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72화
19. 친구(1)
샤워실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고수열이 씩 하고 웃었다.
한때는 아이답지 않은 모습이 걱정되었는데.
유럽 여행을 다녀온 뒤로는 감정 표현도 많아졌고 이제는 친구와 웃으며 놀기도 했다.
서서히 교통사고 당시의 트라우마를 잊어가나 싶어 안심이었다.
“얘들아, 얼른 씻고 나와야지.”
“네. 야, 야! 잠깐!”
“히히힣!”
사내아이들이라 그런지 한 번 흥이 나니 멈출 수 없는 모양이었다.
고수열은 빙그레 웃으며 느긋하게 상을 차렸다.
아이들이 문을 열고 나왔다. 몸을 제대로 닦지 않아 물이 뚝뚝 떨어졌다.
“감기 걸린다.”
고훈이 어른스럽게 수건으로 친구의 머리를 말려주었다.
“앉아 봐.”
“나도 할 수 있어.”
“빨리 말리고 밥 먹어야지.”
자기 목에 묻은 물감은 지우지 않고 친구 머리를 말려주려는 모습이 귀엽기도 기특하기도 했다.
“참. 갈아입을 옷이…….”
고수열이 차시현이 입을 옷을 가져다주었다. 고훈이 입던 옷이 차시현에게 꼭 맞았다.
“자, 자. 이제 밥 먹자.”
고수열이 아이들을 다독여 식탁에 앉혔다.
고훈과 차시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리짜장탕을 살폈다.
“이게 뭐예요?”
고훈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할아버지의 역작을 경계했다.
“뭐긴. 오리탕이지. 먹어 봐. 시현이도.”
“…….”
두 아이가 서로를 보았다.
냄새는 좋았지만 검은색에 가까운 갈색 오리탕이 아이들의 눈에 맛있어 보일 리 없었다.
할아버지의 음식에 몇 번 당한 고훈이 먼저 맛을 보았다.
“어.”
국물은 달짝지근하면서도 감칠맛이 있었다.
푹 끓인 덕분에 채수가 진하게 배어 나왔고 오리고기 특유의 농밀함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고훈은 어제 먹었던 삼계탕의 삼삼한 맛을 떠올렸다.
“학교 삼계탕보다 맛있어요.”
“그래?”
“네. 먹어 봐.”
친구가 맛있다고 하니 차시현도 용기를 냈다. 국물을 조금 떠 입에 넣었다.
인스턴트 음식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차시현에게 짜장라면 분말은 너무나 자극적이었다.
혀를 유린당한 차시현은 무방비 상태로 연거푸 숟가락을 놀렸다.
“그렇게 맛있어?”
“네!”
고훈과 차시현이 힘차게 답하자 고수열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 * *
차시현은 착한 아들이었다.
엄마 아빠 말은 조금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였다.
공부도 열심히 했다.
영특하여 한국 초등학교 수업조차 수월히 소화해냈고 힘들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한 적 없었다.
그 흔한 장난감 한 번 사달라고 조르지 않았고 그 나이 때 좋아할 만화영화, 게임도 하지 않았다.
아빠가 지나가듯 했던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 때문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놀고 싶었지만 그 마음은 속으로 삭일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더는 그럴 수 없어졌다.
너무나 특출한 탓에 학교 수업은 시시해졌고 그렇게 생겨난 여유 시간과 태블릿, 미술 교육용 애플리케이션에 시선이 갔다.
한 번 물꼬를 튼 순수한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하지만 아버지가 할아버지와 그림을 몹시 싫어하는 걸 알기에 똑똑한 아이는 자신을 철저히 감췄다.
그림은 태블릿에만 그렸고 저장하지 않았다.
가끔 마음에 드는 그림을 간직하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면 얼마나 슬퍼할지 알기에 기꺼이 포기했다.
그림을 그리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정 보고 싶을 때는 머릿속 화방에서 그림을 꺼내 보았다.
비록 남에게 보여줄 순 없지만 한 번 본 것은 결코 잊지 않는 축복받은 재능이 있었기에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그렇게 아무도 없는 혼자만의 세계에서 꿈을 키워 오던 차시현이 더는 자신을 숨길 수 없게 되었다.
고훈 때문이었다.
‘네 파란 나무가 좋아서 배우고 싶었을 뿐이야.’
자기가 그린 그림을 남이 좋다고 말했을 때, 그 말을 듣는 순간.
차시현은 자기 속에 담아두었던 수많은 파란 나무를 보여주고 싶어졌다.
갑자기 생긴 마음이 아니었다.
애써 외면했던 간절한 마음이 더는 숨길 수 없을 만큼 부풀어 오른 탓이었다.
처음 붓을 들고.
물감을 직접 짜서 화폭에 칠하자 억누르고 있었던 감정이 폭발하고 말았다.
즐거웠다.
욕심을 조절하기만 했던 아이가 처음으로 자신을 표출한 것이었다.
자신의 손짓 하나로 바뀌는 캔버스 위 세상에 소년의 가슴은 벅차올랐다.
다행히.
고훈은 차시현에게 그림은 어떻게 그리는 거라고 한 마디도 알려주지 않았다.
차시현이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그것이 좀 못나도 스스로 깨달아 개선할 수 있도록 그저 지켜봐 주었다.
‘붓 쓰는 게 어려우면 손으로 그려도 돼.’
‘어떻게?’
‘이렇게.’
고훈은 손바닥을 펴 물감을 쥐었다. 그 행동이 차시현에게는 충격이었다.
물감을 손으로 만지다니.
그런 과격한 행동을 해도 되는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자신을 제어할 수 없게 된 소년은 친구를 따라 물감을 손에 쥐었고 캔버스에 과감히 발랐다.
찍었다. 뭉갰다.
손가락을 모으기도, 펼치기도 하면서 마음껏 움직였다.
그저 물감을 칠한다는 행위에만 집착한 탓에 캔버스 위의 물감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이상해.’
차시현은 자기가 그린 그림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런 의미 없는 형태였다.
하지만 그것을 그린 행위 자체가 너무나 즐거워서 어쩔 줄 몰랐다.
옷에 물감이 묻은 걸 인지했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지만 생전 처음 먹어 보는 음식은 맛있었다.
스타일러 덕분에 돌아갈 즈음에는 옷도 새것처럼 뽀송뽀송했다.
다만 하나 남은 걱정은.
“나, 또 와도 돼?”
오늘의 행복이 이대로 끝나는 것.
단 한 번의 추억으로 남는 것이 무서워졌다.
“그럼.”
고훈이 씩 하고 웃었다.
“재밌었어.”
자기만 즐거운 게 아니었단 걸 확인한 순간 차시현은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응!”
* * *
한 번 읽은 것으로는 작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크리스틴 노먼 감독의 각본을 충분히 표현하기 위해 이번에는 한 문장, 한 문장 생각하며 읽었다.
그러다 보니 속도가 좀 더딘데 큰 문제는 없으리라.
급하게 처리할 일도 아니고 내년 일이라 시간도 많이 남았다.
더욱이 지금은 휘트니 비엔날레 준비가 우선이니 조급해하지 말자.
‘풍경을 그리고 싶은데.’
서울은 아를이나 오베르 쉬르 우아즈 같은 자연을 찾기 힘들다.
집 주변에서 그리고 싶은 것은 모두 그려서 주변을 돌아다니고 싶다. 이번 주말에는 할아버지께 나들이를 나가자고 해봐야겠다.
쌀쌀하던 날씨도 많이 풀렸으니 퍽 즐거운 소풍이 되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묘사력을 키우기 위해 여러 과자를 소묘하던 중.
“아.”
차시현이 감탄했다.
고개를 돌리니 내가 연습 삼아서 그렸던 정물화를 보고 있다.
고개를 팩 돌린다.
“이건 왜 전시 안 해?”
“연습한 거야.”
“이렇게 잘 그렸는데?”
“저 정도 그리는 사람은 널렸어.”
“거짓말.”
“정말.”
이 시대는 상향 평준화라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을 정도로 천재들이 범람해 있다.
할아버지와 장미래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정말 뛰어난 기술을 가졌다.
나조차 대학생들의 전시회에 가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적어도 기술만은 나보다 훨씬 뛰어났으니까.
심지어 그런 그림을 지하철역 안의 작은 전시회에서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할아버지와 장미래, 앙리 마르소처럼 그중에서도 유독 빛나는 인물이 있지만.
절대 대학생들의 수준이 낮은 건 아니다.
도리어 과거 이름을 떨친 이들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거나 혹은 그보다 잘 그린다.
한국 대학생 전시회에서 본 그린 그림 중 인상적이었던 그림을 찾아서 보여주었다.
“우와.”
차시현이 감탄했다.
“이게 그림이라고?”
“응. 대학생이 그렸대.”
마치 사진 같은 표현력.
유화 물감으로 이렇게까지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할아버지와 장미래, 앙리 마르소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것도 이제는 그리 특출한 능력이 아니었다.
극사실주의.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미국에서는 이미 1960년대에 유행했던 화풍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정밀화는 정말 신의 축복을 받은 극소수의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영역이었지만.
지금은 대학생도 흉내 정도는 낼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건 엄청 비싸겠지?”
“아니. 그렇지도 않나 봐.”
방태호에게 듣기로는 재룟값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왜? 이렇게 잘 그렸는데?”
“그러니까 말이야.”
이렇게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생계조차 유지할 수 없다.
기가 찰 노릇이다.
“아. 공급이 많아서 그렇구나.”
차시현이 알 수 없는 말을 꺼냈다.
“그게 뭔 소리야?”
“이런 그림을 공급하는 사람은 많은데, 수요가 못 따라가니까 가격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거야.”
“……?”
이해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하기사.
내 연습용 정물화처럼 잘 그린 그림은 널리고 널렸다.
그림을 사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으니, 개중에서도 특출하지 않으면 팔리지 않을 수밖에.
“잘 그린다고 다 팔리지 않는구나.”
차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그린다는 의미가 꼭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만 포함하는 건 아니야.”
“그럼?”
“말로 다 할 순 없어. 오래된 그림은 사료로 가치가 있고. 유명한 사람이 그린 건 수집품으로서 의미가 있어. 또 잘 그렸다는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고.”
언젠가 인상적으로 본 윌렘 드 쿠닝의 ‘여자 3’을 보여주었다.1)
“이게 뭐야?”
차시현이 눈썹을 좁히고 입을 모았다.
추상에 가까운 구상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구상한 추상이라고 해야 할지.
어느 쪽도 옳지 않다.
그의 그림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윌렘 드 쿠닝이란 사람이 그린 그림이야. 어때?”
“무서워.”
어른이든 아이든 그리 유쾌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그림은 아니다.
“……못 그렸어.”
추상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아직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다.
“추상표현주의라고 한대.”
“추상이 뭐야?”
“알아보는 중이야. 나도 사실 이 그림이 왜 사랑받는지 모르겠거든.”
“이 그림 비싸?”
“응. 1억 달러가 넘는대.”
“히.”
관련 기사를 찾아보니 2006년 스티브란 남자가 한화 1,443억 원이 넘는 돈을 주고 샀다고 나와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가격이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 괴기함만을 느낀 나는 아직 현대 미술에 적응하지 못한 거다.
영영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다.
아무리 노력해도 맞지 않는 사람이 있는 거니까.
하지만 그조차 대화를 해봐야 판단할 수 있으니 차차 알아보려고 한다.
* * *
1)Willem de kooning(1904~1997): 네덜란드인. 화가, 조각가, 교수, 디자이너.
추상표현주의를 연 화가로 현대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화가.
그의 1953년 작 는 2006년, 1억 3,750만 달러에 거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