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324화
55. 화룡점정(29)
베네치아 비엔날레 시상식이 거행되었다.
전 세계 71개국에서 취재를 나왔으며 베네치아 비엔날레 공식 중계방송은 동시 시청자 200만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모든 미술 애호가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약 3년 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천재와 미술계를 바른길로 이끈 영웅을 중심으로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었다.
기대와 설렘이 가득한 가운데.
베네치아 비엔날레 프로모션 영상이 재생되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산치오, 장 프랑수아 밀레, 클로드 모네, 윈슬로우 호머, 폴 세잔,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에드바르 뭉크, 구스타프 클림트, 수잔 발라동, 마르크 샤갈, 앙리 마티스, 파블로 피카소, 마르셀 뒤샹, 쉬베이훙, 살바도르 달리, 프리다 칼로, 프랜시스 베이컨, 암리타 쉐어 길, 에곤 실레, 김창열, 백남준, 바스키아 등.1)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에게 감동을 안겨 준 미술가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고, 2030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대표 작가들이 뒤를 이었다.
영상이 끝나자 비엔날레 총감독 랄프 루퍼스가 단상에 올랐다.
“베네치아를 방문해 주신 신사 숙녀 여러분. 멀리서 응원해 주고 계신 소중한 미술 애호가 여러분. 반갑습니다. 랄프 루퍼스입니다.”
시상식장을 찾은 이들이 박수로 화답하자 정면 스크린에 ‘Between’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저와 각 전시관 큐레이터 그리고 173명의 예술가는 사이, 관계라는 단어를 주제로 이번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준비했습니다.”
랄프 루퍼스가 리모컨으로 화면을 넘겼고 곧 베네치아 비엔날레 방문객들의 모습이 비쳤다.
“그리고 여러분이 오신 덕에 비엔날레가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예술가와 주최 측의 일방적인 행사가 아니라 찾아와 준 이들이 덕에 성공한 행사였다.
“여러분과 예술가 그리고 오늘을 위해 수고해 주신 모든 분께 축복이 깃들길 바라며 시상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참석자들이 다시 한번 박수를 보냈다.
“이번에는 열 명한테 준다고 했죠?”
현장을 찾은 이인호 기자가 김지우에게 슬쩍 물었다.
“네.”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가장 큰 상은 최고 작가상, 평생공로상, 국가관상 세 개 부문으로 나뉜 황금사자상이었다.
35세 이하의 젊은 작가 중에서 한 명에게는 은사자상이 주어지고.
주목해야 할 국가관, 작가, 큐레이터 또는 평론가에게 특별상을 수여했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이사회는 올해부터 총 여섯 명에게 특별상을 주기로 하는 등 수상 기회를 넓힌다고 밝혔었다.
“다들 긴장한 것 같네요.”
이인호가 주변을 둘러보곤 말했다.
“그럴 거예요. 상 하나로 미래가 바뀔 테니.”
베네치아 비엔날레 심사위원은 각자의 위치에서 미술계를 대표하는 이들로 구성되었다.
올해는 저명한 미술사학자 캐롤라인 스트릭과 휘트니 미술관 에릭 다우어 관장, 뉴 테이트 모던 갤러리의 마커스 앨런 관장 등이 심사에 참여했었다.
미술계를 주도하는 이들이 직접 선정한 만큼 이후 그들에게서 전시 기회를 얻을 수도 있었으며, 세계 최대 미술 전람회에서의 수상 사실만으로도 예술가로서의 삶에 큰 도움이 되었다.
“특별언급상입니다.”
랄프 루퍼스가 수상자 명단이 적힌 카드를 열고 씩 웃었다.
“국가관에 미국관. 축하드립니다.”
열렬한 환호 속에서 미국관을 꾸민 사라 조지아와 동료 작가들, 미국관 큐레이터가 벌떡 일어났다.
사라 조지아는 상을 받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지 크게 뜬 눈에 당혹과 기쁨이 교차하고 있었다.
“몇 년 동안 주목받더니 결국 결실을 보네요.”
이인호가 손뼉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평소 김지우가 자주 언급하던 작가라 아는 척했는데, 그녀가 자기 일처럼 기뻐하니 웃음이 나왔다.
“그렇죠? 제가 진짜 언젠가는 해낼 줄 알았다니까요?”
김지우가 사라 조지아를 축하하는 도중에 큐레이터 특별상은 벨기에관을 맡은 이에게 돌아갔다.
“올해는 네 분의 작가님께 특별상을 드리게 되었죠.”
랄프 루퍼스가 잠시 뜸을 들였다.
“줄리아 커티스, 루이 할로웰, 토인 오두톨라, 니콜라 파티. 축하드립니다.”
“와우!”
수상 사실을 알게 된 작가들이 함께한 동료들과 기뻐하며 단상에 올랐다.
랄프 루퍼스는 특별언급상을 수상한 이들을 한 명, 한 명을 소개하며 상장과 감사패를 전했다.
그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 한편, 미술가들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35세 이하 작가에게 수여되는 최고상인 은사자상이 누구에게 돌아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사라 조지아의 수상으로 기뻐하던 김지우도 초조하게 발표를 기다렸다.
“어떨 것 같아요?”
이인호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김지우뿐만 아니라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앙리 마르소, 장미래, 고훈 등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젊은 화가들이 국가관에 참여하면서 은사자상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본 전시에 참여한 작가 중 프랜시스 베이컨, 하오 렌, 니콜라 파티 등이 가능성이 높았지만 누구도 특출하다고 말할 순 없었다.
랄프 루퍼스가 수상자를 확인했다.
“감히 사견을 첨부하자면 이보다 공정한 심사는 없었을 것이고 이보다 과감한 판단도 없었을 겁니다.”
모두가 의아해하는 가운데.
랄프 루퍼스가 영예의 은사자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장미래! 축하드립니다!”
모두가 경악한 가운데 장미래가 눈을 크게 뜬 채 굳어버렸다.
정면 대형 스크린이 비추는 자신의 <작약>을 바라볼 뿐이었다.
“작약은 아름다움을 탐하는 가장 원초적 본능을 표현한 작품으로, 장미래 작가는 아름다움의 상징이 된 꽃을 해체하고 재창조하여 새로운 미학을 추구하였습니다.”
랄프 루퍼스가 심사위원들의 평을 대독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내 랄프 루퍼스가 왜 사족을 달았는지 이해하고는 경의와 존경심을 담아 그녀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녀의 주변인들이 얼떨떨하여 넋을 놓고 있는 장미래를 흔들었다.
“선배!”
“미래야!”
“이모!”
“어? 어? 어?”
“축하해요! 진짜!”
불한당에 참여했던 작가들과 한국관에 참여했던 서인호까지 모두 당사자보다 더 기뻐했다.
랄프 루퍼스가 등 떠밀려 단상에 오른 장미래에게 은으로 만든 사자 트로피를 건네자, 사람들이 시상식장이 떠나갈 듯 크게 환호했다.
장미래가 어색하게 마이크 앞에 섰다.
“감사합니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본 전시(아르세날레)에 참가하지 않은 장미래에게 은사자상이 갈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어. 너무 놀라서 말이 잘 안 나오네요. 한 잔 마시고 올라올 걸 그랬어요. 테이블에 샴페인이 그대로 있거든요.”
모두가 경악할 만한 일이었기에 다들 장미래가 건넨 농담을 웃음으로 받아들였다.
장미래도 숨을 돌리고 가슴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냈다.
“상을 받는 건 참 기쁜 일이에요. 하지만 그러지 못했던 적이 더 많아서 이 자리가 마냥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녀가 부당한 심사에 항의하여 빨간 물감을 심사위원에게 뿌렸던 일화는 유명했다.
“저는 제게 가장 소중한 그림을 그렸고 그건 여기 계신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의 영광은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멋지게 채운 모든 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장미래가 소감을 마치자 경의를 담은 박수가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정말 멋진 소감이었습니다. 장미래 작가님을 다시 한번 축하합니다.”
랄프 루퍼스가 명단을 확인했다.
장미래의 수상 소감으로 훈훈해졌던 장내 분위기도 다시금 경직되었다.
장미래가 은사자상을 수상하면서 황금사자상의 대상이 아르세날레뿐만 아니라 자르디니도 포함된다는 의식이 깔렸다.
“다음은 평생공로상입니다.”
세계 최대 미술 전람회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상, 황금사자상 중 첫 번째였다.
“샤라 휴즈. 축하드립니다.”
영국의 설치 미술가 샤라 휴즈가 호명되었다.
“샤라 휴즈는 독창적인 통찰력으로 공간을 이해합니다. 창문과 미로는 삶의 대부분을 건물 안에서 보내는 현대인들에게 건물 안과 밖의 경계인 창문을 새롭게 인식시키죠.”
랄프 루퍼스가 대독하는 심사평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환호가 크게 이어졌다.
└이걸 샤라 휴즈가 받네.
└고수열이 받았으면 했는데 ㅠ
└고수열은 이미 황금사자상 받았었엌ㅋㅋㅋㅋ
└샤라 휴즈도 대단한 사람임. 데미안 카터한테 눌려서 조금 덜 주목받는 면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최근에야 제대로 인정받는 거지.
└ㅇㅇ 그동안 활동해 온 내력 보면 고수열이 넘사벽이라 그렇지 샤라 휴즈도 대단함. 40년째야.
└고수열은 국가관 받는 게 더 중요함. 그럼 황금사자상 2회 수상임.
└국가관 황금사자상은 불한당이 받지 않을까?
└ㅇㅈ. 비교가 안 됨.
“국가관은 불한당이 받겠죠?”
이인호가 물었다.
“당연하죠. 훈이랑 앙리 아니면 누가 받는데요. 다른 작품이 빠지는 것도 아니고. 고수열 선생님이랑 미래 교수님도 있다고요.”
김지우가 코로 숨을 내뿜고 말했다.
작품으로 보나 인기로 보나 황금사자상 국가관 부문은 한국‧프랑스 공동 전시관에 돌아가야 했다.
“모두 예상하신 결과일 것 같습니다.”
수상자를 확인한 랄프 루퍼스가 씩 하고 웃었다.
“프랑스‧한국 공동 전시관. 축하드립니다.”
“와아!”
마은찬이 만세를 하고 벌떡 일어났다.
점잖게 앉아 있는 사람, 마은찬과 함께 환호하는 사람, 다리를 꼰 채 콧방귀나 뀌는 앙리 마르소 등 각각 기쁨을 표현하는 방식은 달랐지만.
한국‧프랑스 공동 전시관에 참여한 작가 모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당연한데 뭔가 좋다.
└그러니까 ㅋㅋㅋㅋ
└솔직히 1~3명 참가하는 다른 곳하고 비교가 안 되짘ㅋㅋ 특히 이번엔 역대급이었는데.
└할아버지 손 잡고 올라가는 훈이 귀엽다 ㅠㅠ
└13살에 황금사자상 수상 ㄷㄷ
└개인 수상은 아니잖아ㅋㅋㅋㅋ
└훈이가 아쉬운 게 경쟁자가 너무 셌어. 35세 미만한테 주는 은사자상 후보가 훈이 말고도 앙리, 장미래, 프랜시스, 하오, 니콜라까지 있었음.
└앙리는 저번에 받았잖아.
└본 전시 참가자도 아닌 사람한테 줬는데 2회 수여도 할 수 있지.
└애초에 수상 자격이나 제한 범위 같은 거 없앤다고 했었음.
└훈이는 아쉽지만 다음 노려야지. 솔직히 아직 너무 어림.
└이것들이 돌았나. 황금사자상 받은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개인상 수상 못 했다고 하네.
└ㅋㅋㅋㅋㅋㅋㅋ훈이가 대표로 나섰넼ㅋㅋㅋㅋ
불한당 참가 작가들이 모두 고훈이 영광스러운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배려했다.
수상 소감을 말하게 된 고훈이 마이크를 직접 내렸다.
“감사합니다.”
모두가 흐뭇한 표정으로 천재 화가를 대했다.
“할아버지도 말씀하셨고. 저도 항상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오늘만큼은 아닌 것 같아요.”
고훈이 황금으로 만들어진 트로피를 들어 보이며 웃었다.
“저희 정말 멋졌어요.”
사람들이 크게 웃으며 환호했다.
참가자 173명 모두 한국‧프랑스 공동 전시관을 경험했고 고훈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되레 황금사자상이 다른 국가관에 넘어갔다면 부정을 의심할 정도로 확신하고 있었다.
고수열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장미래의 <작약>은 물론이거니와.
앙리 마르소의 <2년 8개월>과 고훈의 <149,597,870.696㎞>이 가져다준 감동까지.
사람들은 진심으로 불한당을 축하했다.
“준비하는 과정이 쉽진 않았어요. 작가가 워낙 많아서 미셸하고 태호 아저씨가 정말 많이 고생해 주셨고요.”
고훈이 예술 감독을 맡았던 미셸 플라티니와 방태호를 시작으로 최선을 다한 작가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언급했다.
“작업하면서 정말 즐거웠어요. 이런 기회가 저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께도 돌아갔으면 합니다. 공동 전시관도 그렇고. 전시관 자체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다들 행복하게 웃을 수 있길 바랍니다.”
고훈이 다시 한번 황금사자상을 들어 보였다.
“고훈 작가의 소감이었습니다. 오늘 이 시상식을 진행하면서 해야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고훈 작가가 마지막으로 과제를 주네요. 책임 지고 조직위원회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랄프 루퍼스의 약속에 고훈과 작가들이 또 한 번 환호했다.
“이어서 마지막입니다.”
랄프 루퍼스의 좌중이 조용해졌다.
“2030 베네치아 비엔날레. 마지막 황금사자상의 주인공은!”
잠깐의 간격을 두고.
랄프 루퍼스가 새 시대의 주인공을 호명했다.
“2년 8개월의 앙리 마르소!”
미셸이 입을 가렸고.
고훈이 고개를 휙 돌렸다.
“흥.”
영광의 황금사자상 수상 소식에서 다리를 꼬고 팔짱을 채 건방 떨던 앙리에게 고훈과 미셸 그리고 불한당 작가들이 달려들었다.
“이것들이! 저리 안 비켜?”
“앙리! 앙리!”
“앙리! 앙리!”
“비키라고!”
불한당 작가들이 기뻐하는 가운데 랄프 루퍼스가 또 한 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어……. 1억 4,900만. 일십백. 149,597,870.696㎞의 고훈! 축하드립니다!”
앙리 마르소를 들어 헹가래를 올리려던 사람들이 굳어버렸다.
좌중도 웅성거렸다.
전대미문의 공동 수상 소식에 고훈 본인도 크게 놀라고 있었다.
“두 분, 올라오셔서 수상 소감 부탁드립니다.”
랄프 루퍼스가 앙리 마르소와 고훈을 무대 위로 불렀고 앙리 마르소는 고훈에게 먼저 마이크를 넘겼다.
고훈이 눈을 깜빡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어……. 또 올라왔네요.”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 * *
1)본 소설에서 프랜시스 베이컨과 동명의 인물과 백남준을 모티프로 한 백동준을 언급하였지만, 위 명단에 가명을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하여 실명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