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296화 (251/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296화

55. 화룡점정(1)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궁금했는데. 엿들어서 미안하다.”

“아니에요.”

고수열이 백설기와 마주 보고 앉았다.

“고생 많았어. 얼마나 무서웠니.”

따뜻한 말 한마디가 백설기를 다시금 울컥하게 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걸어야 하는데 칠흑처럼 어두운 그곳으로 차마 발을 떼지 못했다.

그 절망과 고독 속에서 홀로 삭여내던 설움이 북받쳤다.

고수열과 장미래는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들썩이는 백설기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많이 힘들겠지. 네 나름대로 고민도 많이 했을 테고. 하지만 설기야. 네가 비엔날레를 그만둘 이유는 하나도 없단다.”

“하지만.”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네가 말했잖니. 포기할 수 없다고.”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비엔날레에 참여하고 싶었다.

7살 유치원에서 그려 온 가족 그림에 부모님이 기뻐하셨을 때부터.

12살 미술 선생님이 관찰력이 뛰어나다며 미술대회에 나가보지 않겠냐고 권했을 적에도.

15살 전국학생미술대제전에서 1등 한 순간에도.

19살 한국대학교 미술대학에 합격했을 때도.

22살 전국대학예술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고, 작품을 처음 판매하면서도.

24살 현실과 타협해 시클라멘에 입사하여 갖은 수모를 겪으면서도 5년간 단 한시도 잊지 않았다.

언젠가는 멋진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아주 근사한 전시장에 걸어두어 사람들 앞에 자랑하고 싶었다.

시기와 질투도 받고.

때로는 한계를 느끼기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좌절하기도 했지만 붓을 놓은 적은 없었다.

지금, 이 순간도.

“하지만……. 다른 방법이.”

“나도 그리 생각할 때가 있었다.”

백설기가 고개를 들었다.

“어느 순간 내 그림이 전시되지 않더구나. 다들 꽁꽁 싸매고 값이 오르길 기다렸지.”

유명한 일화였다.

고수열의 그림은 미술 투기꾼들 사이에서 크게 주목받았었다.

그것이 과열되어 어느 순간 작품들이 시장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다작하는 화가도 아닌데다 고수열의 작품을 찾는 사람들은 자꾸만 늘어나니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래서 활동을 그만두었단다.”

“…….”

“그런데 지나고 나니 그게 답은 아니더구나.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 상황을 그렇게 몰았던 이들이 원망스럽기도 했고.”

고수열이 숨을 내쉬곤 고개를 저었다.

“나처럼 후회하지 않았으면 한다. 설령 욕을 먹더라도 차라리 그게 나아.”

“선생님…….”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후회하지 않았으면 한다. 본인을 원망하게 되거든.”

자책과 원망은 삶을 병들게 했다.

“이번 일은 내게 맡기거라.”

“네?”

“걱정 말고 비엔날레만 생각해. 아무도 널 건들지 못할 거다. 규서든. 최영수든.”

* * *

손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환경.

쇼콜라티에라는 이름처럼 달콤하고 즐겁게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것.

고수열에게 다른 바람은 없었다.

그러나 미술계는 국내외를 가릴 것 없이 병폐해 있었다.

언젠가부터 작품은 투기 대상이 되었고, 관람객은 매해 줄어들며 단체와 일부 예술인은 힘과 인맥을 앞세워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해 두었다.

인상파, 분리파로부터 시작된 예술인들의 혼은 어디로 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낙담하던 차 세 가지 사건이 고수열에게 더는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앵테르미탕 개혁에 불만을 가진 제롬 케르비엘이 마르소 갤러리에서 총기 테러를 벌인 일과.

영국 소더비, 사치 갤러리, 데미안 카터, 제이 조플링의 유착 관계.

그리고 2030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운영에 관련한 비리였다.

아직은 괜찮다고 생각했건만.

부패한 이들은 알게 모르게 손자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

고수열은 오랫동안 고심해 왔던 일을 개시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거 오랜만일세. 해송.

전화기 너머로 대한예술협회장 최영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피차 반가울 리 없으니 인사는 생략하세.”

고수열의 태도에 최영수가 나지막이 웃었다.

-그래. 무슨 일로 전화를 다 하셨나?

“모른 척하지 말게. 이제 서로 물러설 곳이 없지 않나.”

고수열의 말에 최영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최영수는 이번 일에 잘못되었다간 협회 존속에도 문제가 생기리라 판단했다.

때문에 표면적으로 대한예술협회는 이번 일에 대응하지 않고 있었다.

한발 물러나서 신중히 기회를 보고 있거늘, 고수열이 당장에라도 맞붙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니 의아했다.

“이번 주까지 시간을 주겠네. 한국관 운영에서 손을 떼.”

가만히 듣고 있던 최영수가 또 한 번 웃었다.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구만.

“…….”

-자네는 젊었을 적부터 감정적이었지. 타협이라고는 없었어.

최영수가 과거를 회상했다.

미술계의 병폐에 질린 고수열은 미술 시장을 떠나 대학에 머물렀다.

-자네가 학교에서 편히 지낼 때 우리 작가들을 누가 지켰다고 생각하나.

“자네라고 말하고 싶은가?”

-물론. 자네가 버리고 떠난 협회와 후배들을 거둔 사람이 달리 또 누구겠나.

“말 잘 듣는 사람만 챙겼겠지.”

-나도 사람인 이상 당연한 일이야. 작품 잘 팔고, 고분고분한 친구들 위주로 기회를 주는 게 잘못되었나?

“잘못되었지.”

-이상하군. 그리 생각했다면 왜 찾아오질 않았나. 시간이 없다고 하기에 20년은 너무 길지 않나.

“자넬 믿었던 탓이지. 미련하게도.”

고수열이 으르렁거렸다.

“긴말할 것 없네. 이번 주 안으로 한국관 운영에서 손 떼. 설기 압박하는 짓도 그만하고.”

-……압박?

“시치미 떼지 마! 딸뻘 된 아이를 괴롭히고 부끄럽지도 않나!”

고수열이 전화를 끊었다.

최영수는 통화가 끊긴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협회장인 본인 모르게 백설기를 압박할 만한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

‘규서 이 녀석이.’

지금처럼 여론이 극도로 치달았을 때는 어떤 방식으로도 방향을 돌릴 수 없었다.

적당히 숙이고 때를 기다려야 하거늘 분수를 모르고 날뛰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최영수가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파리로 돌아온 고수열은 대한예술협회의 만행을 끊어내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협회가 존속하기 위해선 사람이 필요했고.

고수열은 국내 예술가 및 미술관 등과 연합해 대한예술협회 보이콧운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배움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국내 미술관, 갤러리 관련 종사자와 두루 교류했던 방태호가 큰 역할을 맡았다.

“어찌 되어가나.”

“아무래도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흠.”

“협회에 불만을 가진 건 확실하니 기폭제가 될 만한 일이 생기면 분명 따를 겁니다.”

“합.”

“확실히 처리해야 하네. 모두 함께 움직여야 효과가 있어.”

“네. 이번에 고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장 교수님 쪽은 어떤가요?”

방태호가 장미래에게 물었다.

“학생들도 불만이 많더라고요. 제일 적극적으로 움직여 줄 것 같아요.”

고수열과 방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은 큰 힘이 되지 않겠지만, 학생들이 나서준다면 협회로서도 큰 압박을 느낄 터였다.

신규 회원을 유치하지 못하는 데다 학생들이 움직이는 건 학부모 여론도 등에 업는다는 뜻이었다.

정치권에서도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서인호 선생님은 뭐라고 하세요?”

장미래가 고수열에게 물었다.

고수열의 한 해 선배인 서인호는 전부터 한국 예술인 조합을 세워 협회로부터 떨어져 나온 예술가를 보호하고 있었다.

“다음 주에 만나기로 했다. 얼마든지 환영한다더구나.”

협회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보다 큰 조직이 필요했다.

예술인 복지, 권익 보장 등 협회가 맡아온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라도 조합이 그 역할을 맡아줘야 했다.

“그럼 가입식은 그때 정하십니까?”

방태호가 물었다.

“아니. 간 김에 바로 하기로 했네.”

“합.”

“맛있어?”

“맛있어요.”

“선생님이 움직이시면 다른 작가들도 느끼는 바가 있겠죠. 분명 따를 거예요.”

가장 바람직한 상황은 협회의 만행에 지친 예술가들이 고수열을 따라 조합으로 이적하는 일이었다.

사람이 없는 조직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었다.

“그랬으면 좋겠구나.”

“분명 그리될 겁니다. 협회에 붙어 있더라도 실질적으로 혜택을 본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베네치아 비엔날레 조직위에서도 움직여 줬으니 협회원들도 불안할 겁니다. 작가님 덕이죠.”

고수열, 방태호, 장미래가 고개를 돌렸다.

고훈과 과자를 나눠 먹던 김지우가 시선을 느끼곤 멋쩍게 웃었다.

“아항항. 제가 뭐 했나요.”

“아니에요. 국내 여론이 이렇게 바뀐 것도 작가님 덕분이에요.”

“랄프도 그리 말하더군요. 아침에 김 작가님 글 보고 조직위로 달려갔다고. 고마워요.”

베네치아 비엔날레 조직위원회는 총감독 랄프 루퍼스의 설득으로 국가관 운영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지 감사단을 파견하기로 했다.

관련 사항이 결정되고 조직위원회는 감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베네치아 비엔날레 개막이 다소 늦춰질 수 있다고 성명했다.

개막식 연기라는 초유의 사태는 모두 조직위원회가 국가관 운영 비리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덕분이었다.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장미래와 고수열, 방태호가 차례로 고마움을 표하자 김지우가 쑥스러워했다.

과자를 다 먹은 고훈이 입을 열었다.

“문제는 회원들이 협회를 탈퇴하느냐는 일이네요?”

“그치.”

방태호가 고훈의 지적에 동의했다.

“사실 작가들이 움직여 주면 미술관이나 갤러리, 공모전은 계산할 게 없거든. 협회는 없어도 되지만 작가들이 없으면 전시 자체를 못 하니까.”

고수열과 장미래, 김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다들 알고 있어. 단지 무서운 거야. 그간 나섰다가 눈 밖에 나서 잊힌 사람이 많으니까.”

“사실 지금은 조합원이 되어서 득이 되는 것도 없고. 협회가 완전히 무너진 뒤에는 또 몰라도.”

“알 것 같아요.”

고훈도 그들의 심정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주류에서 벗어난 삶이 얼마나 각박한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할아버지.”

“응?”

“조합원들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어요.”

“무슨 말이냐?”

“한 달에 한 명씩 정해서 제 갤러리에서 개인전 열어줄래요.”

“어?”

고수열, 장미래, 방태호, 김지우가 함께 놀랐다.

“다 해줄 순 없지만 중복 없이 하면 언젠가 기회가 갈 거예요. 파리에서 개인전을 열 수 있다면 괜찮은 조건이잖아요? 협회에 남아서 회비만 내고 아무것도 못 하는 것보단 훨씬.”

“아니. 그렇긴 하지만.”

방태호가 나섰다.

“거긴 널 위한 공간이잖아. 네가 그 돈 모으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쇼콜라티에를 위한 공간이에요.”

고훈이 싱긋 웃었다.

“행복하게 예술 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었어요. 일 년 내내 하는 것도 아니고 또 전시실도 남으니까 하나 정도는 괜찮아요.”

“아니다, 훈아. 네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그래. 다들 열심히 하니까 너까지 그러지 않아도 돼.”

고수열과 김지우가 만류했다.

“그래야 해요.”

고훈이 고개를 저었다.

“할아버지랑 이모, 아저씨. 앙리도. 항상 미래를 위해 개선해 나간다고 하시는데 저도 당사자예요.”

장미래가 고훈을 빤히 보다가 씩 웃었다.

“서운했구나?”

“서운하죠.”

고수열, 장미래, 방태호, 앙리 마르소와 다른 이 모두 미술계의 병폐와 맞서 싸우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고훈은 항상 보호해야만 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저도 지금 활동하는 화가예요.”

“훈아.”

“다들 힘들게 싸우는데 모른 척하고 편하게 지낼 생각 없어요. 그렇게 그린 그림은 아무리 멋져도 의미가 없어요.”

테이블에 둘러앉은 이들이 생각을 달리했다.

미래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저 어린아이라고만 생각했던 고훈은 본인이 말한 대로 현재 활동 중인 예술인이었다.

최근 3년간 누구보다도 왕성히 담론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달리다 광장과 뷰그레넬리 쇼핑몰,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차별을 지양하고 화합과 행복을 이야기한 동시대의 화가였다.

고수열은 당당히 한 시대를 그려나가는 손자가 자랑스러웠다.

장미래, 방태호, 김지우 또한 마찬가지였다.

“멋있는데?”

장미래가 고훈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가 손을 펴 보였다.

고훈이 웃으며 손바닥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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