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319화 (274/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319화

55. 화룡점정(24)

└베네치아 비엔날레 가볼까?

└나쁘지 않지.

└근데 나 미술 같은 건 하나도 모르는데.

└그럼 재미없을 듯.

└ㄴㄴ 최근엔 직관적인 작품도 많이 나와. 훈이도 그렇고 고수열 화백이나 장미래도 감상하기 쉬운 편이고. 앙리는 말할 것도 없고 뱅크스도 있네.

└못 보던 아이딘데 뉴비임?

└ㅇㅇ 얼마 전에 구독해서 보다가 관심 생겨서.

└요즘 유입 많더라.

└프랑스 한국 공동 전시관 가면 되겠네. 가는 김에 다른 곳도 둘러보고.

└어차피 그랜드 아트 투어의 해니까 유럽 여행 갈 거면 돌아다니면서 봐도 괜찮을 듯. 훈이 팬이면 네 곳 모두 전시되니까.

└훈이한테 물어보자. 오늘 방송 한댔지?

└ㅇㅇ 이탈리아 가기 전에 짧게 한다고 공지했음.

고훈이 방송 중에 게시판을 살피다가 한 시청자의 사연을 읽었다.

모레 개막하는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비슷한 글이 많이 올라오고 있었다.

“저는 좀 조심스러워요.”

고훈이 채팅창을 보며 말했다.

“글 읽어 보니까 최근에 조금씩 관심이 생기신 것 같아요. 조금씩 좋아하는 작품 찾아보시다가 정말 더는 못 참겠다 싶을 때 오셨으면 해요.”

└훈아 영업해야짘ㅋㅋㅋㅋ

└오지 말라고 하면 어떡햌ㅋㅋ

└저녁에 제육덮밥 해줄까?

└한 작품에 1,700만 달러 받은 훈이의 여유.

고훈이 마은찬에게 메시지를 보내곤 말을 이어나갔다.

“저야 당장 한 분이라도 더 오면 당연히 좋죠. 정말 좋을 거예요. 그런데 사실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엄청 실험적인 행사예요.”

고훈이 어떻게 비유를 해야 좋을지 고민하다가 패션잡지 모델을 검색했다.

“보통 옷차림에 관심 생기면 이런 거 찾아보잖아요? 근데.”

이번에는 하이패션쇼 사진을 찾았다.

사람을 직사각형처럼 보이게 만들어진 옷, 거인이 입을 것처럼 큰 하얀 와이셔츠를 롱드레스처럼 입은 사진 등을 보여주자 사람들이 물음표를 반복해 올렸다.

“비엔날레는 이런 느낌이에요. 이런 옷은 입는 건 둘째치고 처음부터 거부감 들잖아요.”

└ㄹㅇㅋㅋ

└우리 훈이 볼만 찹살떡인 줄 알았는데 비유도 찰떡이네

└뭔 소리얔ㅋㅋㅋㅋㅋ

“그래서 굳이 큰 행사라고 찾는 것보단 주변에서 천천히 즐기시다가 너무너무 궁금해지면 찾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몇몇 시청자가 어떤 전시회가 좋은지 추천해 달라고 물었다.

“한국이면 배움 미술관이나 서울 미술관이 유명한 작품도 많고, 두루 볼 수 있어서 좋아 보여요. 동서양 가리지도 않고 아주 예전부터 인상주의, 입체주의, 동시대 미술까지 전부 다루니까요. 해외요? 어. 전 오르세 미술관이 좋았어요.”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상 받은 기분은 어떰?

└맞아 ㅋㅋ 인터뷰가 어떻게 다 영어 아니면 프랑스어임ㅋㅋㅋㅋ

“정말 좋았어요. 다른 것도 아니고 뮌스터에 사는 분들이 주신 거잖아요. 아르누보 공모전 때만큼 기뻤어요.”

고훈이 시청자들에게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가 얼마나 중요한 행사인지 설명했다.

“정말 중요한 일이거든요. 미술이 일상과 맞닿도록 한다는 건 대중하고 분리된 미술이 다시금 제자리를 찾아간단 뜻이에요.”

고훈이 영국 화가로 추정되는 뱅크스를 검색했다.

곧 ‘밖이 안보다 낫다(Better out than in)’이라는 프로젝트 영어 기사를 찾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었다.1)

└이게 뭐임?

└뱅크스?

└해석 좀

└오랜만에 들어왔더니 동시통역도 해주네. 설마 매니저가 훈이 말 실시간으로 영어로 번역해서 쳐주는 거임?

└ㅇㅇ 동시통역.

└훈이 글로벌 대기업됨

“뱅크스가 한 실험인데 허름한 차림의 남자한테 자기 그림을 수십 점 주고 팔게 했대요. 모두 서명까지 한 작품을 60달러예요.”

└???

└뱅크스 작품이 60달러라고?

└소품이라도 10만 달러는 할 텐데 그걸 60달러에?

└요새 왜 자꾸 앙리랑 싸워요? ㅠ

└난리 났겠는데;;;

└이런 건 꼭 내 주변에서 안 일어나더라.

└줄 서서 샀겠네.

고훈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겨우 8점 팔았대요. 그조차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낫지만 이상하죠?”

현재 가장 사랑받는 화가 중 한 사람의 작품을 고작 60달러에 판매했음에도 큰 관심을 얻지 못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다들 이해를 못 했어요. 갤러리에서 팔면 수백만 달러는 벌었을 텐데 왜 그렇게 팔았냐고요.”

└당연하지

└나 같아도 이해 못 하겠는뎈ㅋㅋ

└그나저나 그거 산 사람은 로또 당첨 아님?

“뱅크스는 돈을 받으면 상업성에 휩쓸릴 수밖에 없고 그렇게 활동하고 싶지 않대요. 자기는 외딴곳을 아름답게 꾸미고 싶다고. 멋지죠?”

시청자들이 긍정의 메시지를 전하던 와중 후원이 도착했다.

└[뱅크스 님이 10달러 후원하셨습니다]: 달리다 광장도 멋졌어.

└?

└요샌 짭 흉내도 돈 쓰면서 하네.

└ㄹㅇ인데?

└이 귀한 곳에 귀한 분이?

고훈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정말이에요?”

후원한 계정을 타고 접속하니 뱅크스가 운영하는 뉴튜브 채널로 이어졌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달리다 광장 찾아와 주셔서 고마웠어요. 인사도 제대로 못 했는데.”

시청자들이 이미 채팅창에서 뱅크스의 아이디가 사라졌다고 알려주었다.

고훈이 아쉬워하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무튼 하던 이야기 계속하면 이 일로 공간의 중요성이 한 번 더 강조되었어요. 똑같은 작품인데 갤러리에서는 수십, 수백만 달러에 팔리고 거리에서는 수십 달러에 팔리는 게 이상했던 거예요.”

└그냥 안목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닌가?

└그런 말 하면 훈이가 이놈 함.

└이놈 한댘ㅋㅋㅋㅋㅋ

└안목이 아니라 그냥 관심이 없는 거지.

└갤러리는 돈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잖아. 장소보단 안에 있는 사람에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

“이놈. 그런 말 하면 안 돼요.”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듯해 고훈이 장난을 섞어 한 시청자를 달랬다.

“장소보단 사람에 영향을 받았단 생각도 했어요. 중요한 건 미술가들이 더 이상 회화보다는 공간 개념의 미술을 하기 시작했단 거예요.”

한 시청자가 인테리어라고 물었다.

“비슷해요. 그렇게 지금 미술가들은 공간을 어떻게 채울지, 혹은 비울지 되게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그중에는 공공 미술도 포함되어 있고요.”

└이런 거 대체 어떻게 알아?

└할아버지한테 배움?

└이 방송이 좋은 게 강의 같아서 딴짓할 때 듣기 좋음.

└ㅋㅋㅋㅋㅋㅋㅋ나쁜 자식앜ㅋㅋ

└ㄹㅇ 강의 들을 때는 그림도 잘 그려지고 소설도 잘 써지는데 이상하게 강의 끝나면 재미없어짐.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준비할 때 앙리가 알려줬.”

고훈이 말을 하다가 멈추었다.

<변치 않는 가치>를 만드는 과정에서 현대 미술가들이 공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시민들과의 인식은 얼마나 벌어져 있는지, 그 시민들이 불편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었다.

└근데 요새 왜 앙리 방송 안 들어오지?

└그러게.

└진짜 싸운 거야?

└노는 거 아니었어?

고훈이 문득 정신을 차려 채팅창을 확인했다.

“아니에요. 오늘 방송 여기까지만 할게요. 봐주셔서 감사해요. 혹시 베네치아 들르시면 전시관 주변에 있으니까 아는 척해주세요. 저는 여러분들 얼굴 모르니까 꼭 먼저 인사해 주셔야 해요. 인사하기 싫으시면 티라도 내주세요. 혹시 몰라서 선물 준비했으니까 받아 가시고요.”

고훈이 아쉬워하는 시청자들과 인사하고 방송을 끄자 마은찬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매운 거 좋아해?”

“잘 못 먹어요. 직접 하시는 거예요?”

“응! 다른 건 못 해도 제육볶음은 잘하는 편이야. 양파 많이 넣어도 되지?”

고훈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앞둔 시점에서 미술 평론계에 변화가 찾아왔다.

미술사학자 캐롤라인 스트릭을 시작으로 이름 있는 평론가 다나카 히로부미까지 나서 고훈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학계에서도 쇼콜라티즘이 반복 거론되었다.

권위자 두 사람이 활용하고 나서니 언론에서만 활용하던 단어로 취급했던 다른 이들도 인용할 수밖에 없었고 쇼콜라티즘은 점차 진중하고 심도 있게 다뤄야 할 하나의 흐름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고훈의 주변인 중 그러한 변화를 가장 먼저 포착한 사람은 칼럼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김지우였다.

“별일이네.”

고훈과 앙리 마르소를 주제로 칼럼 연재를 준비하던 차에 한 평론가가 다나카 히로부미의 평론을 인용한 것을 발견했다.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았을 것이 뻔했기에 굳이 찾아보지 않았는데 막상 읽어보니 예상과 딴판이었다.

과거 냉전 시대보다 치열해진 나라 사이 대립.

플랫폼을 지배한 극소수의 대기업 아래 착취당하는 소규모 기업과 생산자.

갈수록 각박해지는 환경에서 혐오가 피어났고 개인의 삶을 삭막하기 짝이 없었다.

학창 시절 내내 경쟁에 내몰렸던 이들은 이제는 과도한 업무와 비인간적인 사회에 잔뜩 지쳐 있었다.

적은 소득으로는 연애, 결혼, 출산, 대인관계, 내 집을 포기해도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비교적 적은 돈으로 영위할 수 있는 식사, 영화, 게임, 소설, 음악, 미술 같은 문화만이 그들의 각박한 삶을 위로할 뿐이었다.

다나카 히로부미는 작은 행복을 나누는 고훈이야말로 이 시대가 원하는 화가라며 <변치 않는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줄곧 인간 내면의 정체성과 예술 본연의 담론을 다뤘던 그에게 어떤 계기가 있었던 듯했다.

부우웅- 부우웅-

전화기가 울렸다.

연재처인 보자르에서 온 전화였다.

“네, 편집자님.”

-원고는 잘 진행되고 있어요?

김지우의 담당 편집자 솔렌 리고가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항항. 그럼요. 아마 오늘 밤 새우면 될 거예요.”

-쉬면서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일정이 얼마 안 남았네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김지우가 앓는 소리를 냈다.

-네. 힘내세요. 저도 편집부도 이번 글 정말 기대하고 있어요.

“에이. 너무 띄워주신다.”

-정말이에요.

앙리 마르소는 말할 것도 없이 프랑스 최고의 스타였지만 언론인을 좋게 여기지 않아 깊이 있게 다룬 적이 많지 못했다.

한데 김지우가 끈질기게 따라붙어 인터뷰를 따냈고 고훈까지 다루니 보자르로서는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앙리 마르소 인터뷰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어떻게 된 거예요?

“글쎄요? 그냥 하던 대로 했는데.”

김지우가 앙리 마르소에게 했던 일을 떠올렸다.

평소대로 웃으며 귀찮아 할 정도로 따라붙었을 뿐인데 의외로 쉽게 인터뷰를 승낙했었다.

김지우가 고훈을 어떻게 소개했고, 데미안 카터 사건은 어찌 다뤘으며, 대한예술협회 일에 적극적으로 나선 걸 지켜본 앙리가 본인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그것도 능력이네요. 그럼 내일까지 부탁드려요. 오후에는 베네치아로 가시죠?

“네. 훈이랑 같이 가요. 출발하기 전에 꼭 보내드릴게요.”

통화를 마친 김지우가 코를 킁킁댔다. 제육볶음 냄새가 나는 듯했다.

* * *

1)뱅크시가 2013년 10월 한 달간 뉴욕에서 벌인 프로젝트 일부.

뱅크시는 센트럴파크의 한쪽 길에서 노인을 판매원으로 두고 하루 동안 그림을 판매했었다.

이날 뱅크시는 작품을 총 여덟 점 팔았고, 두 점은 반값에 주어 총 420달러를 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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