
앙리 마르소가 고훈을 시기한다는 소문까지 퍼지게 되었다.
마르소 갤러리 직원들은 당장 내일로 예정된 경매를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여론이 너무 안 좋아요. 대표님께서 상황 설명이라도 하셔야 할 텐데.”
한 직원의 말에 미셸 플라티니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서봤자 달라지는 거 없어요. 딱히 틀린 말도 아니고.”
회의에 참석한 직원들이 침울해졌다.
이렇게 안 좋은 상황에서 그들이 유일하게 믿었던 수석 큐레이터 미셸 플라티니마저 퇴사한다니 이 위기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그저 막막했다.
한편 미셸 플라티니도 마르소 갤러리에서의 마지막 전시회를 이대로 방치할 순 없었다.
그러기에는 큐레이터로서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문제는 앙리 마르소.
작가와 이야기를 해야 대응책을 강구할 텐데 어디 있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대표님과 만나볼게요. 회의는 내일 다시 이어가기로 해요.”
“네.”
직원들이 퇴근하고.
미셸 플라티니는 앙리 마르소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안내 메시지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디서 술이나 퍼마시고 있겠지.’
그녀가 앙리 마르소의 비서 아르센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네, 플라티니 씨.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하하. 저야 항상 똑같죠. 플라티니 씨는 요즘 바쁘실 텐데. 어떻게?
“전시회 일로 앙리랑 할 이야기가 있는데 연락이 안 돼서요. 지금 집에 있어요?”
-아뇨. 쭉 갤러리에서 지내셨는데. 못 보셨어요?
“네?”
-며칠 되었습니다.
미셸 플라티니가 눈썹을 좁혔다.
지난 며칠간 갤러리에서 앙리 마르소를 본 적이 없었다.
그때 밖에서 소리가 났다.
“아, 네. 감사합니다. 또 연락드릴게요.”
통화를 마친 미셸 플라티니가 회의실을 나섰다.
앙리 마르소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2층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자고 일어났는지 머리는 부스스하고 옷도 구겨져 있었다.
“여기서 뭐 해?”
그녀가 따지듯 물었다.
앙리 마르소는 그녀를 보더니 이내 심드렁하게 답했다.
“뭘 하든.”
그는 비품실로 향했다.
이렇게까지 망가진 그를 본 적 없었기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에 앞서 화가 났다.
고작 한 번의 실패로 스스로를 함부로 대하는 것이 속상했다.
미셸이 앙리를 붙잡았다.
“뭐 하는 거냐고. 여기서 지냈던 거야?”
알 수 없는 짙은 냄새에 그녀가 움찔했다. 코를 막고 뒤로 물러섰다.
“안 씻었어?”
앙리 마르소는 대답하지 않고 붓과 물감을 챙겼다.
미셸이 그를 지켜보다가 머리를 쓸어올렸다. 대체 이 남자가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왜 이래? 작품 하나 실패하면 끝이야? 세상이 무너져?”
“……”
“직원들 걱정은 안 해? 팬들 생각은 안 하고? 여기서 이런 이유가 뭐냐고.”
앙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물감 튜브를 살피고 담거나 붓을 고르는 일에 집중했다.
그러다 일어서 미셸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밖으로 나섰다.
미셸에게는 그 모습이 무척 충격이었다.
항상 당당하고 자신감에 차 있던 그가 아니었다.
자기 관리에 철저하여 삐쳐나온 머리카락 한 올도 신경 썼던 앙리 마르소가 아니었다.
마치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모습에 그가 혹시라도 나쁜 마음을 먹은 건 아닌가 걱정되었다.
헤어졌지만 그와 함께한 세월이 있었기에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앙리. 나랑 얘기 좀 해.”
미셸이 밖으로 나섰다.
마침 앙리가 <마르소의 보석>을 덮고 있던 천을 벗겨냈고.
그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가 이내 입을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