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311화 (266/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311화

55. 화룡점정(16)

[쇼콜라티에, 방향을 가리키다]

미술 애호가를 위한 축제 그랜드 아트 투어의 해가 돌아왔다.

지난 11일 카셀 도큐멘타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가 개막했으며 내일은 스위스에서 아트 바젤이 개최된다.

8월 1일에는 베네치아 비엔날레도 열려 독일과 스위스, 이탈리아에 걸친 미술 여행이 가능하다.

그러나 어느 누가 8월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

필자 또한 조바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독일 카셀을 찾았다.

100일간 진행되어 ‘100일 동안의 미술관’으로도 불리는 카셀 도큐멘타는 1955년, 나치에게 탄압당했던 현대 미술을 전파하고자 처음 시작되었다.

나치는 파블로 피카소로 대표되는 입체파와 앙리 마티스의 야수파 등을 퇴폐 예술로 간주하여 독일인에게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아르놀트 보데 교수는 나치로 인해 단절된 독일인과 미술 사이를 연결하고자 도큐멘타를 열었으며 첫 회는 당연 입체파와 야수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후 카셀 도큐멘타는 지속해서 새로운 미술을 독일에 소개했다.

팝아트, 미니멀리즘, 개념 미술 등을 소개하며 당대를 주름잡았던 미술품을 소개하였다.

라틴어 ‘docere(가르치다)’, ‘mens(지성)’의 합성어인 ‘documentum’에서 따온 행사다운 일이었다.

카셀 도큐멘타는 당시 미술계가 무엇을 예술로 인정하는지 대중에게 소개했고, 그들에게 예술이 무엇인지 강연하기도 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절망했던 미술가들은 스스로 예술이 무엇인지 찾아 헤맸고 카셀 도큐멘타는 그 선두에 있었다.

카셀 도큐멘타가 미술계의 담론을 모아 미술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을 부정하긴 힘들다.

“후.”

원고를 작성하던 김지우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5일간 카셀 도큐멘타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관람하며 느낀 복잡한 심경을 정리해야만 했다.

예상 밖으로 사람이 많이 찾아와 놀랐지만 두 행사가 자생하지 못함에 큰 충격을 받았었다.

김지우는 커피잔을 든 채 조직위원회에 요청하여 받아낸 도큐멘타와 조각 프로젝트의 결과 보고서를 읽었다.

2025년 카셀 도큐멘타는 1,780만 유로의 적자를 냈고, 2020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1,030만 유로의 적자를 냈었다.1)

한두 해의 일이 아니었다.

카셀시에서 5,000만 유로의 예산을 지원받고도 해마다 적자는 늘어나고 있었다.

“잘 안 풀려요?”

맞은편에 앉은 이인호 기자가 물었다.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얘기해 봐요. 대화하면서 정리되기도 하잖아요.”

김지우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왜 자립하지 못하나 싶어요.”

“미술이요?”

“네. 영화나 드라마, 게임 같은 문화는 매년 성장하잖아요.”

“대중문화라서 그런 거 아닐까요? 지향하는 방향이 다르니까.”

“클래식 음악은 크게 성장했잖아요.”

이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을 중심으로 클래식 음악계는 크게 확대되고 있었다.

“회의감이 들어요. 카셀 도큐멘타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도 미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을 교육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게 뭐랄까.”

김지우가 이인호와 눈을 마주치곤 멋쩍게 웃었다.

“괜찮아요.”

“……너무 특별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본인들을.”

“음.”

“말은 그럴듯하죠. 미술과 대중 사이를 좁히고 인문학 기반의 철학을 알리고. 근데 결국 예술가들도 사람이잖아요. 특별하지 않은.”

이인호는 김지우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묵묵히 들어만 주었다.

“아니. 정정할게요. 누구나 다 특별한데, 어느 한쪽이 대중을 계몽한다는 게 제 생각에는 엄청 구시대적 발상 같아요.”

“네.”

“예전에는 대중들의 교육 수준이 낮았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도리어 취미로 미술 접하는 분들이 예술가보다 더 많이 아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래요?”

“그럼요.”

김지우가 다시금 잔을 들었다.

“그런데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수백억 원의 예산을 받아서 적자까지 내며 그들을 가르친다는 게. 그게 대체 언제까지 유효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김지우가 이인호의 눈을 보았다.

“아항항. 이런 얘기 쓰면 혼날 텐데.”

“지우 씨 생각이잖아요.”

현재 미술계를 비판하는 글을 쓰면 견제받을 것이 뻔했다.

어쩌면 너무나 좋아하는 이 일을 더 이상 못 하게 될지도 몰랐다.

그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을 상대가 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위로가 되었다.

김지우가 수년 전 일을 떠올렸다.

“훈이 처음 만났을 때. 그림을 팔고 싶다고 했어요. 사고 싶을 정도면 자기랑 사려는 사람이 그림으로 이어진 거 아니냐며.”

“네.”

“왠지는 모르겠는데 그때 이 아이는 분명 뭔가 할 애다 싶었어요. 보통 어떤 철학을 담았는지, 무슨 생각을 담았는지 말하거든요.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걸 그렸는지 설명하고 싶으니까.”

“훈이는 아니었네요.”

“네. 보는 사람을 생각했어요. 돈 밝히는 애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전 훈이 말이 그렇게 들렸어요. 그림으로 소통하고 싶구나.”

“제가 보기에도 그랬어요.”

두 사람이 마주보고 작게 웃었다.

김지우가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작년 달리다 광장 일도 그렇고. 그전에 휘트니 비엔날레나 아르누보 공모전 때도 그렇고. 올해 도큐멘타랑 조각 프로젝트도 마찬가지고. 훈이 작품 주변에는 사람이 엄청 몰리잖아요.”

“그렇죠.”

“전 그게 훈이가 미술을 대하는 태도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러다 보니 돈도 따라붙고요.”

“맞아요.”

김지우가 웃었다.

“그래서. 이제는 예술이 무엇인지 가르칠 게 아니라, 교육해서 이해시키는 게 아니라. 예술가들도 먼저 다가서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봐요.”

“제가 알기로는 지금도 많이 노력하고 있던데.”

“네. 정말 많은 작가가 힘쓰고 있는데 정작 큰 행사나 평단은 안 그런 게 속상하더라고요.”

“그런 글 쓰면 혼날 것 같고?”

“맞아요.”

김지우가 또 한 번 웃었다.

“고마워요. 좀 낫네요.”

“별말씀을.”

“근데 기자님은 취재 안 다녀도 괜찮아요?”

“예?”

“파견 나오셨는데 계속 저랑 같이 다니잖아요.”

“어……. 그게.”

김지우가 눈을 깜빡였다.

“저도 생각 좀 정리하느라 그렇죠. 으하! 하핳핳하!”

이인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김지우가 카셀 도큐멘타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관람한다기에 무리하게 휴가를 나온 걸 사실대로 말할 순 없었다.

대한예술협회 기사를 낼 적에 집으로 오라는 말을 착각하여 한동안 어색해졌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프랑스 파리로 거처를 옮긴 후로는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어, 어떻게든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김지우가 씩 하고 웃었다.

“이번엔 그랜드 아트 투어로 일 많을 테니. 바쁜 거 끝나면 휴가 내서 파리로 놀러 와요.”

“예?”

“관광도 하고. 데이트도 하고.”

이인호가 눈을 크게 떴다.

“싫으면 말고요.”

“아, 아니. 그럴 리가요.”

“아항항. 너무 당황하신다. 애도 아니고 뭘 그렇게 놀라요.”

김지우가 노트북으로 시선을 옮겼고 연차를 다 써버린 이인호는 타는 듯한 속을 차가운 커피로 달랠 뿐이었다.

* * *

“안 간다니까.”

앙리가 스위스 아트 바젤에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믿을 수 없다.

“정말로요?”

“안 간다고.”

거짓말이 틀림없다.

예전에는 남 속이는 일에 서툴러서 미셸이 도박 중독이니 뭐니 헛소리를 했는데, 많이 컸다.

“거짓말 말아요. 방심하게 해놓고 갈 거잖아요. 저번처럼 가면 쓴다고 안 속아요.”

“하. 대체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오지?”

이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 아닌 것 같은데,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오냐니.

이 인간한테 들으니 기분 나쁘다.

“알겠어요.”

“다른 일 있으세요?”

마은찬이 테이블 아래서 얼굴을 불쑥 내밀곤 물었다.

앙리 마르소가 테이블에 턱을 걸친 마은찬을 빤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림이 마음에 든 건지, 살갑게 굴어서인지 마은찬에게는 딱히 날카롭게 굴지 않는다.

“세계 미술 포럼.”

“어? 형님이 거긴 왜요?”

“강연.”

“헤에!”

마은찬이 벌떡 일어났다.

“그게 뭔데요?”

“가프 몰라? GAF!”

글로벌 아트 포럼이라서 가프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고개를 젓자 마은찬이 옆 의자에 앉아 설명해 주었다.

“휘트니나 테이트 모던, 예르미타시, 내셔널 같은 어어엄청 큰 미술관 운영자하고 학자들이 모이는 행사야.”

“그 사람들이 모여서 뭐 하는데요?”

“미술계 중요 이야기.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같은 것도 말하고. 형님 진짜 너무 멋져요!”

“당연하지.”

앙리 마르소가 마은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나를 보는데 대체 뭘 바라는지 모르겠다.

“자.”

앙리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서 마은찬에게 주었다.

“초콜릿?”

“먹어.”

“……? 감사합니다.”

마은찬이 초콜릿을 쪼개서 내게 반을 주고 나머지는 입에 털어 넣었다.

보호자와 반려견 같은 느낌이나 굳이 방긋방긋 웃는 사람 기분을 나쁘게 할 필요는 없으리라.

“무슨 주제로 이야기할 거예요?”

대단한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한다니 어떤 이야기를 꺼낼지 궁금하다.

“궁금해?”

“네.”

“그럼 팔아.”

“뭘요.”

“정열.”

영화 <뤼팽: 칼리오스트로 백작>을 작업하면서 그린 콘셉트 아트다.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다니 정말이지 끈질기다.

“싫어요.”

또 싸울 것 같아서 고개를 돌리니 마은찬이 대신 나섰다.

“저도 궁금해요. 제 거 드릴 테니 알려주세요. 네?”

“네 그림에 관심 없어.”

성질머리하곤.

좋게 할 수도 있는 말을 꼭 사람 상처받게 뱉는다.

“어떻게.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으세요? 아무리.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하잖아요.”

놀라서 고개를 돌리자 마은찬이 당장에라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울먹였다.

앙리도 다소 당황한 것 같다.

“울지 마.”

“형님하고 비교할 순 없지만. 저도 열심히 하는데. 어떻게…….”

“울지 말라고!”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면 안 된다고. 자기만은 자기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형님이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세요? 저는. 저는.”

“빌어먹을.”

앙리가 망설이더니 대단히 어색하게 손을 들었다. 멈칫멈칫하면서도 결국에는 마은찬의 어깨를 다독인다.

이건 좀 신기한 장면이다.

“새 역사를 쓸 때라고 말할 거야.”

“어. 어떤 역사요?”

“빌어 처먹을 것들 버리고 진지해지라고.”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저 머리 나쁜 편이라서요.”

“…….”

어쩌면 앙리가 셰리, 미셸, 니콜라스 푸생 교장에 이어 임자를 만난 걸지도 모르겠다.

* * *

1)2017년 카셀 도큐멘타는 카셀시로부터 3,700만 유로의 예산을 받고도 아테네 개최 등의 이유로 1,200만 유로의 적자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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