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24화 (282/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24화

7. 불쌍한 사람(1)

첫 작품을 28억 원에 판매한 고훈은 이미 유명인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고가의 그림이 팔렸단 사실에 주목했으나.

서울 미술관을 직접 방문한 사람들이 고훈의 <해바라기>를 본 감상을 SNS, 뉴튜브 등에 올리면서 그 내용이 커뮤니티 사이트까지 번져 여론화되어 가고 있었다.

└고훈 전시회 안 해?

└그러게. 기사도 처음에 났던 두 개 빼곤 다 복붙이던데.

└뉴튜브 보니까 열 살밖에 안 된 애가 부모님도 잃고 불쌍하더라.

└자기 표현한 거래. 힘들어도 꿋꿋하게 그림 그릴 거라는.

└ㅠㅠㅠ

└그렇게 잘 그림? 벌써 며칠째 고훈 이야기 계속 올라오네.

└ㅇㅇ 뭔가 위로받는 기분임.

└지금도 볼 수 있음?

└ㄴㄴ 전시회 끝났어. 그래서 다들 다음 전시회 언제 하는지 궁금해하는 거.

<해바라기>를 통해 마음이 동했던 사람들은 다시 한번 그 감정을 느끼고 싶었고.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자 한 번쯤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그런 이들의 욕구를 포착한 사람들은 뉴튜브 등지에서 고훈과 앙리 마르소를 다루었다.

언론사에서도 고훈 관련 기사를 쏟아내어, 고훈과 관련된 영상과 기사 조회 수는 날로 치솟았지만 정작 고훈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정보는 미미했다.

<예화>의 김지우 기자가 내보낸 두 건의 기사 외의 이야기는 찾기 힘들었다.

고훈에게서 무엇인가를 느낀 대한일보 김준용 편집장은 이인호 기자에게 고훈과의 단독 인터뷰를 따 올 것을 주문했고.

한국대학교를 방문한 이인호 기자는 좌절하고 말았다.

“휴가 중이시라고요?”

“네.”

“그럼 연락처라도.”

이인호 기자의 말에 조교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건 함부로 가르쳐 드릴 수 없는데요.”

이인호가 급히 기자 신분증과 명함을 꺼내 보였다.

“대한일보에서 나왔습니다. 고수열 학장님하고 고훈 취재하려고요.”

“그런데요?”

“네?”

“취재하시는 건 기자님 사정이죠. 교수님 연락처 알려달라고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아세요?”

그녀는 학과 사무실에서 2년간 근무하면서 고수열을 취재하고자 방문한 기자를 셀 수 없이 상대했다.

특히나 최근엔 그 수가 확 늘어났다.

그들 모두 하나 같이 기자라는 이유로 개인정보를 당당히 요구하니, 조교는 기자라는 족속에게 진절머리가 나 있었다.

“좋은 아침!”

그때 사무실로 장미래 교수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조교가 반갑게 인사하고 이인호 기자를 쏘아보았다.

“일정 있으니까 볼일 더 없으시면 나가주세요.”

“아니, 잠시만.”

“왜? 무슨 일인데?”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장미래가 조교에게 물었다.

“대한일보에서 나온 기자라는데 고수열 교수님 연락처 알려달라고 해서요.”

“선생님? 선생님 연락처는 왜요?”

장미래의 질문에 이인호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답했다.

“고훈이 요즘 화제잖아요? 인터뷰하려는데 연락할 길이 없어서요. 혹시 학생은 알고 있어요?”

“학생?”

장미래가 짐짓 놀랐다.

“저기요. 왜 이렇게 무례해요?”

조교가 이인호 기자를 쏘아붙였다.

“약속도 없이 찾아와서 학장님 연락처 가르쳐달라고 하질 않나, 장미래 교수님께 학생이라고 하질 않나. 기자 맞긴 해요? 어떻게 교수님을 몰라볼 수 있어요?”

문예부에 있긴 했지만 주로 대중예술을 다루느라 미술에 대해선 조금도 알지 못하는 이인호 기자가 당황했다.

“어, 그게. 제가 잠시 착각하고.”

고수열 학장을 선생님이라고 부르기에 당연히 학생이라고 생각한 게 잘못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따야 하는데.’

이번에도 빈손으로 돌아가면 이번에는 편집장에게 무슨 말을 들을지 몰랐다.

“죄송합니다. 제가 이쪽은 처음이라서.”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장미래가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으며 조교를 달랬다.

“선생님 계실 때 다시 오세요. 지금은 알려드려도 안 될 거예요.”

“네? 왜…….”

“유럽 여행하고 계시거든요.”

“유럽이요? 언제 돌아오시는데요?”

“두 달쯤 다녀오신다고 하셨어요.”

장미래의 대답에 이인호가 무심코 입을 벌리고 말았다.

고훈을 향한 관심이 언제 사그라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두 달씩이나 기다릴 수 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단단히 찍혔기에 인터뷰 대상이 여행 중이라서 기사를 못 냈다고 할 수도 없었다.

“유럽 어디로요?”

장미래가 이인호를 살폈다.

자신을 몰라볼 정도면 정말 미술계 쪽에서는 아무런 지식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간절해 보이는 모습에 한 번쯤 기회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훈이에게도 좋은 일이고.’

“기다려 보세요.”

장미래가 스마트폰을 꺼내 고수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길게 이어지다가 고수열이 전화를 받았다.

-그래요. 장 교수.

“선생님, 여행 어떠세요?”

-하하. 좋은 건지 뭔지. 훈이는 좋아하는 것 같아요. 반 고흐 미술관이 마음에 들었나 봐.

“정말요? 훈이 그림이 반 고흐 느낌이 나긴 하니까. 아, 선생님. 학교로 기자 한 분이 찾아오셨는데 훈이 인터뷰하고 싶다고 해서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인터뷰?

“네. 슬슬 후속 보도 나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장미래의 말에 고수열이 흠 하고 숨을 내쉬었다.

고훈이 너무 어린 탓에 언론과의 불필요한 접촉은 되도록 피하고 있었는데, 장미래의 말대로 나쁘지 않은 시기였다.

WH배움 미술관과의 전시회 일도 있으니 지금쯤 정보를 풀면 고훈에게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다.

-나쁘지 않은데. 지금은 나와 있으니까.

“기자님이 그쪽으로 가신대요. 그렇죠?”

장미래의 질문에 이인호가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옆에 있어요?

“네. 바꿔 드릴까요?”

-그래요. 이야기나 한번 해봅시다.

장미래가 스마트폰을 막고 이인호 기자에게 말했다.

“선생님하고 통화하실 때 실수하면 이쪽 기사는 못 쓴다고 생각하고 받으세요.”

장미래에 대해선 몰랐으나 고훈과 인터뷰하기 위해 고수열이 어떤 사람인지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했던 이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학장님. 처음 인사드립니다. 대한일보 이인호 기자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훈이 기사 쓰신다고.

“네. 인터뷰를 부탁드리고 싶어서. 아, 절대 나쁜 이야기는 없을 겁니다. 최대한 좋은 방향으로.”

-음. 그건 기자님이 알아서 해주시고. 몇 가지 약속받을 일이 있어요.

“약속이요?”

-힘들겠어요?

“아니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무엇이든지 말씀해 주십쇼.”

-우선 훈이에게 부모 이야기 묻지 않으면 좋겠고. 작품 활동에 부담을 주는 말도 없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언제까지 뭘 하겠냐는 질문 같은 거요.

이인호 기자가 다급히 수첩을 꺼내 고수열의 말을 받아 적었다.

“네. 부모님 이야기랑 작품 활동 계획 이야기는 묻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얘가 한국말은 조금 서툴러서. 영어나 프랑스어가 가능하면 좋겠는데.

“영어. 영어로 가능합니다.”

-흠. 그럼 되겠는데……. 지금 우리가 암스테르담에 있거든요. 정말 오실 수 있겠어요?

“그럼요. 당연히 가야지요.”

-아니면 전화로 하는 것도 괜찮고.

이인호의 뇌리에 편집장 얼굴이 스쳤다.

“아닙니다. 사진도 찍고 그래야 하니 직접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해요. 며칠은 더 머무를 것 같으니. 이동하게 되면 사무실 통해서 연락드리리다.

“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허허. 그래요. 나중에 봬요.

통화를 마친 이인호가 허리를 숙이며 스마트폰을 넘겼다.

장미래가 고수열에게 대충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전화를 끊었다.

“열정이 대단하시네요. 암스테르담까지 가시고. 우리 훈이 기사 좋게 부탁드려요.”

“아무렴요. 그럼.”

이인호 기자가 사무실에서 나가자 조교가 걱정스레 말했다.

“저 사람 좀 이상하지 않아요? 교수님도 못 알아보고.”

“이쪽 일 모르는 것 같긴 하더라. 어머. 나 벌써 훈이한테 밀린 거야?”

“흐흫. 농담도.”

“농담은. 나도 모르는 사람이 훈이 인터뷰는 하고 싶다고 하잖아. 분발해야겠네.”

가지고 온 서류를 정리하던 장미래가 피식 웃었다.

“나 아직 학생처럼 보이나 봐.”

“그럼요. 아직도 전 가끔 선배님 소리 먼저 나오려는 거 엄청 조심하고 있어요.”

“야, 그냥 편하게 해. 나도 불편해.”

* * *

이틀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방문한 이인호 기자는 지난 며칠간 벼락치기 한 미술 관련 지식을 까먹지 않기 위해 택시 안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다.

반 고흐 미술관에 도착한 그는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2층이라고 했지.’

이인호가 엘리베이터에 타 Second floor로 향하는 숫자 2를 눌렀다.

그러나 Second floor를 아무리 돌아다녀도 고수열과 고훈을 찾을 수 없었다.

‘뭐지? 분명 2층이라고 했는데.’

혹시 층을 잘못 찾았나 싶어 엘리베이터를 다시 찾으니 1층이 ground floor, 2층이 First floor로 적혀 있었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층 아래로 내려간 이인호는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앞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여기만 사람이 모여 있네.’

가까이 다가가니 어린 소년이 주변 사람들을 상대로 <해바라기>를 설명하고 있었다.

“이건 빈센트가 가장 좋아하던 그림이에요. 그를 은근히 무시했던 폴 고갱마저도 해바라기만큼은 비난하지 못했어요.”

“고갱이 반 고흐를 무시했었어?”

“네. 하지만 중요한 건 빈센트와 싸우고 아를을 떠난 그가 편지로 해바라기를 보내 달라고 했던 거죠. 이 그림은 빈센트가 원본은 보내주기 싫어서 다시 그려준 거예요.”

“앙금이 남아 있었구만.”

“이것도 결국 안 보내줬어요.”

“하하하핳!”

외국인들 사이에서 유창한 영어로 그림을 설명하는 소년은 분명 고훈이었다.

‘천재라더니.’

전시관 내부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기에 이인호는 주변 눈치를 보며 몰래 사진을 찍었다.

고훈의 설명을 듣던 한 배불뚝이 남자가 물었다.

“어지간히 보내주기 싫었나 봐. 이렇게 칙칙한 해바라기를 그렸으니까. 그렇지?”

“그건 아니에요. 시간이 너무 흘러서 변색이 된 거예요.”

“으음?”

“크롬 옐로란 물감이 있는데, 그게 조명을 받으면 변색이 심해진대요. 원래는 정말 밝은 노란색이었어요.”

“이제는 못 보는 거야?”

“아니요. 제가 그린 걸 보시면 돼요.”

고훈이 스마트폰으로 자기가 그린 <해바라기>를 보여주었다.

“하하핳. 이 녀석 인제 보니 홍보하려고 그런 거구만.”

“이걸 정말 네가 그렸어?”

“어? 이거 앙리 마르소가 산 그림 아닌가? 맞지? 네가 고수열 경 손자였어?”

“고수열?”

“맙소사. 네가 고훈이었니?”

빈센트 반 고흐를 설명하며.

자기 그림을 홍보하는 소년의 미소가 너무나 맑고 환하여.

사진을 찍던 이인호는 잠시 행동을 멈추고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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