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294화
54. 용기(4)
“들어가자.”
“잠깐 있다가 들어갈게요. 풍경이 좋아서요.”
“그래. 어디 가면 안 된다?”
장미래를 먼저 들여보내고 한국관 주변을 눈에 담았다.
입지도 좋지 못하고 으리으리한 건물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정답게 느껴진다.
모르긴 해도 장미래처럼 한국인이라서 마음이 가는 건 아니리라.
한국을 내 나라라고 인지하고 친밀감도 느끼지만, 애국심 같은 고귀한 마음은 아니다.
먼젓번 삶에서도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를 오가며 살았고.
다시 태어난 후로는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를 따라 한국,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살았다.
사는 곳을 옮겨 다녔던 탓인지 국가라는 개념에서 소속감을 느끼진 않는다.
이 아담한 건물에 마음이 가는 이유는 단 하나.
화가들이 땀 흘려 만들고 지켜낸 공간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아를의 노란 집을 지키고자 얼마나 애썼던가.
“흐음.”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황금이 녹아내린 듯한 밀밭과 푸른 하늘, 해바라기와 함께 보냈던 평화로운 시절이 떠오른다.
요란한 파리를 떠나서 도착한 아를은 희망의 마을이었다.
세속적인 삶을 벗어나 자연과 어울리며, 작고 귀여운 노란 집에서 화가 공동체를 꾸려나가고자 했다.
비록 끝이 좋지 못했으나 적어도 아를에 도착했을 무렵 나는 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고 생각했었다.
아마 백동준 화백에게도 이곳 한국관은 그런 의미였으리라.
“할아버지.”
건물 안으로 들어서서 할아버지를 찾았다.
“음?”
“여기에 그림 놓으려면 허가받아야 해요?”
“그럼. 일단은 협회에서 운영하니까.”
“아니요. 건물 안 말고 밖에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기울였다.
“무슨 말이냐?”
“찾아오기 힘들 거 같아서요. 이정표 같은 걸 두고 싶어요. 그림으로.”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찾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한국관을 잘 찾길 바란다고 전하자 할아버지가 껄껄 웃으셨다.
“글쎄. 어디 한번 알아보마.”
* * *
불한당 오리엔테이션 이틀 차.
시공 중인 전시관을 둘러본 백설기는 초조한 마음으로 뉴스를 살폈다.
대한예술협회의 비리가 연일 터지는 와중에 최규서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온 탓이었다.
무서워서 받진 않았고 이후로 따로 연락이 오진 않았지만 불안했다.
보도된 내용 중에는 내부 관계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일도 있었고, 최영수와 최규서가 가장 먼저 의심할 사람은 본인이었다.
하루하루 피가 마를 지경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소홀히 할 수 없었기에 백설기가 받는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신경 쓰면 안 돼.’
이미 일어난 일을 돌이킬 순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어떻게 잡은 기횐데.’
최규서에게 등을 돌린 지금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 직장을 얻으려 해도 국내 미술계를 장악하다시피 한 최영수, 최규서 부녀가 어떤 압력을 넣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 경우를 숱하게 봐 왔었다.
‘알고 있었잖아.’
백설기가 다시 한번 마음을 굳게 먹고 연필을 들었다.
불한당에 합격하고 백여 개의 스케치를 그렸지만 만족할 만한 구도를 잡아내지 못했다.
어제 오리엔테이션에서 불한당 전시관의 콘셉트를 들은 이후로는 더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한 시간. 두 시간.
점심도 거른 채 새 작품을 구상하던 백설기가 허리를 폈다.
늦은 오후였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터라 허기가 밀려들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배는 고프네.’
백설기가 스케치북을 내려다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배를 채우고 환기도 할 겸 밖으로 나섰다.
천천히 걷다가 가까운 매장에서 이탈리아식 샌드위치 파니니와 음료를 샀다. 호텔로 돌아가려던 차 근처에 광장이 있던 걸 떠올렸다.
심적으로 줄곧 압박을 받아왔던 터라 휴식이 필요했다.
광장에는 관광객들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즐거워 보이네.’
백설기는 광장을 바라보다가 계단에 적당히 자리 잡고 앉았다.
머리를 비우고 관광을 즐기는 이들을 바라보다가 종이봉투에서 파니니를 꺼냈다.
포장을 벗겨 한 입 크게 물었다.
치아바타는 겉이 질긴 반면 속살은 쫀득한 빵이었다.
신선한 토마토와 양파가 아삭하게 씹히고 올리브 오일 향이 물씬 풍기는 가운데 치즈 맛이 짭조름하게 올라왔다.
‘맛있다.’
한 번 더 크게 베어 물자 누군가 다가왔다.
‘#Enjoy RESPECT Venezia’라는 문구가 적힌 조끼를 입은 남자였다.
“실례합니다.”
“네?”
“광장 내에서 음식물을 드시는 건 금지되어 있습니다. 파니니를 넣어주시거나 광장 밖에서 드시길 바랍니다.”1)
“아.”
백설기가 당황했다.
“죄송해요.”
파니니를 다시 포장지로 감싸 종이봉투에 넣어 보이자 안내원이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곤 자리를 떠났다.
“…….”
아주 잠시 평화를 찾았던 백설기는 허망하게 광장을 내려다보다가 일어섰다.
‘돌아갈까.’
시계는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밤 8시부터 불한당 세미나가 있었기에 시간은 남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일은 오전과 오후 모두 일정이 있고, 모레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가볼까.’
백설기가 한국관을 떠올렸다.
따로 찾아올 여유는 없었고 비엔날레 개막식에 가보자니 최규서가 있을 게 뻔했다.
지금 말고는 가볼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백설기가 카스텔로 공원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
카스텔로 공원은 10만 평 부지로 하루에 모두 구경하기란 쉽지 않지만, 각 국가관이 연달아 있어 동선 낭비는 적었다.
다만 스위스관, 베네수엘라관, 러시아관, 일본관이 대로를 따라 줄지어 있는 데 반해.
한국관은 일본관 뒤 나무가 우거진 장소에 있어 쉽게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백설기는 카스텔로 공원 안내도를 보고선 혀를 찼다.
‘한국 작가들의 무덤이라더니.’
안내도를 따라 걷던 백설기가 눈을 크게 떴다.
나무 길 사이로 무궁화가 피어 있었다.
분홍색 꽃잎 가운데 붉은 테.
하얀 꽃잎에 피눈물이 떨어져 번진 듯했다.
백설기는 그 의연한 자태에 홀려 그림 앞으로 다가갔다.
‘뭐야?’
꽃잎 한 장 한 장이 너무나 절절하여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누가 이런 걸.’
그녀가 알기로 한국관 주변에 이런 그림을 전시한 작가는 없었다.
‘저기도.’
고개를 들자 가까운 곳에 또 한 송이의 무궁화가 피어 있었다.
이번에는 하얀 무궁화인데 꽃잎이 빳빳하고 힘 있어 절개가 느껴졌다.
“우와.”
익숙한 감탄사가 들렸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시선을 옮기자 그곳에 고훈이 무궁화를 그려 넣고 있었다.
“방송으로 보는 것하고 완전 다르다. 진짜, 진짜 멋있어.”
그 곁에서 첫인상과 달리 단정한 차림을 한 마은찬이 연신 감탄했다.
“아, 백설기 작가님.”
마은찬이 그녀를 알아보고 환하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이건?”
“아. 찾아오기 힘들 것 같으니 좀 더 눈에 띄게 하고 싶다고 아침부터 그리고 있었대요. 멋있죠?”
마은찬으로부터 설명을 들은 백설기는 당황했다.
한국관을 맡은 최규서는 장미래와 척지고 있었고, 최영수 또한 고수열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런 이들이 맡았는데, 한국관을 더 눈에 띄게 해주고 싶다니 쉽게 수긍할 수 없었다.
“저.”
백설기가 고훈에게 말을 붙였다.
“네?”
“공동관이 아니고. 굳이 왜 여기에……. 아니. 다른 뜻은 없었어. 단지.”
백설기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한 고훈이 슬며시 웃었다.
“잘 되면 좋으니까요. 많은 사람이 지켜온 장소잖아요.”
“그렇지만.”
“또 최규서 아줌마가 여기에 오진 않을 것 같고.”
백설기가 의아해했다.
이미 한국관 커미셔너와 예술감독, 작가는 정해져 있었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조직위원회도 김수혁과 최규서가 참여한다고 공식 발표한 상태였다.
“그런 사람을 가만둘 리 없잖아요. 전 할아버지랑 미래 이모, 김지우 기자님 믿어요.”
백설기는 말문이 막혔다.
비록 입장은 다르지만 하루하루 초조하게 보냈던 자신과 달리 고훈은 미래를 보고 있었다.
함께하는 이들을 굳게 믿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아줌마 정말 못됐더라고요.”
고훈이 최영수, 최규서에 관한 보도를 떠올리며 불평하자 백설기가 정신을 차렸다.
최규서를 아줌마라고 부르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러게.”
웃음이 나왔다.
* * *
[한국관 앞에 피어난 무궁화]
11월 23일, 이탈리아 베네치아 카스텔로 공원 안에 때아닌 꽃이 피었다.
한국관으로 들어서는 나무 사이에 피를 머금은 듯 붉게 핀 꽃의 정체는 한국의 국화, 무궁화다.
SNS에서 화제가 된 이 꽃을 그린 사람은 아르누보 공모전에서 준우승을 거두었던 화가 고훈이다.
고훈은 “한국관이 외딴곳에 있어 사람들이 쉽게 지나친다”며 “눈에 띄는 그림을 두면 좀 더 쉽게 찾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관은 백동준 화백과 수많은 한국 작가가 땀 흘려 지킨 장소. 세계 무대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한이 머문 장소지만 동시에 희망의 공간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새로 건립 중인 프랑스‧한국 공동관에 대해서도 앙리 마르소와 함께 홍보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불한당 전시관 취재를 나왔던 프랑스 기자에 의해 고훈의 <한으로 핀 꽃>이 알려졌다.
이에 대한예술협회의 비리로 들썩이던 한국 여론이 폭발하듯 반응했다.
└우리 훈이 장해 ㅠㅠ
└애도 저런다. 애도 한국관 잘 되길 바라서 이 추운 날씨에 밖에서 그림 그리는데 협회라는 놈들이 뭔 짓들이야?
└최규서, 김수혁 이 미친놈들 협회 지원금으로 살아왔음.
└[링크] [최규서 협회 지원금으로 매년 1억 원 부정수령]
└저딴 인간들이 한국관 맡는 게 말이 되냐? 어? 말이 돼?
└당장 바꿔라. 거지 같은 놈들.
└협회 지원 끊어. 내 세금 그딴 데 쓰라고 내는 거 아니다.
└훈이가 진짜 심성이 너무 착하다.
└저기 사람들이 사진 찍어서 올리는데 같이 간 한국 작가들도 같이 그리는 것 같더라.
└어디서 봄?
└여기 [링크]
└고수열, 장미래, 고훈 빼고는 다 못 보던 얼굴이네.
└왼쪽에 있는 사람이 마은찬이고, 그 옆이 백설기, 유라임이라고 함.
└3일째 비리 터지고 있는데 협회 놈들 아무 반응도 없는 거 실화냐. 이거 뭐 어디에 말해야 해?
└나라 망신시키지 말고 당장 한국관 작가 다시 뽑으라고.
* * *
1)2018년 베네치아 관광 당국은 ‘예절의 천사들’이란 이름의 질서유지대를 꾸려 도시 곳곳을 돌며 관광객에게 질서를 지켜달라고 요청하게 했다.
지정된 구역 이외에 앉거나 음식물을 먹으면 벌금을 내야 한다.
그 외에는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일, 다리 위에 서 있기, 운하에 들어가거나 오줌 싸기 등이 금지되어 있으며 우측으로 통행해야 한다.