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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반 고흐-310화 (265/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310화

55. 화룡점정(15)

앙리와 싸우느라 시간이 늦어지고 말았다.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뮌스터에서 사는 마은찬을 불러 저녁을 함께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보니 또 며칠 제대로 못 먹었던 모양이다.

대충 배를 채우고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던 중 신기한 이야기를 들었다.

인구 30만 명이 채 안 되는 뮌스터시에 학생만 6만 명이란다.1)

대충 길에 있는 사람 다섯 명을 모으면 그중 한 명이 학생이란 말이다.

“어떻게 그렇게 많아요?”

“여기가 약간 잘사는 동네거든. 잘사는 동네인데 월세랑 물가는 다른 곳보다 싸고.”

치안이 좋고 물가가 저렴하다는 말이다.

“그럼 그냥 살기 좋은 곳 아니에요?”

“응. 엄청 좋아.”

마은찬이 좋아한다.

왜 좋아하는지는 모르겠다.

“교육 환경이 좋으니까.”

방태호가 나섰다.

“일단 학교가 많거든. 아마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도 여기 있을걸?”

“아.”

“학교가 많으니 학생도 많을 테고 그러다 보니 좋은 환경이 형성되지 않을까 싶은데. 아무래도 학생 상대로 장사하면 단가가 싸게 형성될 수밖에 없으니까.”

방태호 말도 일리가 있다.

“맞아요. 사실 살기 전에는 이렇게까지 좋은지 몰랐거든요. 아르바이트 자리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운이 좋은 편이죠.”

“껄껄. 내가 알기로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된 적도 있는데. 실제로도 그런가 봐요.”

할아버지가 호응해 주셨다.

“네. 정말로요. 집주인 아저씨 말로는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덕도 많이 보고 있대요.”

“하긴. 외부인이 그만큼 들어오면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될 테니.”

“그래서 다들 5년에 한 번씩 하길 바라는데, 레온 쾨니히는 절대 반대한대요.”

“왜요?”

궁금하다.

사실 10년에 한 번 개최되는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간격이 너무 긴 감이 없지 않다.

예술인 입장에서는 규모가 큰 행사가 자주 열리는 게 좋고, 뮌스터시나 시민들도 경제 효과가 큰 행사가 자주 열리길 바랄 텐데 예술 감독이 반대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글쎄?”

마은찬이 고개를 갸웃했다.

“형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마은찬이 방긋방긋 웃으며 앙리에게 물었다.

잔에 든 와인을 음미하던 그가 입을 축이더니 인상을 썼다.

와인이 입에 안 맞는 모양이다.

“시간을 주는 거야.”

“시간이요?”

“아르센, 이 쓰레기 치워.”

앙리가 대답은 하지 않고 와인을 문제 삼았다.

프랑스인들은 대체로 자국에서 만든 상품 말고는 취급하지 않을 정도로 와인에 대한 자부심이 큰 모양이다.

앙리도 마찬가지인지 보르도나 론, 샹파뉴 같은 곳에서 만든 와인을 찾는다.

아르센이 직원을 호출해 와인을 새로 주문하자, 멀뚱멀뚱 있는 마은찬을 위해 방태호가 대신 나섰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가 대중하고 현대 미술 사이를 좁히려는 취지로 시작된 건 알고 계시죠?”

“네.”

“그 연장선입니다. 사실 이번 행사에서도 논란이 된 작품은 많습니다. Noi Siamo를 예로 들어보죠.”

“아! 아무것도 없는 조각상 말씀이시죠?”

“네. 앞서나간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독특하다고 해야 할지. 표현하기 어렵죠.”

“맞아요. 저도 미술하지만…….”

마은찬이 말끝을 흐렸다.

그것이 예술일지는 몰라도 ‘조각상’으로 부를 순 없다고 생각하는 나와 비슷한 입장이지 않을까 싶다.

“이해합니다. 저도 실은 잘 모르겠습니다. 뮌스터 시민들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마은찬이 고개를 끄덕인다.

“레온 쾨니히 감독은 그런 작품이 받아들여지려면 시간이 충분히 주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기간이 10년이라는 말씀이시죠?”

“네. 5년이나 3년으로 줄이자는 말도 간간이 나오지만 어떻게 해서든 10년을 고수하려고 하더군요.”

“껄껄. 법정에 가더라도 지킨다고 하더군.”

할아버지가 방태호의 설명을 거들었다.

“그럼 왜 굳이 10년이에요?”

마은찬이 한 번 더 묻자 새 와인을 받아든 앙리가 입을 뗐다.

“10살 때 보는 눈과 20살 때 보는 눈, 30살에 보는 눈이 다를 수밖에.”

“음. 그런 이유라면 굳이 10년일 필요는 없지 않아요?”

“충분한 시간이라는 상징적 의미야. 아무리 맞지 않아도 10년을 함께하면 적어도 거리감은 느껴지지 않을 테니.”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가 열리면 도시 전체가 전시회장이 된다.

대중은 도시 곳곳에 전시된 현대 미술품과 어울려 살아가게 된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있던 미술품이 일상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앙리의 말대로 10년을 함께 어우러진다면 서로 이해할 순 없어도 거리감은 옅어질 터.

인간관계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런 쪽으로는 잘 알고 있다.

“빌어먹을.”

와인이 또 입에 안 맞는 모양.

남은 마시고 싶은 걸 애써 참고 있는데 팔자 한번 좋다.

“아르센.”

“몸에 좋지도 않은 걸 뭐 하러 자꾸 마셔요.”

또 다른 와인을 주문하려고 해서 말렸다.

“자, 이거 마셔요.”

와인 대용으로 마시던 포도 주스를 주자 콧방귀를 뀐다.

“너나 마셔.”

“맛있어요.”

“흥. 이런 애들 장난 같은 주스로.”

“맛만 봐요. 그러고 다른 거 시켜도 되잖아요.”

벌써 몇 번이나 실패했으니 고민되는 모양이다.

와인 잔과 머그컵을 번갈아 보더니 못 이기는 척 포도 주스를 입에 댔다.

“…….”

“괜찮죠?”

“……아르센.”

“네.”

“이걸로 가져와.”

“알겠습니다.”

마은찬이 앙리를 빤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형님은 의외로 애기 입맛이네요.”

* * *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감독한 레온 쾨니히가 이름 있는 평론가와 유명 도슨트를 초청했다.

시민과 현대 미술이 가까워질 수 있도록 작품마다 해설가를 배치해 왔는데, 이번에는 평론집도 출간할 계획이었다.

개막식을 맞이해 프로젝트에 도움을 준 이들에게 인사하고자 작은 파티를 연 것이었다.

“이렇게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만큼은 마음껏 즐겨 주시길 바랍니다.”

레온 쾨니히가 잔을 들어 인사했다.

함께 건배를 외치고 돌아서자 영국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평론가 게리 해리스가 다가와 인사했다.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멋진 작품이 많더군요.”

“모두 작가님들 덕이지요.”

게리 해리스가 같은 생각이라는 뜻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

“말씀하시죠.”

“이번에 시민상이라는 게 주어진다지요? 좀 의아해서 감독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하하. 상이라는 게 급을 나누는 것 같아 지양했었죠.”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네. 그래서 굳이 만들지 않으려고 했는데. 시민들이 뮌스터에 도움을 준 작가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고 해서요.”

“아.”

“그것까지 막을 수 있겠나 싶어서 하나 만들었습니다. 상금이 걸린 것도 아니고 감사패 정도 전하는 거라 그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이유라면 납득이 되는군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인사하는 거라면 프로젝트 취지에도 부합하고요.”

“하하. 그렇죠. 덕분에 보람을 느낍니다.”

레온 쾨니히와 게리 해리스가 서로 잔을 들어 올렸다.

“실은 이번 행사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잘 좀 부탁드립니다.”

“이미 수만 명이 관람한 작품도 있지 않습니까. 잘 될 겁니다.”

게리 해리스가 앙리 마르소와 고훈의 <변치 않는 가치>를 언급했다.

개막 첫날부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뮌스터 시민과 관광객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었다.

레온 쾨니히가 좋은 듯, 불편한 듯 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 살바토레 오라우가 마음에 걸리십니까?”

게리 해리스가 이탈리아 출신의 예술가를 언급했다.

<변치 않는 가치>와는 다른 의미로 화제가 된 아무것도 없는 조각상 를 출품한 사람이었다.

“아니라고 하면 거짓이죠.”

레온 쾨니히가 미소 지었다.

“마지막까지 고민했습니다. 과연 그 작품을 전시하는 게 맞는지, 아닌지 저는 모르겠더군요.”

게리 해리스가 이해한다는 의미로 눈을 마주하며 샴페인을 마셨다.

평론가로 오래 활동하며 수많은 현대 미술품을 경험하고 다뤘던 그조차 는 판단하기 힘들었다.

개인의 자유로 봐야 할지.

아니면 대다수 사람의 생각대로 사기꾼으로 봐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지나칩니다.”

뜻하지 않은 목소리에 두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다나카 씨.”

일본의 평론가 다나카 히로부미가 다가와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

“확고하시군요.”

게리 해리스가 말을 붙였다.

평론가라면 발언을 조심해야 할 텐데 지나치다는 평을 망설이지 않고 내뱉으니 흥미로웠다.

“그럴 수밖에요. 살바토레 오라우는 공상가지 예술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는 대기와 빛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만약 그게 예술이 아니라면 기성품에 이름을 붙이는 것 또한 비예술로 봐야지 않겠습니까?”

게리 해리스는 보이지 않는 조각상 <우리는>을 부정할 수 없었다.

만일 <우리는>을 예술품으로 보지 않는다면 기존에 있는 사물에 새로운 이름과 의미를 부여하는 레디메이드 또한 부정하게 되었다.

“물론이죠.”

다나카 히로부미가 한 번 더 확답했다.

“예술은 다시금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다나카 히로부미를 대책 없는 사람으로 여겼던 게리 해리스의 눈빛이 달라졌다.

“레디메이드가 예술로 받아들여진 시대도 있었습니다만 이미 한 세기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살바토레 오라우는 뒤샹의 거울에 지나지 않죠.”

어느새 그들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자축 파티를 즐기던 이들 모두 미술에 평생을 몸담은 만큼 게리 해리스와 다나카 히로부미의 담론에 관심을 가졌다.

“오늘 변치 않는 가치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다나카 히로부미가 앙리 마르소와 고훈의 작품을 언급했다.

“소방서에서 일어났던 일을 표현했을 뿐인데 시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더군요. 반면 살바토레 오라우 앞에는 우리 같은 평론가와 기자밖에 없었습니다.”

“다나카 씨. 예술은.”

“예술은!”

게리 해리스가 끼어들려고 했으니 다나카가 힘주어 발언을 이어나갔다.

“없습니다. 단지 예술가만이 존재하지요.”

너무나 유명한 말이었다.

예술은 허상이다.

예술을 정의한다면 그 정의에 벗어난 것은 예술이 될 수 없었다.

살았던 사람의 수만큼, 앞으로 태어날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작품을 모두 품을 수 있는 정의란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밀레가 있었고, 반 고흐가 있었고, 달리, 마티스, 피카소, 뒤샹이 있었을 뿐.

예술이 무엇이라고 정의할 순 없었다.

예술품을 만든 사람과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만이 예술의 영역을 조금씩 확장할 뿐이었다.

“과거 거장의 행위를 변주했을 뿐인 망상은 예술이 아닙니다. 사기죠. 반면 앙리 마르소와 고훈의 작품을 보십쇼. 추상이 아니라도 누구보다도 감정을 잘 공유하지 않습니까.”

<변치 않는 가치>는 교류하는 작품이었다.

방문객은 각자의 경험에 따라 <변치 않는 가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그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끄집어냈다.

예술에 관심이 없던.

예술을 모르던 이들이 즐기는 예술품이었다.

“이 시대가 어떤 예술가를 받아들이는지 아주 극명히 드러난 것이죠.”

다나카 히로부미가 말을 마치자 곁에서 듣고 있던 레온 쾨니히가 슬며시 웃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어떤 글을 쓰실지 기대되는군요. 공공미술에 대한 교육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겠군요.”

“……실례했습니다.”

다나카 히로부미가 자리를 옮기자 그와 함께 온 곤도 마스다가 다급히 그를 따랐다.

“선생님! 선생님!”

“…….”

“어쩌자고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고훈이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들리잖습니까.”

“자네는.”

“예?”

“자네는 정말 변치 않는 가치를 보고 아무 생각이 안 들었나?”

곤도 마스다는 눈만 깜빡거렸다.

“사람들이 먼저 다가가서 즐기고 있었어. 미술에 관심도 없던 노인, 아저씨, 어린애들이 말이야.”

“그렇긴 했죠. 하지만 그건 그냥 자기들하고 관련된 거니까.”

“아니!”

다나카 히로부미의 목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아니야.”

그 어떤 노력을 해도 안 되는 일이었다.

미술계는 작품을 투자 상품으로 포장하여 거래액이 증가시킴으로써 미술계가 발전했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갈라파고스화된 미술계는 매년 인구가 줄고 있었다.

그런데 대중이 먼저 접근하는 광경을 처음으로 목격한 것이었다.

<변치 않는 가치>와 <우리는>을 대하는 대중의 대조적인 모습은 다나카 히로부미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교육이라니. 무지한 시민을 가르친다니. 그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가.”

“선생님.”

“친해지게 한다고? 멀뚱멀뚱 가만히 있으면 그게 되는가? 거슬리지만 않으면 다행이지!”

“선생님, 대체 왜 이러십니까?”

“부끄러워서 그러네. 부끄러워서.”

내로라하는 평론가들이 모인 장소에서 여전히 교육을 목적으로 한다는 말이 나오고.

과거를 답습할 뿐인 허상을 비예술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자신 또한 그랬던 것이 부끄러웠다.

* * *

1)2017년 기준 인구 30만, 학생 약 55,5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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